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는 오늘도 김사원의 핸드폰 암호를 풀어내겠다고 저러고 있다. 잠시 자리비운 사이 핸드폰을 제것처럼 손에 쥐고 종일 그것만 기다린 사람 마냥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대리님. 그만 하세요. 거 남의 건데.”
“내가 이것만 풀어내고 말면 다들 나한테 고맙다고 할 걸?”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하던 일이나 계속했다.
대리가 신입사원의 핸드폰에 왜저리 집착하는지 나도 다른 남자 직원들도 모두 알고 있다. 다만 사무실에서 할 이야기로는 적합하지 않을 뿐. “이게이게 얌전한 얼굴하고.. 회식때나 가끔 빌고 빌어야 슬쩍 보여주지 감질나서.. 내가 이거 꼭 풀고만다.”
부장님의 헛기침 소리가 높아질 때까지 대리는 다급하게 비밀번호를 맞춰 보겠다며 부산을 떨었다. 경박함에 짜증이 슬쩍 올라와 커피 한모금으로 뱃속을 달랬다.
몇달 전 회식 3차였나, 김사원이 들여다보던 핸드폰을 대리가 낚아챈 것으로 저 꼴이 시작이 됐다.
“이야, 여친 예쁜데.”
김사원은 곤란한 기색이었지만 호기심에 몰려드는 주정뱅이들을 감당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땐 제정신이 아닌 나도 있었고.
핸드폰 속엔 여자 사진이 있었다. 자는 모습을 찍은 건가. 대리의 손가락이 휙휙 화면을 넘겼고 그러다 침대 위에 하얗게 상반신이 드러난 사진까지 보고 말았다.
술이 번쩍 깬 나와 다른 사원들은 보면 안될 것, 남의 애인 속살을 보게되어 미안하고 머쓱했는데 대리놈은 달랐다. 남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달려드는 꼴하고는.
다른 직원들은 그나마 이성이 있었고 난 더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이상한 분위기가 격하게 가라앉는데 그 정적을 핸드폰을 회수해가던 김사원이 깼다.
“여친 아닌데요.”
엄청나게 깼다.
그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시선들이 오갔다. 어? 그랬어? 으이구. 대리는 노골적으로 김사원에게 존경을 표했다.
“더 보여주시면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때까지 난 신입이 얼마나 골때리는 인간인지 모르고 있었다. 김사원은 말했다.
“그럼 대리님한테만 보여드릴게요. 앞으로 찍을 때마다.”
그 후로, 남자들만 모인 공간에서 그 둘은 기괴하게 날 괴롭혀왔다. 떠벌리는 쪽은 항상 대리였다. 김사원은 정말 말한대로 대리에게만 핸드폰의 사진을 보여주곤 했다. 공유는 하지 않았다. 오직 보여주기만.
그러나 사진의 내용은 대리가 흥분해서 떠들어대는 통에 부장님을 제외한 모든 남자사원이 다 아는 지경이었다.
매번 보여 줄 때마다 여자가 바뀐다, 갈때마다 홈런을 치고 어쩌고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더라 하는 둥. 변태새끼들. 난 알고싶지 않다고!
슬쩍 불편한 내색을 비칠까 생각해봤지만 아예 끼어들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내버려두었다. 그랬더니 점점 저 두사람은 멈출줄을 모른다. 그 두사람의 플레이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긴 있지만 핸드폰의 사진을 계속해서 보겠다 나서는 사람은 대리밖에 없었다. 핸드폰 주인이 적금이라도 붓듯이 꼬박꼬박 갱신되는 사진을 정기적으로 보여주는데도 대리는 기어코 그것을 모두에게 공유하겠다며 열성이다.
꽤 오랜기간 둘은 시끄러웠고 그럴때마다 그 둘이 없다면 회사 생활이 조금은 아름다워지리라 하고 바랐다. 그리고 그 바람은 묘하게 이루어졌다.
부장님은 어떠한 사정으로 김사원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설명했지만 우린 곧 쏟아지는 뉴스를 보고 어떠한 사정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다. 덕분에 다행히도 대리는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돌아가는 사무실 안에서 그 많은 시신의 사진을 봤을 대리를 볼때마다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지나치게 들여다보는 것은 역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