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도 자주 올라오는 공희준님 글입니다. 퍼와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성매매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는..머 의미있는 글인거 같습니다. 일방적인 비방대신 진지한 토론이 됐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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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도 노동자다
- ‘성노동자의 날’ 선포식을 다녀와서 -
제 2의 6ㆍ29 선언
6월 29일은 오묘한 내용의 선언이 발표되는 날
2005년 6월 29일, 18년 전에 낭독되었던 노태우 소장의 6ㆍ29 선언만큼이나 이색적인 선언사가 장마로 눅눅해진 서울하늘에 메아리쳤다. 음지에서 생활해온 여성들이 양지를 지향하겠다며 가칭 ‘전국성노농자연대 한여연 출범 선언문’을 발표한 것이다. 올림픽공원에 소재한 체조경기장 앞에서 치러진 행사의 주체는 ‘전국한터여성종사자연합'이다. 이 단체의 약칭이 선언문에 언급된 ’한여연‘이다.
먼저 궁금해진 점은 ‘한터’의 뜻이었다. 집밖 노천을 의미하는 ‘한데’나 추운 고장을 가리키는 ‘한지’에서 따온 단어가 아닐까. 거리에서 이슬을 맞으며 호객을 하고 영업을 뛰어야 하는 자신들의 불우한 처지를 빗댄 은유적 표현일 성싶다.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약간의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우선은 행사 자체의 성사여부가 불투명했다. 원래 대회장소는 체조경기장이었다. 당연히 실내. 행사를 겨우 하루 앞두고 체육관 사용료를 완납한 상태에서 대관결정이 갑작스럽게 취소되었다. 주최측은 행사를 방해하려는 여성가족부의 음모론을 제기했다. 여성부는 자기들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옥외에서 행사를 밀어붙이겠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는 했으나 세찬 빗줄기 아래서 행사를 강행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따라서 행사가 일정대로 거행될지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문제는 ‘한여연’의 연락처를 도통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전화번호는커녕 그 흔한 미니홈피도 없었다. 고육지책으로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문의해봤지만 그쪽에서도 모른다는 답변뿐이었다.
모험을 결행했다. 허탕을 각오하고 출발한 것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나 홀로 현장으로 출동해야 했다. 혼자 사진촬영과 현장스케치를 병행하자니 조금은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용 고성능 사진기를 아쉽게 포기하고 조작이 간편하고 용이한 일반 디지털 카메라를 가방에 우겨넣은 채 행사장으로 향했다.
화장실도 이용하지 못하게 하다니
유일하게 대회장에 축하화환을 보냈던
이경수 한국남성협의회 회장
행사의 공식명칭은 ‘성(性)노동자의 날’ 선포식이다. 선포식은 오후 5시에 시작될 터였다. 예정시간을 20분이나 넘겨서야 지하철 5호선 올림픽공원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 서둘러 행사장에 당도하니 전혀 진행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연을 탐문한즉 스피커를 탑재한 트럭이 공원구내로 진입을 못해서란다. 올림픽공원 시설관리 담당자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차량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푸념이었다.
격앙된 몇몇 참석자들이 굳게 닫힌 체조경기장 정문으로 달려가 물끄러미 행사장을 바라보고 있던 공원관계자들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 행사 참가자들이 흥분한 원인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급작스럽게 대관을 취소한 체육관측은 화장실 사용마저 불허했다. 행사 참석자들은 “오줌 마려우면 자리에서 그냥 싸자”는 결기어린 볼멘소리로 분한 마음을 달래려 했다. 하긴 장시간 시멘트바닥에 앉아있으면 생리작용을 참기가 더더욱 고통스러워질 테니.
항의가 효력을 발휘했는지 5시 40분 경에 아담한 크기의 노란색 트럭이 나타났다. 멀티비전 같은 첨단기기는 전혀 장착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확성기만 달랑 달린 차량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자유당 시대의 선거유세차량으로나 어울리는 장비다.
다행히도 스피커는 비교적 양호했다. 사회자인 한터연 사무국장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대관이 무산된 사실을 사과했다. 초청장을 발송했음에도 불참한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장관 등을 향한 불편한 심기를 아울러 표출했다. 분위기를 돋울 연예인을 섭외하는 데 실패한 것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출연교섭을 시도한 연예인들의 면면은 국내 탑 클래스 수준이었다. 섭외가 실현되는 게 되레 이상했으리라.
청량리 대표. 미아리 대표, 천호동 대표
선임된 지역준비위원들, 게릴라전을 수행하려는 참일까? (가망을 멘 이는 여기자임)
집회는 예상 외로 평이하고 단조로웠다. 고정 레퍼토리인 구호제창마저 자제했다. 알록달록한 차림새의 아가씨들이 모였으나 전반적 기조는 마치 숙연한 추모식장을 방불케 했다. 외려 외부에서 초빙된 연사들이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강성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정열적 연설로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았던 한국 남성협의회장을 제외하고 외부연사들은 의외로 진보적이고 좌파적 성향의 인물들 일색이었다. 여느 노동조합의 파업현장을 격려방문한 재야인사들과 흡사했다. 그들 가운데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멤버인 한신대 고정갑희 교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의외의 상황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집회에 참가한 성매매 여성들이 커다란 모자와 두꺼운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감쌀 것이라는 예측은 터무니없이 빗나갔다. 대다수 참석자들은 시종일관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TV카메라가 지나가도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안면을 가린 여성들 위주로 초점을 맞추고 사진을 찍느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
언론에서 모자이크 처리를 해주리라는 낙관론에 도취된 것일까. 언론 섣불리 믿었다가 봉변당하기 십상인데. 주최측에서는 이러한 점을 의식한 듯 기자들에게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나중에 아이 엄마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할 사람들입니다. 사진을 내보내실 적에는 신중하게 처리해주세요.” 주최측은 나름대로 언론플레이를 했다. 기자들에게 캔으로 된 음료수를 돌렸다. 촌지 아닌 촌지인 셈이다. 본원로, 마침 목이 말랐던 참이라 얼떨결에 하나 얻어마셨다.
공식 대표자들이 선출되었다. 사회자가 지역준비위원을 호명하자 4명의 여성이 연설대로 조심스럽게 걸어나왔다. 구역명칭이 거시기하다. 평택ㆍ청량리ㆍ미아리ㆍ천호동. 이른바 텍사스촌이라 불리는 동네들이다. 물론 익명이겠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대표자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겠다.
주적은 주류 여성계
그렇다면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주창하는 바는 무엇일까? 선언문에서 눈길을 끌었던 대목들을 간추려 소개해보겠다. 골격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필자가 첨삭을 가했음을 양지해주시라.
- 성매매 불법화정책의 주인공들은 한국의 ‘여성계 권력자들’이다.
- 우리는 생존을 위해 스스로 일하는 ‘성노동자’다.
- 풍선효과를 유발하는데 불과한 성매매 특별법은 음성적 성매매를 조장할 따름이다.
- 우리 성노동자들은 엄연한 인간인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다.
- 우리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자는 우리를 옥죄는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향해 돌을 던지기 바란다.
- 여성계 권력은 성매매 여성들을 여성계 권력자들의 직장과 정치적 발판을 확보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여긴다.
-우리에게는 주변상인 등 ‘성산업인’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성노동을 한다.
익히 간파하셨으리라. 주적은 미국에서 40년 전에 유행했던 급진적 여성주의에 매몰된, 권력에 진입한 자유주의 여성론자들이다. ‘자유주의’를 공격하는 한편으로 성매매 여성들은 이땅의 ‘양심세력’과 ‘제민주세력’과의 연대를 도모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협력대상에는 ‘마르크스 페미니즘 여성주의자’들이 끼여있다. 적과 아군이 어지럽게 뒤섞인 형국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속설이 진리인 것일까. 노노갈등이 자본이 부린 농간의 결과인 것처럼 여여대립이 본질은 아닐 터인데.
성매매가 아닌 가난이 죄
참석자들은 매매춘이 아닌 가난에 돌을 던지라고 항변했다
특별히 금욕적이거나 신체적으로 무능하지 않은 대한민국 남성들은 거의가 성을 매매한 기억과 경험이 존재할 게다. 부끄럽지만 본원로도 그렇다. 정신적으로는 원로의 반열에 등극했을망정 신체적으로는 원로가 아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끈불끈 일어서는 평범한 젊은 남정네다.
이제껏 명징한 가치판단에 입각해 시시비비를 가려왔음에도 성매매 특별법과 관련해서는 정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겠다. 금전을 매개로 섹스를 사고파는 행위는 명백히 옳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도 노동자라고 절규하는 성매매 종사자들의 입장에 서면 칼같이 맺고 끊기가 곤란해진다. 성매매 여성들 역시 현재의 생계수단이 떳떳하지 않고 부도덕함을 안다. 정부나 사회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품위 있고 온당한 일자리를 쉽사리 찾아주지 못하는 현실이다. 성매매 종사자들이 대안으로 선택할 직종은 뭘까? 호프집 서빙? 편의점 알바? 독하게 맘먹고 고시공부에 도전한다? 과거를 감추고 조신하게 신부수업을 받은 다음 착실한 남자에게 시집가 현모양처로 변신한다?
글쎄다. 뭐 하나 녹록한 선택과 대안이 연상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학력과 경력에 변별력과 수월성이 전문한 빈곤계층의 여자들이 단시일 안에 목돈을 쥐는 방법은 몸을 파는 짓밖에 없음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니.
성매매 여성들의 요구와 논리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성노동도 노동이고, 성산업도 산업이란다. 인간의 장기조차 상품으로 거래하는 게 자본주의의 속성이자 숙명이니까. 한데 자본주의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득책이 아니다. 매춘은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영위해온 가장 오래 된 직업이니.
경제회생과 산업발전의 견인차라는데
성매매 여성들은 ‘자유주의 여성 권력자들’을 주적으로 지목한다
6시에 막이 오른 행사는 7시에 폐막됐다. 1시간 만에 끝난 것이다. 성매매 여성들의 애끓는 호소에 하늘이 감동했음인지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비는 내리지 않았다. 가져온 비옷은 신분노출을 피하는 은폐도구로 적절히 활용되었다. 주최측은 여론의 동향에 꽤나 신경쓰는 기색이다. 참석자들에게 조용히 돌아가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앉은 자리에 있는 쓰레기도 반드시 청소하고 가자는 간곡한 주문도 스피커를 탔다.
행사에는 전국각처에 올라온 약 2,500명 가량의 성노동자들이 집결했다. 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하고자 전국의 집창촌들이 이날 하루 일제히 휴업에 돌입했다는 전언이다. 대대적 상경투쟁이다. 주최측의 통계를 인용한 숫자다. 어느 정도의 거품과 과장은 감안해주시라. 향후의 투쟁방향은 입법청원이란다. 여성부, 노동부, 국회에 지속적으로 정책제안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효과는 미지수다. 초유의 행사인 때문인지 외신기자들도 대거 몰려들었다. 국내에 방송되지 않는 외신이라는 점에 고무되었음일까. 대변인격인 여성 한 명이 당당히 일본TV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빈부귀천의 차이를 떠나 주류 여성계와 성매매 종사자들이 상생의 길을 모색하기 바란다. 결국은 같은 여자들 아닌가. 잠재적 수요자인 남자들 붙잡고 백날 떠들어봐야 수컷들은 성매매 종사자들의 애환과 여성계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다.
성매매가 죄가 아니라 가난이 죄라고 성매매 여성들은 외친다. 그런데 죄를 면하고자 또다른 지를 짓는 건 모순이고 어폐다. 그들은 성매매의 ‘탈범죄화’를 촉구한다. 합법화해달라는 것이다. 성을 자연스럽게 매매되는 소비재로 파악하는 시각의 연장이다. 여성권력자들의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재료 차원에서 성매매를 범죄의 온상으로 매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매매를 단순한 상품개념으로 선뜻 확립하기란 몹시 난감하고 망설여지는 노릇이다. 배꼽 아래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 남녀간의 행위인데. 성매매를 종식시키는 특단의 대책으로 성매매 특별법을 구사하는 행정당국도 유별나기는 마찬가지다. 성욕, 수면욕, 식욕 등의 원초적 본능은 법률로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대꾸해주고 싶다. 누구의 손도 흔쾌히 들어주지 못하는 난제 중의 난제 성매매, 도대체 어떻게 근절해야 하는 것인가?
ⓒ 공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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