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독재", "신적폐 청산", 그들의 고달픈 프레임 전쟁융단폭격, 그러나 무력한 보수언론의 공격
보수언론의 위력이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양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조선과 동아 등의 보수언론은 참여정부 때를 훨씬 능가하는 맹폭을 가하고 있다. 8월 한 달 동안 조선일보는 78개의 사설 중에 자그마치 80%에 육박하는 60편의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68개의 사설중 60%에 이르는 41개의 사설에서 정부와 여당을 공격했다. (이에 비해 중앙일보는 65개 중 30개(46%)로 수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고, 논조 역시 그렇게 흉폭하지 않다.)
사설 외에도 사내외의 기명, 무기명 칼럼까지 합치면 가히 융단폭격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여론 시장에서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 조사기관마다 70~80%대에서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미세한 등락만 있을 뿐 이슈에 따라 휘청거리는 양상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프레임 전쟁의 역사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은 이제 너무 많이 알려져서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임 이론의 기초는 상대방의 프레임에 말려들지 말고 자신의 프레임을 굳건히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상대의 프레임을 우리가 가져와버리면 그 효과는 두 배로 커진다.
참여정부 시절 민주세력은 보수세력의 프레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막말”, “편가르기”, “코드인사”, “회전문 인사”, “세금폭탄”, “종북”, “퍼주기” 등의 프레임으로 공격할 때마다 수비하고 방어하기에만 급급했다. 레이코프의 이론에 따르면 수비하고 방어하는 자체가 상대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다.
공수가 뒤바뀐 적이 있었다. 바로 “무상급식”, “보편복지” 프레임이었다. 당시 여권은 자체적인 프레임을 내세우지 못하고 민주진영의 무상급식과 보편복지를 거부하고 비난하는 데만 열중했다. 그 결과 민주세력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승리를 기점으로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게 됐다.
2012년 대통령 선거는 보수세력이 민주세력의 프레임을 빼앗아 가버린 선거였다. 박근혜의 한나라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프레임으로 문재인과 민주당의 캠페인을 무력화시켰다. “우리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라고 했던 박근혜의 발언은 박정희 향수에 야권의 프레임을 자기의 것으로 거머쥔 최고의 레토릭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승리의 가장 큰 요인은 경제와 안보 프레임을 민주진영의 프레임으로 가져왔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에 출마하면서부터 “유능한 경제정당”을 주창했고 대선국면에 이르러 “소득주도 경제 성장”과 “일자리 대통령론”으로 “경제는 보수”라는 프레임을 형해화시켰고, 당내에서 경제민주화의 상징을 붙잡고 몽니를 부렸던 김종인 존재 역시 왜소화시켰다. 또한 “공수부대”라는 개인적 프로필을 안보 프레임으로 확장시키고, 보수세력을 “안보 무능, 무책임 세력”으로 못박으면서 종래의 “종북” 공격을 시도조차 못하게 만들었다.
모든 프레임을 잃어버린 보수세력
현재 보수세력의 공격이 무력화되어있는 가장 큰 요인은 대통령과 여당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프레임을 강화시키면서 종래 보수가 독점하고 있던 프레임까지 모두 문재인 정권의 프레임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북핵 기승에 대한 대응은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과거 보수정권은 상상도 못할 만큼 강력하고 강경하다. 과거 보수정권은 입으로만 강경했지 자체적인 무력 시위를 벌이는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정의, 공정, 온정, 평화의 기본 프레임에 경제와 안보까지 프레임이란 프레임은 모두 정부 여당이 쥐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보수세력이 가지고 있는 프레임은 아무 것도 없다. “종북”, “퍼주가”, “편가르기” 등의 과거 프레임은 이미 효용을 다 했고, 최근에는 “세금 폭탄” 프레임마저 무력화됐다. 정부 여당의 핀셋 증세 방침에 85%의 국민이 찬성하고 72%가 “복지 위해 세금 더 낼 수 있다”고 표명하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지지율 독재”, “신적폐 청산”이다. 나름대로는 효과적인 레토릭이라고 생각하고 내뱉고 있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이들이 모두 여권의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독재’는 전통적으로 민주세력이 보수세력을 공격하던 프레임이다. 얘기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과거만 떠올리게 한다. ‘적폐’는 보수세력의 정체성이며 현 정권의 존재 이유다. 여기에 ‘신적폐’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서 공격해봐야 그 화살은 결국 보수세력에게 돌아간다.
자승자박, 진퇴양난의 보수세력
상대의 프레임을 자기 것으로 가져오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저 되뇌기만 하는 것은 가장 초보적으로 “상대 프레임에 말려드는 행위”다. “지지율 독재”, “신적폐 청산”, “탄핵”을 아무리 외쳐봐야 상대방 프레임에 제 발로 들어가 스스로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야권은 “하지 마”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명하고 유능한 정치세력이라면 상대방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럴 능력도 없지만, 설사 새로운 유력한 프레임을 개발한다고 해도 자신들이 쳐놓은 “하지 마” 프레임에 막혀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제갈공명에 괴벨스가 와도 해결하기 어려운 난국이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한 치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