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 선율을 가져다 쓴 대중음악들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노래'들 입니다. 대중음악 계에서 클래식 음악을 가져다 쓰는 일은 크게 희귀한 일이 아닙니다. 이미 저작권이 소멸된 클래식 음악들을 샐플링 해다가 쓰는 것은 불법 표절도 아닐 뿐더러,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오히려 듣는 이로 하여금 노래에 금세 친숙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지요.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분류할 때, '민족음악'으로 분류되는 곡들이 있습니다.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클래식 음악의 악기들, 구성들을 사용해서 작곡가들이 자신의 민족성이 담긴 음악을 녹여내고자 했던 곡들을 통틀어 말하는 것입니다. 잘 만들어졌다고 평가받는 민족음악이란, 기존 클래식 음악의 틀에 자신의 민족정서를 잘 녹여내어서 딱히 어디라고 집어내기는 힘들지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음악을 주로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민족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에서는, 그냥 클래식 음악이 나오다가 갑자기, 민속 악기나 리듬 등이 튀어나오는, 그 두가지 재료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그냥 나누어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이곤 하죠. 이것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깊이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대중음악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클래식의 선율을 가져다가 쓰는 건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냥 대중의 관심을 한번 가져오기 위해서 곡의 도입부나 중간에 잘 알려진 클래식 음악을 밑도 끝도 없이 슥 끼워 넣어놓는 경우도 많이 있고, 이런 경우에는 비판을 많이 받고는 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최선을 다해서 재생산하려는 정성이 보이고 그 음악을 respect하는 느낌을 받으면 또 대중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는 곡이 됩니다. 뭐 그 판단의 기준은, 본인의 마음이겠지만요.
먼저 외국 곡들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가장 샘플링이 많이 된 클래식 선율은 아무래도 파헬벨의 캐논 정도가 되겠습니다. 외국과 우리나라 가리지 않고 굉장히 많이 사용이 되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별로 없어서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자 그럼 제가 그냥 뽑아본 곡들입니다. Barry Manilow 'Could it be Magic'
Chopin의 Prelude in c minor를 가져다가 전주에 쓴 곡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클래식에 뛰어들기 전에 노래를 먼저 알았던 터라, 쇼팽의 책을 뒤적거리며 무슨 곡을 칠까 찾다가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Sarah Vaughman 'A Lover's Concerto'
우리나라 영화 '접속'-PC통신, 새롬 데이타맨? 붐을 타고 인기를 누렸던 영화- 에도 나왔던(아, 나의 나이는 ㅠㅠ) 익숙한 노래지요. Bach의 Minuet in G major를 박자와 느낌을 잘 바꿔서 노래하였습니다.
Elvis Presley 'Can't help falling in love
엘비스 형님이 나왔습니다. 정말 유명한 노래인데요, 'Plaisir d'amour(The pleasure of love)'라는 Jean-Paul-Égide Martini의 곡을 기반으로 씌어진 곡이죠. 원곡은 '사랑의 기쁨'이라는 제목 때문에 결혼식에서 축가로 쓰고 싶은 욕망이 불쑥불쑥 드는 곡이지만, 절대로!! 절대로! 쓰시면 안되는 곡으로 잘 알려진 노래이기도 합니다. The pleasure of love lasts only a moment The grief of love lasts a lifetime. 어쩌구 저쩌구 하고 나가는 노래이기 때문이죠.
Eric Carmen 'All by myself'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의 느린 선율을 가져다가 노래를 만든 경우입니다. 잘 들어보시면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Billy Joel 'This Night'
피아노 잘 치는 가수로 유명한 빌리 형님입니다. 피아노 맨 말고도 좋은 노래 많은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피아노 맨만 기억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양반이 혹자는 '클래식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 2악장의 선율을 자신의 노래에 가져다가 썼습니다.
Sweetbox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Bach의 G선상의 아리아 라고 불리우는 'Air on the G string(Suite No. 3, BWV 1068)' 에다가 Sweetbox라는 그룹이 저런 노래를 만들었네요.
고개를 우리나라로 돌려보겠습니다.
이현우 '헤어진 다음날'
Vivaldi의 사계 중 겨울 2악장. 이현우 라는 가수가 가져다가 헤어진 다음날 이라는 노래를 불렀었죠. IMF 터지기 직전의 히트곡으로 기억이 많이 되네요.
박지윤 '달빛의 노래'
너무나도 잘 알려진, Carmen의 Habanera이지요. 박지윤이 편곡해서 불렀다는데, 뭐 그냥 한번 들어는 보세요.
정말정말 많은 곡들 가운데, 그냥 잘 알려졌다고 생각되는 곡들만 몇개 추려 봤습니다. 대중음악의 클래식 차용, 저는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클래식 작곡가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멜로디를 가져다 쓰는 일은 다반사이기도 했구요,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그들의 곡들이 대중들에게 재조명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만약에 영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땅속에 있는 작곡가들이 성질이 나겠지요.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