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할아버지께서는 말씀이 적으신 편입니다. 돼지 갈비를 먹고 "맛있다"고 하실때와 제게 TV 채널을 골프로 돌리라고 심부름을 시키실 때를 빼면 거의 입을 여는 일이 없으십니다. 할머니께선 항상 할아버지가 입이 무거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할아버지를 이렇게 부릅니다 - "얼간이"라고...
할아버지께선 언제나 무심하셨습니다. 제가 아기였을 때, 할아버지에게 아장아장 걸어가도 저를 본 체도 하지 않으시고, 제가 할아버지 앞에서 춤을 춰도 할아버지께선 소파에 앉아 신문만 보고 계셨습니다.
제가 "할아버지, 봐봐요!" 라고 말하면 할아버지는 거슬린다는 듯 신문만 더 눈 앞으로 들어 올리셨습니다.
항상 저를 편안하게 해주는 건 할머니 뿐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만 제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항상 쓰다듬어 주시고, 쿠키도 구워주시고, 칭찬도 해주시고... 작년 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할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해 여름, 어머니께서 저를 할아버지 댁에 맡겨두고 새아빠와 2주간 부부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중3이였던 저는 혼자 집에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께선 제가 할아버지랑 사이가 안 좋은 것이 마음에 안 드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께선 제게 "재밌게 잘 지내!"라고 말씀하시며 차에서 저를 내리게 하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는 말 한마디도 안 하신다구요!"라고 반박했지만 어머니께선
"그냥 조용하신 것 뿐이야. 잘 들어봐." 하고 떠나셨습니다.
첫 열흘 정도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습니다. 저와 할아버지는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고, 식사도 따로 해결했습니다. 마지막 전날 까지만요...
그날 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할아버지 방의 불이 켜져있는 것을 봤습니다. 왠지 궁금해져서 저는 복도 모서리에서 방을 엿보기로 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선 안락의자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며,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시선은 환풍구를 향해 있었습니다.
"네가 아직도 있었더라면..." 할아버지께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께 다가가면서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구요?" 하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선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제게 침대에 앉으라고 손짓하셨습니다. 저는 침대 끝자락에 앉은 뒤, 할아버지께서 건내주시는 위스키를 한입 먹어보고, 병을 다시 돌려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선 조용히
"이제 슬슬 네게 내 여동생에 대해 말해줄 때가 된 것 같구나" 라고 하시며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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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별로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건 이미 안다. 나도 내 자신을 별로 좋아하진 않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내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수많은 것들을 바꿨을 것이야. 너는 아직 어리지만, 곧 이해하게 될거란다.
내 부모님과 나는 내가 어린 아이일 때부터 여기에 살았었어. 그때는... 그래, 전쟁이 막 끝났을 때 쯤, 이 집은 내겐 성 같았지. 이 방은 그 때도 내게 쓰던 방이었다. 그때 8살이었던 내겐 이 방은 내 왕국이었단다.
나는 종종 상상을 했지. 내 부모님이 왕과 왕비이고, 나는 왕자라고. 나는 내 인형들을 백성처럼 다스렸단다. 내 부모님은 내가 그러는 걸 좋아하셨지.
내 어머니는 전업 주부였단다. 그때 당시엔 모든 여자가 그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래서 항상 어머니는 내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시고, 같이 놀아 주기도 하셨지.
내 아버지는 약간 달랐단다. 집에 있을 때는 가족에 신경을 많이 쓰셨지만, 집에 돌아오시는 경우가 별로 없었어. 그래, 내 아버지는 설교가셨어. 독실한 기독교 설교가 말이야.
보통 아이들은, 부모님을 절대적으로 믿지.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거라면, 무조건적으로 믿고, 반론할 이유도 없어. 내 부모님께서 내게 매주 3일 교회에 가라고 했을 땐, 나는 기꺼이 갔었어. 설교가의 아들로 교회에 있는 건 참 재미있었지. 어머니와 나는 항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어. 완벽한 가족의 본보기라면서, 주님의 은총을 받았다면서. 아버지는 주님의 전도사라고도 불렸었지. 모두가 믿는, 그런 존재말이야. 그래서 아버지께서 내게 다락방에서 들리는 소리를 무시하라고 했을 땐, 나는 그리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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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소리를 눈치 챈 것은 이사를 했던 날 당일이었단다. 방에 누워있는데 환풍구에서 작게 울음소리가 들렸었지. 그리고 그 비명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잦아들었단다. 나는 졸린 나머지 그냥 잠들었어. 그후 몇 주 동안, 한밤중에 누군가 걷는 소리나, 뭔가가 부딛히는 소리가 났었지. 아버지께 물어보니 집에 쥐가 있다고 하시더구나. 나는 그걸 믿고 밤중에 나는 소리를 무시하기로 했단다.
어느 날, 나는 방에서 밤 늦게까지 놀고 있었어. 나는 내 장난감 칼을 들고 인형들에게 기사도를 보여주고 있었지. 그러는 중, 나는 그 목소리를 들었어,
"저기요?"
그 목소리는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메아리였어. 그리고 여자아이의 목소리였지. 그래서 내가 더 잘 들었던 걸지도 모르고. 내 집에는 여자아이를 들여 보낼 수 없었거든.
"거기 누구 있어요?"
하고 그 목소리는 다시 한번 물었어. 그때 나는 알았지. 그 목소리는 환풍구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나는 바로 그 환풍구로 달려갔단다.
"누구세요?" 하고 나는 용기를 담아 물었어.
"나 폴리. 나 다락방에 살아." 그때 나는 그 목소리가 나보다도 어린 아이의 것인걸 알아차렸지. 그 목소리는 약간 부자연스럽달까 약간 긴장된 목소리였어.
"너 내 오빠?" 그 목소리는 물었고
"잘 모르겠어" 하고 나는 답했어.
"아빠는 나 오빠 있다는데 못 만나게 해"
"왜?"
"나 이상하대"
"이상해?"
"잘 모르겠어. 나 잘 생각안나."
"네 아빠가 누구니?"
"마이클 라슨"
"어? 그건 아빠 이름이잖아!" 나는 신이 나서 소리쳤지. "그럼 너는 내 여동생이 되는거네?"
"아 그런거야?"
"그런거 같아.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나도 몰라"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내가 물었지
"너는 왜 다락방에 살아?"
"아빠는 내가 나가면 안된대. 나는 다르대"
"밖에 나가본 적 없어?"
"그런거 같아" 폴리가 불안한 듯이 대답했지. "말하면 안돼"
"어..." 나는 어리둥절해 하면서 침대에 앉았어.
"난 이제 자러 가야 될거 같아" 나는 망설이면서 말했지.
"그래. 알았어." 폴리가 대답했지만, 그녀가 울먹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또... 또 얘기하자!" 나는 황급히 말했어.
"그래?"
"당연하지. 나는 네 오빠잖아."
"그리고 난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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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신이 난 채로 일어났지. 토요일일 뿐만 아니라, 내게 동생이 있다니! 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지. 식탁에는 어머니가 매주 토요일에 해주시는 맛있는 아침 식사가 있었어. 아버지는 아침 기도를 드리고 있었지. 기도가 끝난 다음, 나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어.
"워워. 뭔 일인데 그렇게 들떠있어?" 아버지가 웃으시며 물어셨지. "왜 이리 서둘러?"
"빨리 아침밥을 먹고 여동생이랑 놀려구요." 나는 토스트를 입에 물며 대답했지.
내가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어머니의 얼굴색이 귀신에 홀린 듯 창백해졌어. 아버지는 이를 악물며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 놓으셨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엠제이" 아버지는 날선 목소리로 말씀하셨지. "너는 동생이 없어."
나는 혼란스러워 하며 말했지 "아닌데요. 다락..."
"조용히 해!" 아버지가 테이블을 세게 내리치며 고함치셨어. 어머니께선 말 없이 아래만 보고 계셨지. 어머니의 눈물 한방울이 접시로 떨어졌어.
"네 거짓말 때문에 어머니가 속상해 하시는 거 안보이니?"
"전 거짓말을..."
"지금 당장 방으로 가!" 아버지가 말하셨어. "다시 한번 그딴 거짓말을 한다면 방에서 못 나오게 할 줄 알아!"
나는 의자를 밀어 넣고 울며 방으로 달려갔어. 그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었지.
몇분 후, 그녀가 내게 말했어.
"괜찮아?" 하고 폴리가 물었어,
"아니" 나는 매섭게 대답했지.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아빠한테 혼났다고!"
"무슨 일?" 그녀가 걱정하면서 물어 봤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대답했어
"아빠한테 내가 여동생이 있다고 말했더니 나한테 소리 지르고선 방에 있으래!" 나는 울며 말했지.
"아빠한테 말했어? 우리 말했다고?" 폴리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어.
"아마도."
"왜... 그러면 안돼."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는 걸 들을 수 있었어. "나... 안돼... 날 주-죽일거야!"
"그래! 너는 벌을 받아야 돼!" 나는 환풍구에 대고 소리질렀지. "너 때문에 오늘 하루를 망쳤어! 너랑 대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단 말야!"
나는 폴리가 우는 걸 들을 수 있었어. 나는 그녀를 울리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분이 더 안 좋아졌지. 죄책감이 들었어. 그래서 나는 배게로 귀를 막아버렸어.
나는 울다 잠들어 버린 것 같았어. 내가 일어났을 땐, 배게는 바닥이 있었고 나는 폴리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달랐지.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어.
"싫어. 안돼..." 폴리는 흐느끼며 말했어.
"어떻게..." 다른 목소리가 물었지. 나는 바로 일어나서 귀를 기울였어. 그건 내가 아는 목소리였거든.
"안돼... 나 착해 나 착해" 폴리가 울며 대답했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폴리가 비명을 지르는 걸 들었어. 나는 환풍구에 더 가까이 갔지. "나 아무랑 얘기 안해"
"거짓말 하지마" 아버지가 소리쳤어.
"아냐 나 착해. 거짓말 안해." 또 쿵 하는 소리가 나고 폴리는 더 크게 비명을 질렀지. 나는 그저 들으면서 벌벌 떨고 있었어.
"착하게 행동 하는게 좋을거야" 아버지가 말했지. "나쁜아이에겐 뭐가 일어나는지는 너도 알겠지."
"제발... 제발 안돼. 나 착해."
"옷 벗어"
"싫어... 나 거짓말 안..." 짝 하는 소리와 함께 폴리가 말을 멈췄어. 나는 그녀의 비명을 들었고,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 막았지.
"다시 말하게 하지마. 옷을 벗어."
나는 방을 뛰쳐 나와서 거실로 갔어. 그리고 기도했지. 주님께.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계실거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거라고. 내가 이상한 상상을 한거라고.
하지만 거실에는 뜨개질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 밖에 없었어.
"엄마" 난 울며 말했지. "아빠 어딨어요?" 나는 떨고 있었어.
어머니는 내게 슬프게 웃으며 "아버지는 기도하고 계신단다."
"진짜요?"
"그래."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셨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어. "이리 오렴. 라디오 같이 듣자. 곧 있으면 네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시작 될거야,"
나는 어머니 옆에 앉았고 어머니는 라디오를 켜주셨어. 어머니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뜨개질을 계속 하셨지만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바늘을 꽉 잡고 계셨어.
"나는 네 아버지를 사랑한단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지.
"저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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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나이프는 버터처럼 스테이크를 가르고 있었지. 피가 아주 약간 흐르는, 아버지가 딱 좋아하시는 스테이크.
"이제 거짓말은 안할거지, 엠제이?"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말씀하셨어.
"네." 나는 대답했지. "너무 상상에 푹 빠졌나봐요."
아버지는 웃으며 나이프로 어머니를 가르켰어. "너를 낳아주신 분에겐 뭐라고 해야되지?"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어. "죄송해요 엄마."
"그래, 그래야 내 아들이지." 아버지는 스테이크를 입에 넣으며 말씀하셨어. "반성해라."
"네."
그리고 대화의 주제는 다음 주말의 교회 모금 행사로 바뀌었지. 어머니는 맛있는 피칸 파이를 굽겠다고 하셨고 아버지는 성경공부 학생 중에 누가 오면 좋을 지 이야기 하고 계셨지. 저녁이 끝난 이후, 나는 방으로 돌아갔어.
"폴리?" 나는 환풍구에 대고 물었어. 약간 훌쩍거리는게 들렸지. 나는 미안해서 말했지.
"미안해 폴리. 용서해줘."
"그래..." 폴리가 말했어.
"괜찮니?"
"아니."
나는 방을 둘러보고 말했어. "나는 슬플때면 놀아. 나랑 같이 놀래?"
"그래."
"내가 왕자님이 될테니까 너는 공주님이 돼. 우리는 왕국들을 다스리는 거야. 나는 내 방을 다스릴거고 너는 네 다락방을 다스려, 재밌겠지?"
폴리가 훌쩍이며 말했어 "내가 공주?"
"당연하지!" 내가 말했지. "너는 뭐든지 될 수 있어!"
그렇게 시작됐지. 간단한 놀이로. 매일 밤, 아버지가 주무시러 가는 걸 확인한 다음 비밀 암호를 댔어. 내가 환풍구를 두번 두드리고 그녀가 놀 수 있는 상황이면 한번 두드리기로 했지. 그렇게 우리가 안전하게 놀 수 있다는 걸 확인했지. 어느 날은 왕국들을 다스리고, 어느 날은 내가 책을 읽어주고, 그리고 어느 날은 그냥 대화만 했지. 그녀랑 놀았던건 참 좋았어. 이런 일상이 좋았지. 하지만 모든 일상은 망가지기 마련이지.
가끔 내가 환풍구를 두번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을 때가 있어. 그때는 암호 대신 이상한 신음 소리와 쿵 하는 소리가 들렸지. 1층으로 내려가보면 어머니께서 거실에서 바늘을 꽉 쥔채로 뜨게질을 하고 계셨고 아버지는 집에 없으셨어. 그렇게 나는 알아차렸지. 아버지는 폴리와 함께 다락방에 있다고. 그 일 직후엔 폴리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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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어때?" 어느 날 밤, 폴리가 내게 물었어. 나는 잠시 생각을 했지.
"음... 아주 넓어. 하지만 좀 추워.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거든. 눈도 많이 왔어."
"눈은 어때?"
"눈 본적 없니?"
"없어."
"음. 그럼 같이 보러 가는 건 어때?"
폴리는 머뭇거리며 대답했어. "나는 다락방을 떠나지 않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지. "딱 한번만 나가보는 건 어때? 내가 널 데리러 갈께. 같이 가서 눈 구경하자. 다시 바래다도 줄게. 아빠는 모를거야."
"비밀?" 폴리가 물었지. 신이 났다는 것이 들리게. "밖에 가는거야!" 그녀가 소리쳤어.
나도 웃으며 소리쳤지. "그래 가는거야!"
"언제?" 폴리가 물었어.
"지금 당장 가-"
"누구랑 얘기하는거니?" 아버지가 물었어. 내 얼굴이 새빨개졌지. 잡힌거야.
"아무랑도요... 그냥 노는거에요." 아버지는 내 인형들에게 시선을 돌리셨어. 박스에 잘 정리되어 있는 상태의 인형들을.
"누구랑?" 아버지가 다시 물으셨어.
"아무도 아니에요. 저 혼자 놀았어요."
아버지께서 얼굴이 굳어진채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씀하셨지. "그래. 계속 해라. 소리만 약간 줄이렴." 그리고 아버지는 나가셨어. 그리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 몇분 뒤, 나는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아빠께서 주무실때 까지 기다려보자. 그 다음에 가는거야!" 내가 환풍구에 속삭였지.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어.
"폴리?" 나는 몇분 더 기다린 뒤에 또 물어봤지. "폴리, 같이 나가지 않을래?"
"아니" 내 아버지의 목소리가 대답했어. "폴리는 나가지 않을거야." 나는 입을 틀어 막고 침대를 뛰쳐 나왔어.
"오빠" 폴리가 대답했지. "도와줘..."
나는 몸이 얼어 붙은 채로 움직이지 못했어. 쿵하는 소리가 계속 났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지. 폴리가 오빠를 계속 부르는데도. 아버지가 그녀를 때리는데도. 다락방이 조용해진 다음에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어.
나는 방 한가운데에 주먹을 쥔 채로 서있었어. 아버지가 다락방을 떠나는 데도. 무거운 발걸음이 들리는 데도. 바깥의 불빛이 켜지는데도. 나는 밤새 아버지가 땅을 파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어.
다음날 아침, 단풍나무 옆에 눈에 뒤덮히지 않은 흙더미가 있었어. 그리고 환풍구는 조용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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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서 술잔을 내려놓으시며 환풍구를 바라보았습니다.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진 듯 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폴리라구요?" 제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래. 너처럼." 할아버지는 약하게 웃으시며 "네가 태어났을 때, 내가 네 어머니에게 이름을 폴리로 지어달라고 부탁했단다."
"어머니는 이유를 아세요?"
"내가 여동생이 있었다는 것만 알지. 다른건 몰라."
저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다음엔... 어떻게 하셨나요?"
할아버지께서 술잔을 바라보시며 말하셨습니다. "아무것도. 그게 일어나고 있었을 때 처럼 말이야."
할아버지는 한동안 가만히 계시다 술잔을 들이키셨습니다. "다운 증후군이었나봐, 그리고 아버지는 그걸 수치로 여겼나보지."
"할아버-"
"아니," 할아버지께서 제 말을 가로 막으셨습니다. "필요 없어." 저와 할아버지는 몇분동안 대화 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환풍구의 조용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폴리는 좋은 공주님이었을 거에요" 제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웃음을 지으시며 - 8살 아이 처럼 해맑게 웃으시며 - 말하셨습니다. "그래. 그랬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