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때, 부모님이 자가(自家)를 구입했다. 두 분께서 열심히 가게를 운영하며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아껴가며 얻은 결과였다.
매번 계약이 끝나면 전전긍긍하다가 드디어 보금자리가 생기니, 어렸지만 기분이 좋았다. 좀 낡았지만 꽤 넓었고 햇볕도 잘 들었다. 빌라였지만 1층이었기에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 갈 수고도 없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이상한 일을 겪은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 너른 집이 신기해서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구경했다. 거실에 가구들이 채워지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그러던 중 거실로 향했는데, 아저씨들 사이로 이상한 사람이 한 명 보였다.
베란다에 검은 색 한복을 입은 아줌마가 거실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줌마의 얼굴이 매우 어두웠고 눈빛이 퀭한 것이 썩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인지라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의 손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요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빙그레 웃으며 자신에게 오라는 듯 손짓하는데, 그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겁이 났다. 당장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정신이 없었다. 단지 급한 일이 아니라면 가만히 좀 있으라고 꾸중만 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란다에 이상한 아줌마가 있다고 수백 번을 목 놓아 말했다. 엄마는 관심조차 없었다. 계속해서 집에 문제는 없는지 집안 구석구석을 확인 할 뿐이었다. 아빠는 더욱 정신이 없었다. 엄마가 주문한 가구나 가전기기가 파손 될까봐, 고도의 집중으로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 역시 베란다에 있던 검은 옷 아줌마를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방이란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날아갈 듯 좋았다. 침대도 생기고, 피아노도 생기고, 컴퓨터도 생기고 말이다.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이사를 끝내고 먹는 외식 아니던가? 그날에 먹었던 돼지갈비 맛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천 년도 즘에 해운대구청 골목에 있던 조선숯불돼지갈비는 가히 맛이 예술이었다. 어찌나 맛이 좋던지 혼자서 3인분을 먹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가 주차를 한다며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안 그래도 엄마는 속이 좋지 않아서 집에 먼저 들어갔다. 나는 아빠랑 같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집 앞에 있는 주차장 근처에서 서성였다. 그러다가 무심코 우리 집 베란다를 보게 되었는데,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낮에 보던 아줌마가 우리 집 베란다 안에서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것이다. 너무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줌마는 요란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오라고 손짓을 하는데, 놀라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입은 게걸스럽게 웃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잡히면 반드시 위험해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속되는 겁주기에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지르며 울어버렸다. 아버지가 재빨리 주차를 하며 뛰쳐나왔다.
“어데 다친 거야? 무슨 일이고?”
그땐 너무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베란다를 향해 손짓만 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베란다를 봤을 때는 아줌마가 사라진 뒤라서 아무것도 없었다.
문제는 그날 이후로 베란다에서 아줌마를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베란다에만 나타났다. 특히 엄마와 아빠가 없는 날에 자주 나타나서 겁을 줬다. 부모님에게 말을 해도 혼날 뿐이어서, 아줌마가 보일 때면 베란다를 외면하고 다녔다. 이사한 집에 귀신이 있다고 깨달은 시점에 너무 무서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늘 베란다에 있을 뿐, 거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기에 작은 위안을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집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거실 벽지를 유심히 보더니 손바닥 크기의 직사각형 모양인 뭔가가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희한한 것이 반대쪽 벽에도 있었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챈 엄마는 아빠를 불렀다.
“당신, 혹시 벽지 전부 안 뜯고, 위에 그대로 발랐어?”
아빠는 난감해하면서 전 주인이 그러는 것이 좋다기에 그렇게 했다며 핑계를 댔다. 평소 결벽증 비슷한 것이 있는 엄마는 당장 칼을 가져와서 그것 중 하나를 때어냈다. 벽지를 다시 바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봐야만 했다. 조심스레 그 부분을 칼로 베어내기도 하고, 긁기도 해서 직사각형 모양으로 그것을 때어냈다. 손톱으로 약간 틈이 난 부분을 살살 뜯어내자, 정체가 드러났다. 노란색 종이에 뭔가를 적은 부적이었다. 엄마는 기가 찼는지 아빠를 노려봤다.
“다 때고, 벽지 새로 해 놔라?!”
아빠는 겁에 질렸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바로 그때 베란다에서 귀신이 나타나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너무 놀라서 뒤로 나자빠지며 소리를 질렀다. 아빠는 왜 그러냐고 했지만, 이 상황에서 눈치 없이 귀신이라고 말을 못했다. 물론 귀신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다음 날, 아빠가 도배하는 기사를 불렀다. 거실 쪽에 있는 벽지를 모두 뜯어 낸 것이다. 곳곳에 부적 같은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아빠는 황당해 하며, 도배하는 기사와 함께 모조리 긁어댔다. 그런데 또 그들이 정신없이 뜯고 있을 때, 베란다에 있는 귀신이 또 나타났다. 그녀는 신이 나서 자신의 몸을 마구 흔들어대며 웃어댔다. 광적인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처음으로 베란다 문을 열더니 거실 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 광경을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 감각적으로 거실에 붙어 있던 부적을 때어냈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당장 아빠에게 부적을 때어내지 않으면 안 되겠냐며 말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우리 집은 종교도 믿지 않을뿐더러, 미신은 더더욱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때어낸 부적 몇 개를 내 방으로 들고 들어갔다. 강시영화를 보거나, 중국공포영화를 보면 귀신이 침입하지 못하게 부적을 문에 붙이데, 나 역시 내방 문에 그것들을 붙여댔다.
결국, 거실에 있는 부적을 모두 제거했다. 혹시 다른 곳에 부적의 흔적이 있는지, 아빠가 집 안을 둘러봤지만 깨끗했다.
그리고 그날 밤, 아빠는 부적을 때어 놓은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잠들자마자 악몽을 꾼 것이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깨어나면서 소리를 지를까? 예민한 엄마는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신경질을 부렸다. 아빠는 식은땀을 흘리며 계속해서 “검은 옷 입은 여자, 검은 옷 입은 여자...”라고 되풀이 했다. 그러다가 목이 탔는지, 냉장고로 가기 위해 방문을 여는 순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새벽에 병원신세까지 진 아빠는 입원 후, 수 시간이 지나서야 일어났다. 엄마는 괜히 내가 이사 첫날부터 이상한 소리를 해서 사람 피곤하게 만들었다며 역정을 냈다. 아빠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엄마가 자리를 비우자 입을 땠다.
“아들, 저번에 베란다에서 검은 옷 입은 아줌마를 봤다고 했잖아? 그리고 몇 번 베란다를 보고 놀랐고 말이야. 아들이 본거 아빠한테 전부 말해줄 수 있어?”
처음 귀신을 본 날부터 이후로 꾸준히 나타났다고 말하려는데, 엄마가 들어와서 집에 가자고 재촉했다. 우리 집은 엄마가 왕이기에 두 남자는 힘이 없었다. 항상 날이 서 있는 엄마, 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뭐든지 깔끔해야 하는 완벽주의자였다. 사실 아빠와 나는 엄마가 더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엄마 손에 이끌려 집에 왔다. 들어오자마자, 방학숙제부터 하라고 쪼는데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베란다에서 본 귀신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방문에 부적을 확인했다. ‘내 방에는 못 들어오겠지’라며 안심했다. 그러곤 잠이 들어버렸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거실에서 시끄럽게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고프기도 하고,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문을 닫아 버렸다.
검은 옷을 입은 귀신이 엄마의 다리를 잡고 거실 중앙 쪽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엄마가 무사한지에 대한 걱정보다 공포심이 밀려왔다. 요란한 웃음소리가 거실 가득했다. 무서웠지만 뒤늦은 걱정에 문을 살짝 열었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입을 막고 소리를 참았다. 경악스러웠다. 귀신은 바닥에 엎어져 있는 엄마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방방 뛰어댔다. 엄마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이지만, 통증이 느껴지는지 ‘끙끙’거렸다. 한참을 신들린 듯 뛰어대다가, 갑자기 귀신이 나를 향해 고개를 쓱 돌렸다.
“이히히히히...이히히히히히...”
미친 여자처럼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어대는데, 치아 사이로 침을 뚝뚝 흘려댔다. 굉장히 이질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대뜸 퀭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자신에게 오라며 손짓 하는 것이었다. 내가 무서워서 눈물을 흘리자, 귀신은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마구 흔들면서 나에게 달려오는 것이었다. 심장을 왈칵 쏟을 만큼 놀라버렸다. 서둘러 방문을 닫았다. 귀신은 문을 두드리며 무섭게 웃어댔다.
“으흐흐흐흐... 으흐흐흐... 문 열어, 어서 문 열어라. 으흐흐흐흐...”
나에게 방법이 없었다. 그저 문을 잠그고 오들오들 떠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더니 그것이 나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네 엄마를 죽여 버릴 거야? 그래도 좋아?”
그 말에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셋을 셀 동안 문을 열지 않으면 엄마를 해친다고 했다.
“하나... 둘... 셋?!”
무서웠지만 엄마를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에 문을 벌컥 열었다.
“으히히히히히...”
그녀는 진정 악귀였다. 어린 아이의 가장 순수한 곳을 건드렸다.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귀신한테도 이런 역한 냄새가 날 수 있는 것일까? 하수구 보다 지독한 역한 냄새를 뿜어대며 억지로 내 눈을 마주치려고 했다.
“너희들은 내가 베란다에서 몇 년을 갇힌 줄 아나? 20년 동안 갇혀 있었다, 아이가? 이히히히히... 이히히히...”
이제는 끝났다는 생각에 오줌을 지렸다. 귀신은 반복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다며 말했다. 특히 어린 아이를 죽일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살아 있을 때나, 죽어 있을 때나 아이 사냥이 그렇게 재미있다며 눈앞에서 겁을 주는데,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쓰러지면 엄마를 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정신을 다잡았다.
“아가야, 니한테 선택권을 줄게. 느그집 현관문만 열어주면 너희 엄마랑 니랑 살려줄거다. 대신 내가 밖에 나가면 니 같은 꼬맹이들을 죽이러 다닐 거다, 이히히히히. 근데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너희 둘은 나한테 죽는 거지, 이히히히히.”
무서운 표정으로 협박하는데, 빨리 집에서 내보내고 싶었다. 남이 어떻게 되던 무슨 상관인가? 일단은 살고 보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어줘도 내가 살 수 있을까’, ‘못된 귀신은 분명 거짓말을 잘할 텐데’, 무엇보다 아이들은 무슨 죄인지 혼란스러움이 밀려왔다.
그런데 문득, 어째서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혹시 현관문에 부적 같은 기능이 있기 때문에 귀신이 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제발 그러길 바랐다.
귀신이 선택을 하라고 재촉하라기에 문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귀신이 미치도록 좋아했다. 그러더니 뒤뚱뒤뚱 혼자서 춤을 추며 현관으로 갔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의 방문에 붙은 부적들을 재빨리 뜯어서 귀신의 등에 붙여 버렸다. 속으로 효과가 있으라고 기도했다.
“끄아아아악!!!”
역시 나의 예상이 맞았다. 귀신은 사이렌 같은 비명을 지르더니 몸을 벌벌 떨어댔다. 그리고 나를 죽여 버리겠다며 온갖 욕을 퍼부었다. 나는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엄마는 귀신을 보자, 경악을 하고 말았다. 재빨리 엄마와 맨발로 집안을 뛰쳐나왔다.
그 뒤로 한 동안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집 근처에 있는 외갓집에서 지냈다. 엄마도 그것의 실체를 알게 된 나머지 무당을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했다.
내가 방에서 자고 있을 무렵, 아버지의 기가 허한 것 같아서 푸짐한 집 밥을 해서 주려고 냉동실에서 고기를 꺼내며 문을 닫는데,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얼굴을 들이 밀었다고 했다. 그 뒤로 엄마는 기억이 없다. 아마도 놀란 나머지 기절을 한 것 같다.
엄마와 아빠는 수소문 끝에 전 주인을 찾았다. 전 주인은 한 숨을 내쉬며, 자신들도 어쩔 수 없이 그 집에서 3년 간 살았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2년간은 귀신에 대한 존재를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귀한손님이 집에 방문해서 담배를 태우고 싶다기에 베란다에서 피우라고 했다. 베란다 문을 닫고 담배를 피우던 손님이 경악을 하며 뛰쳐나왔다.
“저기 베란다에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봐... 봤습니다. 좀 전에 세탁기 위에서...”
농담을 하시는 분이 아닌지라 난처했다고 한다. 사실 그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베란다가 으스스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손님이 무속개통에 일을 하는 자신의 지인을 불러보자고 권유를 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기도 하고, 다른 것도 물어 볼 생각에 허락했다. 그곳을 본 무당의 말에 의하면 이랬다.
“위험한 귀신이 베란다에 있십니다. 아주 위험한 귀신이라예... 저거는 살아 있을 때도 귀신보다 더한 년이라예. 지금 보소,거실 안을 보면서 우리를 조롱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당도 벌벌 떨었다고 했다. 하지만 무당은 사람이 사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했다.
“근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 거실 벽에 온통 귀신들이 싫어하는 부적들 투성입니다. 오히려 문을 열어 놓으면 귀신이 부적 기운 때문에 아무것도 못할 겁니다. 웬만하면 베란다 문을 열어 두이소. 옴마야? 저거저거, 지금 제가 이런 말 했다고 몬땐 눈으로 쳐다보네예.”
무당은 당장 베란다 문을 열어 버렸다. 부적의 기운 때문에 베란다 천장이든 벽에 안에 숨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을 닫은 상태로 베란다에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했다. 자칫하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무당이 추측하기로, 아주 오래 전에 이 집은 질 나쁜 무당이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악귀(惡鬼)를 이용해서 뭔가를 해보려고 한 것 같은데, 매우 위험한 귀신인지라 감당이 되지 않아, 베란다에 가둔 것 같다고 했다.
전 주인은 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찝찝한 것이 사실이란다. 그래서 이사를 결심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혹시나 집이 팔리지 않을까봐, 그리고 요즘 시대에 그런 것들이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없기에 애써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은 난감한 상황에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훌륭한 퇴마사가 부산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인의 아들이 유년시절에 고약한 귀신에게 당할 뻔 했는데, 뛰어난 퇴마사가 나타나서 구해줬다는 것이다.
결국 그에게 부탁해서 집에 있는 귀신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 수소문 끝에 지인이 적어준 주소지인 당감동으로 향했는데 웬 노인 하나가 경비실에서 따뜻하게 맞이했다.
“도영이 어머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집에 문제가 생기셨다고요?”
아빠가 그간의 일을 모두 설명했고, 귀신을 믿지 않았던 엄마가 적극적으로 생김새라든지 꿈속의 상황을 묘사했다. 노인은 골치가 아프겠다며 머리를 긁적이다가 죽어서도 ‘살인의 본능’이 남아 있는 악귀라고 했다. 필히 살인에 맛을 들인 인간이 죽어서도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본능에 영혼이 먹힌 것이라고 했다. 노인은 시간을 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원일이냐,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방에서 도목검(桃木劍)이랑 호리병, 부적 좀 챙겨 가져와라.”
5분 뒤, 노인의 손자가 왔다. 그리고 당장 우리 집으로 출발했다. 엄마의 말로는 보잘 것 없는 노인이지만 혼자 집에 들어가 요망한 것을 호리병 속에 가두었고, 저승차사가 데려갈 수 있도록 어딘가에 묻어놨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 살리는데 돈을 받을 수 없다면서 노인은 손자와 함께 떠나버렸다.
이후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았다. 노인이 써준 부적 때문일까? 십 수 년을 살아도 귀신 비슷한 것, 가위, 악몽 같은 걸 모르고 살았다. 물론 이상하게 부모님의 사업도 잘 되면서 좋은 곳에 이사를 왔는데, 이상하게 불안하다. 베란다에서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다.
백도씨끓는물 님 글
흉가체험 갔다 생긴 썰 https://c11.kr/5mj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