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가져왔습니다.
글이 꽤 깁니다. 바쁘신 분들은 글 아래 요약만 읽으셔도 됩니다.
롯데 감독 이종운은 이동걸이 황재균에게 던진 빈볼이 벤치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빈볼 사건 중에서는 전례없이 강경한 어조로 한화 벤치를 비판했다.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롯데 감독은 자신의 인터뷰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노감독에 대한 결례이긴 하지만, 롯데 감독으로서는 롯데 선수단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며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음 한화와의 경기에서 보복구를 던지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이종운 감독의 입장은 십분 이해한다. 롯데의 내밀한 사정까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롯데는 힘든 겨울을 보냈다. 감독이 바뀌었고, 운영팀장, 단장, 사장이 바뀌었으며, FA로 세 명의 선수가 팀을 떠났고, 보상선수는 고작 한 명 밖에 받지 못했다. 비록 시즌 초반이라고는 하나, 지금까지의 활약상을 보건대 그 보상선수가 팀에 썩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지난 시즌 성적은 7위였기에 전력누수가 예상되었으며, 이종운 감독 본인도 현 프런트가 아닌 전임 사장에 의해 선임된 인물이라 입지가 탄탄하다고는 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팀을 안착시키고 있는 듯하다. 스프링 캠프를 다녀온 기자들은 대체로 롯데의 캠프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고, 기본적으로 미지수일 수밖에 없는 외국인 선수들은 하나같이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사실 객관적인 전력이라는 측면에서 옥스프링과 유먼을 린드블럼과 레일리로 바꾼 것이 시즌 전체로 볼 때 어떤 효과를 낼 지는 그나마 미지수라고 할 수 있겠으나, 시즌 초반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히메네스를 아두치로 바꾼 것은 여간해선 전력상승 요인이 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전준우의 공백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돌아가며 서는 좌익수 자리는 조금씩 불안한 감도 있고 장단점이 엇갈리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한 명 몫도 제대로 못하는 수준은 아니다. 황재균의 기량은 도리어 상승한 느낌을 주며, 작년에 비하자면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것 같은 강민호는 장성우와의 적절한 교대로 작년보다는 훨씬 기분좋게 시즌을 시작했다. 현재로서 유일한 맹점이라면 손아섭 정도일 테지만 아직까지는 다른 선수들의 활약으로 그의 부진이 상쇄되고 있는 데다가 워낙 출중한 모습을 꾸준히 보여줬기 때문에 이 부진이 장기화할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롯데 팬들이라면 도리어 손아섭마저 최정상의 기량을 발휘한다면 얼마나 전력이 올라갈까 하는 기분좋은 상상도 할 법 하다.
롯데의 약점으로 꼽히는 불펜은 김사율과 정재훈이 바뀐 정도인데, 작년에 비해 누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재훈의 활약은 롯데 팬들의 한숨을 자아내게 하겠지만, 마찬가지로 김사율의 활약 또한 kt 팬들의 한숨을 자아내고 있으니 한숨을 한숨으로 대체한 수준이다. 도리어 심규범의 가세는 상승 요인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고 리그 최상급 불펜으로 거듭난 수준이라고는 예의상이라도 말하기 어려우니 그저 작년에 이은 여전한 약점 정도로 봐도 무방하다. 물론 롯데는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소한 작년보다 더 나빠진 것은 아니다. 물론 장원준이 빠진 자리를 시즌 전체로 넓게 보았을 때 채울 수 있느냐는 여전한 의문으로 남겠지만, 적어도 시즌 초반에는 큰 문제로 대두되진 않았다. 한화를 만나기 전 주중 3연전에서 삼성에게 스윕당한 것은 분명 불쾌한 기억이겠으나,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힘없이 밀린 것은 아니었다. 세 경기 모두 2점차 이내의 패배를 당했는데, 적어도 최강 선발진으로 꼽히는 삼성과 대등한 선발 맞대결을 펼치는 데에는 성공했다. 전체 경기를 보지는 못했으나, 롯데 불펜은 삼성 불펜에 비해 한 점 가량 더 내줬고, 결국 이 차이가 승부를 가져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최소한 자신들의 장점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무력하게 물러선 것은 아니어서 시즌 초반의 기세가 단지 우연의 산물은 아니었음을 효과적으로 입증했다.
한화를 만났을 때 롯데의 상태는 대략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았다. 비록 팀 내에 몇 가지 불안요소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강점이 완전히 사그러든 상태도 아닌 터라 롯데는 내심 삼성 전에 아두치만 있었더라도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계산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1차전에서 역대급 경기가 나왔다. 한화 팬으로서 이 경기의 자세한 진행상황을 다루고 싶지는 않고, 어쩌면 롯데 팬이라 할지라도 결과만 기억하고 싶은 경기일지 모르겠다. 사실 경기가 선사한 짜릿함에 비하자면 수준높은 경기였다고는 할 수 없었다. 또한 롯데 입장에서는 다소 불길했던 조짐도 있었다. 삼성과의 3연전 내내 단 한 개의 실책도 저지르지 않았던 롯데의 수비가 3개의 실책을 저지르며 초반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는 구멍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롯데가 비록 리그 최강의 수비진을 보유한 팀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최근 롯데의 상승세에는 의외로 안정된 수비가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롯데는 설사 이 경기를 9회초에 끝냈다 하더라도 씁쓸한 뒷맛이 남았을 수 있다. 아무런 근거 없이 하는 추론이지만, 6회의 번트 작전은 그런 불안감이 반영된 작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황재균의 도루는 자신에게 부여받은 그린라이트로 성사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한 번 실패하여 1S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번트를 재시도했던 것은 명백히 벤치의 지시였을 것이다. 전력하락효과를 낸 수비불안이라는 변수와 불펜불안이라는 내재된 상수가 겹치면서 롯데는 8-2로 앞서고 있다가 9회초에 동점을 허용했다. 부상으로 시급히 투수를 교체해야 했던 것은 이 과정에서 롯데의 운을 완전히 앗아가버린 사건이었다.
9-8로 역전당하고도 결국 10-9로 경기를 승리한 롯데의 분위기가 꼭 좋을 수만은 없었던 이유도 얼마간은 설명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토요일 경기에서는 정말로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패했다. 상대로부터 빼앗은 유일한 점수는 상대 실책이 아니었다면 날 수 없었던 반면, 롯데는 두 방의 홈런을 내주고 두 차례의 적시타를 내주며 깨끗하게 4-1로 패했다. 비록 무능한 한화 타선의 덕을 보면서 실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4차례의 실책은 전날의 불안요소를 점차 상수로 만들지도 모르는 불길한 신호였고 특히 손아섭의 두 차례 포구 실수는 계산이 서던 선수가 흔들렸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일 수 있었다. 1승 1패로 맞이하는 3차전은 기본적으로 위닝 시리즈가 걸려있기 때문에라도 치열할 수밖에 없는 데다가, 만일 일요일 경기를 내준다면 롯데는 1승 2패를 하고도 3패를 당한 것과 같은 분위기로 휴식일을 넘길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요일에 롯데의 '악착같은' 플레이는 그런 면에서 대체로 이해가 된다. 롯데의 불방망이는 한화의 외국인 투수 탈보트를 강판시키는 데에 1이닝을 온전히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1회에만 7점을 뽑아서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다. 물론 롯데는 8-2도 지키지 못했던 이틀 전을 생각하고 더욱 악착같이 점수를 뽑으려 했던 것 같다. 내가 비록 한화 팬이지만, 악착같이 승리를 위해 싸우는 롯데 선수단에 대한 악감정은 굳이 가지지 않으려 한다. 물론 나 역시 1회 타자일순한 상황에서 황재균의 도루를 보며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기분이 언짢았던 이유는 도루저지에 실패한 정범모의 수비였지, 도루에 성공한 황재균은 아니었다.
내 생각에 김성근 감독은 분명 이 도루가 언짢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유는 롯데가 소위 불문율을 어겼기 때문은 아니다. 정범모는 탈보트에게 별다른 안정감을 심어주지 못했고, 그렇다고 투구 이후의 수비가 두드러지게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만루홈런을 맞으면서 점수차는 이미 벌어졌고, 그 이후에도 후속타로 실점을 이어갔으니 1이닝 자체에 대한 강한 불만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도루저지에도 실패하자 감독은 정범모에 대한 인내심을 거두어들였다. 1이닝이 끝나고 단행된 포수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4년 6월에 김성근은 아들 김정준과 함께 기아vsLG의 경기를 해설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회초에 기아가 6점을 내고 앞서나가고 2회말이 되었을 때 김성근은 '나라면 최경철을 바꿨을 것'이라고 말한다. LG 상황에서 수비형 포수를 둘 이유가 없고, 최경철이 그렇다고 수비를 잘했던 것도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의 판단에 동의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김성근은 포수 교체를 꽤 적극적으로 시도하며, 대체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카드로 활용한다. 조인성이 있었다면 모르겠거니와 바꿀 수 있는 선수가 허도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김성근 감독은 적어도 1회는 넘기기로 결정한 듯하다. 4번타자부터 시작하는 2회초 공격에서 7번타자인 정범모의 타선이 돌아온다면 대타를 내서 바꾸고, 허도환을 2회말부터 투입하려는 것이 기본적인 계획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2회초에 김태균이 솔로 홈런을 날렸다. 7-1이 된 것이다. 비록 선발이 2/3이닝만에 내려갔고 신인이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지만, 엊그제만 해도 패전조로서 처지가 다를 바 없던 송창식이 6점차로 벌어진 경기에서 6연속 탈삼진이라는 눈부신 호투로 추가실점을 막아내면서 경기를 동점까지 만들었다. 그러므로 8이닝이 남은 상황에서 6점차 리드로 승부가 결정되어 있다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침 윤규진과 모건의 이탈로 2군에서 수혈한 두 명의 투수는 모두 패전조 급이었다. 이들이 점수를 안 내주면서 버티면 그 자체로 좋은 것이고, 어쩌면 한 번 기회를 엿볼 만 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김성근은 정범모의 타석에서 대타 카드를 아끼고 곧장 허도환으로 바꾼다. 이 교체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김성근은 정범모에게 한 타석 들어서게 하고 다음 이닝 수비에서 허도환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게 더 현명한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허도환의 방망이는 절망스러운 정범모의 방망이조차 불방망이로 보이게 할 정도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4월 12일 전까지 그는 공을 때려서 아웃당한 적도 없었다. 3타석 3타수 무안타 3삼진이 타격 기록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대타로 허도환을 냈다. 1회말 수비를 마무리했던 것으로 보아 정범모를 시급히 교체해야 할 피지컬 이슈는 없었을 것이다. 이 교체는 대타 카드를 경기 초반에 낭비하지 않겠다는 결정이면서 동시에 정범모에게 그 따위로 할 거면 때려치우라는 압박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러 모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교체였다.
한화의 추가점은 나지 않은 상태에서 4번타자 최준석부터 2회말 롯데 공격이 시작되었다. 최준석은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김민우는 강민호와 제대로 된 카운트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도망다니다가 4구로 출루시켰다. 그리고 정훈에게 홈런을 맞았다. 9-1. 그리고 김민하와 오승택이 연속안타를 때리며 기어코 1번타자인 황재균에게까지 이 이닝이 연결되었다. 여기부터 의문이 생긴다.
a) 1회말 도루 상황이 정말로 '불문율을 어긴 것'이라고 여겨 빈볼을 던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2회말 황재균의 타석에서 김민우가 7구까지 정상적으로 승부한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2회말에는 왜 황재균과 승부한 것일까?
이 승부에서 김민우가 마음먹고 던진 7구째 슬라이더는 코스가 썩 좋지 못했다. 황재균은 이를 놓치지 않고 2루타를 날려버리며 루상에 있던 주자 둘을 홈으로 불렀다. 이 때 11-1이 되었다. 혹 의문 a)에 대해서는, 9-1일 때까지는 포기하지 않았다가 11-1이 되니 포기했다는 설명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9-1과 11-1이 왜 다른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7-1은 따라잡아본 적이 있는 점수차인데, 9-1은 그랬던 적이 없다. 오히려 이 차이가 더 큰 것이지 않나? 굳이 11-1의 의미를 따져보자면, 11-1이 된 순간 한화가 10점을 낼 리도, 낸 적도 없다는 (내가 보기엔 일리 있는) 판단으로 인해 이 시점에서 승부를 포기한 것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7-1까지도 포기하지 않은 승부였다면, 9-1이 되었을 때 김성근 감독의 평소 성향을 생각하면 흐름을 끊거나 아예 투수를 바꿨을 수도 있는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나는 김성근이 아니므로 잘 모르겠지만, 9-1이 되었을 때 김성근의 머리 속에는 이 경기에서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산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황재균의 타석에서는, 만일 1회의 상황에 벤치가 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가정하면 충분히 사구가 나왔을 수도 있는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김민우는 그와 승부를 해서 11-1로 점수차를 더 벌려놨다. 이 경기 직후의 인터뷰에서 김성근은 "벤치로서는 쉬어가는 경기였다"고 평했다. 쉬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였을까? 2회초에 1, 2루 기회에서 추가득점에 실패하고 2회말에 곧장 추가점을 내주는 시점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므로 황재균과의 승부도 볼배합 정도의 개입은 있었겠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작전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김민우와 황재균이 맞대결했고 황재균이 이겼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즉 한화 벤치는 최소한 이 시점에서 황재균을 향해 사구를 지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b) 4회말 황재균의 사구는 빈볼이었나?
황재균은 4회말에 다시금 사구를 맞는다. 특기할 만한 점은 김성근이 4회초에 최진행을 빼고 송광민을 넣은 것이다. 최진행을 뺀 이유가 무엇인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전날 홈런도 친 타자인데, 이전 타석에서 삼진 한 번 당했다고 문책성 교체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최진행은 수비로 책잡힐 것도 없는 지명타자다. 게다가 최진행을 대신해서 나온 송광민은 이 타석에 들어서기 전까지 2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타격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짐작컨대 주자 없는 상황에서 송광민에게 마음껏 휘둘러보고 타격감이나 되찾아 보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즉 이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기 위한 대타작전이라기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주중 경기에 활용할 선수들을 염두에 둔 교체였다. 송광민이 주현상의 대타로 들어간 것도 아닌 까닭에 그는 경기 끝까지 지명타자였다. 그리고 송광민은 이 날도 안타를 치지 못했다. 4회초 지명타자로 들어간 그는 초구를 시원하게 휘둘러서 유격수 플라이로 아웃되었다. 특기할 만한 점은 4회부터 이미 주전급 선수들을 계속해서 빼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김민우는 4회말까지 막기로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김민우가 3회까지 이미 52개의 공을 던졌음에도 이 신인 선수는 4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라왔다. 오승택의 병살타 이후 황재균의 타석이 다시 돌아왔다. 빈볼이 올바른 행위라는 건 아니지만, 2사 1루라면 마침 베이스 상황도 빈볼을 던지기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1구만에 황재균이 공에 맞았다.
다만 이것이 빈볼이었는지에 대해서 난 확신하진 못하겠다. 김민우의 등판 경기를 지켜보며 거듭 느낀 것이지만, 평소에 비해서 제구가 경기 중에 꽤 흔들렸기 때문이다. 이 경기에서 롯데 타자들의 컨디션이 워낙 좋았던 탓이기도 하겠지만, 김민우를 꾸준히 지켜본 입장에서 그래도 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신인 치고 꽤 공격적으로 던진다는 점이다. 패전조는 대체로 물오른 상대 타선과 상대하기 마련일 텐데, 4월 1일 첫 등판 첫 상대인 김재환에게 비록 4구를 내주긴 했지만 몸쪽 직구를 적극적으로 던지며 승부하며 같은 날 15구 연속 볼이라는 멘탈붕괴를 일으킨 유창식을 졸지에 신인만도 못한 놈으로 만들기도 했다. 1경기 때에도 등판하여 롯데의 8회말 공격을 적극적으로 무력화시켰다. 삼진 두 개를 잡는동안 4사구를 네 개나 내줬는데, 김민우는 그 날 경기 기록을 합산하더라도 10:7로 볼넷보다 삼진이 많은 투수다. 그렇게 보자면 실제로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마침 컨디션이 좋은 롯데 타선을 맞이해서 1홈런 포함, 5개의 안타로 4자책점을 추가했다. 그래서 나는 이 공이 빈볼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황재균 입장에서 빈볼이라고 충분히 의심할 만 했다. 1루에 있던 김태균은 황재균더러 "쟤 어려서 아무 것도 몰라"라고 다독였다고 하는데, 김민우는 황재균이 인상을 쓰고 난 뒤에 모자를 살짝 들어 사과의 제스처를 표하기는 했다.
여기에 대해서 빈볼이라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원인을 찾다보면 한화라는 구단이 도무지 대책이 안 선다. 하지만 빈볼이 아니라면 오히려 깔끔하지 않은가? 빈볼이었다면 김태균은 왜 '사과하지 않은 팀동료'를 탓하며 황재균을 다독였을까? 벤치의 지시에 의한 고의적인 두 차례의 빈볼이라는 판단은 점점 무리한 결론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화는 구시대의 불문율을 강제하는 구단이고, 한화 벤치는 벤치 클리어링 한 번 일으키고 싶어 안달난 무리들이며, 김태균은 겉과 속이 달라서 황재균을 철저히 기만한 위선자가 된다. 물론 한화라는 구단이 뼛속까지 싫었던, 혹은 이 경기 이후로 싫어졌던 사람들에게는 한화 이글스를 대책이 안 서는 구단으로 보아도 모순될 것은 없다. 어느 판단을 지지할 것인가를 떠나, 어느 판단이 보다 합리적이냐를 따져보는 것이다. 오히려 4회말의 사구는 정말로 빈볼이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물론 그 자리에서 공을 맞은 황재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는 말할 생각이 없다. 의도가 무엇이든 실제로 위험한 사구였고, 황재균으로서는 충분히 자신에게 보복구가 올 수도 있겠다고 판단할 여지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단 위험한 공을 맞은 것에 대한 분노도 일단 적지 않았을 것이며, 설사 맞는 건 맞는 거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벤치 대 벤치의 기싸움인지 확인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1루수였던 김태균이 다독이며 사안을 수습했다. 위험하게 날아온 공에 맞아서 불쾌했겠지만, 어쨌거나 투수인 김민우는 미온적으로나마 사과의 제스처도 보였다. 왜 미온적이었는지 굳이 추론하자면 신인 입장에서 아마 조금 긴장해서 그랬을 수는 있겠다는 정도로만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아무렴 김민우가 워낙 싸가지 없는 놈이어서 그렇다는 것보다는 이렇게 보는 편이 '합리적'이니까. 앞에서 밝힌 이유로 나는 4회말 상황은 몸쪽 승부하려다가 공이 빠진 케이스에 더 가깝다고 본다. 어찌 되었든 엉덩이를 맞춘 이동걸의 사구와 비교하자면 훨씬 위험한 공이었기 때문에 공에 맞은 황재균이 부상당하지 않은 것은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5회초 공격에서 이용규에게 마지막으로 안타를 칠 기회를 주려고 했던 것 같지만 좌익수 플라이로 아웃되며 5회초 공격은 삼자범퇴로 끝났다. 그리고 5회말 수비 상황에서 이용규는 송주호로 바뀌었다. 타순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교체를 해나갔다고 보면 여기까지도 의아하게 여길 여지는 없다. 조금만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한다면 5회말에 무조건 벤치 클리어링을 벌이겠다는 의지로 미리 이용규를 빼서 준비할 리는 없지 않은가?
c) 이동걸은 빈볼을 던지기 위한 희생양이었나?
평상시에 이동걸을 한화팬들만큼 정말로 걱정해본 적도 없는 감성팔이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는데, 불행히도 팬덤을 넘어서 언론 일부에서조차 김성근이 전력의 비중이 적은 이동걸을 희생양으로 삼아 빈볼을 던지게 했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사실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이건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불쾌한 서사(narrative)이다. 한화 이글스가 오랫동안 투수진에 문제를 겪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즉, 이동걸이 조금만 더 나은 기량을 보여주며 믿음을 심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을 가장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온 사람들이 바로 한화 이글스 팬들이다. 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한화는 이동걸을 버릴 이유도, 여유도 없다. 감독이 선수를 희생시켜서 목적을 달성했다고 주장한다면, 이런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김성근은 시원하게 까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를 오랫동안 응원해온 입장에서, 현재로서는 김성근도 이동걸도 버릴 수 없고, 실제로 둘 중 하나를 택해서 취하고 버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물론 실제로는 결과적으로는 이동걸이 퇴장당하고 출전정지를 받으면서 희생양이 되었었다. 하지만 이것이 벤치에서 치밀하게 의도된 결과물이라고 보기에는 말끔하게 설명되지 않는 정황도 존재한다. 가장 중요하게 짚어야 할 것이기도 한데, 5회말은 3번타자인 손아섭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황재균에게 빈볼을 던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벤치 클리어링 유발 사유라고 가정했을 때, 7타자를 상대해야만 만날 수 있는 타자가 황재균이다. 과연 그런 시점에서 '버리는 카드'로 쓸 선수를 올리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판단일까? 실제로 1루수 김태균이 삽질하지만 않았더라도 5회말 공격은 김대우에서 끝났어야 했다. 이동걸이 기록한 4실점은 비자책으로 처리된 것만 보더라도 김태균 실책의 나비효과가 얼마나 컸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산술적으로 따져보더라도 5회 수비 이전까지 한화가 치렀던 총 107개의 수비 이닝 중 8번째 타자까지 공격기회가 주어졌던 적은 8번에 불과하다. 귀납적인 확률이긴 하지만 이동걸이 황재균을 만날 확률은 8%가 채 되지 않았다. 즉 황재균까지 올 것을 염두에 두고 '빈볼로 징계를 받더라도 전력에 별다른 보탬이 되지 않는' 이동걸을 올려서 출혈을 최소화하려는 술책으로 보기에는 안 맞는 정황이다. 어폐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이동걸을 희생양으로 만든 간접적인 당사자는 바로 롯데 타선이다. 롯데 타자들이 워낙 잘 때렸던 데다가, 어차피 패전조를 돌아가며 실험하려던 한화 벤치에서는 여간해서 한 이닝을 모두 맡길 작정이었으므로 황재균까지 한 이닝에 당도하게 된 롯데 타선이 활약이 역설적으로 이동걸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d) 김성근이 아니라면 빈볼은 누가 지시한 것인가?
아래의 내용은 순전히 추론이다. 누구도 이에 대해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황재균이 빈볼을 맞았다고 유감스럽게도 거의 확신한다. 그리고 이 빈볼은 투수조 고참이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짐작가는 인터뷰가 하나 있다. 지금 링크를 찾을 수는 없는데, 김성근이 사직 원정 이후 박정진의 정신자세를 질타했다는 내용이다. 나는 이 내용을 베이스볼긱이라는 어플을 통해 처음 읽었고, 일간스포츠 이형석 기자가 쓴 기사에서 접했다. 그런데 지금은 관련 내용이 삭제되어 있다. 물론 직접적으로 박정진이 빈볼을 지시해서 혼냈다는 내용은 아니고 단지 정신자세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 안에는 그렇게 할 거면 여기서 그만두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 기억으로 그 기사는 이형석 기자가 아니라 서지영 기자가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마 현장에 있던 서지영 기자가 쿼테이션을 따고, 보다 직급이 높은 이형석 기자가 편집해서 최종본을 올린 것 같다.) 이것만 봐서는 박정진의 어떤 정신자세를 지적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빈볼이 아닌 몸상태와 관련된 말일 가능성도 있다. 다만 과연 그렇다면 이 내용을 나중에 삭제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실제로 롯데 전에서 박정진은 단 한 경기도 등판하지 않았다. 승리조가 가동되었던 2경기 상황을 되짚어 보면 등판할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유창식과 송은범은 몸을 풀었지만 박정진은 불펜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이미 1경기에서 6회 번트-도루 상황에 대해 뭔가 선수들 사이의 대화가 있었을 것이다. 이 분위기를 감지하거나 그 대화에 끼어 있던 김태균은 이런 한화 선수단의 분위기를 최준석에게 전하며 어필했으나, 마침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대첩 경기의 끝내기 상황에서는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3차전 1회말 공격을 보며 특히 가뜩이나 1경기 6회말 3루도루로 '미운 털'이 박힌 황재균으로 분노의 표적이 모아졌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쟤 또 저러네 수준의 짜증이었을 테지만, 이 때까지 빈볼을 던져서 벤치 클리어링하겠다는 명확한 판단이 내려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슬슬 주전급 선수들이 교체되어 벤치로 들어온다. 황재균이 김민우에게 사구를 맞자 빈볼도 아닌데 그냥 곱게 나갈 것이지 저건 뭘 잘했다고 저러나 하는 정서가 벤치에서 공유되었다. 나는 한화 선수들이 이런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뒤집을 생각을 하거나 연구하는 자세로 플레이 장면들을 분석하길 바라지만, 선수들 사이에서 이런 생각들이 자라나는 걸 백안시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프로야구는 성인군자 면허증을 따고서 방망이를 들고 글러브를 끼우는 종목이 아니라 야구를 잘 하면 뛰는 것이다. 롯데 벤치에서는 롯데 벤치대로 1차전에도 끝내기 타이밍에 시비걸더니 4회에 황재균 몸쪽에 던져서 맞추고 5회에도 빈볼을 던지냐는 불만과 분노가 싹텄다. 실제로 5회에 황재균에게 몸쪽 공이 오자 롯데 벤치에 있던 선수들은 언제든 뛰쳐나갈 기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이종운 감독의 말처럼, 롯데 선수들의 관점에서 황재균은 야구를 열심히 한 선수일 뿐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적어도 지금은 롯데 측에서 한화를 도발하려는 의도로 번트를 대고 도루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롯데는 롯데 나름의 사정이 있었고, 극복해야 할 불리한 요소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화의 고참 투수들을 중심으로 정범모의 교체, 경기가 사실상 기울어져 있다고 판단하는 벤치의 신호들을 보며 롯데에 쌓여있던 불만을 보복하려는 결심을 하고, 마운드에 누가 올라가더라도 황재균을 맞추기로 마음먹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투수로 누가 오를지는 모른다. 그렇다면, 이 시그널은 포수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허도환은 교체될 수 없으니까.
e) 김성근은 최소한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것 아닌가?
맞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만일 몸쪽 승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바깥쪽 사인을 낼 수도 있었다. 감독은 허도환이 평상시 몸쪽 사인을 자주 낸다고 인터뷰했다. 하지만 이는 의도적으로 사실을 무시하는 인터뷰일 공산이 크다. 엔하위키 허도환/비판 항목에서는 기계적인 허도환의 리드를 지적하고 박동원과 비교하면서 몸쪽 승부를 오히려 꺼린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은 유창식이 테임즈에게 두 번째 홈런을 맞을 당시 벤치의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어렵게 승부하라고 사인을 냈는데, 그럴 게 아니라 아예 승부하지 말라고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포수가 몸쪽을 계속 달라고 사인을 내는 상황에서 감독이 벤치 클리어링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악의적으로 내용 상 털리는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을 통해 선수단의 단합을 꾀하려 한 것일까? 일단 결과를 놓고 보면 의도한 효과는 거의 거두지 못했다. 선수단은 당황했고, 급기야 한화 구단은 선수단에 이 사건과 관련된 인터뷰를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사실상 금언령을 내린 것이다. 물론 세상사가 모두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도 얼마든지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이것이 감독의 의도에 따른 벤치 클리어링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이자면 김성근은 2군에서 갓 올라온 선수를 희생양 삼아서 선수들을 결집시키려고 한 감독이 된다. 가능성 차원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이 완전히 닫혀 있는 것도 아니다. 벤치 클리어링은 기본적으로 감독이 개입하지 않는다. 일단 벤치를 다 비우고 나오더라도 감독은 벤치를 지킨다. 당연히 이종운 감독도 마찬가지로 벤치에 있었다. 이것은 선수단 사이의 일이고, 감독 사이에 벌어지는 대결이 아니다. 야구판이든 어느 동네든 위계로 짜여있는 조직 안에서는 의외로 그룹 내의 일에 대한 자율과 재량을 인정한다. 마치 군대에서 병사들 사이의 제제들을 암묵적으로 간부들이 눈감아주거나, 부사관의 일을 장교가 개입하지 않거나 하는 것과 유사하게 말이다. 따지고보면 롯데 최하진 전 사장의 CCTV 사건도 결국 '현장'의 재량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지시를 받아서 일하라고 곤조를 부리면서 롯데 구단이라는 조직의 팀웍이 박살난 것이다. 김성근은 이것을 일반적인 빈볼 사건처럼 선수단 내의 일로 파악했을 수도 있다. 정리해보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김성근이 의도적으로 선수단의 단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빈볼시비를 벌여서 벤치 클리어링을 유도했을 가능성, 다른 하나는 이것을 감독이 아니라 선수단 내의 문제로 이해하고 알면서도 개입하지 않았을 가능성. 나는 후자에 무게를 싣고 싶다.
f) 그렇다면 김태균은 왜 뺐는가?
김성근은 김태균이 보복구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보복구를 맞지 않게 하려고 김태균을 뺐을까? 내가 보기에는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그냥 원래 빼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도 맞아주는 게, 적어도 피하지는 않는 게 강호의 도리가 아니겠나 생각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태평양 시절부터 어렴풋한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는 김성근 감독은 그런 거 신경 쓸 것 같지 않다. 관행이나 불문율 이런 것은 승리만큼 중요하지 않으며, 승리할 수 없는 전장에서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퇴각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김성근은 롯데가 번트를 대든 도루를 하든 그것에 화내거나 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오히려 그것을 막지 못한 자기 팀 선수들을 질책하고 이들이 다음 번에는 제대로 막아낼 수 있게 할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요컨대 롯데에 복수할 생각은 애초에 별로 없었을 테고, 선수들끼리 벤치 클리어링하는 건 그들의 문제다. 김성근 감독에게는 마치 밤에 술먹고 노는 것과 같은 문제인 것이다. 프로니까 내규 어기면 페널티고, 정해두지 않은 건 니들이 알아서 하되 책임도 니들이 지는 것. 내 역할은 어떻게든 니들 데리고 훈련시키고 연습시켜서 경기를 이기게 만드는 것 뿐이다. 이 빈볼 사건을 보다 부드럽게 처리하려 했다면 김태균이 타석에 들어서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자기 원래 계획대로 김태균을 뺐다. 안타도 하나 때렸으니 이용규처럼 타석을 굳이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김성근 감독의 관점에서는 김회성의 타격감을 끌어올리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이 판단이 옳다고 보든 그르다고 보든 각자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롯데 벤치를 염두에 둔 결정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g) 사건 이후 진정한 피해자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성근은 왜 피해자인양 구는가?
일단 공을 맞은 황재균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건 나도 아쉽다. 빈볼이 야구 안에서 나름의 기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부상의 위험이 있는 공이다. 김성근 감독이 부상의 위험이 거의 없는 엉덩이에 맞은 공이라서 걱정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공을 맞은 건 롯데 측이고, 공을 던진 건 한화 측이니만큼 사람들이 야구계의 어른에게 기대할 법한 행동이 딱히 과한 것도 아니다. 좀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가볍게, 황재균이 좋은 선수인데 여튼 안 다쳐서 다행이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뛰어서 FA 계약도 잘 맺길 바란다 이 정도로 덕담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김성근으로서는 해명해야 할 무언가도 있었다. 김성근의 관점에서 빈볼은 선수들 간의 문제이며, 야구판 돌고 돌다보면 던질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빈볼이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려면 이를테면 벤치 클리어링 상황에서 집단 난투극이 벌어져서 야구계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언론의 질타를 받거나 타석에 섰던 선수가 빈볼에 맞아 심각하게 부상을 입었거나 할 때 정도이다. 그렇게 보자면 이 빈볼 사건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평온한' 빈볼이었다. 그냥 선수 퇴장당하고 타자는 1루에 걸어나가고 기사 좀 뜨고 하고 말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세 가지 점에서 폭발량 이상의 폭발력을 가졌다.
첫째는 김성근 감독 자신의 몫이다. 김성근은 야구계 인사로서는 드물게 청와대 강연도 했던 사람이다. SK 우승 이후, 그리고 고양 원더스 생활을 겪으며 김성근은 야구계의 '처절하고 좀스러운 승부사'보다는 원로로서의 지위가 더욱 굳어졌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조범현부터 류중일까지 다른 감독 여러 명 중 1/10의 비중이 아니라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야구계 일반을 대표하는 지위도 일부 지워졌다. 그러다보니 그렇듯 존중받는 감독의 팀에서 이런 '구시대적인 행태'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 그의 생각이 어떤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정작 야구판에 돌아온 김성근은 원로로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승부사로서 돌아온 것이지만, 김성근 자신의 의도와 생각과 최근 4~5년 사이 만들어진 김성근의 이미지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었다. 둘째는 이종운 감독의 몫이다. 나는 이종운 감독이 김성근 감독을 공개적으로 면박주고 수모를 안겨주기 위해서 강경하게 발언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종운 감독은 롯데 감독으로서, 어떤 대응이 가장 롯데에 도움이 되는지를 여러 차례 생각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다소간 전략적으로 '상남자'스러운 인터뷰를 의도했다. 그리고 이건 감독으로서 분명 바람직한 태도다. 비록 감독의 고유 권한인 선수교체까지 언급하는 건 과도했다고 생각하지만, 롯데 선수들 건드리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식의 발언은 충분히 필요했고, 실제로도 적절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종운 감독은 빈볼이 한화 벤치의 의도라고 단정지었다. 이종운 감독 본인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의도와 무관하게 이 인터뷰는 더럽고 치졸한 한화 벤치와 깨끗하고 당당한 롯데 벤치의 구도로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즉 이종운 감독은 선수와 선수 사이의 일이 아니라 벤치와 벤치 사이의 일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것이 오해였든 아니든, 결국 해명은 김성근 감독의 몫이 되었고, 상대적으로 이종운 감독은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셋째, 경기 자체의 몫이다. 이 경기는 일요일 5시 경기였기 때문에 동시에 진행되는 경기도 없이 오롯한 주목을 받았다. 게다가 월요일은 휴식일이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발생한 이슈는 자연스럽게 만 이틀 간의 폭발력을 가질 만한 객관적인 조건에 놓여있었다. 더구나 불행히도 다른 구장 경기에서 며칠을 이어갈 만한 특기할 사건이 벌어진 것도 없었다. 예컨대 지난 목요일 경기에서는 이성열이 데뷔전 홈런 같은 굵직한 이슈가 있었음에도 다른 구장에서 노히트 노런이 나오고 사이클링 히트가 나오고 하는 바람에 크게 주목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빈볼만한 이슈가 없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압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이슈로 주목도를 분산시킬 수도 없었다.
김성근 감독은 사구의 원인으로 이동걸의 몸쪽 제구가 불안정한 것을 들었다. 하지만 이는 널리 공감을 받을 만한 해명이 아니었다. 사실 야구를 한두 해만 보더라도, 5회말 황재균이 맞은 사구는 의도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빈볼이 아니었다는 해명은 애초에 사실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해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성근이 이 태도에서 쉽사리 물러날 수도 없었다. 이 인터뷰가 나올 시점에는 아직 상벌위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어떻게든 이동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좋기로는 빈볼의 의도성이 인정되지 않아서 경징계에 그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적어도 상벌위에 곧 출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은 선수가 뻔히 있는데 그거 의도적이었다고 인정한다면 이동걸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종운이 롯데 감독으로서 롯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쳤듯이, 김성근도 한화 감독으로서 한화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쳤던 것이다. 다만 롯데는 맞은 입장이고 한화는 던진 입장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던진 쪽에서 내놓는 입장이 보다 구차할 수밖에 없다. 이를 상쇄하려면 롯데가 뻔하게 더 비도덕적인 일을 했어야 하는데, 불문율이라는 말로는 이미 대체로 설득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김성근은 이동걸을 보호해야 하는 객관적인 입장이 있었고, 모두의 지탄을 받더라도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구가 의도적이지 않았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한, 그 뒤의 말도 당연히 그에 따라서 맞춰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너무 뻔한 '거짓말' 뒤에 붙는다는 이유로 뒤의 말도 거짓말로 간주되었다는 데에 있다. "빈볼 던지라고 지시한 적 없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앞서 밝혔듯, 나는 김성근을 특별히 미친놈으로 만들지 않고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투수조에 의한 빈볼 가능성을 제기했다. 만일 이것이 맞다면, 빈볼 지시를 부인한 김성근의 해명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앞의 말, "빈볼이 아니라 사구다"가 거짓말로 너무 뻔하게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발뺌으로 비춰지기 쉽다. 더구나 롯데 감독은 이것을 벤치 대 벤치의 문제로 의제를 설정해 두었다. 김성근은 차라리 다른 말을 다 인정하더라도 최소한 이것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었던지 초년생 운운하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결국은 이종운도 인간적으로는 결례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특히 선수교체를 언급한 것은 과도했다는 뜻을 밝혔다.
롯데 선수들이 김성근 감독에게 일종의 악감정을 품고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조성환 부상의 악몽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에도 김성근 감독은 제구가 안 된 공이라고 해명했으며 이후 대처도 적절하지 못했다. 해당 사건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나는 사구로 인해 만루가 될 상황에서 좀 있으면 이대호가 나오기 때문에 정황 상 빈볼이 아닌 사구일 가능성이 더 크겠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워낙 큰 부상이었고 실제로 선수 커리어에도 영향을 끼쳤던 부상인 데다가 제대로 사과하지도 않고 응급치료 중에 연습구를 던지도록 지시하는 장면들을 보며 롯데 선수들로서는 당시 김성근의 태도에 얼마든지 분노했을 수 있다. 비록 이종운이 당시 롯데에 몸담고 있지는 않았더라도 이런 정서에 대해 모를 리는 없다. 어쩌면 다소간 경솔한 발언이었을지라도 이종운의 발언은 확실히 롯데 선수단에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을 것이다. 이종운은 이런 집단정서 속에서 이 사건이 벤치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의 시원시원한 인터뷰와 단호한 태도를 칭송하는 것과 별개로 김인식 같은 야구계 인사는 벤치 클리어링은 선수 간의 일이고 사실 별 일도 아닌데 일이 커졌다는 식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이종운도 이런 확전의 분위기가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고, 적어도 벤치 문제나 보복구 문제에 대해서는 진화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다.
반면 김성근은 본인이 생각하기에 정말 별 것도 아닌 일 때문에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다. 예컨대 윤길현 사건 때야 명백하게 윤길현이 야구장 매너 바깥의 영역에서 잘못된 행동을 했으니 차라리 거센 비난들을 납득은 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 건은 엉덩이에 사구 맞고 일어난 벤치 클리어링인 데다가 물리적으로 별다른 충돌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성근으로서는 일종의 '김성근 죽이기' 같은 과거의 분위기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법한 사건인 것이다. 현직 복귀에 대한 후회 비슷한 감정을 토로하고, 딸과의 통화내용을 기자들에게 얘기하고 이런 건 확실히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 벤치 클리어링이 물론 좋다고 칭송받을 일은 아니라지만, 야구에서 없었던 일도 아니고 그 때 어떻게 다뤄졌는지 뻔히 기억하고 있는데도, 김성근이라는 이유로 추가로 받는 비난의 강도가 약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즉, 김성근으로서는 가뜩이나 자기 선수를 보호해야 하기에 기본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에서, 과거와는 다른 비난의 강도에 대해 일종의 회한이 들 법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결정적인 것은 KBO에서 선수단 관리소홀의 책임을 물어 벌금을 물린 일이었다. 벤치의 지시라는 걸 인정하지도 않고, 소속 선수가 빈볼을 던지고 선수단이 벤치 클리어링을 벌였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은 것이다. 당연히 다른 징계와의 형평성에 어긋나는 처분이었다. 벤치 클리어링이 사유가 되어야 한다면,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킨 롯데의 이종운 감독에게도 얼마간의 벌금을 물려야 한다. 한화는 빈볼과 벤치 클리어링에 연관되어 있으며, 롯데는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켰기 때문에 책임 수위가 같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김성근이 일방적인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김성근도 어떤 이슈에서는 충분히 자신의 피해자성을 주장할 여지가 있다. 피해자 따로 있는데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한 사건이 아니라, 빈볼의 직접적 피해자가 롯데 황재균이었다면 이후 언론으로부터 이어진 비난과 집요한 꼬투리잡기에 관해서는 김성근 감독도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글쎄, 이것이 잘못한 것이 있으니 닥쳐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일까? (실제로 김성근 감독이 빈볼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니라면 어떤 행위를 통해 잘못한 것은 없다. 어떤 행위를 하지 않아서 잘못한 것은 굳이 따져볼 수 있겠지만.)
이 일이 어떻게든 잘 해결되고 이제 그런 걸 바라지는 않는다. 해결이라는 게 무의미한 사건이다. 야구판은 어차피 돌고 도는 거니까. 지금 열을 올려 김성근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응원하는 팀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이쯤에서 작년 일을 떠올릴 필요도 있겠다. 내 기억에 정찬헌-정근우 빈볼 사건에서 한화 팬들의 비난이 집중되었던 사람은 정찬헌과 이병규였다. 적어도 김기태는 아니었다. 이번 이동걸-황재균 빈볼 사건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김성근이 배후로 꼽힌다. 하지만 여러 정황은 김성근의 지시에 의한 두 차례 빈볼, 그 중 두 번째 빈볼에서 발생한 벤치 클리어링이라는 통속적으로 정리되는 사건개요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방향을 가리킨다. 김성근을 감독으로 선임하여 치러야 할 대가라고 보기에는 때로 얼토당토 않은 것들이 끼어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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