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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헤드라인 뉴스입니다. 어제 오후, 일명 엄지손가락 연쇄살인의 여덟 번째 희생자가, 일곱 번째 희생자 이후 겨우 5주만에 발견되면서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가운데, 오늘 경찰은…
고준호 씨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양손으로 뼈채 들고서 발라먹고 있던 고기를 잠시 내려놓고, 리모컨을 찾아 홈쇼핑으로 채널을 돌려버렸다. 고기 요리를 먹으면서 연쇄살인 어쩌구 하는 얘기를 듣기에 고준호 씨의 비위는 너무 섬세했다. 올초에 처음 언론에 발표되면서10개월 째 전국민을 패닉으로 몰아넣은 “엄지손가락 연쇄살인”은, 양손 엄지손가락만 남긴 채 시신이 몽땅 사라진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피해자들이 모두 동남아계 여성이라는 점 이외에는 피해자들 사이의 공통점이나 접점이 없어 수사에는 좀처럼 진척이 없는 듯 했다. 고준호 씨가 리모컨을 소파 위로 던져버리고, 아까 뜯던 뼈를 막 다시 집어들려는데 아내가 새로운 요리를 내와서 식탁에 얹었다.
- 먹을만 해요?
고준호 씨는 언제 인상을 찡그렸었느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 먹을만 하다니, 당신 요리는 항상 최고야! 어떻게 동남아에서 나고 자랐다는 당신이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 입맛에 이렇게 딱 맞는 음식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아내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소곳이 시선을 내렸다.
- 당신도 같이 먹지 그래. 왜 당신은 이렇게 맛있게 음식을 해놓고도 매번 안 먹어?
아내는 또 쑥스럽다는 듯 베시시 웃었다.
- 난 그냥 당신 다 먹고나면 먹을게요… 적나라하게 밥 먹는 모습 부끄럽고… 그리고 원래 자기가 한 음식은 먹기 싫다고 하잖아요…
아내는 그런 여자였다. 엄밀히 말해 예쁘다고 할 수 있는 얼굴은 아니었고, 동남아 여자는 체구가 작고 여리다는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키와 덩치도 큰 편인데다가 체력도 어지간한 남자 못잖게 좋은 편이었지만, 성품은 보기 드물게 유순하고, 조신하고, 살림 잘하고, 사치 안 하고, 심지어 순종적이기까지 한, 남자에게 있어 그야말로 판타지 속에나 등장할 법한 여자. 한마디로, 최고의 아내. 니가 뭐 아쉬워서 동남아 여자를 만나느냐, 요새 세상에 동남아 여자랑 결혼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아느냐며 그를 말렸던 일가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도 그의 아내가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그를 모시다시피 하는지 알게 되자 모두 입을 모아 장가 잘갔다고 난리였다.
고준호 씨는 흡족했다. 아니, 흡족을 너머 최고의 행복을 누렸다. 못 생긴 여자랑은 살아도 요리 못하는 여자하고는 못산다는 말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아무튼 고준호 씨는 행복했다. 원체 입이 짧은 그였다. 쌀에서 냄새가 난다고 하며 밥 한 공기를다 비우는 법이 없고, 라면은 단 한 개 끓이고도 너무 자극적이어서 질린다며 다 먹지를 못했고, 평범한 고기도 동물 특유의 누린내가 싫다며 몇 젓가락 먹는 게 전부고,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해주는 음식은 달랐다. 주로 고기요리를 해주었는데, 고준호 씨는 예전처럼 몇 점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맛있었다. 맛있어도 너무 맛있었다. 진심으로 “무슨 마약의 일종이라도 탔나” 싶을 정도였다. 결혼한지 1년이 채 못 되었는데 체중이 18킬로그램이나 증가한 게 그 증거였다. 오늘도 고준호 씨는 아내가 내온 요리를 혼자서 전부 싹싹 비운 후에야 그의 일터로 돌아갈 것이다. 고준호 씨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다. 아내와도 처음엔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로 만났다. 아내가 푸드트럭을 할 생각이라며 트럭 전면 디자인을 부탁했는데, 작업 시작하기 전에 자기가 한 음식을 한번만 먹어봐 달라고 가져왔었다. 입이 짧은 고준호 씨는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그 음식을 먹었고, 그 맛에 대번 반해버렸고, 먼저 데이트 신청을 했고, 그게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고준호 씨는 오늘 밤을 새워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대로 작업을 수정해야 한다. 그래도 고준호 씨는 즐거웠다. 이렇게 밤샘 작업을 하는 날이면 늘 그랬듯, 아내가 새벽 2시 쯤에 끝내주는 야식을 만들어 갖다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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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호 씨는 눈을 번쩍 떴다. 아뿔싸. 창 머리에 새벽 특유의 여리고도 환한듯한 빛이 어려있었다. 간밤 9시가 다 되어 저녁식사를 마치고나서 10시가 좀 넘었을 때 식곤증이 몰려와서 잠시 눈을 붙인다고 한 것이, 그만 새벽 5시가 넘도록 내리 자버렸다. 고준호 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마른 세수를 했다. 눈이 부었는지 눈두덩 근처에 뻑뻑한 느낌이 남아있다. 순간적으로 화가 불쑥 치밀었다. 알람도 맞춰놓지 않고 잠든 자신보다, 새벽에 야식을 가지고 왔다가 자신이 잠든 걸 봤을 텐데도 깨우지 않은 아내에게 화가 났다. 고준호 씨는 뿌루퉁한 얼굴로 쿵쿵 발소리를 내며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 문을 벌컥 열어젖히면서 “이봐!”하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부스스한 얼굴로 화들짝 깨어날 아내에게 잔뜩 짜증을 부릴 심산이었다. 그런데 방안이 텅 비어있었다. 침대는 사람이 누웠던 흔적없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뭐야, 화장실이라도 간 건가? 어리둥절해 진 고준호 씨는 안방에 딸린 작은 욕실문을 확 열어젖혔다. 욕실은, 비어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옷장도, 몇 벌 되지도 않는 옷과 신분증, 그리고 여권이 그 내용물의 전부였지만, 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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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이런 경우에는 실종 신고가 안 됩니다. 다 큰 성인이, 아무 일 없이 그냥 제발로 걸어나갔다는 건데… 일주일 정도 기다려 보시고 그래도 안 돌아오면 그때 가출신고를 접수시키세요. 뭐, 가출 신고가 된다 해도 가출자 본인에게 돌아올 의사가 없으면 찾기는 어렵습니다만…
파출소를 나서는 고준호 씨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상황파악이 좀체 되질 않았다. 아내와는 단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 아니, 싸울 일이 없었다. 입속의 혀처럼, 아내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으니까. 오늘 아침처럼 고준호 씨가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아내는 죽을 죄라도 지은 양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한 일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일이 있었다해서 고준호 씨에게 서운한 내색조차 한번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런 날이면 더욱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고준호 씨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었던 아내였다. 이렇게 뜬금없이, 흔적 하나 없이 깜쪽같이 사라져버리다니. 아내와는 브로커를 통해 만난 사이도 아니고, 위장결혼은 더더욱 아니었다. 고준호 씨는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아내의 친정이 동남아 어느 나라에 있다는 것 외에 아내에 대해 그닥 아는 게 없다는 것을 고준호 씨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아내는 평소 만나는 사람이 없었고, 외출이라고는 기껏해야 일주일에 서너번 마트에 가는 것, 그 외에는 한달이나 두달에 한번 정도 “강원도에 있는 지인의 농장에서 보기 드물게 질좋은 고기를 구할 수 있게 되어서 한 이틀 정도 다녀오겠다”며 신바람 나게 나가서 이틀 후에는 정말 고기로 꽉 찬 장바구니를 들고 들뜬 얼굴로 돌아오는 것 외에는 달리 나다니는 곳도 없었다. 도저히 아내의 자취를 찾을 곳이 없었다. 고준호 씨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 선택 밖에 남아있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를 기다리는 일. 사라졌을 때처럼 조용히,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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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의 시간이 흘렀는지, 시간 감각이 사라진 고준호 씨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혹여라도 전화가 올까봐 핸드폰은 방전이 되지 않게끔 챙겨 들고, 적막이 들어찬 집안을 견딜 수 없었기에 TV를 24시간 틀어놓고, 그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기절하듯 잠이 들고, 또 깨어나 혹시 아내가 들어온 건 아닐까 하며 크지도 않은 아파트 곳곳을 – 심지어 침대 밑까지 – 둘러보고, 그러다가 너무 괴로울 때면 평소에 즐기지도 않던 술을 병째로 들이붓고, 마신 술을 못이겨 토하고 괴로워하다가 잠이 들고, 또 깨어나면 다시 집안을 샅샅히 훑어보고… 고준호 씨의 감정은 화가 났다가, 죄책감에 몸부림 쳤다가, 슬퍼졌다가,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초조하고 불안해졌다가,를 반복했다. 그 시나리오 중 최악은, 저 엄지손가락 연쇄살인의 희생자로 발견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체격이나 체력이 좋다고 해도, 아내도 여자다. 만약 어디 산책이라도 나갔다가 혹 저 극악무도한 살인자 놈의 표적이 되었다면…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고준호 씨는 전신에 돋는 소름을 털어내기 위해 도리질을 하다가 결국엔 술을 찾았다.
지난 며칠 간 고준호 씨는 아내가 냉장고와 냉동고 속에 남겨 놓고 간 음식 몇 가지와 독주 몇 병, 그리고 물 외에는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실은, 아내의 부재보다 더욱 집요하게 고준호 씨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내를 그리워 하는 것인지, 아내가 해주던 음식을 그리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내가 해놓은 음식이 떨어진 후, 고준호 씨는 그 어떤 음식도 제대로 목에 넘길 수가 없었다. 세상 모든 음식이 이렇게 흙맛이었던가. 라면이고, 짜장면이고, 김밥이고 간에, 뭐 하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내가 해주던 음식이 아무리 맛있었던들 이 정도까지 길들여져 버렸다는 것이 고준호 씨 자신으로서도 의아스러울만큼 모든 음식이 맛대가리가 없게 느껴졌다. TV 앞에 앉았다가 선잠이 들면, 고준호 씨는 아내가 해주었던 음식이 한상 가득 차려진 식탁 앞에서 음식을 잡으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악몽을 꾸고는 식은땀에 젖어 깨어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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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고준호 씨는, 아내의 음식을 눈 앞에 두고 애를 쓰는 꿈을 꾸다가 억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작업실 한쪽 구석에 구겨지듯 앉아있던 자세대로 옆으로 쓰러져서 잠이 든 탓에 몸 아래 깔려있던 오른팔이 묵직하게 우리면서 아팠다. 왼손으로 오른팔을 주무르던 중, 거실에서 울리는 TV에서 “속보입니다”를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거실로 나왔다.
- 근 일년 가까이 세상을 충격과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엄지손가락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검거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범인은 여성, 그것도 동남아 출신의 여성이었습니다.
고준호 씨는 얼어버렸다. 화면 속에 수갑을 찬 범인의 실루엣, 그것은분명 아내였다. 낡아서 오른쪽 어깨의 장식이 떨어진 진녹색 털잠바도, 고준호 씨가 그만 내다버리라고 해도 굳이 아직 한참 더 입을 수 있다며 베시시 웃던 바로 그 옷이었다.
- 30대 초반의 이 여성은, 범죄대상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경찰의 비호를 받던 20대 초반의 신체장애를 가진 여성의 집에 침입했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체포 직후 그간의 범죄를 모두 자백했는데, 이번 살인을 마지막으로 출국할 계획으로 비행기표를 예매해 놓은 것까지 확인되었습니다. 충격적이게도 그 동안 피해자들의 시신을 토막내어 식용으로 씀으로서 시신을 숨겼다고 자백했으나, 본인은 단 한번도 인육을 입에 대지 않았다며, 식인을 위해 살인을 한 것만큼은 결단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몸이 먼저 반응을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고준호 씨는 변기통을 부여잡고 지난 1년간 먹은 모든 것을 토할 기세로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과 토사물로 범벅이 된 채로, 고준호 씨는 변기 앞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과 반대로, 그는 미친사람처럼 큰소리로 웃어제꼈다.
- 어쩐지 너무 맛있더라니! 으… 으웨엑… 아하하하하, 그래그래, 너무 맛있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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