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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내 오른쪽 다리가 부어 있었다.
허벅지부터 발바닥까지 기묘하게 부어있었다. 아니 이걸 부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마치 그 부분만 200킬로가 넘는 비만인의 다리 같았다. 당황한 나는 일어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정형외과로 갔던 거 같다. 아침이라 아직 사람은 몇 명 없었다. 나는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사장에게 연락해서 갑자기 몸이 안 좋아 오전은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많이 안 좋아?”
사장의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담은 핸드폰이 고함을 쳐댔다.
“네…. 죄송합니다.”
“그래 진료 잘 받고, 오전 근무는 안 한 거로 해놓을 테니 그런 줄 알아.”
사장은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팍 끊어버렸다. 새끼 성질 하고는….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다리를 절뚝이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아….”
의사는 내가 들어가자마자 왜 왔는지 알겠다는 듯 내 다리로 시선을 고정했다. 바지가 터질듯했고 바지 밑단으로 살이 비죽비죽 삐져나와 있었다. 말도 안 돼.
“아침부터 갑자기 이러네요….”
“어디에 부딪히셨거나? 골절을 당하셨다거나?”
“아니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그냥 아침부터 갑자기 이러네요.”
“흠…”
의사는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했다.
“어디 한번 보죠. 옷을 좀 잘라도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의사는 메스를 가져와 바짓단을 찢었다.
그런데 찢자마자 식물의 이파리가 정강이에서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튀어 올랐다. 의사의 눈이 놀라움에 커졌고 내 입도 떡 벌어졌다. 언제 들어왔는지 간호사가 ‘어머’ 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럴 수가 내 오른쪽 다리에는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어떤 식물이지? 둥그런 잎을 보니 활엽수 같았다. 잎을 따라 내려가 보면 줄기가 나왔는데 줄기의 뿌리로 추정되는 것들이 내 정강이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나는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거… 점점 자랄 거 같은데요.”
의사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실제로 의사가 말하는 동안에 잎의 넓이가 점점 넓어졌다. 나는 공포감에 휩쓸려 다리를 덜덜 떨었다. 이거 에일리언에서 보던 그런 건가? 저 식물이 나를 곧 모두 먹어버리는 건가? 내가 뭘 했다고? 어제 회식에서 고사리를 좀 많이 먹었던 거뿐인데?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바로 집에 들어와 잤는데?
“일단 잘라내기로 하죠.”
의사는 식물을 잘라내기 전에 나에게 동의각서를 쓰게 했다. 혹시나 이 식물을 잘라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더라도 감수하겠다는 각서였다. 의사도 어지간히 두려웠는지 내가 각서에 서명하는 동안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냉수를 한잔 마셨다. 서명한 각서를 건네자 의사는 찬찬히 훑어보더니 간호사에게 각서를 건네줬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메스를 이용해 천천히 식물과 내 피부가 만나는 부위를 잘라 나갔다.
마취해서 식물을 잘라낼 때는 특별히 고통이 없었다. 그런데 식물을 잘라낼 때 단면에서 초록색 액이 떨어졌다. 그것이 살갗에 닿자 치익 소리를 내며 살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염산을 뿌린 것 같은 효과였다. 나는 전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 광경을 보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절단부를 지져야겠다고 말했다. 나도 동의했다. 의사는 수술용 라이터를 가져와 절단부 위를 지졌다. 뭔가 음식이 타는 냄새가 났다. 그 라이터가 내 살도 일부 지졌다. 젠장. 젠장.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자 끝났습니다.”
절단면을 지지고 나자 다리의 붓기가 처음보다 반 정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왼쪽 다리보다 부어있기는 했다.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이라서요. 학계에 보고해봐야 할 거 같습니다. 일단 집에서 푹 쉬시고요. 진통제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또 자라면 어떻게 하죠?”
“다시 병원 오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병원에 오실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응급처치로 직접 식물을 잘라내는 수밖에요.”
의사는 아까보다 놀랍도록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다. 마치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나는 짜증이 밀려왔지만 방금 큰일을 치른 뒤라 화낼 힘이 없었다. 그냥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약국에서 진통제를 타고 집에 가서 바지를 갈아입은 다음 회사로 출근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중소기업이라서 사원이 어떤 일이든 간에 빠지는 일이 생기면 공백을 메우기 힘든 직장이다. 그래서 사장은 결근을 엄청나게 싫어한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한 소리 들어야 했다.
“멀쩡한데? 어디가 아픈 거야?”
사장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말했다.
“다리가 좀 아팠어요.”
사장이 다리를 보았지만 내 다리는 이제 붓기가 다 빠져있었다.
“멀쩡한데?”
“병원 갔다 와서 괜찮아졌어요.”
‘고작 이 정도 가지고 오전 시간을 빠졌다는 거냐?’ 라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사장하고 더 대화하다가는 잔소리만 들을 거 같아서 꾸벅 인사하고는 내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별일 없이 일하는 척을 했다.
일하는 동안 오른쪽 다리가 가려웠다. 특히 불로 지진 부분이 가려웠다. 나는 박박 긁어대며 문서 정리를 했다. 그러다가 너무 간지러워서 진통제를 먹었다. 그런데 희한한 게 진통제를 먹고 나니 더 가려운 것이었다.
나는 일하다 말고 화장실로 갔다. 물론 주변에서는 눈치를 줬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놈의 가려움이 모기 물린 곳에 붓으로 살살 문지르는 거 같은 그런 미칠듯한 가려움이었다. 젠장. 젠장.
화장실에서 오른쪽 바지를 걷어봤다. 살점은 빨개져 있는데 식물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안도했다. 그래도 낫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간지러움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화장실 문 모서리에 왼쪽 다리를 긁어댔다. 피가 났다. 시발. 피가 났는데 더 간지러웠다. 간지러움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나는 회사를 몰래 빠져 나와 회사 가까이에 있는 피부과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그 병원에는 사람의 줄이 너무 길었다.특히 여자들이 많았다. 20대 여성부터 50대 주부까지…. 예약하고 줄을 서는 동안 진통제를 하나 더 먹었다. 그런데 진통제를 먹자마자 이번엔 타들어 가듯 간지러웠다. 진통제에 뭔가 문제가 있는 듯했다. 나는 쓰레기통에 진통제를 집어 던지고 병원을 나왔다. 계속 다리를 문지르면서 지하철 안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봤다. 간지럽다. 너무 간지럽다. 제발. 살려주라! 제발….
나는 여자친구 집으로 갔다. 왜 병원을 안 가고 여자친구 집으로 갔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병원에 가봐야 진통제 정도나 줄 것 같아서 그랬던 거 같다.
여자친구가 낮에 무슨 일이냐며 놀란 눈으로 나를 맞았다. 여자친구는 프리랜서 작가라 집에 온종일 있을 때가 많다.
“무슨 일이야? 낮부터 하고 싶어서 온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다리가 너무 간지러워.”
나는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바지 위로 오른쪽 다리의 정강이를 긁어댔다. 다리가 다시 부어있었다. 하지만 바지를 벗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뭔가 끔찍한 게 있을지도 모르겠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가 나 대신 오른쪽 다리를 긁어 줬다. 하지만 이젠 가려움을 넘어 쓰라렸다. 정강이 쪽 바지가 볼록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또 식물이 자라기 시작한 건가…. 나는 부엌에 가서 식칼을 들고 돌아왔다. 내가 잘라버려야지. 그 식물. 내가 잘라버리겠어.
“뭐 하려고? 응?”
여자친구가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지금 그 질문에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먼저 바지를 잘라내야 했다. 그런데 바지를 칼로 잘라내려는 순간 바짓단에서 엄지손가락만 한 밤송이가 빼꼼하고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그건 밤송이가 아니었다. 사람의 뒷머리였다. 잠시 후 뒷머리는 머리를 돌려 나를 돌아봤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얼굴은 다름 아닌 바로 내 얼굴이었다!! 갓난아이처럼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지금의 내 얼굴이었다!! 그 작은 사람은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듯 바짓단에서 팔과 다리를 빼내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입고 있는 옷도 내가 입은 옷과 똑같았다.
“안녕?”
작은 사람이 내려와 인사했다. 그것이 빠져나오자 다리의 고통은 사라졌고 부기도 빠졌지만, 더 큰 공포가 엄습해왔다.여자친구는 그 녀석이 보이지 않는 거 같았다. 대신 나의 이상한 행동에 겁먹어 울먹이고 있었다.
“자기야… 지금 저 녀석… 저 녀석 보여?”
“뭐가 보인다는 거야? 당신…. 괜찮아?”
“내 다리 앞에 저 녀석… 나랑 똑같이 생긴 녀석…”
여자친구가 나를 한참 미친사람처럼 보더니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을 재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바로119에 전화했다. 나는 여자친구를 말리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은 긴급상황이고 재난 상황이다. 어쩌면 내가 정신분열증에 걸린 걸지도 모른다.
나랑 똑같이 생긴 그 녀석은 방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어린애같이 방 안의 이것저것에 호기심을 보였다. 크기가 기껏해야 손바닥만 한 녀석이기에 더 어린애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나는 가만히 그 녀석을 지켜봤다. 카펫 위 대자로 누워 팔다리를 휘적거리질 않나, 과일 바구니에 들어가 사과를 한입 먹질 않나, 콘센트에 있는 핸드폰 충전기의 케이블을 빼려고 낑낑거리질 않나…. 그러다 모두 재미가 없었는지 다시 앞으로 왔다.
“너 참 불쌍하다.”
그 녀석이 갑자기 내 눈을 똑똑히 보며 말했다. 시발 불쌍하다니…. 무슨 말이야? 난 여자친구가 놀랄까 봐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말했다.
‘뭐가 불쌍하다는 거야?’
녀석은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오늘 다리에서 식물이 자란 것도 불쌍하고, 미치도록 가려워서 피가 날 정도로 긁은 것도 불쌍하고, 지금 내가 태어난 것도 불쌍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렇게 내 말을 잘 이해 못 하는 것도 불쌍하다 이거야.”
녀석은 계속 내가 불쌍하다는 말만 이어갔다. 나는 오히려 이 녀석이 더 불쌍했다. 앞으로 저 작은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는지….
“불쌍해… 불쌍해….”
녀석은 눈에 눈물이 맺히기까지 했다. 나는 저 녀석의 생각을 이해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저 녀석은 끝까지 자기 얘기만 했다. 119가 올 때쯤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오열하고 있었다.
“너 씨발... 왜 이렇게 불쌍한 거야! 흐흐흐흑... 제발.. 불쌍하게 살지 마….”
119대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명의 대원은 내 눈에 플래쉬를 대고 동공을 확인 했다. 또 한 명의 대원은 내 오른쪽 다리를 주물렀다. 나는 가만히 대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곁눈질로 녀석을 지켜봤다. 녀석은 너무 울어서 지칠 대로 지친 것 같았다.
“불쌍한 새끼.”
그렇게 말하더니 녀석은 눈물을 닦고는 열려있는 베란다로 나가 뛰어내렸다. 여기는 아파트 12층이었다.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그건 꿈이었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때 병상에서 일어난 걸 보면 꿈은 분명 아닌 거 같다.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다. 내 오른 다리에는 지금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 기묘한 경험 이후로 내가 불쌍하다고 느껴질 때면 오른쪽 다리를 긁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긁고 있는 동안에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녀석은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정말 불쌍하다는 얘기만 하려던 걸까?
의미를 찾아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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