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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978343
    작성자 : 익명aGlva
    추천 : 15
    조회수 : 754
    IP : aGlva (변조아이피)
    댓글 : 140개
    등록시간 : 2014/01/21 18:36:52
    http://todayhumor.com/?gomin_978343 모바일
    여보 미안해
    남편은 아침 6시 반에 기상입니다

    혼자 일어나 조용히 물 한잔 마시고 씻어요
    지시장에서 세벌 만원주고 산 셔츠입고
    제가 오년전 연애할때 선물한 보풀투성이 니트 입고
    칠년 전에 같은 회사 다닐때부터 입던 바지를 입고
    망설이지도 않고 걸친 외투는 십년전 학생때부터 입던 겁니다...
    그렇게 추운 겨울에 턱도 없는 싸구려 옷입고
    살금살금 나와서 아기 방문을 열어봅니다
    저와 이제 백일된 아기가 자고 있어요
    잘 자는지 확인한 남편은 조용히 문을 닫고 대문을 열고
    살금살금 출근합니다 6시50분. 구두는 이만원짜리...

    아파트를 나서면 추워요. 버스는 15분에 한 대 다니고
    한 대 놓치면 다시 추운데서 15분을 떨어야 해요
    춥고, 아침거른 속은 쓰리고, 졸립고...
    버스는 사람이 꽉 차서 옵니다
    금방 내리는 게 다행이에요
    잡을 데도 없이 흔들리던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탑니다
    1호선 타고가다 7호선 환승해서
    총 정거장 27개... 한 시간 반 거리...

    벼라별 진상을 겪으며 지옥철에서 내리면
    옷깃을 여미며 회사로 가요
    회사까지 가는 길은 꽁꽁 언 언덕길
    가는 길 숨 몰아쉬며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합니다

    (여보 나 회사 도착했어. 힘들지만 화이팅. 애기때문에 바빠도 밥 잘 챙겨먹고. 사랑해 )

    그리고 본가에 홀로 계신 어머니께 전화드려요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저 지금 출근해요. 애기는 어제 잘 잤어요. 어머니는요?
    오늘 날씨 춥대요 어머니 다니실때 조심하세요.)

    같은 내용을 장모님.게 카톡으로 전송하고
    회사에 도착합니다

    부사수가 게을러요. 게다가 얌체라 남편은 출근하자마자 부사수 뒤치닥거리를 합니다
    정신없이 일하고 회의하고 상사에게 깨지다 정신차리면 점심시간

    제게 전화걸어요
    (밥 먹었어? 몸은 좀 괜찮아? 애기는 뭐해? 많이 울진 않아? 시간나면 애기 사진 좀 찍어서 보내줘
    보면서 일하게 ㅎㅎㅎ

    그럼. 사랑하지, 이 세상에서 제일)

    점심은 6천원짜리. 강남이라 5천원짜리가 없다면서 웃던 당신.
    그 점심값 아껴 내 생일날 케익사오던 당신...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전화 걸어요
    운이 좋아서 애기가 자고 있으면 둘이 꽁냥꽁냥

    상사에게깨지고 부하직원 두둔하고
    커피 한잔 마시고 내려오면 산처럼 쌓인일거리
    짬짬히 제가 보내준 애기 사진 보면서 기운내봅니다

    힘들지만.

    정신없이 퇴근시간. 7시. 제게 전화걸어요
    (나 이제 퇴근해. 힘들었지? 얼른 가서 도와줄게, 조금만 기다려)

    어머님께도 전화드려요
    (지금 퇴근해요. 어머니 오늘 어떠셨어요?)

    지하철은 출근보다 더 붐비네요
    버스도 더 막히고요
    해가 지니까 더 추워요

    9시. 집에 도착합니다. 따뜻해요
    저를 부르면서 들어오지만 애기한테 매달려 인사도 제대로 못해요
    부랴부랴 옷갈아입고 씻고나와요
    그리고 애기를 건네안아듭니다
    (내가 볼게, 좀 쉬어. 밥은 먹었어?)

    애기 우는 통에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먹고 나면
    제가 애기 보는 사이 설거지를 해줍니다
    둘이 같이 애기를 씻기고... 시간은 10시.
    제가 애기 보는 동안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와요
    그리고 제가 지쳐 널부러진 사이 애기와 놀아줍니다
    조금 쉰 제가 애기를 재우고나서 그제야 오늘 회사서 어땠느냐고 물어봅니다
    부사수가 또 사고를 쳐서 깨물어버릴 뻔 했대요 ㅋㅋㅋ
    그리고 퇴근길에 너무 힘들어서 망설이다 애기 엄마한테 자리양보했대요
    제 생각이 나더래요 ㅎㅎㅎ
    애기랑 씨름하느라 머리는 질끈묶고 씻지도 못하고 옷도 추레하게 입고 있는데
    푹 퍼져서 비쩍마른데다 아무때나 젖먹이느라 헐벗다시피한, 아프다고 잘 신경도 못써주는 이런 마누라도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합니다. 말로만 이쁘냐면 뽀뽀하잡니다 ㅋ

    사실 지쳐서 둘다 제대로 대화할 틈도 없어요ㅋ

    그러고 나면 자정이에요
    저는 애기방으로 가고
    애기방에 가습기를 켜준 남편은....

    남편은 혼자 침대에 누워 잠이 듭니다. 피곤해서 금방 잠들어요
    알람은 6시 반에 울어요...



    여보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정말 사랑해
    내가 더 노력할게. 얼른 건강해져서...
    아침밥 해주고 싶다 ㅠㅠ
    3월에 적금만기되면
    자기 입을 근사한 옷 한 벌 사러가자.
    친정엄마 잘꼬셔서 애기 봐달라고 하고 하루 정도 데이트도 가자

    우리 둘이 민규 듬뿍 사랑하면서 정말 잘 키우자. 행복하고 착하고 건강한 아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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