아침 9시도 안됐을 겁니다. 저는 자고 있었죠. 제대 6개월도 안남은 말년이었거든요. 전투경찰로 차출되어 지방의 T시에 배치받은지 1년 반 정도 지난 어느 해 초봄이었습니다. 예정에 없던 시청출동으로 눈비비며 일어난 20년 전의 나는 닭장차에 오르자마자 베개를 껴안고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곳에 똥이 있을 줄은.
"인분이 조달됐답니다"
하는 전령의 말에 잠에서 깼습니다. 닭장차는 시청을 향해 T시의 중심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오전의 도시 풍경이 여느때처럼 평화로웠습니다. 인분이 뭐야? 점심은 도시락이란 말이냐? 하는 우매한 질문들이 이어지자 소대 전령은 전달사항을 재차 확인한 후 말했습니다.
"똥이랍니다."
똥?..똥이래...진짜 똥?..하며 소대원들이 동요의 기색을 보이자 소대장이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아, 아 마이크 야 야들아, 3소대 다들 들어라. 똥이라 카는데 똥이 뭐 별~끼가? 전경대가 내나 화염병도 막고 돌밍이도 막는데...그냥 평소대로 방패로 막으~미 되는기라...."
20년 전이었지만 T시는 데모가 심하지 않은 도시였습니다. 대학이 있었지만 시위에 화염병이 등장한 적이 없고 보통 시청에 발생하는 상황이래야 학군 변경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피켓시위가 대부분이었죠. 고참들은 T시 내에서 벌어지는 상황엔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상황은 시청 뒷골목의 재개발로 인한 철거 때문이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집행을 거부하는 철거민들이 용역과 대치중이었습니다.
우리 중대는 철거 현장 50미터 전방에 하차하여 도열했습니다. 철거 대상지역은 대부분 단층 건물이었고 관공서 주변이 의례 그렇듯 대부분 식당이었습니다. 그 중 중앙에 위치한 해장국집 옥상이 문제의 인분이 조달된 곳이었습니다. 철거민들이 전경대가 도열하는 광경을 보자 급박하게 움직이는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우리쪽으로 던졌습니다. 검은색으로 추정되는 그 무엇 서너개가 창공을 가르며 우리쪽으로 날아왔습니다. 중대장이 말했습니다.
"야 막아! 막아!"
우리는 훈련받은 전투경찰. 숙련된 자세로 방패를 들어 그 무엇을 막아냈죠. 아 그런데 소리가 이상합니다. 둔탁하게 부딪혀오는 소리를 기대했는데 철처퍽 하는 파열음. 동시에 성분 미상의 액체가 창공에 폭축처럼 흩뿌려지더니 봄비처럼 우리들 머리 위로 내렸습니다. 아뿔사. 굳은 똥도 아닌, 된똥도 아닌, 똥물이었습니다. 방패에 부딛힌 검은 비닐봉지가 맥없이 미끄러지며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누군가 외쳤습니다.
"똥봉다리지 말입니다!"
그제서야 우리 코는 냄새를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옛 이야기 지즐대는 고향의 냄새였지요. 다들 얼굴빛이 똥색으로 변했습니다. 야, 온다 온다!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똥봉다리 서너개가 유유히 창공을 가르며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중대장이 말했습니다.
"막지마! 막지마! 피해!"
홍해의 기적처럼 똥봉다리의 궤적은 우리의 대열을 갈랐습니다. 모두들 살고자 하는 필사적인 의지로 되도록 낙하지점과 멀어지려 하느라 이리 밀치고 저리밀치며 부딪히고 넘어졌습니다. 중대장은 부대를 사정거리 밖으로 이동시킬 수밖에 없었죠. 소대별로 근처의 골목으로 이동하여 엄폐하였고, 잠시 후 소대장이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아, 마이크 아아, 3소대 들으라. 마, 다들 연이은 방범끈무에 잠도 몬자고 피곤할텐데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고생이 말이 아이다. 다친 사람 있나? 함 손들으바라. 없으마 되꼬, 본청 정보꽈에서 방~금 들온 첩뽀에 으하믄 철거민 쟈들이 어제 아래께 인분을 퍼다가 거기다 물을 부어삔기라. 그래가꼬 비니루 봉지에 이 똥무를 담아가 이래 던지는갑데. 첩뽀에 으하모 상!당!량! 준비했다 이칸다. 일따~는 전경대는 장비 문제도 이꼬, 마 골목도 좁아가 마이 간다꼬 될끼 아이라꼬 중대장님께서도 그라니 저짜에 일땅 받는 아재들을 먼저 투입할 모양이다. 마 쟈드른 이 방면에 우리보다 전문가니까 우야튼간에 해낼끼라고 보이지마 호옥~시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마으~메 준비 카는거 단디 해놔야 안되겠나. 금년에 들어온 신병들도 있고 하이까 고참들부터 쪼매 모범을 보이고, 마 그라모 다른 지시사항 있을때까지 대기다. 이상."
사뭇 엄숙한 분위기였습니다. 상!당!량! 있다니까요. 다들 수근대는 가운데 똥독올라서 병가 갈 수 있느니 없느니 입씨름을 하기도 했고, 냄새로 봐서 최소한 3년 이상 묵은 똥이라고 하니 아니다 저건 5년 이상이다 우리 촌에서는 저정도 묵힌 똥은 돈 받고도 안판다느니 하며 시간을 죽이던 차에 용역 아저씨들이 1.5톤 트럭을 타고 등장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