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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중 사라지는 시간 1/3샤워 중 사라지는 시간 2/3그럼 이야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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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반 남짓 겪었던 그 특별했던 경험은 현정의 임신과 결혼으로 이어지는 굵직한 일들로 나의 기억 속에 묻혀졌다.
나는 그 때의 일을 무의식이 만들어낸 작은 해프닝 정도로 여겼다.
마치 우리가 매일 밤 꾸는 꿈 역시 우리의 무의식이 꾸며낸 이야기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때의 일을 떠올일 사건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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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나와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우리 아들은 현정과 나의 바람대로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아들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교제하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우리 부부는 내심 손주를 보는 건가 싶었는데, 아들 녀석이 사고를 친 건 아니었다.
보육원에서 자란 여자친구에게 가족이라는 선물을 하루라도 빨리 주고 싶다는게 아들의 이유였다.
현정의 반대가 있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우리 부부는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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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부부의 행복하던 신혼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며느리는 위암 판정을 받았고,
두번에 걸친 수술과 항암치료를 통해 병은 완치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치료를 마칠 즈음 암세포가 다시 발견되었는데,
이번에는 암세포가 여러 장기에 전이된 상태라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아들은 직장과 신혼집을 정리하고 우리집으로 들어와 며느리를 간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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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붕 아래서 생활을 하다보니 나와 며느리는 많이 가까워졌다.
직설적인 성격의 시어머니는 불편했는지 며느리는 마음 속 이야기를 내게 종종 해주곤 했다.
사소하게는 아들과 연애할 적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어릴적 사고로 죽었다는 아버지에 대한 단편적인 추억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을 보육원으로 보낸 어머니의 기억까지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 해주었다.
하루는 며느리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말을 꺼냈다.
“아버님,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
“응? 무슨 부탁인데? 말만 하거라.”
“저…한번만... 아빠라고 불러보고 싶은데... 그냥 어릴적부터... 아빠하고 부르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허허. 난 너를 항상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거 아빠가 조금 서운한걸.”
며느리는 작은 목소리로 ‘아빠’하더니 금새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며느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우리딸 지연이 많이 힘들었지? 이렇게 바르게 자라줘서 고맙구나.”
며느리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아빠......... 우리 하늘에서 만나면... 아빠는 나 버리지마.”
어린 시절 친모에게 버림받은 자식의 상처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며느리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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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고,
우리는 서울 근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며느리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아들은 거의 24시간 며느리 곁을 지켰고,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서너번 병실을 찾았다.
어느 늦은 밤...
아들을 간병인 휴게소에서 눈을 붙이게 하고 나는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졸음이 쏟아져서 여분의 담요를 베개 삼아 간이 침대에 몸을 눕히는데,
담요에서 올라오는 섬유유연제 냄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지? 이 냄새!?’
그리고 나는 무언가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둘러보았다.
오른쪽에... 커다란 창문 그리고 창을 가린 블라인드.
나는 창문 앞으로 가서 블라인드를 걷었다.
창문 가까이 뻗어난 나뭇가지가 어둠 속에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습도를 맞춰둔 가습기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가습기 기계음 소리에 나의 심장 박동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서있기가 힘들었다.
의자에 앉아 떨리는 손을 올려 침대 위 담요로 가져갔다.
손에 느껴지는 담요의 감촉.
요동치는 심장은 언젠가 내가 이 병실 바로 이 침대에 누워있었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나는 침대 위 담요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나는 아내와 첫 관계를 가졌던 날 밤의 꿈을 기억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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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참을 의자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25년 전 흐릿한 기억들이 한조각 한조각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꿈 속에서 경험했던 죽음,
그리고 나의 임종을 지키던 남자.
아내를 만나기 시작하던 시절 겪었던 다중인격 증상.
아내가 해준 화장실에서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지연이라는 이름.
머리 감겨주는 자아가 남긴 메세지.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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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간병인 휴게소에서 누워있을 때 나는 아내의 떨리는 손길에 눈을 떴다.
아내는 한손으로 입을 막고 울고 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병실로 뛰어갔다.
담당의사는 간호사와 병실에서 나오며 나와 잠시 눈을 마주치고는 말없이 고개를 숙여 지나갔다.
열린 문 사이로 아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내가 병실로 들어가려하자 아내는 뒤에서 나의 손을 잡아 끌었다.
나는 병실로 들어가는 대신 울고있는 아내를 기계적으로 안아주었다.
무언가로 쎄게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이 멍했다.
아내를 안은 채로 한참이 지나서야 꿈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정신이 돌아왔다.
사람 마음이란게 참으로 간사하다.
정신이 들자 며느리를 잃은 슬픔보다 아들 걱정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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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룬 후 나는 아내에게 결혼 전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지 물었다.
잘 기억하고 있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들이 훈련소에 입대하는 날,
며느리를 처음 만나자 마자 그때 일을 떠올렸다고 했다.
아내는 며느리가 부모 없이 자랐다는 이유로 아들 결혼을 반대했는데,
반대한 이유가 사실은 며느리의 성장 배경이 아니었다고 고백하듯 이야기했다.
며느리의 행동거지나 마음 씀씀이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말도 안되는 줄 알지만 며느리의 이름이 그렇게 마음에 걸렸다고...
그리고 며느리의 위암 판정 소식을 듣고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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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제를 마치고 아들은 바람을 쐴 겸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들을 말렸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 아들은 마음이 정리되면 돌아오겠다는 짧은 메모를 남기고 사라졌다.
현정과 나는 불길한 예감에 오전 일찍 119에 신고했지만,
연락이 끊기고 24시간 전에는 실종신고 접수가 안된다 했다.
자살 정황이 있다는 거짓말을 보태 다시 신고를 했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휴대폰이 꺼져있어 위치 추적이 안된다는 답을 들었다.
다중인격 증세를 보이던 시절 ‘육신을 떠나있어 기억을 못한다’는 메세지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나는 바로 사설 흥신소에 아들 찾는 일을 의뢰했다.
30분이 채 안돼서 흥신소에서 문자 메세지가 왔다.
아들은 신용카드로 렌트카를 빌렸고, 빌린 차가 강원도 삼척시 외각 마을에 있다 했다.
화장한 며느리 유골을 뿌리기 위해 배를 구했던 곳이다.
삼척 방향으로 급하게 차를 몰고 가던 중 흥신소 직원에게서 아들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들은 자동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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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급히 아들이 옮겨진 병원으로 갔다.
아들은 일산화탄소 중독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의사 말로는 고비는 넘겼지만 아직 의식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10분만 늦었어도 살기 힘들었을 것이라 했다.
치료를 마친 후에도 아들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혼수상태가 2주를 넘어가자 의사는 아들을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컴퓨터 단층 촬영과 뇌파 검사 등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깨어있을 때의 정상 뇌파가 규칙적으로 감지되었다.
의사는 코마상태에서 의식이 회복되고 있는 듯 하다며 우리 부부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의사의 긍정적인 의견에도 혼수상태는 한달이 넘게 계속되었다.
그리고 한달반이 지나서야 아들은 의식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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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회복이 되었을 때
아들은 우리 부부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터뜨렸다.
죽은 아내가 너무 보고 싶었다고 했다.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아내가 간 곳으로 보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고...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보다 아내를 찾아간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그리고 아들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했다.
“꿈에 지연이는 젊은 남자로 환생을 했어요. 그런 지연이에게 자주 찾아갔어요.”
현정이 물었다.
“그래, 지연이에게 가서 뭘 했는데?”
“머리를 감겨줬어요. 지연이 머리가 다시 자라면 머리를 감겨준다 했거든요. 그런데 거기는 오래 있을 수 없어서, 다시 병원 병실로 와서 내가 누워있는 모습도 보기도 하고...”
아들은 잠시 쉬었다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지연이라고 믿었는데... 한번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왜 그러냐고... 그래서 계속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현정은 말없이 아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마지막으로 지연이 얼굴 보면서 작별인사 하고는... 잠에서 깼어요.”
현정은 아들을 끌어안았다.
“엄마… 미안해요.”
“아니야... 엄마는 네 맘 다 이해해. 우리 아들 많이 힘들었지?”
두 모자는 서로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