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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92714
    작성자 : 수컷수컷
    추천 : 37
    조회수 : 4093
    IP : 121.166.***.50
    댓글 : 8개
    등록시간 : 2017/03/05 19:46:55
    http://todayhumor.com/?panic_92714 모바일
    [단편] 복을 부르는 고양이
    옵션
    • 창작글

    복을 부르는 고양이

     

    #우리 주인 양반께서는 경성(京城)에서 제일로 가는 포목상입죠. 주인 양반이 취급하는 물건은 저 멀리 교도나 동경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상등품 중에서도 극상등품이란 말이죠.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기모노에 쓰는 옷감이랍니다. 아무 것도 안 입은 듯 가볍지만 한겨울 서리 날릴 때에는 오소리 털옷 입은 양 따뜻하고요. 매미 놈들이 찌르르 울어대는 한여름에는 말입죠, 옷감 사이사이로 바람이 시원하게 스며들어요. 그렇다고 맵시가 무디냐고요? 그것도 절대 아니에요. 조선인, 일본인 할 거 없이 우리 포목점에 새 물건만 들어오면 너도나도 사가려고 싸울 지경이라니까.

     

     

    #노로이는요, 우리 주인 양반께서 극진히 아끼는 고양이입죠. 그냥 어디서든 보는 줄무늬 고양이에요. 노란 털 바탕에다 검은 줄이 등으로 한 줄 길게 났죠. 코는 분홍색이고 귀는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솟았어요. 제가 일할 때부터 주인 양반께서 키우던 녀석인데 여간 잔망스럽기 그지없어요. 손님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우리 포목점에서 가장 볕이 잘 들어 따뜻한 곳에 누워 낮잠만 잔답니다. 가끔 나비 같은 것들이 콧등에 내려앉기도 하는데 그때도 그냥 실눈만 게슴츠레 뜰 뿐 쫓을 생각도 하지 않습지요. 그러다 밥 때가 되면 꼭 저한테 와서 몸을 비벼대면서 밥 달라고 앙탈을 떱니다요. 주인 양반께서, 고양이 밥은 당신 먹는 것보다 더 잘 차려주라며 신신당부를 하셨더랬지요. 그래서 매일 시장에서 가장 싱싱한 고등어를 한 마리 사다, 푹 삶아서 뼈까지 다 발라준 다음 노로이 녀석 밥그릇에다 진상을 올리는 게 제 하루 일과 중 하나죠. 나도 생선은 한 달에 두어 번 입에 대어볼까 말까인데, 암 것도 안 하고 퍼질러 잠만 자는 녀석은 매일 살찐 고등어를 맛있게 먹는 꼴이라니. 그래도 어쩌겠어요. 주인 양반이 노로이를 원즉 좋아해서 말이지요. 노로이 녀석도 그걸 알긴 하는지 주인 양반에게는 곧잘 갸르릉 거리며 아양을 떨기도 한다지요. 밥 주는 사람은 어디 있는데!

     

     

    #그런데 이상한 것이, 주인 양반은 사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거 있죠. 그냥 그렇게 보여요. 노로이가 다가올 때면 주인 양반께선 무슨 허깨비라도 본 양 몸을 흠칫 떠시지 뭐에요. 그러다 이내 어색하게 웃으시면서 고양이의 목덜미하며 등짝을 어루만져주곤 하십니다. 그럴 때면 노로이 녀석은 세상에서 저 혼자 고양이인 것 마냥 행복한 표정이에요. 그제야 주인 양반 표정도 풀어지는데,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언젠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주인 양반께서 총독부 고급 사관한테다 고급 비단을 납품하기로 했었거든요. 그런데 심부름 가던 하인이 가다 넘어지는 바람에 그 귀한 비단이 진흙범벅이 되고 말았어요. 결국 주인 양반께서 사관에게 사정을 설명하려 가게를 비우게 되셨지요. 그런데 고민이 되셨던 거지요. 그때 저는 열병에 걸려 사나흘 동안 끙끙 앓아누워 있었으니까요. 결국 가게 문을 굳게 잠그고 나섰는데, 아차, 노로이를 그만 놓아두고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날 가게에는 노로이 말고 아무도 없었단 얘기지요. 그런데 워낙 바빠서 주인 양반은 그걸 깨달을 틈도 없었던 모양이에요. 밤늦게 돌아와서야 아뿔싸, 하시며 노로이를 놔두고 온 걸 알았지요. 평소 돈 아까워 먼 거리도 걸어 다니는 양반께서 그 날은 인력거를 불러다 급히 돌아왔지요. 그런데 막상 돌아와 보니, 고르릉 거리며 반겨주는 고양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지 뭡니까. 나중에 들은 얘긴데, 주인 양반의 혈색 좋은 얼굴이 그렇게 창백해진 적은 없었노라 누가 그럽디다. 사람이 세상 전부를 잃어버린 사람마냥 허탈해져서는 당장이라도 대들보에다 목매달 것처럼 보였다나요. 노로이가 없어진 뒤 일주일이 지났는데 주인 양반은 가게 문을 열지 않았지요. 그러다 제가 간신히 열병이 나은 뒤 처음으로 시켰던 게 이거였어요.

    평소 장사가 안 되다, 어느 날 갑자기 손님이 들끓는 가게를 알아봐라.”

    나 원, 주인 양반을 모신지 어언 5년이 넘었는데요, 그때만큼 사람 잡아먹을 표정의 주인 양반은 처음 봤어요. 두 눈에 살기가 가득하고, 입은 굳게 다물었는데 누가 봐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게 눈에 뜨였지요. 양 눈썹 사이에 내 천() 자로 주름이 생겼는데 불가에서 말하는 야차나 그런 얼굴이었을까요? 갓 병석에서 자리 털고 일어났던지라 아직도 어질어질했었는데 그 얼굴 앞에선 그런 말을 깨내지도 못했다니까요. 시키는 대로 했습죠, 별 힘은 들지 않았어요. 저작거리 나가니까 소문이 파다하던 걸요.

    , 총독부 사거리에 국수집 있지? 거기가 평소 파리만 날리다가 지금은 북새통을 이룬다지 뭐야.”

    원래 주인이 환을 받고, 마누라가 국수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식모를 두 명 더 들여놨거든. 그런데도 더 바쁜 거 같아.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은 가게 밖에서 서서 먹어도 좋으니 제발 국수 좀 팔라고 난리를 부린다지.”

    냉큼 한걸음에 달려갔지요. 아니나 다를까, 저작거리 사람들이 농지거리 주고받던 거 그대로였어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총독 나리가 사열할 때 모여드는 군중보다 더 많았을 까요! 발 디딜 틈도 없다는 건 그걸 두고 하는 얘기겠지요. 낡은 안경 쓰고 다니는 옛 양반님도 더벅머리 상놈들도 구분 없이 한 탁자에다 같이 국수를 후루룩 먹고 있었지요. 그나마 앉아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거였구요. 가게 밖에 줄지어 서서 먹는 사람들 때문에 총독부 순사가 나와 도로 정리를 하던데요. 도대체 얼마나 맛있어서 저렇게 사람이 많은 걸까? 주인 양반께서 시킨 게 있긴 해도, 영 궁금해지지 않겠어요? 그런데 수중에 돈이 없었어요. 돌아가려는데 이거 이런 일도 다 있나요. 국수집 입구 주춧돌에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데, 그게 다름 아니라 우리 노로이지 뭡니까.

    욘석, 여태까지 어디 있었누.”

    냉큼 데려나오려는데 갑자기 억센 손이 팔을 확 잡아채더라고요. 웬 털보 산적 같이 생긴 양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사납게 노려보았죠. 첫 눈에 여기 국수집 주인인 걸 알았어요. 밀가루 냄새, 간장 냄새가 코를 찔렀거든요.

    누구, 허락 맡고, 우리 나비, 데려가누?”

    말을 좀 더듬었는데 주인이 주방에서 나온 게 여간 흔치 않은 일인지 금세 구경꾼들이 모여들었지요. 나는 당당하게 말했어요.

    우리 고양이더러 무슨 우리 나비요? 이 고양이는 원래 우리 주인 양반께서 기르던 녀석이니, 내 이 길로 데려가겠소. 이 고양이가 저 종로 사거리에서 제일 큰 포목점 앞에서 만날 죽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누가 훔쳐갔소! 온 경성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니, 궁금하면 순사 나리께 물어보시오!”

    마침 교통 정리하는 순사까지 들먹이자 그 덩치는 내심 찔끔했나 봐요.

    그냥, 지가 멋대로, 따라왔지. 나는, 훔친 적 없어.”

    그러면서 슬그머니 돌아섰지요. 노로이를 데리고 주인 양반께 갔어요. 죽었던 자식이 되살아나도 그리 기뻐할까. 생선 가게에서 가장 크고 싱싱한 놈으로 두 마리 생선을 사다 상주 모시듯 노로이 앞에 바치면서 내내 입이 찢어질 듯 웃으셨죠. 나한텐 잘했단 말 한 마디 없구요. 그렇게 노로이가 없어질 걸 걱정할 것이면 그냥 목줄을 해 놓지 않고 뭐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함부로 이런 말을 올렸다간 또 몽둥이찜질을 받겠지요.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지. 그 뒤로 사흘이 지났던가, 그때 못 먹어본 국수로 요기라도 할 양 총독부 앞 국수집에 찾아갔지요. 그런데 웬걸, 그 바글바글하던 사람들은 하나도 안 보이고 사거리 곳곳에 순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서있지 뭐에요. 또 만세운동이라도 일어날 모양이었어요. 때문일까요, 국수집에는 손님 하나도 없고 그냥 파리만 날리고 있었지요. 앉아서 먹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신기한 게요, 갑자기 텅 빈 그 가게를 보니 도저히 그 집 국수를 먹을 생각이 들지 않는 거였어요. 뱃속에서는 밥 달라고 꾸륵꾸륵 대는데 말이죠. 그래서 그냥 허탕 쳤구나, 하고 가게를 지나치는데 안으로 털보 주인이 한숨만 땅이 꺼져라 뿜어대는 게 보이더군요. 그리고 또 사나흘 뒤였나, 그 국수집이 결국 간판 내렸다고 하대요. 주인은 야반도주하고 빚쟁이들이 친척들을 찾아다니며 손해금하며 받아내려고 난리래요.

     

    #헌데 오늘, 주인 양반께 급서가 날아왔어요. 시골에 계시는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인 양반께서 그 전보를 받아 들었을 때, 슬퍼하거나 허탈해하기 보단 오히려 안색이 새파래져서 뭔가 겁을 먹은 사람 같았어요. 주인 양반께서 마님과 자식 내외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갈 차비를 한 건 그 날 밤이었지요. 주인 양반께선 뭔가를 몹시 두려워하며, 노로이를 데려다 가게 평상 위에 있는 뒤주에 노로이를 넣었어요. 며칠 먹을 밥과 물도 함께요. 그러고는 내게 하는 말씀이.

    알겠니. 노로이를 뒤주에 넣어두고 절대 꺼내줘서는 안 돼. 누군가 찾아와 노로이를 찾아도 모른다고만 해라. 만약 내가 돌아와서 노로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간 조상님께 맹세코 네 녀석을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

    , 양반도 참 걱정은. 걱정 마시라며 보내 드렸지요. 고양이가 갈 데가 있으면 어딜 가겠어요? 거기다 뒤주에 가둬뒀는데. 그 날 밤은 단단히 문단속을 하고 잠에 들었답니다. 그 다음 날 가게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뒤주에 갇힌 노로이가 걱정되어 뒤주를 슬쩍 툭툭 건드렸지요. 안에서 야옹야옹 하며 노로이가 울대요. 너도 참 고생이다, 주인 양반 걱정이 저리 크셔서야. 이렇게 알아듣지도 못할 짐승에게 농을 건네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손님들이 오면 미리 만들어 놓은 것만 팔고 주문은 다음에 주십사, 하다 보니 어느 새 저녁때가 되었나 봐요. 가게 문을 닫고 앞을 비로 쓸어내는데 어떤 그림자가 내 앞을 가렸어요. 그 그림자가 노을 탓에 무척 길고 컸어요. 자연스레 고개가 그리로 향했지요.

     

    #제국 본토에서나 입는 게 어울릴 법한, 그 정도로 화려한 기모노는 생전 처음 보았어요. 머리채도 화려하게 올리고 팔소매가 짧은 것이, 분명 어디의 안주인되시겠구나 했었지요. 혹여 내가 모르는, 총독부의 높으신 어른 행차가 있는가 해서 나는 주변을 재빨리 둘러보았어요. 그러다 다시 그 부인을 보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내 쪽으로 걸어오지 뭐에요. 마치 땅을 밟지 않고 미끄러지듯 걸어오는데, 그런 걸음걸이는 또 생전 처음 보았어요. 기모노 밑자락으로 발이 보이지 않는 거 있었죠. 오라, 저게 바로 본토식 예법이란 거구나 하고 넘어가려는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부인과 나 사이는 적어도 100()이 넘었는데 내가 부인의 걸음걸이를 보는 잠깐 사이 어느 새 지척까지 오지 뭡니까. 바로 앞까지 그 부인이 왔는데,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는 게 그런 느낌이란 걸 처음 알았지요. 뭣보다도, 부인은 키가 아주 컸어요. 나도 영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부인은 못해도 7척은 되어보이지 뭡니까. 본토 사람은 먹기도 잘 먹어서 키도 크구나, 라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어요. 그 다음은 얼굴인데, 얼굴이 아주 새하얀 것이, 마치 가부키 배우 같았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이, 사람이라면 얼굴에 있어야 할 눈과 코가 그 자리에 없었지 뭐에요. 마치 달걀귀신을 보는 것 같지 뭡니까. 그래도 입가에는, 가느다란 실선이 양 귓볼까지 서로 이어져 있어서 저게 입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답니다.

    네코짱?”

    부인의 목소리는 너무나 요염해서 죽어가는 노인도 정욕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지요. 이 세상의 목소리가 아닌 거 같았어요.

    네코짱?”

    왜냐면, 부인의 이빨이 온통 옻칠을 한 듯 새까맸답니다.

    네코짱? 거기 있니?”

    부인이 재차 그렇게 내 쪽을 보며 물었죠. 그런데 눈이 없으니 나를 보는 건지 어디를 응시하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런데 확실히 내 쪽을 봤다고 할 수 있었던 게, 부인이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오금이 저리는 거 있죠!

    아아, 거기요 점원 양반. 우리 네코짱을 보지 못했나요?”

    네코짱이 뭔지 모르겠는뎁쇼.”

    네코짱은 마네키네코에요. 네코짱이 손짓을 하면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들지요. 아아, 그런데 어디 있담.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점원 양반. 우리 주인님 돌아가신 게 벌써 50년이에요. 그런데 주인님 생전 소원이 죽을 때 아끼던 네코짱과 함께 관에 넣어달란 거였어요. 저희는 주인님 말씀대로 하려했는데, 주인님이 돌아가신 바로 그 날 네코짱을 도둑맞았답니다. 간신히 찾았다 싶었는데 어떤 기모노 만드는 영감네 집에 있지 뭐에요. 20년 만에 찾았어요. 괘씸한 생각에 그 집에다 불을 질렀는데 네코짱은 그 전에 또 누군가 훔쳐가 버렸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50년 동안 주인님 장례도 못 치르고 모든 식솔들이 네코짱을 찾으러 본토에서부터 저 멀리 불란서까지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있어요. 아아, 불쌍한 우리 주인님. 얼마 전 본가에서 온 서신을 받았어요. 네코짱과 함께 묻히지 못한 주인님 시신은 아직도 썩지 않고 생전 모습 그대로 두 눈을 부릅뜨고 계시대요. 가엾기도 하셔라. 아아, 그나저나 정말 어디 있는 거야 네코짱은!”

    부인은 그대로 돌아섰지요. 나는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어요. 등 뒤로 작지만 칼날 같이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니겠어요?

    그건 노로이의 울음소리였어요.

    네코짱?”

    돌아서려던 부인이 몸을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보았죠. 그러면서 씨익 웃는데 원 세상에나, 검은 이빨이 그렇게나 끔찍할 수 없었어요. 부인이 내 쪽으로 다시 다가오려는데 대체 언제 지나친 건지, 정신을 차려보니 제멋대로 평상 위로 올라가 뒤주의 문을 걷어 내리고 있지 뭐에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여기 있었구나, 이 귀염둥이!”

    뒤주에 올려둔 문이 열리자마자 노로이가 튀어나오며 부인 품에 안겼어요. 그러면서 갸르릉 갸르릉 거리는데 마치 제 주인을 찾은 것처럼 기뻐했지요. 부인이 다시 나를 쳐다봤어요. 피가 얼어붙는 줄 알았어요. 뭐라 할 사이도 없이 부인이 가게를 나가 저작거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말려야 한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어찌나 그 걸음이 빠르던지. 뛰는 나보다 더 빠르던 걸요! 간신히 닿으려는 찰나, 손을 뻗어 부인의 어깨에 닿았지요. 그런데 그 순간 돌풍이 불더니 눈을 가리더라고요. 간신히 눈을 떴는데, 분명 일자 직선 도로를 가던 부인이고 노로이고 자시고 보이지 않더군요.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요.

     

    #주인 양반께서 지키라 한 노로이를 이상한 부인에게 빼앗겼으니, 정말 죽을 짓을 지었지요. 그래도 사실대로 고했죠. 그런데 주인 양반은 기모노에 검은 이빨 부인 얘기를 듣자마자 뒤로 쓰러지며 졸도하셨어요! 방으로 모시고 의원을 모신 후에야 정신을 차렸는데 그 잠깐 졸도한 사이 볼이 쏙 들어갔던 거 있죠. 주인 양반은 다 방밖으로 나가게 하고, 나 혼자 남게 하였어요. 나는 노로이를 잃어버린 꾸지람을 듣겠구나 했는데, 의외로 주인 양반께선 침착하게 입을 여셨어요.

    어쩔 수 없군.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한숨을 내뱉는데, 주인 양반께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생기가 없었어요.

    들어주겠나? 노로이, 아니 그 고양이에 대한 얘기네. 이걸 누구한테 한 적이 없는데, 마지막으로 꼭 누군가 들어주었으면 좋겠군.”

    주인 양반은 그렇게 가슴에 꾹 담아둔 얘기를 풀어놓으셨죠.

    “30년 전, 동경에 있는 기모노 장인 밑에서 일했던 적이 잠깐 있다. 그 장인의 기모노는 황실에서도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유명했지. 유명 장인 문하에서 일한다는 건 새벽 4시에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넓은 공방을 청소하는 것부터 하루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새벽 6시에는 장인이 드실 차를 우리는데, 이건 문하로 들어가 1년 넘은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일이지. 조금이라도 장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 차를 우릴 경우에는 호된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어. 하지만 장인의 마음에 드는 차를 올린다면 장인의 기술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배울 수 있었다. 장인은 공방에서 늘 차와 함께 혼자 기모노를 만들었지. 나는 아직 1년이 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차 시동이 아파서 고향에 내려가는 일이 생겨 내게 장인의 차를 올릴 기회가 왔다. 나름 정성껏 차를 우리고 물을 끓여 장인의 공방에 들어갔는데, 그게 아마 장인 문하로 들어가 처음으로 들어가 본 것이었다. 장인은 간밤 잠을 설쳤는지 다다미 위에서 부처상마냥 옆으로 엎드려 자고 있었지. 장인을 깨웠다간 불호령이 떨어질 거 같아 옆에서 무릎 꿇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어. 얼마나 지났을까, 차가 식으면 어쩌나 했는데도 장인은 일어나지 않는 거야.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려오더군. 아기 울음소리인 줄 알았지, 처음에는. 그런데 계속 듣다보니 그보다 더 작고 좀 더 날카로운 소리였어. 찻잔을 내려놓고 소리가 나는 곳을 뒤져보니 공방 한구석에 있는 뒤주에서 나는 거더군. 호기심에 살짝 열어보니, 거기에 그 고양이, 노로이가 있었던 거야. 믿어지나? 고양이 수명은 길어야 10년이지. 그런데 30년도 전에 그 고양이는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 그대로였던 거야. 당시만 해도 그런 사실은 알지 못했지. 그저 장인께서 왜 이런 고양이를 뒤주에 가둬두고 있는 걸까 궁금할 따름이었어. 그런데 그 고양이, 노로이는 내가 뒤주를 열자마자 뛰쳐나와 공방을 누비더군. 잠들어 있던 장인이 깨어났는데 어찌 그리 경기를 일으키던지, 나는 함부로 장인의 물건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그 날 바로 쫓겨났다. 그게 무슨 그리 큰일이라고, 앙갚음이라도 해야겠단 생각에 나는 그 날 저녁 공방에 몰래 들어가 뒤주에 있던 고양이를 찾았다. 녀석도 내가 저를 데려갈 거라 생각했었을까? 우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어둠 속에서 보석 같이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는데, 내 품에 안고자 마치 옷가지처럼 착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지 뭐냐. 그리고 조용히 그 길로 공방을 나가는데, 난데없이 내 앞쪽으로 돌풍이 몰아치는 게 아니더냐. 무서워지기도 전에 뒤에서 불이야!’소리가 들렸다. 불은 상당히 떨어진 한적한 공터 쪽에서 났는데, 방금 불었던 바람에 불씨가 날려 맹렬한 속도로 번지는 거였어. 그런데 참으로 괴기스러웠던 게, 그 불길이 주변 건물은 그냥 놔두고 장인의 가게, 그것도 공방이 있던 바로 거기만 노리는 것처럼 다가오는 거야. 겁이 났지만 그래도 가게 쪽으로다가 크게 불이야, 소릴 질렀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는 거야. 골목 사람들이 저마다 뛰어나와 불이야, 하면서 소방수를 찾고 물을 떠다 나르는 와중에도 어느 누구 하나 가게에서 나오지 않았어. 바람 소리 탓이었을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30명이 넘는 식솔 중 한 사람도 잠귀 밝은 사람이 없었단 말이야? 결국, 장인의 가게하며 공방은 물론이고 황실에 헌납하려 금고에 넣어둔 후리소데도, 제작실에 걸어두었던 고급 옷감하며 모든 것들이 불에 타 재가 되었지. 특히 장인은 그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어.

    졸지에 갈 곳이 없어진 나는어차피 갈 곳은 없었지만장인의 뒤주에서 훔쳐온 고양이를 품에 안고 여기저기를 전전했어. 얼마나 굶었던지 고양이를 잡아먹을까 생각도 들었다니까. 지금 생각해도 정말 이상했어. 나 하나 건사 못하는 주제에 고양이는 보물인 것처럼 꼭 안고 다녔다니. 그러다 어쩌다보니 제국대 후문에 있는 작은 공원에 다다랐어. 때가 때였던지라 공원은 벚꽃이 만발하게 피어서 마치 그 자체가 하나의 풍경화처럼 아름답더군. 난생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 보았어. 이제 굶어죽는 건가, 싶었지. 그런데 문득 벚꽃나무 가지 사이로 묘한 게 보이는 거야. 기모노였어. 누군가 바람에 잃어버린 건가 싶었지. 그때는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몰라.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그 나무를 타고 올라가 기모노를 내렸지. 문양하며 색감이 누가 보아도 꽤 값이 나갈 물건이었어. 공원 입구에다 주워온 나무를 엮어 좌판을 만들고 그 위에 기모노를 펼쳐놓았어. 그걸 팔아 요기라도 할 생각이었던 거지. 그런데 생각처럼 쉬울 리가 있나. 어중이떠중이가 달랑 기모노 하나 들고 미래의 관료들이나 드나드는 제국대 후문에서 장사를 하고 있으니. 역시 안 되나보다, 생각하는데 갑자기 노로이가 귀를 쫑긋 세우더니 좌판 앞으로 뛰쳐나갔어. 그러더니 공원을 지나는 몇몇 사람을 향해 마치 이리 오라는 듯 손짓을 하는 거 있지. 그러자 신기하게도, 근사하게 서양식 옷을 차려입은 신사가 다가와 파는 물건이냐며 묻는 거야. 뭔가에 홀렸던 건지, 신사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주고 기모노를 사가더군. 그렇게 해서 받은 돈으로 차츰 재산을 불려 조선 땅으로 넘어와, 이렇게 가게를 꾸려나가게 된 거지.”

    입술이 말랐는지 주인 양반은 잠깐 쉬었다, 다시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거기에 오래 전 죽은 장인이 나타났어. 장인은 한참이나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슬픈 얼굴로 이내 말씀을 하셨던 거야. ‘그 고양이를 가진 사람은 어마어마한 부()를 얻게 될 것이나, 고양이가 떠나는 순간 그에 달하는 화()도 당하게 될 것이다. 너에게도 오겠지. 언젠가 검은 이빨을 한 부인이 네게 와 고양이를 돌려 달라 할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순간,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장인이 앉아있던 자리에 한기가 서려있는 걸 보았다. 꿈이 꿈인 것만 같지 않았고, 정말로 조만간 그 검은 이빨의 부인이 내게로 와 그 고양이를 데려갈 것만 같았다. 장인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고양이가 나를 떠나는 순간 내게 화가 닥칠 거라고. 그렇다면 장인께서도? 장인께서도 화를 면하기 위해 고양이를 뒤주에 가둬 길렀던 거겠지. 하지만 난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겼었어. 왜냐면 여긴 조선 땅이니까. 저 까짓게 어떻게 고양이를 찾아 여기까지 오겠느냐 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거야.”

    말을 마치자마자 주인 양반이 기침을 하대요. 그런데 마른기침 속에서 핏덩이가 한웅큼 쏟아져 나왔어요.

    노로이()... 이름 한 번 잘 지었지.”

    좀 쉬지 그러시지요.”

    그래,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목이 마르구나. 가서 냉수 한 그릇 떠 오거라.”

    주인 양반께서 힘들게 웃으며 말씀하셨지요. 장독대에 받아둔 차가운 물을 백자 그릇에다 담아서 들어갔어요. 그런데 주인 양반께선 마치 절을 하듯 앞으로 고꾸라져서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입으로 토한 피가 바닥을 흘렀지요. 손에서 백자가 떨어져 깨어졌습니다. 담았던 물이 바닥을 적셨어요. 주인 양반 밑으로 흐르는 피가 물이랑 섞어서는, 어느 봄날의 벚꽃처럼 화사하게 만개하였답니다.

    수컷수컷의 꼬릿말입니다
    수컷인데 수컷 노릇을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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