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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의 규형이는 서울로 막 상경했다. 서울은 그가 생각하던대로 그리 쉬운 곳이 아니었다. 월세방을 찾아 서울 곳곳을 돌아다녀봤지만 그가 생각하던 가격의 방을 찾는다는 건 정말 하늘의 별따기였다. 몇일을 길거리에서 노숙까지 하며 겨우 찾은 방은 서울 외곽의 30년 된 다가구 건물의 반지하 방이었다. 가격도 저렴했고 무엇보다 건물 바로 옆에 작은 공원이 있다는게 무엇보다 규형의 맘에 들었다.
‘건물주 할아버지가 나이가 든 양반이라 돈에 별 관심이 없지예. 사실 서울 외곽이라 하지만 이렇게 싼 방이 어디 흔한감? 총각은 로또 맞은 거지.’ 복덕방 아주머니의 설명이다.
방은 6평 정도 되는 크기에 주방겸 거실과 방이 분리되어있었다. 방은 침대와 옷장이 들어가면 꽉찰 정도로 비좁았지만 시작은 원래 다 그런거라 규형이는 생각했다. 짐을 다 풀고 규형이는 지갑안의 남은 전재산을 꺼내보았다. 천원짜리 열두장과 만원짜리 세장 그리고 백원짜리 동전 몇 개가 다 였다. 규형은 내일 당장 아르바이트자리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월세방 찾는 일과는 달리 아르바이트 자리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규형이는 집에서 왕복 두시간 반 거리의 신도시 아파트 입구에 위치한 카폐에서 시급 6000원에 일자리를 잡았다.
교대 시간인 저녁 7시가 지나고 규형이는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규형이는 주민센터의 2층 공공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렸다.
‘당신의 인생이야기’ 책의 제목이다. 부제는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였다. 뭐 그런대로 행복하다. 방도 구했고 적은 보수지만 일도 구했다. 라고 생각하며 규형이는 침대에 누워 책의 첫장을 열었다. 그리고는 잠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규형이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깼다. 책은 첫장이 펼쳐진 그대로였다. 피곤하다... 규형이는 책을 베게삼아 다시 잠을 청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규형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애들 3명이 공원 정자에 앉아 떠들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자정이 다 되어갔다. 가서 혼내줄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질 거 같아 관뒀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이노무 시키들은 정말 시간개념이 일도 없는 자식들이다. 이 놈들은 밤 아홉시가 되면 매일같이 공원에 모여 떠들기 시작한다. 소란은 자정이 넘어서도 계속된다. 심지어 담배를 얼마나 피워대는지 담배냄새가 규형이의 방에도 흘러들어왔다. 규형이는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다. 규형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규형이는 밖으로 나섰다.
이 삼인조는 가까이서 보니 규형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어려보이고 덩치도 커보였다. 규형이는 아까전부터 아무말도 못하고 이들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를 지켜보던 삼인조 중 가장 큰 녀석이 담배를 쓰읍 깊게 빨더니 꽁초를 규형의 이마에 튕겼다. 순간 규형이는 바지에 똥을 지렸다. 정신이 번쩍든 규형이는 뒤돌아 도망쳤다. 삼인조가 규형이를 뒤쫒았다. 규형이는 자기가 사는데가 알려지는게 무서워 일부러 다른곳으로 도망쳤다. 규형이는 정말 죽어라 달렸다. 엄마야... 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어느세 정신을 차리니 규형이는 아무도 없는 대로변 한복판을 뛰고 있었다. 삼인조는 더 이상 쫒아오고 있지 않았다. 도망가기를 멈추자 이마에 송공송골 맻힌 땀은 금세 식어 오한을 느꼈다. 엉덩이는 똥독이 올랐는지 쓰렸다.
규형이가 집에 도착한건 3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걸어서 20분체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규형이는 삼인조가 아직도 근처에 있을까 봐 두시간 넘게 딴 곳에서 시간을 죽였다. 집에 돌아온 규형이는 화장실에서 똥에 젖은 바지와 팬티를 빨고 있자니 너무 서러워 몇시간이고 울었다. 규형이는 그렇게 울다 지쳐 잠들었다.
이 사건은 규형이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규형이는 이 일을 잊으려 무던히나 애를 썼으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때면 그 사건이 그림같이 떠올랐다. 그럴때마다 규형이는 이불킥을 시전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밤마다 들리는 삼인조의 소란은 날마다 시끄러워졌다. 한가지는 확실했다. 시간은 이 일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규형이는 밤이면 밤마다 이 삼인조를 두들겨 패거나 고문하는 상상을 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어느날 규형이는 거울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이 너무 외소하다는걸 깨달았다. 규형이는 당장 체육관에 달려가 육개월치를 미리 끊었다. 첫날부터 규형이는 자신의 몸을 혹독하게 단련시켰다. 무거운 운동기구들을 들어올릴때마다 규형이의 근육들이 비명을 질렀으나 규형이는 그 모든 고통들을 감싸안았다. 규형이는 고향집에서 멀리 떠나온 만큼 새 사람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었다.
규형이가 운동을 시작하고 세달이 지나자 겨울이 왔다. 체육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체육관에서는 기름칠한 무쇠들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규형이가 역도선수들이나 들만한 무거운 기구들을 한번씩 들어올릴때마다 그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벽거울에 비친 규형이의 모습에서는 예전의 외소하고 찌질한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 마리의 야수만이 거대한 근육을 꿈틀거리며 무거운 기구들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167cm의 단신에 64kg밖에 안 나가던 규형은 이제 82kg이나 나갔다. 체지방은 5%를 기록했다.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말그대로 근육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것도 무척이나 분노한 근육덩어리였다. 정신은 몸과 함께하기 마련이다. 한껏 고양된 규형이의 정신은 그의 힘껏 부푼 근육만큼이나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규형이 시간을 확인하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삼인조가 공원에서 한창 소란을 피울시간이다. 규형이는 살기가 온몸으로 뿜어져 나오려는 걸 안으로 억지로 가두며 밖으로 나섰다.
오랜만에 만난 삼인조는 여전히 어려보이지만 덩치가 컸다. 규형이는 삼인조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삼인조는 전혀 겁먹은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삼인조 중 가장 큰 녀석이 담배를 깊게 쓰읍 빨더니 규형의 이마에 꽁초를 튕겼다. 규형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전에 느꼈던 공포가 순식간에 파도가 되어 규형을 엄습하려다... 말았다. 욱 하는 심정과 함께 규형의 오른쪽 손바닥이 큰 녀석의 귀싸다구와 박수쳤다. 찰진소리와 함께 큰 녀석이 바닥에 대자로 뻗고 기절했다. 알 수 없는 신비한 에너지가 규형의 내부에서 요동쳤다. ‘이 호로새끼들!’ 규형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질렀다. 규형이 얼머나 크게 소리쳤는지 규형의 뒤통수가 쩌렁 울렸다. 순간 규형의 갈비뼈 사이로 뭔가 날카로운게 비집고 들어왔다.
칼이다. 삼인조 중 가장 작고 족제비 같이 생긴 녀석이 규형을 찌른 것이다. 하지만 한껏 고양 된 규형의 정신은 고통마저 마비시켰다. 규형의 왼쪽 손바닥이 족제비 같이 생긴년석의 귀싸다구와 박수쳤다. ‘못되쳐먹은 새끼!’ 찰진 소리와 함께 녀석은 바닥에 대짜로 쓰러져 기절했다. 규형이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마지막 남은 삼인조 중 중간키에 귀엽게 생긴 녀석을 쳐다봤다. 녀석은 겁 먹은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규형은 잠시 당황했다. 허나 정신을 가다듬고 오른 손바닥을 칼 같이 세웠다. 녀석의 후두를 가격할 생각이었다. 규형이 일격의 자세를 취하려는 순간... 귀엽개 생긴 녀석이 크게 소리쳤다.
‘살인이다!!!’
놀란 규형은 주춤하고 자빠졌다. 허를 찔린 것이다. 공원 주위의 건물들에서 불들이 켜지고 창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규형은 주민들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았다. 비정상적으로 근육이 발달한 남자와 그 앞에 쓰러진 두 어린 학생들. 이어 쇠고랑을 차고 형사들과 기자들 사이를 헤쳐 나가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니야! 오해야!’ 규형이 손사래 쳤다. 하지만 녀석은 이미 도망가고 있었다. ‘사람살려~’ 고래 고래 외치며. 규형은 녀석을 쫓아 달렸다. 하지만 비대해진 근육 때문인지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고 녀석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규형이의 갈비뼈 부근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규형이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고 깨달았을 때 녀석은 규형의 시야에서 이미 멀리 사라진 후였다. 규형은 자리에 주저 앉았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피곤하다... 규형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웠다. 삼개월간의 혹독한 훈련이 잠시 빛을 발하긴 했지만 이 일을 마무리 지어주진 못했다. 시간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허무했다.
규형이가 규형이의 마음만큼이나 공허한 밤 하늘을 보는 그때 하늘에서 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송이 한 점이 지그시 규형이의 코 끝에 내려 앉았다. 예쁘다... 라고 규형은 생각했다. 규형이의 몸이 차갑게 식어가며 잠이 쏟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규형이는 숨쉬기를 그만두었다.
규형이의 의식이 꺼지기 직전 규형이는 공공도서관에 삼개월 넘게 반납하지 못한 책이 문득 생각났다. 책의 제목은 ‘당신의 인생이야기’ 부제는 ‘당신은 행복하십니까?’였다.
규형이는 책의 단 한페이지도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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