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 스마트폰 좀 쓰세요. 카톡이 안되니 답답하네."
"전화하면 되지, 답답할 게 뭐 있어."
아버지는 답답한 사람이다.
바뀐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2
"스크롤 좀 올려봐요. 검색창은 위에 있잖아."
마우스에다 검지 손가락으로 슥 내려야 되는데.
허둥대며 중지 손가락으로 드르륵 드르륵 올리니.
화면은 점점 더 빠르게 아래로 내려간다. 답답하다.
# 3
"내시경 받아봐요. 걱정되네."
"기계를.. 어떻게 목구멍으로 삼키냐.. 위험하게."
"위험한 거 아니래도. 정 그러면 수면 내시경도 있으니까."
"아니야. 됐다. 내키지 않아서"
그런 사람이다 아버지는.
# 4
하루는 아버지를 나를 앉혀놓고 이것저것 묻는다.
인터넷 자전거 동호회에서 만난 내 여자친구 이야기다.
"그런걸로 사람 만나고 그러면 안 된다."
막무가내다. 요즘 인터넷에서 만나는 일은 흔한데.
"인터넷으로 만나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
학력도 속이고 직업도 속이고 말이지."
학력이나 직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정직할 필요는 있겠지 고개를 끄덕여본다.
# 5
텔레비전을 보던 아버지가 한 말씀 하신다.
"너도 여자랑 자본 적 있냐."
내 나이가 몇개인데 설마 그런 적이 없을려고.
하지만 굳이 말하진 않는다. 간섭 받기 싫으니까.
아버지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하신다.
"남자라도, 결혼할 사이 아니면 자고 그럼 안되는 거야.
우리때는 혼인빙자간음이라고 잡혀갔을 일이지."
피임을 말하고 싶으신 건가 싶다. 네네, 알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도 나이를 먹고
내 아들이 예전의 나만큼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요즘 아들 녀석이 늘 나를 꼰대 취급한다.
# 1
"아버지, VR가족방에 왜 메세지를 안 남기세요"
"내 몸에 무슨 캐릭터 스킨 뒤집어 씌워놓고.. 움직이면 그대로 동작 스캔해서 따라하는 그 가상공간 말이냐..?"
"기본 스킨이라 맘에 안드시면 스킨 사드릴까요?"
"그럴 필요 없다.."
"엄마는 잘 하던데요. 이번에 동생이 가족방에 화분 놓은거 봤어요? 가서 화분 만지면 동생이랑 엄마가 춤추는 홀로그램 떠요."
"니들 많이 봐라.."
# 2
"아니, 아버지 위를 보면서 눈을 두번 깜빡이라고요."
"이렇게 말이냐?"
"아니 눈을 그렇게 굴리지 마시고요. 눈 아파서 깜빡거릴거면 주먹을 펴고 깜빡거리세요. 주먹 쥐면 홍체 인식해서 다 명령어로 인식한단 말이에요."
"뭐가 이렇게 복잡해."
"아 그냥 눈 깜빡거리는 건데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요?"
설명하는 아들이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짜증을 내며 나간다.
난.. 역시 키보드와 마우스가 편한 것 같다.
# 3
"아버지, 그러지 말고 다리에 워킹 파이프 박읍시다."
"아니 사이보그도 아니고 다리 좀 힘들다고 기계를 넣고 그건 좀 무시무시하지 않냐.."
"그냥 인체 근육 전기신호 받는데로 움직이는 거라 내 몸이랑 똑같아요. 6개월에 한번 잘 작동중인지 점검만 받으면 되고요."
영 껄끄럽다. 잘못되면 어쩌나? 고개를 가로젓는다.
"계단 오르는 것도 힘들어 하시면서 왜 그렇게 고집이 세요."
# 4
하루는 아들에게 며느리 소식에 대해 묻는다.
외국에 있는 며느리는 일주일에 한 번 한국을 다녀간다.
"그래도 가족은 같이 살아야지.. 떨어져 살아서야.."
내가 안쓰럽게 아들을 바라보지만 아들은 말이 없다.
"넌 요즘 벨기에 말은, 좀 배우고 쓸 줄 아냐?"
"이어링 꽂고 대화하면 말 다 통해요."
"그래도 부인이랑 대화하는데 말이 좀 통해야지.
서로가 쓰는 언어도 안 통하면 어떻게 부부라 하겠냐."
" 네네, 배울게요."
# 5
문득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들의 생활이 궁금해진다.
"너도 와이프 두고 다른 여자랑 자본 적 있냐?"
아들은 대답이 없다. 이게 대답을 못할 일인가?
"우리때는 그러면 간통죄라고 해서 감옥갔을 일이지.
물론 네가 와이프가 멀리 있어서 다른 생각도 들겠지만
부인을 속이면 안 된다."
아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린다.
나가볼 데가 있다며 무인자동차를 콜하는 아들을 보며
문득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래... 아버지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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