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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 1. 일뽕이 조금 들어간, 아니 읽으시는 분에 따라 과도하게 들어갔다고도 볼 수 있을 글이므로, 일뽕에 혐오가 있으신 분은 조용히 뒤로가기를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명 2.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인물, 단체, 심지어 지명까지도 모두 창작된 허구 입니다. 실제로 일본에는 그런 현이 없다, 그런 지역이 없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 주세요. ^^;;
나츠키 루자미네 이야기.
첫 번째. 루자미네의 시작.
그 사건이후 나는 고향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나의 가장 친했던 친구가 죽은 사건. 그 사건으로 하루키가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후유키가문은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은 사저택촌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폐쇄된 지역. 폐쇄된 마인드. 폐쇄된 감각. 모든 것이 폐쇄되어 버린 마을 사저택촌(四邸宅村). 그 안에서 4개의 가문이 저택을 짓고 살았다. 마을은 정원형(正圓形)으로 구획되었다. 그리고 네 개의 방위마다 저택이 들어섰다. 그 저택의 주인들은 자신의 성을 4계절을 따라 지었다. 동쪽의 저택에는 봄의 하루키(春季)가문이, 서쪽의 저택에는 가을의 슈우키(秋季)가문이, 남쪽의 저택에는 여름의 나츠키(夏季)가문이, 북쪽의 저택에는 겨울의 후유키(冬季)가문이 들어 살고 있었다. 그 사건이 있은 지 석 달. 나는 보름마다 북쪽의 후유키가문에 찾아와 내 친구 세리나의 가묘에 향을 올리고 있다. 어머니의 잘못된 사랑과 그 사랑으로 인해 강령한 악령. 그리고 그 악령에 고통을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세리나. 세리나의 가묘에 향을 올릴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나를 구해준 사람.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 그리고 너무나도 미안한 사람. 마지막으로 지금까지도 나를 지켜주는 사람.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세리나보다 먼저 가묘에 안치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이야기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정원형으로 구획된 사저택촌의 남서쪽에 마을의 입구가 있는데, 그 입구에는 커다란 토리이가 서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것이다. 신의 사자인 새들이 쉬어가도록 만들었다는, 신사 앞에나 세워질 토리이가 마을의 입구에 서있는 것을……. 하지만 조금 생각을 바꿔보면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저택촌의 네 가문은 신을 모시는 가문이기 때문에 마을의 입구에 토리이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자신들이 믿고 섬기는 신들의 사자가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섬기는 신은 이러하다. 동쪽의 하루키가문은 청룡이라는 신을, 서쪽의 슈우키가문은 백호라는 신을, 남쪽의 나츠키가문은 주작이라는 신을, 북쪽의 후유키가문은 현무라는 신을 섬긴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네 가문들이 섬기는 신은 자시키와라시의 모습으로 각 가문에 존재하고 있다. 일본사람들은 자시키와라시가 부와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 있다. 어쩌면 사저택촌의 가문들도 자시키와라시의 모습으로 온 신들의 영향으로 큰 복을 받아 부를 쌓았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내 소개를 하겠다. 내 이름은 나츠키 루자미네. 남쪽의 나츠키가문 사람이다. 왜인지 몰라도 나는 오빠나 언니, 동생보다도 더욱 영력이 강했던 것 같다. 5살 무렵, 다른 형제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시키와라시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자시키와라시와 함께 뛰어놀곤 했다. 다른 형제들은 혼자서 마구 뛰어다니는 나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주작신을 모시는 신녀인 어머니는 주작님과 놀아준다면서 나를 매우 칭찬하셨다. 어머니의 칭찬에 다른 형제들의 질투를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시키와라시와 노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머리가 크고 배우는 것이 있다 보니, 사저택촌이라는 마을자체가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냄새나는 동네인지 알게 되었다. 15살이었나, 16살이었나, 그 때부터는 다른 형제들에게도 자시키와라시의 모습이 보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첫째인 오빠가 열성으로 자시키와라시, 정확히 말하자면 자시키와라시의 모습을 한 주작님에게 기도를 올렸다. 가문의 유지를 이어받길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런 오빠의 모습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주작님의 총애가 오빠에게 임할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다. 그리고 19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고향을 떠났다. 나츠키가문의 자금력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홀로서기가 시작된 지 3개월.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 매일 밤, 가위에 눌리고 악몽을 꾸게 되었다. 그 악몽이 얼마나 현실 같고 무서운 지, 가위에 눌리게 되면 그 뒤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2주에 한번 눌리더니, 시간이 갈수록 그 주기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가위눌림은 작은 고통에 불과했다. 가위눌림의 고통에 빠진지 6개월. 이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3주에 한 번씩은 꼭 발작적인 고열에 시달려야 했다. 누군가에게 실컷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렸으며 뒤집어 질 것 같은 속 때문에 습관적인 구토도 생겨 버렸다. 속이 좋지 않아 잘 먹지도 못했는데 구토는 일어나고 시커먼 위액만 연신 토해대는 통에 식도염까지 생겨버렸다. 그렇게 나는 병마에 시달려야 했다. 병의 원인도, 악몽의 원인도 알아 내지 못한 채, 내 몸은 망가져가고 있었고 그렇게 3개월이 더 지나갔다. 그 날도 어김없이 찾아온 악몽에 신음할 때, 그 악몽에서 자시키와라시, 아니 이제부터 주작님이라고 하겠다. 주작님이 나타나셨다.
“넌 내 아이인데 어딜 가 있는 거야!”
주작님이 소리쳤다. 나는 꿈속에서 멍하니 주작님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던 것 같다. 화를 내며 분노하는 주작님의 모습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일주일 이내로 저택으로 돌아와!”
나는 그렇게 잠에서 깼다. 그리고 이제껏 겪었던 고통이 모두 신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돌아가는 것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때 당시에는 고리타분한 마을에 돌아가서 더 고리타분한 신을 모시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정말로 싫었다. 그래서 저항했다. 하지만 저항을 하면 할수록 고통은 더욱 심해져 갔다. 주작님께서 주신 일주일의 시한이 지나자, 무서운 것들은 내가 잠들지 않았을 때도 나를 농락했다. 눈을 뜨면 시각적인 두려움을 주었고 눈을 감으면 소리와 심리적인 공포를 주었다. 그걸 잊기 위해 잠에 들면 가위로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나는 병들어 갔다. 몸도 마음도 점점 나약해져 갔다. 결국 나는 극단적인 결정을 하게 된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 와중에도 그것들은 나를 괴롭혔다. 고층빌딩을 향해 가던 길, 나는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며 가로수 밑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밀려오는 욕지기에 왈칵 구토를 하고 말았다. 시커먼 위액을 토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갑자기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잘 들어보니 어릴 적에 내가 아프면 엄마가 읽어주던 것과 비슷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뒤를 돌아봤다. 웬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다.
“괜찮아요?”
나는 입을 벌린 채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요.”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서려니 어지러웠다. 그가, 어지러워서 비틀거리는 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처음 보는 낯선 이의 행동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수줍게 그를 밀쳐냈다.
“괜찮아요.”
“이렇게 깡마르고……. 지금 무슨 일 있죠?”
나는 당황해서 멀뚱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어? 이런, 실례가 많았네요.”
그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서 내밀었다. 구마모토 전산의 직원인 것 같았으나 이름은 읽을 수 없었다.
“김민규라고 합니다. 한국인이에요.”
그는 마치 내가 한자를 읽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을 소개했다.
“아, 네.”
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시큰둥한 반응이 나왔다. 아니 어떻게 반응을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 낯설지만 희한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경계심이 많은 편인 내가 그런 느낌을 가진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어서 그런 반응이 나왔던 것이다.
“지금……. 영적인 문제를 겪고 있죠?”
이제야 이유를 알았다. 그가 나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었던 이유.
“그, 그걸 어떻게 알았죠?”
“당신 주변을 맴돌던 검은 기운이 당신의 맑고 투명한 기운들을 흡수하더군요. 당신의 맑은 기운은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당신에게 생긴 문제가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더 이상 버티다가는 죽게 될지도 몰라요.”
“당신은 도대체……?”
“저도 영적 세계를 경험했고, 조금이나마 영적 능력을 부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서 떠나세요. 당신을 해칠지도 몰라요.”
나는 그에게서 두어 발자국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가 다가오면 나는 물러섰고, 내가 물러서면 그는 다가왔다.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모시고 있는 신이 더 세나 봐요. 당신 주변에 있던 검은 기운들은 모두 사라졌어요.”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왜, 왜 이래요?”
당황한 나는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는 더욱 강하게 잡았다.
“당신을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요.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죠?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 좀 해요.”
나는 싫다고 계속 손을 뿌리쳤지만 그럴 때마다 그가 잡은 손은 더욱 강해졌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병까지 얻은 나는 속수무책으로 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있던 곳 근처의 커피숍에 들어가서야 그는 내 손목을 놓아주었다. 꽉 잡아서 쓰린 손목을 반대편 손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당신 참 무례하군요. 싫다는 사람을!”
나의 핀잔에 그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이 무얼 하려 가는 길이었는지 알아버렸어요.”
그의 말에 나는 화내는 것을 멈추었다.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기 때문에…….
“뭐, 뭐라고요?”
“당신을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은 내가 모시고 있는 신이 강했기 때문에 사라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이대로 당신 곁을 떠나가 버리면 그 검은 기운은 다시 당신을 장악하고 당신이 하려던 일을 실행하게 만들 거예요. 당신, 스스로 목숨을 끊으러 가는 길이었죠?”
심장이 쿵하고 뛰었다. 마치 어머니께 나쁜 짓을 들킨 아이처럼. 하지만 나는 오히려 화가 났다.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죠? 정말 불쾌하네요. 당신 아무 여자한테나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건가요?”
문득 나의 몰골이 그 어떤 남성에게도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의 부끄러움 수치는 맥스를 넘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의 폭언에 그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를 살짝 밀치고 카페입구로 나갔다. 그때 다급한 그의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루자미네씨! 제발 부탁이에요. 다른 마음은 없으니까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나는 그에게 내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내 이름을 알고 있다. 그것도 그가 모시고 있다는 신이 이야기해 준 것일까?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루자미네씨. 지금 나가면 반드시…….”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냐고요! 당신이 모신다는 신이 가르쳐 준 건가요?”
나의 다그침에 약간 흥분해 있던 그가 흥분을 가라 앉혔다.
“전부 이야기 해 줄 테니까, 앉아요. 앉아서 이야기해요.”
더 이상 소리 지를 힘도 남아있지 않은 나는 비틀거리며 구석으로 가서 앉았고 그 뒤를 그가 따라왔다.
“뭐 좀 마실래요?”
“아니요. 혼자 마셔요.”
“…. 그러면 주문해 올게요.”
그가 주문하러 간 사이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동의도 없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에 대해서는 몹시 불쾌했지만, 솔직히 두려움을 없애고 평온함을 준 그 순간부터 그에게 끌렸다. 나에게 내밀었던 손의 온기, 그리고 나에게 지어주었던 미소. 그 미소 짓는 얼굴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주문한 음료를 가지고 그가 내게 온다. 날 끌리게 한 미소를 지으면서.
“후후. 빨리 나왔네요.”
그가 가져온 컵에서 나는 달짝지근한 고구마향기가 내 후각을 자극했다. 자극당한 후각은 곧 미각을 자극했으며 미각은 침샘을 폭발시켰다. 나도 모르게 입에 고인 군침을 삼켰는데 소리가 꽤 크게 났다. 그 소리를 들은 그가 나를 쳐다봤다.
“마실래요?”
그가 잔을 내민다.
“아, 아니요. 됐고! 이야기나 해봐요.”
나는 괜히 성질을 부리며 이야기했다. 그는 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모시는 신께서 루자미네…….”
그가 하려던 말을 멈추고 내 눈치를 보았다.
“이름으로 불러도 되죠?”
“내 이름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의문이 풀릴 테니 상관없어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라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제가 모시는 신께서 루자미네씨의 수호령을 만났어요. 타오르는 불꽃같은 진홍색의 머리와 진홍색의 눈동자를 한 여자아이 모습의 자시키와라시라고 하시더라고요.”
단번에 그 존재가 주작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수호령이었다니…….
“하지만 수호령으로서의 그 존재가 매우 희미했다고 해요. 그래도 어찌 어찌해서 말을 거셨다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한 2초간 그러고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 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네요. 정말 성질 급한 신이시라니까요.”
그는 다시 라떼를 한 모금 입에 물고 음미한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녀와 대면하자 그녀가 대뜸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해요. ‘그 아이의 이름은 나츠키 루자미네. 장차 내 아이가 될 사람이니 너희들은 관여하지 말라!’라고요. 하지만 당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이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장군님은 ‘한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데 관여하지 말라니 무슨 소리인가!’라고 반문하셨대요. 아! 제가 모시는 신을 장군님이라고 불러요. 앞으로 장군님이라고 할게요. 장군님께서 그렇게 반문하자 루자미네씨의 수호령이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죽어버리는 것도 좋지.’라고 이야기 했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고 이내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정말 이상했다. 그것이 분노와 두려움의 눈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울어요?”
그는 냅킨을 뽑아 건넸다. 나는 그가 건넨 냅킨으로 눈물을 닦았다.
“아니요. 계속 하세요.”
“그 순간 장군님이 제게 루자미네씨의 사정을 이야기 했고 제가 그런 행동을 했던 거예요. 불쾌했다면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루자미네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저로서도 원하지 않았어요.”
그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나의 표정을 살피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도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나는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올라 있다.
“루자미네씨.”
“루, 루네라고 부르세요.”
“아, 루네씨…….”
“씨는 안 붙여도 돼요. 그냥 루네라고 불러 주세요.”
“그, 그럼, 루네…….”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루네…… 짱 이야기 해줄 수 있어요?”
루네짱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귀 끝까지 빨개진 그가 말했다.
‘귀여워.’
미소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뒤로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또한 식욕이 다시 돈다는 것도 놀랐다. 지금 김민규라는 사람을 만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짧은 시간 만에, 그는 나에게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저어…….”
“아 네. 말씀하세요.”
빨개진 귀를 문지르던 그가 손을 내리고 나를 쳐다봤다.
“제가 지갑을 갖고 나오지 않아서 그런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것. 고구마 라떼 한 잔만 사주실 수 있나요?”
그는 내 말을 듣더니 환하게 웃었다.
“당연하죠. 사 드릴게요. 잠깐만 기다려요.”
그는 주문대로 갔고, 잠시 후, 음료를 가지고 돌아왔다.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건넸고,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잔을 받았다.
“고마워요.”
“괜찮아요. 천천히 마셔요.”
나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천천히 음료를 마셨다. 쓰렸던 식도와 위가 천천히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몇 모금 더 마시고 나는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태어난 마을과 그 곳에 사는 가문에 대해서. 또 그 가문이 모시는 신에 대해서. 그 마을을 떠나서 내가 겪은 고통에 대해서. 하나도 숨김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었던,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쌓아두기만 했던 일들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으니 그렇게 마음이 편해 질 수 없었다.
“고생이 참 많으셨군요. 1년 가까이를…….”
그는 품에서 노란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빨간색 싸인펜으로 무언가를 그렸다. 펜이 움직이는 모습이 그가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루자미네씨를 괴롭힌 악령들이 제 장군님에게 지고 흩어졌으니까….”
그리기를 마친 그는 완성된 종이를 나에게 내밀었다.
“장군님의 힘이 담긴 부적이에요. 그것만 있으면 며칠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며칠이요?”
며칠이라는 말이 의아했다.
“정식으로 만든 게 아니라……. 또 문제가 생기면 제가 드린 명함의 번호로 전화주세요. 바로 달려갈게요.”
그렇게 민규씨와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부적의 효과가 떨어져서 몇 번인가 더 신세를 졌고, 그 뒤로 민규씨는 내 집에 들어와 동거하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 생활하며 우리는 연인으로 발전했고, 많은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행복도 1년 반만에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상적인 생활을 되찾고 그는 구마모토 전산에, 나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나갔다. 그런데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나를 좋아하게 된 남성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그 좋아하는 마음이 집착으로, 집착을 넘어서 스토킹하는 데에 까지 이르렀다. 내가 식당을 쉬는 날, 그는 우리 집을 찾아와 나를 강제로 범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날따라 민규씨가 일찍 들어왔고 스토킹범과 마주치게 되었다. 스토킹범은 당황한 건지, 분노한 건지 품에 품고 있던 식칼을 꺼내 민규씨에게 달려들었다. 민규씨는 미처 대응할 사이도 없이, 스토킹범의 칼에 찔렸다. 한번으로도 부족했는지 수차례나 더 찌른 스토킹범은 도망갔다. 하지만 나는 패닉상태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피투성이가 된 민규씨를 끌어안고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나의 비명을 듣고 나온 이웃 주민들의 도움으로 구조대를 불러 민규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으로 가는 앰뷸러스 안. 그는 피를 토하면서도 나를 걱정했다. 자신이 죽으면 우리 루네 누가 지켜 주냐고. 또 그것들이 와서 괴롭힐 텐데 어떻게 하냐고. 나는 거의 비명에 가깝게 죽지 않을 거라고 소리를 질렀다. 병원에 도착해 수술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김민규 환자 보호자님?”
의사의 목소리가 침울했다.
“안 돼요. 제발! 제발 그 말씀만은!!!”
“나츠키님. 김민규 환자. 운명하셨…….”
“그만!!!!!”
그 뒤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눈을 떠보니 해는 중천에 넘어가 있었고, 내 곁에는 이웃주민인 오오시마 할아버지 부부가 앉아 계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분을 보니 눈물부터 왈칵 쏟아졌다. 할머니는 말없이 내 눈물을 닦아주셨다.
“젊은 처자가 몹시 안 됐어. 보아하니 정말로 열렬히 사랑한 사이 같던데.”
“할머니. 저 못살아요. 정말로 못 살아요.”
눈물은 어느새 통곡이 되었고, 할머니는 그저 말없이 나를 끌어안아 주실 뿐이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갑자기 시야에 검은 연기 같은 것이 비쳐졌다.
‘이, 이건?’
그것은 분명 나를 괴롭히던 존재들이었다. 수호령처럼 나를 지켜주던 민규씨가 없어지자 곧바로 고개를 쳐드는 저것들. 문득 스토커도 그것들의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방해되는 것을 처단하고자 하는 신의 의지. 나는 몹시 분노했다. 이를 꽉 다물고 버티리라고 마음먹었다. 입맛이 없을수록 더욱 많이 먹었고, 가위를 누르고 공포를 갖다 줘도 민규씨가 가르쳐준 진언을 외우며 그렇게 3개월을 버텼을까? 결국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공포로 울고 있을 때, 민규씨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외로움에 울고 있을 때, 마법처럼 그가 나타났다.
「늦었지?」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목소리.
“민규씨? 민규씨야?”
「장군님도 만나 뵙고, 저승 시황님께 인사도 드리고, 염라대왕님께 인사도 드리느라고 늦었어. 미안해. 오랫동안 혼자 놔둬서.」
“이 목소리. 이 온기. 정말 민규씨네? 민규씨.”
민규씨가 죽었을 때처럼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미안해하지 마, 민규씨.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 고마워. 민규씨 나한테 돌아와 줘서 너무 고마워.”
따스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울음이 멈추었다.
「난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외로워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아. 두려워하지도 말고.」
“응. 나 항상 민규씨만 믿고 편하게 지낼 게.”
2018년 12월 19일. 고향을 떠난 지 3년. 민규씨를 알게 된 후 2년만에 다시 고향앞의 토리이에 섰다.
“민규씨. 여기가 내 고향이야. 사저택촌.”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