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002년에 처음 대선투표를 한,
그 이후로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30대 중반의 사회인입니다.
20대 때까지 저는 아빠에게
너무 급진적이어서 걱정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세상이 천지개벽하길 바라던 유권자였습니다.
노무현 지지자였지만
권영길도 표가 많이 나왔으면 했고,
이회창은 입에 담기도 싫은 부정부패의 상징,
최악의 정치인이었죠.
그 때는 그랬습니다.
이명박근혜를 겪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성급한 일반화였죠. 그래요. 생각해보면.
이회창이 나왔을 때는
'저 인간 대통령 되면 나라 말아먹는다'
이런 말까진 안 나왔습니다.
노무현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어오는 새 바람을,
한번 끝까지 따라가보고 싶은 기분이었죠.
(그 이후로는 대선 철마다
벼랑 끝에 몰리는 기분이지만...)
그리고 17대 대선,
제 주변에는 문국현 지지자가 많았습니다.
특히 온라인 세상에서는 문국현이 대세였죠.
정동영은 인기가 없었습니다.
저도 정동영을 찍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정동영을 찍었습니다.
제가 정동영을 찍었든 문국현을 찍었든
이명박은 대통령이 됐을 겁니다.
저는 그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영을 찍은 것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
내 삶을 망치는 결정들을 할 때
그나마, 맞서 싸워줄, 가장 큰 세력이
정동영이 속한 민주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의 파괴행각은
민주당으로도 막아낼 수 없었지만
어쨌든 머릿수가 적은 당보다는,
대선에서 2등을 할 가능성이 없는 당보다는,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할 가능성이 전무한 당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문국현은 결국 5%대의 득표율로
4위에 그치고 맙니다. 3위는 이회창...)
지지난 총선까지 저는
지역구는 민주당에
비례는 진보정당에 투표했습니다.
진보당에 대해 잘 모르면서 막연히,
진보당도 함께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민주당 지지자였으면서 말입니다.
지난 총선 저는 극도의 위기감에
비례까지 민주당을 찍었습니다.
묘한 죄책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번에는
민주당이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누리가 단독입법이 가능할 정도로
많은 의석을 가져가서는 안 되었기에,
정말이지 절박했습니다.
제가 그렇게나 절박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의료 민영화를 비롯한 각종 민영화 때문이었습니다.
새누리는 줄기차게
민영화 법안들을 통과시키려 했고
야당은 국회선진화법 덕분에
근근이 막아내고 있는 실정이었죠.
새누리가 많은 의석을 가져가면
민영화는 불보듯 뻔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걸 잘 모릅니다.
법의 이름을 바꿔서 통과시키려 하거든요.
의료민영화는
의료 선진화→서비스발전법→규제프리존법으로
인터넷 및 커뮤니티 통제, 감시는
사이버테러방지법→사이버보안법
이런 식으로요.
(맨 밑의 짤 참조)
그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재인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심상정을 찍겠다는 분들께서는 소신투표하십시오.
제가 건방떤다고 욕하셔도 좋습니다.
누구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와
가장 절박하게 실현시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동성애자분들은 그게 동성애자들의 인권이겠죠.
(다른 가치가 1순위인 분도 계시겠지만...)
저에게는 그게 정권교체인 거고요.
문재인 후보가 진보적인 사안(특히 인권 관련)에
명쾌한 답을 내주면 전 아마 만족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무시할 수 없기에
그가 지금 당장 정치적 알력이 존재하는
사회 현안들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길 바랍니다.
비겁한 거 압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지금 제 삶의 제1현안은 정권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각자
삶의 제1현안을 실현시키기 위해
투표합니다.
저는 평소 동성애자들의 인권운동을 지지했고
나름 다양한 방법으로 응원했습니다.
말이든, 서명이든, 행동이든.
하지만 그것이
제 삶의 제1현안은 될 수 없나봅니다.
이성애자의 한계다!
호모포비아다!
비난해도 좋습니다.
모두의 인권은 평등하다.
맞는 말이죠. 좋은 말이고요.
하지만 우리 안에서 충돌하는 다양한 현안들이
더함도 덜함도 없이 같은 무게로 양심을 짓누르고,
같은 온도로 절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더할나위 없이 뜨거운 현안이,
조금이라도 덜 뜨거운 현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정적 순간에 사람들은
더 뜨거운 쪽에 먼저 물을 붓게 되어 있다고.
덜 뜨거운 현안 때문에 화상을 입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기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을 지언정...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자
어떻게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차피 문재인이 대통령 될 거니
심상정에게 소신투표하겠다는 쪽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판은 완전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외국도 평평하진 않겠지만...)
나만 유독 경사가 가파른 트랙을 달리고 있는데,
1등이라 해서 당신들은 안도할 수 있습니까?
끝나기 전에 1등을 자신할 수 있나요?
남들은 넘어졌을 때 탁탁 털고 일어서면 되는데,
나는 넘어지면 저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데,
어차피 나는 1등하고 있으니 괜찮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심지어 1등을 한 뒤에도
계속 경사진 트랙을 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많이, 최대한 많이,
2등과의 간격을 벌려놔야 합니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발목을 걸어
같이 넘어지려는 선수도 즐비합니다.
우리 세대는 김대중노무현 시절에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기를 이미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무섭다고 호소하는 겁니다.
우리는 노무현이 얼마나 비참한 모습으로
트랙에 쓰러져 죽는지를 봤습니다.
우리는 부정부패 세력들이
그가 죽은 자리를 어떻게 짓밟고 다니는지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마치 일상처럼).
그가 쓰러질 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추월해서 달려나가기 바빴던 사람들이
제 이익만을 위해 어떤 식으로 그를 추모하는지.
얼마든지 그가 죽은 자리에 서서
헌화하고 눈물 흘릴 수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필사적으로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감히 뻔뻔하게
1등에게 힘을 모아주자고 말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수구세력의 지지를 받는 1등과,
지금의 1등은 입지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17대 대선 이명박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을 때,
어차피 이명박이 될 거니 다른 사람 찍어주자는 말.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적폐언론, 진보언론 너나 할 거 없이 합심해서
이명박을 주저앉히려고 하는 꼴,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17대 대통령 선거, 이명박은 BBK를 안고도
지지율 흠집 없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8대 대통령 선거, 문재인은 NLL이란,
거짓 종북몰이 때문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18대 대통령 선거는
부정개표 의혹까지 있는 상황이죠(feat.더 플랜).
19대 대통령 선거.
언론 모두에게 공정해보입니까?
부정개표 시도, 없을 것 같습니까?
그래도 문재인이 될 거 같으니
소신투표로 심상정 뽑겠다는 분들은
네, 소신투표 하십시오.
단, 소신투표하면서 정권교체는 바라지 마십시오.
정권교체 실패해도 당신들은
문재인을 욕할 자격이 없습니다.
왜 본인들은 소신투표하면서
다른 사람들 표로 정권교체 하려고 합니까?
왜 본인들의 고고한 이상을,
다른 사람들의 절박한 표 위에서 실현하려 합니까?
냉정하게 말씀드리죠.
그거, 무임승차입니다.
정권교체에 실패해서
박근혜가 사면되어도 당신은 아무 말 마십시오.
전경련이 박근혜-최순실에게 바친, 뇌물의 대가인
규제프리존법이 통과되도.
그 때문에 의료민영화가 이루어지고,
제2, 제3의 옥시사태가 벌어지고,
유전자변형식품이 식탁을 지배해도,
당신은 아무 말 마십시오.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도
위안부 합의가 재협상되지 않아도
당신은 아무 말 마십시오.
이명박이 앞으로도 내내
전두환처럼 잘 먹고 잘 살더라도.
BBK, 4대강, 자원외교의
내막과 비리가 밝혀지지 않더라도
당신은 아무 말 마십시오.
언론과 검찰이 개혁되지 않아도,
박근혜 최순실 일당이 부정축재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산이 환수되지 않아도,
우병우가 구속되지 않아도,
당신은 아무 말 마십시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석연찮게 죽어나간
내부고발자들과 반정부인사들.
그 죽음의 진실이 영영 밝혀지지 않더라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내부고발자들이
어마어마한 형을 선고받거나
앞선 이들처럼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당신은 아무 말 마십시오.
당신들을 협박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내가 무서운 겁니다.
내가 두려운 겁니다.
난 대선에서 48%의 지지를 받은 2등후보의 정당이
저걸 막아내지 못하는 걸 봤습니다.
그리고 총선에서 그 정당이 승리하고
100%는 아닐지언정 변화가 생기는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소수정당은
결코 이걸 해내지 못할 것임을 압니다.
소수정당을 비하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어쩔 수 없이.
벌써 잊으셨나요? 박영수 특검 연장.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정당이 되었음에도,
대다수의 국민이 원했음에도,
그렇게 발목 잡혔습니다.
그렇게 계속 발목 잡힐 겁니다.
그렇게 하나, 둘 개혁은 무산될 겁니다.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니 소신투표 한다,
고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요.
지금 당신 삶의 제1현안이 소신투표로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가 표를 많이 받는 겁니까?
아니면 정권교체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밑바닥까지 밝혀내고,
각종 민영화와 먹거리 안전을 지켜내고,
세월호 참사, 위안부 협의, 사드 배치의
내막과 실체를 알아내는 것입니까.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고, 투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의 투표로
정권교체와 이상실현을 다하고 싶습니까?
그럴 수 있으면 좋겠죠.
그러나 그럴 수 없을 때가 태반일 겁니다.
개인의 인생에도 그런 기회가 별로 없는데
정치의 가장 작은 단위로 행사하는 한 표에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상 실현하다가는
그 한 표조차 영원히 행사 못하게 될 겁니다.
내각제로 개헌이 된다면 말이지요.
벌써 잊었습니까?
촛불 끝나자마자 개헌을 부르짖던
정치 세력들. 그들? 어디 멀리 안 갔습니다.
19대 대선,
지금, 여기 참전하고 있어요.
정치인들이 듣기 좋은 소리 한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그들조차도 이상과 현실 중,
철저히 택1해서 행동합니다.
보통은 현실을 택합니다.
다만 현실을 택하고
이상처럼 보이게 할 뿐이죠.
그게 정치인의 스킬이고요.
이상, 달콤하죠. 저도 압니다.
하지만 달콤하기에 잘 썩습니다.
저는 제가 들여다보지 않는 사이
그것이 어떻게 썩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달콤하지 않은 선택에도 응하게 되었습니다.
극우 역시 달콤하지 않죠. 대신,
그들은 당장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보여줍니다.
일단 허기를 꺼트릴 수 있을 거 같죠.
하지만 숫가락을 넣어보면 알게 됩니다.
꽉 차있는 것 같던 도시락 안이 텅 비어있다는 것을.
그들은 결코 나누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상처럼 달콤하지 않은 건,
달콤함마저 독식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간에 있는 정치 세력.
덜 매력적이라는 거 압니다.
달콤하지도, 배부르지도 않죠.
하지만 제가 그들을 지지해온 건
어느 순간부터 제가 실감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달콤할 수도, 배부를 수도 없다는 것.
개인의 삶에 있어, 정치란 게 말입니다.
(민주당의 지난 날의 과오를 모르지 않습니다.
포기 안 한 제 자신이 대견할 정도로...)
더 긴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신 삶의 제1현안은 무엇입니까.
그것에 따라 투표해주세요.
무엇이 가장 절박한지 한 번,
꼭 한 번만 다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꼰대같았더라도 이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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