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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사오보의 죽음으로 본 G2 중국의 미래 >
이성우 제주평화연구원
외신이 중국의 인권 운동가 류사오보의 사망소식을 전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류사오보는 2008년 12월 중국에서 공산당 일당체제의 종식을 요구한 ‘08헌장’ 서명 운동을 주도하다가 2009년 12월 ‘국가전복’ 혐의로 징역 11년을 선고받고 랴오닝성 진저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수감 중이던 2017년 5월 말 정기 건강검진에서 간암 판정을 받고 수일 후 가석방되어 교도소 밖 중국의대 제1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그는 결국 7월 13일 오후 9시에 사망했다. 류사오보의 사망은 중국지도부의 의지와 무관하게 G2 국가 중국의 장래에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심대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를 지도하고 주도하는 G2의 야심, 이른바 문화강대국으로서의 중국몽(中国梦: China Dream)을 키우고 있다. 중국몽에 대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연설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중국몽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를 제시했는데 물질적 기반이 주를 이룬다. 첫째는 민족적, 지역적, 그리고 경제적 차등을 극복하는 국가통합, 둘째는 민생의 경제적 안정에 기초한 인민의 행복, 셋째는 개혁개방의 완성을 의미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현대화, 넷째는 경제력에 기초한 군의 현대화를 통한 군사강국, 다섯째는 고속성장을 통해 G2 미국을 뛰어넘는 초강대국화이다.
중국이 지금까지 달성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한 산업, 군사,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간접자본에 이르기까지 괄목할 발전을 이룩했다. 경제, 산업, 기술에서 발전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영향력 확대를 위해 AIIB, 일대일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같은 대외관계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중국이 초강대국이 되기 위한 물적 기반의 일부는 이미 갖췄거나 차근차근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고 판단되는 대목이며 이는 중국의 정책결정자들에게 자신감의 근거가 되는 부분이다.
한편에서 중국의 지도부는 미국이 구가하는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을 감지하고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기축통화국의 지위와 국제규범의 형성자로서 가지는 힘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학습효과에 따라 중국도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고 중국에 불리한 국제규범을 허용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공자학당, 공적개발원조, 그리고 국제평화유지활동과 같은 국제사회의 공헌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중국 고유의 것이 아니라 미국을 따라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국몽을 실현시켜줄 중국의 고유한 가치체계는 아직 없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 패권의 축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대서양을 건너간 근저에는 미국의 경제력뿐 아니라 영국이 의지하던 낡은 국제규범을 능가하는, 그래서 국제사회의 지지와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국제규범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시의 미국은 식민지에 반대하는 민족자결주의원칙을 주장하고 국제기구를 통한 1국 1표의 국제의회주의 규범을 주장했다. 미국이 패권국의 지위를 승계한 이후에도 미국은 국제정치에서도 인권외교와 같이 국제사회에서 규범을 선도하는 지도력을 발휘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9ㆍ11 테러 이후 미국 행정부의 무슬림 전쟁포로에 대한 비인도적 처우는 민주주의의 규범에 반하지만 적어도 미국 언론은 이를 비판했고 그래서 바깥 세상에 알려지고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초강대국의 조건으로 경제적 기술적 국가역량이 필요조건이라면 규범적, 도덕적 설득력이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초강대국이 되고 싶다면 중국은 현재 미국이 가지고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규범을 초월하는 새로운 국제규범을 제시해야 한다. AIIB와 일대일로를 통한 주변국에 기간시설 건설참여라는 경제적 인센티브만으로 주변국의 도덕적, 규범적, 그리고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고 그들을 지도하는 패권국이 될 수 없다. 초강대국 중국몽을 위해서는 미국보다 높은 민주주의의 규범을 수용해야 한다. 류사오보의 사망은 초강대국 중국몽이 왜 적어도 당분간은 불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이성우 박사 (現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출처 : 2017. 7. 16. 국제뉴스 http://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47767
경제강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미국을 뛰어넘는 초강대국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에 걸림돌이 되는 자국내 소수민족을 핍박하고,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의 역사마저 자국으로 편입하려 했지요.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1당체제 공산국가 이며,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사오보를 11년형을 선고하여 감옥에 가두었고, 결국 류사오보는 사망하였습니다. 류사오보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는 애도를 보내고 있고요.
이런 중국의 정치적 상황을 보니, 대한민국의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민주정부와 촛불혁명이 더더욱 자랑스럽습니다.
중국의 류사오보와 똑같은 상을 받으셨던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수장으로서 제1기 민주정부를 이끌었습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 연설 등을 통해서 김대중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개혁과 개방에 좀더 많이 지원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두에 둔 속깊은 당부였을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이어 노무현 대통령도 제2기 민주정부를 이끌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격상시켰습니다.
그러나 두번의 민주정부 이후 안타깝게도, 747에 속아 이명박을 맞아야 했고, 박정희 향수와 경제민주화 시늉에 속아 박근혜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명박근혜의 시기 동안 한반도 평화는 무너져내렸지요. 한반도 평화보다 사익만을 추구했던 이명박근혜는 방산비리는 방조하면서,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과 외교적 노력은 뒷전으로 밀쳐버렸습니다. 그 결과가 남북대화단절, 북핵위협 고도화, 전쟁위기 증대 였지요.
일제수탈에 이어 625 남북전쟁을 겪으며 한반도는 초토화되었고, 우리 민족은 분단의 고통과 독재의 불통까지 겪어야 했는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세운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가 이명박근혜에 의해 무참히 무너지다니 통탄스러운 일 입니다.
이제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부가 세워졌으니, 한반도 평화 또한 재건해야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고 부강한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오직 국민을 위하여 한반도 평화의 물꼬를 터줄 제3기 민주정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합니다.
또한 류사오보의 죽음으로 비민주적인 정치적 한계점을 여실히 드러낸 중국의 자성을 촉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는 진정한 강국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왜곡은 결코 성공하지 못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민주정부를 세우고 명예로운 촛불혁명을 성공시킨 자긍심으로, 민주주의의 가치와 역사를 단디 지켜나갈 것 입니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중국도 일본도 감히 건드릴 수 없을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김대중 대통령님에 대한 존경심과 그리움을 담아 아래 글을 덧붙입니다.
<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국내외 저명인사들의 긍정적 평가(75인) >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에 군부의 사형선고와 암살시도에서 살아남은 반체제주의자였으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다. 그의 라이벌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중상모략을 받았던 김대중은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2000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첫 정상회담을 성립시켰다. 1953년 한국전쟁 이후 평화조약이 없었기 때문에 형식상 휴전인 상황이었고, 그 회담에서 분단된 한반도의 전례없는 화해를 이끌었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으로 남북한은 도로와 철도를 개통하였고 합동 산업단지를 건설하였다. 200만명의 남한 사람들은 북한 금강산 관광을 하였고, 전쟁으로 인해 흩어진 이산가족들의 눈물의 상봉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뉴욕에서 발간되는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신문인 <The New York Times>에서 논평한 내용 중
공산주의자로 중상모략을 받으며 고통받아야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공산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대승적 결단으로 625전쟁 이후 그 어떤 평화조약 없이 휴전상태로 고착되었던 남북관계에서 처음으로 따끈따끈한 남북화해를 이끈 615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큰 용기와 비전에 박수 드립니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한국 사회의 전 분야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왔기 때문에 그 자체로 큰 업적이다. 민주화세력의 승리, 호남의 소외감 해소 등으로 국민통합의 측면에서도 큰 기여를 했다. 외환위기 극복도 대표적 치적이다. 나라의 곳간이 빈 절박한 상황에서 그는 대통령 당선 사흘 만에 데이비드 립튼 미국 재무부차관을 만나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내고 금융, 기업, 공공, 노동 등 4대 부문 개혁을 밀어붙였다. 국민들도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이는 등 국가적 에너지가 한 곳으로 모여 2년 만에 IMF 외환위기를 벗어났다. 이후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외환위기 극복의 성공적 모델로 한국을 꼽았고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한국 정부와 국민의 노력을 '영웅적'이라고 평한 바 있다. 무엇보다 강렬한 상징은 역시 6 15 남북정상회담이다. 그가 2000년 6월15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고 이를 통해 남북화해와 한반도 긴장완화에 이바지했다. 대북포용정책은 기존 패러다임을 넘어선,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대북정책으로 한반도 탈냉전화에 기여했다.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특히 그 시기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추진했던 금강산 관광사업, 남북당국 간 합의로 이루어진 개성공단 등도 경제적 접근을 통해 상호불신과 적대관계 청산에 기여했다."
- 강원택, 동아시아연구원 시민정치패널 소장,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2009년 8월 18일 한국일보에서 김대중 대통령 서거 특집으로 실은 기사의 내용 중
출처 :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islmoa/120163573782
기존 패러다임을 넘어선,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대북정책으로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다졌던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합니다. 625 전쟁 이후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간의 불신과 적대감을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등의 경제적 접근으로 살살 녹였던 김대중 대통령의 지혜에 다시금 감탄합니다.
남북 관계의 뜨끈뜨끈한 온돌 역할을 했던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을 밑장빼기 해버린 안보무능, 방산비리, 진짜종북 이명박근혜를 규탄합니다.
민주시민들과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전력을 다할 것 입니다. 일본 베스트가 아무리 전쟁을 부추기더라도, 우리의 살 길은 평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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