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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5년을 엄마와 단 둘이 살았다. 여자 둘이 살았지만, 외로움을 느끼거나 슬프지 않았다. 엄마와 난 매우 잘 지냈으니까.
엄마는 동네 마트에서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그만두고 공방 같은 것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 워낙 손재주가 좋았던 엄마인지라,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손수 곰인형이나, 봉제인형 같은 걸 만들어줬는데, 또래의 친구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여느 때처럼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왔을 무렵, 엄마가 커다란 봉제 인형을 만들고 있었다. 실제 사람 크기의 인형이었다. 공방을 차리기 전에 실력을 되찾겠다며, 집에서 못 쓰는 이불과 솜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원래 엉뚱한 성격의 엄마는 그것이 완성되자 자신의 옷을 입히고, 사람처럼 이름도 지었다.
“김, 경, 희!”
엄마 본인의 이름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분신이라며 앞으로 우리 집을 지켜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매우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징그러웠다. 단지 헝겊으로 기워 만든 인형치고는 디테일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것을 거실 소파에 앉혀 뒀는데, 가끔 화장실을 갈 때나 물을 먹으러 갈 때, 눈이라도 마주 치면 기분이 찜찜한 것이 매우 신경이 쓰였다.
“엄마, 인형 좀 치우면 안 돼? 아니면 공방에 들고 가던가...”
엄마도 그러고 싶었지만, 인형이 꽤 무게가 나가는지라 어느 정도는 이해를 했다. 부산 중앙동에서 문현동까지 그것을 들고 길을 오르내리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 역시,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느 날부터 인형을 엄마 방에 두었다.
그날 이후로 좀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아직 엄마가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가끔 엄마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방에 갈 때면, 엄마가 만든 봉제 인형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자존심이 상해서 무서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속마음은 소름이 온 몸에 돋아 소리치고 싶었다.
“엄마, 저 인형 좀 버려... 진짜 기분 나쁘다니까? 아니면 내일이라도 공방에 가져가던지?”
하지만 엄마는 웃기만 할 뿐,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가끔 엄마가 정신없이 나가고 나면 그것이 문 앞에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는데, 마치 훔쳐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그것이 그런 나의 기분을 아는 듯 조롱하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엄마의 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릴 때도 있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빈번하게 들렸다. 놀라서 벌컥 문을 열고 나가면, 엄마는 없고 인형만 덩그러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 진짜, 엄마가 없을 때... 계속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니까? 인형이 움직이는 것 같아.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야? 엄마가 공방에 들고 가지 않으면 내가 버릴 거야.”
공방에서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지, 엄마는 나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놔둬라. 애초에 네가 내 방에 안 들어가면 되잖아? 내가 한두 번 웃고 넘겼는데,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니?”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면, 내가 미친X이지. 어떤 사람이 인형이 절로 움직인다고 말하면 믿을까?
그날 이후, 일부로 회사에 마치면 늦게 들어가곤 했다. 인형과 마주치기 싫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퇴근을 하면 일부러 저녁을 먹고 들어가거나, 영화를 보고 집에 왔다. 꼭 그런 날은 엄마가 일찍 들어와서 혼자 집안일을 하는데, 딸이 되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유독 엄마는 인형에 집착을 했다. 매일 바비 인형처럼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혔다. 외로워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인형의 존재를 이해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2박 3일간 혼자 지내야 했는데, 문득 엄마가 없을 때, 인형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친구 일행과 차를 타고 떠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당장 엄마의 방으로 가서 인형의 머리를 잡고 분리수거 하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도통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면 안 되겠지만 적당한 곳에 못 쓰는 가구나, 소파를 버리는 곳에 엄마의 인형을 버렸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집에 들어왔다.
금요일 밤,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지내는 저녁이라 치킨을 주문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띵 ~ 동”
주문한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도착하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래도 빨리 배달이 되는 경우가 있어서 반갑게 문 앞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문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문 열어.”
엄마가 기분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으며 들어왔다. 마치 싸움이라도 한 듯 식식 거리며 들어왔다.
“망할 년, 감히 나한테?”
아무래도 공황 가는 길에 아줌마들끼리 다투어서 다시 집으로 들어 온 것 같았다. 엄마가 걱정되기보다, 왠지 혼자 있는 시간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쉬움이 들었다. 화가 났는지 방안에서는 엄마가 온갖 투정을 부렸다. 문득 두려워졌다. 인형을 버린 걸 안다면, 괜히 불똥이 나에게 튈 것 같았다. 무서운 마음에 다시 그것을 다시 가지러가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띵~동”
걱정을 하고 있던 터에 요란한 벨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만 천원이요.”
치킨배달이었다. 계산을 하고 따끈한 치킨을 건네받았다. 비닐봉지 안에서 따뜻하면서도 달달한, 그리고 튀김 특유의 고소한 향이 나의 코를 찔렀다. 순간 모든 걸 잊고 오로지 상자 속에 든 닭 한 마리를 뜯고 싶었다.
“엄마, 이리 와서 치킨 좀 먹어...”
문을 열고 엄마를 불렀지만, 침대에 누워 잠만 잘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인형을 버렸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혼자서 안심을 하며, 상을 펴고 치킨을 뜯었다. 새콤달콤한 양념에 뇌를 지배당한 나는 어느새 1인 1닭 시대에 맞게 몇 조각 남지 않은 상황을 남겨두었다. 그런데 뉴스속보라며, 부산에서 추돌 사고가 났다는 자막이 떴다. 부상자 7명, 사망자 1명... 나도 모르게 채널을 돌려 뉴스를 틀었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뉴스에 사고차량을 보여주는데, 엄마가 타고 갔던 차량과 매우 흡사했다. 이상한 마음에 자고 있던 엄마를 깨우려는 찰나였다.
“하지만 오랜 뒤에~ 나는 혼자 울고 있었어~”
그날따라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상하게 누군가가 심장을 세게 움켜쥔 것처럼 답답함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엄마였다.
“엄마, 방에서 빨리 나와서 텔레비전 좀 봐. 지금 엄마 친구들....”
그런데 나는 전화 속 엄마의 말에 총을 맞은 듯 숨이 멈춰버렸다.
“혜선아, 큰 일 났어. 공항 가다가 사고가 크게 났어. 엄마는 괜찮은데, 앞에 탄 은자이모가 크게 다쳤어. 엄마 지금 병원 가니까, 크게 걱정은 하지 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방에서 자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입맛이 떨어지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뇌가 인형이라고 인지를 하자, 몸이 석고처럼 굳어졌다. 온몸에 차가운 기운이 돌았다. 필히, 인형 그것이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순간, 엄마의 방에서 요란한 웃음소리가 났다.
“우리 혜선이가 눈치를 챘을까? 이히히히히...”
마치 들으라는 듯 안방에서 혼잣말을 했다. 무서웠다. 당장 지갑을 들고 밖으로 도망을 치려고 자세를 잡았다. 살금살금 최대한 빠르게 보폭을 넓히며 신발을 신으려고 하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그 자리에서 고개만 엄마의 방으로 돌렸다. 엄마의 모습을 한 그것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혜선아, 어디가니?”
이럴 줄 알았으면, 인형을 보다 멀리 버렸어야 했다. 아니, 갈기갈기 찢어서 태웠어야 했다. 엄마는 왜 그런 것을 만들어가지고 나를 위험해 빠트리는지, 미웠다. 내가 문을 열려고 하자, 그것이 일부러 발을 쿵쾅쿵쾅 발을 굴리며 달려왔다.
“혜선아, 어디가게? 이히히히히...”
그것이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인형 따위가 반나절 만에 엄마로 완전히 둔갑했을까? 인형이었단 사실을 모를 정도였다. 그것의 모습은 이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그것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내 머리를 쥐어 잡았다. 나는 안간힘으로 버티며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자 요망한 것이 또 다시 나의 손목을 잡고 문에서 나를 때어 내려 했다. 손이 어찌나 차가운지, 손목이 시려 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누군가가 문을 강하게 두드렸다. 나는 엄마가 생각보다 일찍 온 줄 알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현관문을 열었다.
암전...
현관문이 열리자 기절해 버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버린 인형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는 누구이며, 전화 속 여자는 엄마가 맞을까? 혼란스러운 생각이 몇 초 사이에 빠르게 반복되며 나를 힘들게 했다. 서서히 눈이 감기면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고 눈을 떴을 때, 엄마는 내가 버렸던 인형을 기우고 있었다. 그제야 나를 쳐다 본 엄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정신나간 년아. 내가 애초에 이거를 만들 때, 우리 집을 지켜준다고 말했잖아. 왜 멀쩡한 인형을 버린 것이야? 아주 네년 초상 치르는 줄 알았잖아?”
엄마의 잔소리가 격해지는 것을 보니, 정말 화를 내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교양 있는 엄마이지만, 한번 화를 내면 딸에게도 험한 말을 쏟아냈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부터 내가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다. 무려 15년 동안 밤마다 시달렸는데, 정작 아침에 일어나면 기억이 나지 않아서 몰랐다. 엄마는 오랫동안 나에게 마가 낀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무당집에 가자니,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았고 그렇다고 나를 병원에 보내자니, 정신병자 취급을 당할까봐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다보니 15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귀신을 잡는 노인이 옆 동네에 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파트 경비를 봐줬던 양반이었는데, 사악한 귀신으로부터 사람들을 몇 차례 구했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위해 당장 노인을 찾았다.
하지만 노인은 지팡이에 의존할 만큼 쇠약해져 있었다. 노인은 난감해 했다.
“이걸 어쩐다? 제 생각에는 장례식장에서 못 된 귀신이 붙은 것 같습니다. 15년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사람에게 붙으면 위험해집니다. 그런데, 힘들게 찾아 오셨습니다만... 지금은 그것을 잡아드릴 수 없습니다. 보다 시피 제가 허리가 많이 좋지 않아서요. 다만 손자 녀석이 해외에서 출장을 다녀오면 꼭 잡아 드리지요. 콜록콜록....”
노인은 귀신이 꿈속까지 나타나서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은 반드시 해를 끼칠 목적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말을 믿기 어렵겠지만, 그것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자가 올 때까지 엄마에게 임시방편을 가르쳐주었다. 일단 엄마를 닮은 봉제인형을 만들어서 집에 두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에 노인이 준 부적을 넣으라고 했다. 그래야 봉제인형이 내가 자신의 딸인 줄 알고, 지킨다나? 어쨌든, 노인은 그것이 집에 침입하는 귀신들을 쫓아줄 것이라고 했다. 사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인형이 집에 있을 때는 기분은 더럽지만 숙면을 취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인형을 버렸다니. 그런데 엄마가 진작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이런 일은 없을 것 아닌가? 아니지, 분명 미신 같은 것을 믿는다며 화를 낼 나였다. 지랄 같은 성격 탓을 해야지.
그렇다면 엄마인 척을 한 그 여자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인형은 어떻게 3층까지 올라 온 것일까?
어느 날, 건장한 사내가 우리 집에 찾아오고 나서야 그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붙은 잡귀들이었다. 내가 너무 슬프게 우는 것을 보고, 괴롭히기 위해 붙은 귀신들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귀신들은 인간의 불행을 먹고 사니까.
“당신은 어머니마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까봐 매일이 두렵군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 누구도 부모님을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아 버렸기 때문에 늘 예민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그 기분을 알지요.”
남자가 떠난 뒤, 이상하게도 몸이 개운했다. 이후,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와 함께 공방을 운영하며 매일을 함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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