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봄은 끝났다.
뭉게구름같은 벚꽃이 어느새 푸른 잎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살짝 웃으며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에
잠깐 옛날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언제였을까.
아마 12살 언저리였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긴 했지만 그땐 정말 병약했었다.
일년의 거의 대부분은 병원에 누워 있었으니.
학교는 거의 다니지도 못했었고.
그렇게 살아가면 시간을 잊게 된다.
나는 계절을 창 밖으로만 알 수 있었고
그것마저도 회백색의 건물들만 있었기에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뜨거운 태양의 열기, 매미 울음 소리와 높은 구름 같은 것으로 시간을 알게 되었다.
다른 시간들은 그저 계절로써 기억했지만
딱 하나.
4월 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분홍색 꽃잎이 자주 날라들어왔기 때문이다.
엄지 손톱 정도 크기의 동그란 꽃잎 한장.
그 작은 기적을 기다리는 것은 나의 조그마한 행복이었다.
언제나 회백색의 차가운 세상에서 죽음들을 보는 나에게
정말 조금이지만, 그 분홍색 꽃잎이 희망을 주었다.
그런데 12살의 그때, 나는 병세가 심하게 악화되었다.
의식 불명의 상태로 2달을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눈을 떴을 때, 이미 밖에선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4,5월을 잃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 조그마한 행복도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때 어머니에게 말했었다.
벚꽃을 보고싶다고.
6월 달도 다 지나 한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는데도.
점점 뜨거워지는 태양과 매미들의 우렁찬 소리와 반팔을 입은 사람들을 보았음에도.
나는 그렇게 해줄 수 없는 부탁을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고개를 휙 돌린채 울어버렸다.
여태까지 울지 않았어서 그랬을까.
그땐 정말 많이 울었다.
벚꽃을 보지 못한다는 서러움과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미안함과
여태까지, 앞으로도 계속 있을 이 곳에 대한 답답함과
모른 척 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한번에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날 어머니께 잘 주무시라고 하지도 않고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잤다.
어머니는 홑몸으로 내 병원비를 내기 위해 매일같이 일하고 계신데도.
언제나 병실에 들어오기 전에 옷에 먼지 묻었을까 털고 들어오는 그 모습을 아는데도
언제나 나에겐 웃는 모습만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잠들었을 때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도 아는데.
참으로 어린 아이였다.
벚꽃 하나에 그렇게 울어버리고, 토라지고.
하지만 나는 정말 서러웠다.
그 작은 분홍 잎 하나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
그 다음 날이었나.
나는 텅 빈 눈으로 회색 벽만을 보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벽과 보도블럭과 사람뿐이었지만
다른 할 일도 없었으니까.
내년까지 기다려야 다시 또 4월이 찾아올 것이고
그제서야 잃어버렸던 봄의 시간이 돌아올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병세가 악화되어가는 내 자신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날이 어두워졌을 때였을까.
어머니가 병실에 들어왔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평소보다도 더 활짝 웃고 계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봄을 가져왔다고 말하셨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머니는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위를 보라고 손짓했다.
올려다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분홍색 꽃잎들이 나풀나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벚꽃같이.
깜짝 놀라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종이 봉투에서 분홍색 꽃잎을 꺼내고 있었다.
색종이였던 것이다.
분홍색 색종이.
나는 말없이 그걸 그냥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그 때 뭐라 말하셨었다.
그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난 살짝 울면서 어머니께 "네"라고 말했다는 것만은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 이야기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어렸다고 해도 말도 안되는 걸로 떼썼다는 이야기일 뿐이니까.
게다가 그것때문에 어머니는 의사선생님께 혼났고.
하지만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 모습은 나를 구해주었다.
끝났다.
나는 봉투를 들고 일어났다.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가 삼단 의자에 앉았다.
옛날에 내가 누워있었던 자리엔
어머니가 누워있다.
어머니는 나를 보곤 살짝 손을 들어보였다.
조금 울컥했다.
다만 나는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때의 어머니처럼.
나는 웃으며 종이봉투에 손을 넣었다.
어제 어머니가 말한 것이다.
마치 그때의 나처럼.
지금 그때의 기억은 없을 테지만.
나는 힘차게 손을 흩뿌렸다.
그때 처럼.
어머니가 나에게 해줬던 것 처럼.
기적을 바라듯이.
하늘하늘 분홍색이 내려왔다.
언젠가의 여름에 핀 벚꽃처럼.
아름다운 그 풍경을 떠올리듯이.
문득 나는 떠올렸다.
어머니가 나에게 해주셨던 말을.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올해 봄도 정말 아름답죠?"
봄은 이미 끝났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어머니는 날 바라보곤 살짝 웃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알고 있다.
분명 알고 있다.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러면 결국 그때랑 같잖아.
하지만 이미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어머니는 그런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결국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느꼈다.
고개를 떨궜다.
바닥에 흩어진 분홍색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아름다운 봄이었구나. 라고.
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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