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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 논란과 문체부 장관 지명자
- 학계가 우려하는 이유 -
도종환 의원이 역사학계를 대하는 태도가 논란되자 야당 일각에서 그의 ‘역사관을 검증’한다는 말이 나왔다. 학계는 문체부 장관 후보자에게 합리적・상식적 우려를 표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고, 각종 유사역사 단체의 행사에 참석하던 인사들이 여럿 포함된 정당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역사관 검증’이란 표현은 폭력적이다. 개인의 역사관은 다양할 수 있고, 우리 헌법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생각 자체가 아니라 행위와 활동에 주목한다. 특히 그는 자연인이 아니라 입법주체인 국회의원이며, 문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었기 때문이다.
문체부 산하에는 문화재청, 전국의 여러 박물관이 있어 업무의 많은 부분이 역사와 밀접히 연관된다. 그 장관은 역사・문화와 관련하여 큰 권한을 지닌 직책이다. 그래서 장관이 된 뒤에 그가 벌일 수 있는 행위를 경계하는 것이다. 과거 그는 의회 권력으로 학문 영역을 침해했고, 역사학계를 ‘식민사학’으로 매도하는 태도를 곧잘 표출해왔기 때문이다.
학문 영역에 행사된 의회 권력의 부당한 힘
2013년 6월부터 2년여 활동한 국회 ‘동북아특위’의 국회의원들은 환상적 민족주의에 젖어 학문을 겁박(劫迫)하고 연구를 방해했다. 유사역사 주창자의 주장을 반복하며 학계가 오랜 연구를 통해 밝혀낸 사실조차 부정하고, 학설에 개입하려 들며 여러 학자를 불러 모욕적으로 몰아세웠다. 그 과정에서 유사역사의 황당한 주장들이 일부 언론을 통해 마치 ‘학계의 논쟁’처럼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동북아특위와 유사역사 주창자들은 언론을 활용하여 한목소리로 동북아재단을 공격하였다. 결국 동북아역사지도 작업은 마무리되지 못하고 폐기되었고, 하버드대 고대한국 프로젝트도 중단되었다. 고대한국 프로젝트는 한국학 세계화의 일환으로 외국인 학자까지 포함하여 연차 이루어지던 작업이었다. 의회 권력과 유사역사 주창자들이 학문을 침탈한대표 사례라고 할 것이다.
동북아특위 활동에 열성적이던 사람이 도종환, 김세연 의원 등이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다른 의원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비슷했다. 여러 압력을 견디지 못한 동북아 재단은 정부 연구기관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기 시작했다. 환단고기를 성전(聖典)처럼 받드는 이를 불러 특별강연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유사역사 주창자들을 불러 정기 토론회를 최근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합리적 토론이 될 리가 만무하다. 평양은 조선후기 이후로 낙랑으로 비정되었고, 이후 수천기의 무덤과 수만점의 유물로 확인되어 통설이 되었다. 이를 부정하고 북경 근방으로 갖다놓으며 ‘민족’을 외치는데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억지스런 주장과 고함, 학계를 향해 ‘식민사학’이라는 욕설만 오갈 뿐이다. 정부 연구기관의 품격이 이토록 추락한 모습을 연구자들은 허탈하게 바라보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실추시킨 정부기관의 품격
의회 권력 일부가 학문 연구에 횡포를 부리던 같은 기간에 청와대를 비롯한 행정부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박근혜 집권 기간 상고사를 둘러싼 난맥상은 극심했다. 중앙부처 공무원 내부의 환단고기 신봉자 그룹은 일찍부터 박근혜와 결합했다. 그리하여 2013년 4월 26일 청와대에서 ‘상고사 정립’ 방침이 결정되고 많은 연구비가 지원되기 시작했다. 이 그룹 멤버는 요소에 배치되어 유기적으로 활동하였다.
급기야 2013년 8월 15일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에 『환단고기』가 인용되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대내외적 메시지를 담는 경축사에 위서(僞書)가 인용된 황당한 사건이었다. 또 2014년 8월 통일부 통일교육원이 간행한 『통일문제 이해』에도 『환단고기』가 길게 인용되었다. 국격이 추락하고 정부기관의 품격은 땅에 떨어졌다.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국정교과서를 추진할 때도 ‘상고사 강화’는 어김없이 등장했고, ‘혼이 비정상’이라는 표현이 어지럽게 떠돌았다. 지난 수년간 유사역사를 신봉하는 민간단체들의 활동은 유례없이 활발해졌다. ‘민족’과 ‘애국’이라는 낱말을 앞세운 민간단체나 지자체는 유사역사 강연회를 자주 열었다. 독립운동사와 유사역사를 묘하게 묶어 강좌를 여는 단체에는 기관과 지자체의 지원도 이루어졌다.
이렇게 박근혜 정권 동안 유사역사 세력이 확산되었다. 심지어 학회의 학술대회장, 시민강좌에서 고성을 지르거나 몸싸움이 일어나는 장면도 흔치 않게 나타났다. 이명박 정권 이래 광장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완력을 행사하는 무리들이 이상스레 늘어난 현상과 겹친다. 이렇게 지난 수년간은 우리 사회에서 이성과 합리성이 공격당하며 억지 주장과 완력이 횡행하는 혼돈의 시간이었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이런 상황은 불행히도 지속되고 있다. 심각한 것은 의회 권력의 일부에서 이런 상황을 이어가려는, 때로는 더 심각하게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유사역사 관련 행사들의 대부분이 국회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항상 국회의원들이 축사에 나선다. “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는 발표회가 국회에서 열렸고 그 자리에 국회의원이 축사에 나선 적도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 단면이다.
‘식민사학’이라는 레토릭, ‘주관적 애국주의’의 위험성
역사학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기초 학문이며, 그를 바탕으로 현실을 인식할 안목을 제공하는 분야이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고 논쟁이 일상적이며, 그 과정에서 실증적・합리적으로 다수가 공감하는 견해가 통설이 된다.
역사 교과서는 이런 통설에 입각하여 서술된다. 몇 학자의 일방적 해석으로 채워진 내용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과 구여당은 역사학계를 좌편향이라 매도하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다. 전체주의자들이 국민의 정신을 전일적(專一的)으로 통제하려 했던 것이 국정교과서이다. 역사학계가 단호히 반대하고 저항에 나섰던 것은, 그것이 학문과 교육을 침탈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도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집권세력과 그 추종자들이 빚어낸 ‘야만적 상황’과 많은 일들이 관련된다. 집권층으로부터 음양으로 지원을 받은 극단세력이 ‘친북’・‘종북’・‘빨갱이’라는 낱말을 쏟아내고 폭력을 행사하며 공포를 조장했다. 집권세력은 이런 낱말을 국회로까지 끌어들여 정치적 선동에 이용하며 우리 사회를 야만의 상태로 이끌었다. ‘주관적 애국’으로 무장하여 광기를 조장하며 나라를 망쳐왔던 것이다.
황당하고 억지스런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이 학계를 공격하는 방식이 이와 닮았다. 그들이 대중을 선동하는 무기가 ‘식민사학’이라는 낱말이었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선학들의 노력으로 일제 식민사학의 폐해를 넘어선지 이미 오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비니스트들이 ‘민족’과 ‘애국’이라는 낱말로 대중을 선동하여 우리 사회를 야만과 광기로 몰아넣고 있다. 히틀러나 일본 군국주의는 이런 종류의 야만이 불러올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영광스런 고대에 대한 허구적 집착은 현실의 문제들을 덮는다. 우리는 1990년대 ‘다물민족주의’가 노동자를 선동하여 대기업 노조를 어떻게 약화시켰는지 알고 있다. 영광스런 고대라는 환상은 현실에 대한 환각제이다. 환각제는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지만 질병을 치료하지 못한다.
유사역사 주창자들이 국정교과서 파동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보자. 대부분 침묵했다. 또 어떤 단체는 촛불이 광장을 덮었을 때 탄핵반대 신문광고를 냈고, 탄핵반대 서명지를 돌리기도 했다. 쇼비니즘은 극우 성향을 띨 수밖에 없으며 전체주의로 가는 동력이 된다. 이런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면 우리 사회는 야만과 광기로 빠져들게 된다.
도종환 의원은 한쪽 팔로 전체주의 교과서를 막으려 하면서, 다른 팔로는 학문 연구에 권력을 행사했다. 주관적 신념이 빚어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가 장관이 된 이후를 우려하는 것이다. 우리의 우려는 도종환 1인으로 그치지 않는다. 수년 전부터 국회 내에 나타난 유사역사 경도 현상도 이에 못지않게 우려할 만한 일이다.
2017년 6월 13일
한국고대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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