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의 일입니다.
당시 내게는 사귄지 3년이 된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성격은 서로 정반대였지만, 사이도 좋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였습니다.
이대로 계속 함께 할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사소한 일로 싸웠던 어느날, 그는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면식이 있던 그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받고도, 한동안은 이해가 되지 않아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리자 부모님 손에 이끌려 병원에 와 있었습니다.
얼굴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상당 기간 기억이 단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간의 이야기는 부모님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당시 나는 이따금씩 조용히 눈물을 흘리곤 했다고 합니다만, 병원에서 남자친구를 보고 통곡한 것 외에는 그저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다고 합니다.
너무 얌전해서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조마조마할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며칠이 지나도 그런 상태가 이어졌기에, 부모님은 일단 회사에 연락을 하고 나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를 게 없어서, 말을 건네면 대답도 하고 밥도 조금이나마 먹기는 하는데, 분명히 어딘가 멍한 느낌이 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속이 텅 빈 느낌이랄까, 현실과 한참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일찍 잠자리에 드시고 한 번 잠이 들면 깊게 주무시기에, 한밤 중에 내가 방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잘 몰랐었다고 합니다.
다만 우연히 자다가 깨서 방 앞을 지나갈 때면, 대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뭐라도 할 기운이 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 뿐이었답니다.
49재를 목전에 둘 무렵, 남자친구 어머니가 우리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요새 그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조금 말하기 힘든 기색으로 그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별 문제 없어보이긴 하는데... 우리 아이한테 전하실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전화를 받은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대답하자, 남자친구 어머니는 곤혹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전날 밤, 죽은 남자친구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정리하며 울컥 치밀어 오르는 생각들에 눈물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뚜, 뚜, 하고 전화를 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디서 소리가 나는건가 싶어 주변을 살펴보니, 남자친구가 쓰던 노트북에서 들려오더라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켠 적도 없는데 소리가 나는 게 이상하다 싶어 열어보니, 스카이프가 켜져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는 겁니다.
통화 상대는 나였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자 곧 끊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뭔가 이상하다 싶은 생각에, 통화 이력을 열어보셨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어제부터 하루종일, 내가 전화를 건 기록이 쫙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깜짝 놀라 우리 집에 전화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컴맹인 우리 부모님도 그 이야기를 듣자 깜짝 놀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언제나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게 다가가 말을 걸고 화면을 살폈다고 합니다.
한밤중이니 방 안은 깜깜하고, 컴퓨터 모니터 화면만이 빛납니다.
나는 멍하니 마우스를 누르고 있습니다.
화면에는 스카이프가 켜져 있고, 남자친구에게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기에, 연결이 되지 않아 전화가 끊길 때마다 다시 전화를 걸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겁니다.
소름이 끼쳐 나를 데리고 나와 거실에서 [뭐하는 짓이야!] 라고 고함을 쳤다고 합니다.
나는 [전화를 안 받아...]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 간곡히 더 이상 그는 이 세상에 없다고, 이대로 있으면 너까지 죽는다고 울면서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신히 무언가를 이해한 것인지, 내가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제야 현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너무 갑작스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부딪히다보니, 혼자서 이겨낼 수 없어 남자친구에게 매달리려 했던 것 같습니다.
자주 스카이프로 통화를 하기도 했고, 남자친구는 워낙에 박식한 사람이라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괴담이라고 해서 이야기를 올리기는 했지만,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이라곤 분명 꺼져 있던 남자친구 노트북이 혼자 켜져서, 내게 전화를 했다는 것 뿐입니다.
나중에 내 계정을 살펴보니 확실히 통화 이력은 남아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보다는, 한밤 중에 계속해서 죽은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있는 내 모습과, 남자친구 계정에 찍혀 있던 통화 이력이 더 무서웠습니다.
나 자신이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지를 실감했달까...
제멋대로인 해석이지만, 그에게서 걸려왔던 전화는 그저 죽은 자신의 그림자만을 쫓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던 남자친구가 49재 전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합니다.
끝까지 걱정 끼치고, 신경 쓰게 하는 한심한 여자친구를 위해서요.
단순히 노트북의 오작동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중에 그의 무덤에 성묘하러 갔을 때, 마음껏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왔습니다.
쓸데 없는 첨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가족이던 연인이던 친구던, 지금 함께 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나는 그와 싸우고 잔뜩 화를 낸 다음, 사과조차 못한 걸 지금까지 후회하며 살고 있습니다.
바로 며칠 전이 그의 기일이었습니다.
이제야 나는 겨우 그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그래서 지난 몇년간 옆에서 나를 계속 지지해줬던 친구에게, 결혼을 전제로 한 고백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 생각을 글로나마 정리해두려 합니다.
길고 시시한 이야기였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