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아무래도 부끄러워 익명으로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제 인생이 떳떳하다고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지금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누구한테도 잘 하지 않는 이야기거든요.
허세인것같기도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변할 것같기도하고. 간만에 잡은 소중한 인연들을 놓치고 싶지않아서.
그치만 아무래도 답답한 게 많아선지 이렇게 술 한잔 먹고나면 얘기하고싶게 되더라구요..
길겠지만 혹시 괜찮으시다면, 한번만 들어봐주세요.
시간이 약이라는거 , 진짜인 것같아요.
누구나 인생이 힘들었듯 저도 엄청죽고싶고 누구도 내편이 아닌 것같은 순간들이었는데
지나고 나니 아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구나 싶거든요.
지금은 정말 괜찮아요. 오히려 세상은 정말 살만하구나 싶어요.
일단 저는 여자애에요.
왜 흔한 스토리있죠, 남아선호사상 집안에서 여자애가 태어나면, 할머니가 엄마랑 딸 구박하고 그러잖아요.
그냥 그런거죠. 아버지는 장남이시고 , 언니랑 나이터울이 좀 있다보니까 자연스레 할머니가 아들을 기대하셨는데,
제가 태어난거죠. 엄마는 한창 몸도 안좋으신데 아들낳으셔야한다고 무리하셨다가 저 낳으신 이후로 몸이 부쩍안좋아지셨어요.
저는 할머니가 구박해도 별로 개의친 않았어요,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셨고, 충분히 저를 예뻐해주셨고.
할머니가 구박해봤자 절 때리는 건 아니었고, 나 왔을땐 맨밥에 깻잎만 주시다가 나보다 어린 남자사촌들올땐 고기반찬내주고,
남자사촌들한테 더 잘해주고, 제가 광에 있는거 깜빡하고(혹은 알고계실진 모르겠지만) 가두신다거나.
뭐 그때야 어렸고, 내가 남자사촌들보다 더 잘하면 예뻐해주신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나중에 한창 힘든 일겹칠땐 할머니랑 마주칠땐 정말 싫어졌지만요.
하지만 나란 사람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그런 부분이 있나봐요.
언니는 저를 엄청 싫어했어요. 그럴만도 한게 외동딸로 크다가 갑자기 동생이 생겼는데
제가 기억도 안나는 애기시절에 언니 숙제들을 막 찢고 그랬었나봐요.
어릴때는 언니가 막 저도 때리고 그랬어요.(혹시 오해하실까봐.. 지금은 안그래요. 몇년간 오해푸는데 엄청 싸우고 울고 했지만 지금은 잘지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갔어요.
2학년때 집안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져서 이곳저곳 이사를 다녔었어요. 제가 다닌 초등학교만 네개거든요.
그중 두갠 짧게 다녀서 기억이 안나고,
2학년때 전학가자마자 그쪽 우두머리 여자애한테 찍혀서 왕따를 잠깐 당했어요.
생각해보면 그게 내 왕따인생의 시초인것같아요.
하지만 그때도 짧았다 뿐이지 2학년 말이고 해서 그 여자애가 맘에 안들었던 다른여자애들이랑 같이 놀았어요.
그리고 3학년 가고. 3학년때는 선생님도 좋아선지 행복했던 기억밖에 남아있질 않네요.
4학년때 또 이사를 가서 옆 초등학교로 옮겼어요. 옆집 동갑이랑 친해져서 5학년때까진 평탄했는데,.
6학년때부터 본격적인 왕따가 시작되었어요.
그동안 친했던 친구들이랑 다 찢어지고 , 원래 같은 ㄴ반으로 가기로 했던 친구가 반이 갑자기 바뀌어서
혼자 새로운 반에 가게되었어요. 여자애들끼리 무리를 짓고 노는데,
갑자기 그 무리가 절 왕따 시키기 시작하는거에요. 그냥 아무일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그중엔 5학년때 같이 놀던 친구도 있어서 엄청 충격받았던 기억이 나요.
뭔 말을 해도 걍 무시., 있던 관계 다 끊어놓고, 내가 그림그리면 따라 그리면서 앞에서 깐죽대고, 내가 시험 잘보면 선생님한테 쟤 부정저지른거라고하고, 여튼 유치한 짓은 다했어요.
저는 그때 엄청 울고, 빌고, 왜 그런지 내가 나쁜앤지 엄청 고민하고, 스트레스받아서 막 먹고.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겟어요. 그냥 무시하면 됐는데, 사실 사람이 엄청 고픈 환경이었거든요. 막 전학다니고,
-근데 언니는 한창 대학생활중이었고 부모님은 맞벌이 중이셔서 주변에 절 케어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사람한테 막 빌었어요.
근데 그거 아시죠, 사람은 비굴하게 굴면 더 무시하는거..ㅋ 그냥 사람특성인것같아요. 그래서 나날이 더 심해졌었어요.
나중에 10월달 되서야 겨우 그 주도한 여자애빼고 겨우 관계회복이 되기 시작했는데.
이미 제 주변은 왕따로인해 쟤 왕딴가봐-어,쟤랑 놀지말자 우리도 위험해- 이수순으로 그나마 있던 친구들도 다 떨어져나간상태였고요.
근데 알고보니 그 주도한 여자애가 왕따 시키기 시작할때 한얘기가,
"야 우리 심심한데 XXX 왕따시킬래?"
라는거에요. 그 5학년때 친했던 여자애가 나중에야 미안하다고 말해주더라구요. 그러고 자기는 전학갔어요 ㅋ
...정말 어이가 없었죠. 진짜 나는 생전 부모님한테 떼써본적도 별로 없는데, 전학가게 해달라고 졸라볼까,근데 부모님한테 부담될까 엄청 염려하던 시기였는데. 누군가한테 엄청난 경험을 안겨주고 뇌가 세척되서 사는구나-싶었어요.
걔도 초등학교 졸업하고 전학을 갔는데, 알고보니 부모님이 이혼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불쌍한 애구나 하고 말았어요.
근데 그 맘 싹 고쳐먹은게, 중학교도 인근 중학교로 , 그 초등학교 애들이랑 같이 올라가잖아요?
얘때문에 이미 XXX는 왕따다 라는 소문이 다 퍼져서 , 중학교에서도 애들이랑 친해지기가 쉽지 않은거에요 ㅋ
부모님은 언니 한창 공부할때 집안 기울어진거때문에 지원을 못해줘서 저라도 지원해야겠다, 라며 종합학원을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공부했어요. 처음 시작할땐 재미잇었고 나중에는 그게 내 자존감의 원천이라서.
그런거 있죠, 학교서열에서 공부하는 애들은 잘 안건드리잖아요?
근데 나는 이미 인식이 왕따로 찍혀있으니까, 살아남으려면 공부라도 해야했어요.
그러면 여자애들도 잘 안건들여요, 오히려 시험기간엔 들러붙고.
가끔 일진들이 문자 무제한 빌린답시고 건들긴했는데, 막 심하게 굴진 않고.
그치만 진짜 친구는 없었어요. 그게 더 슬프죠. 남들은 찬란한 학창시절이라고 하는데 나는 같은 반 친구들이름도 기억이 안나요.
너무 외롭고 슬프고 하교같이 할 친구도 없어서 수업끝나면 얼른 집으로 돌아와버리고.집에서도 부모님맞벌이고 언닌 없으니까,
혼자 밥먹고. 저는 그기억이 너무 싫어서 지금도 혼자 밥먹는거 엄청 싫어해요.
학원에서도 가는족족 같은 학교애들이 소문내서 친구만들기도 힘들었구요.
그래서 학원을 옮겼는데 어떤여자애가 학교일때문에 뭐라그래서 싸웠는데 걔가 다른애들하고 소문내는 바람에 생활이 힘들어서 또 힘들어져서
또 옮기고. 그랬는데 거기서도 소문나고.... 참, 이악물고 공부하기 좋죠.
어떻게든 이 지역을 떠야겠다 싶어서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여러번 떨어지다 겨우 다른지역 붙었을때 정말 기뻤어요. 앞으로 내 인생은 달라질거야-싶어서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요. 얼마나 어리석었나 싶어서.
그곳에서 달라질줄알고 사람들한테 마음을 열었다가, 전따를 당했을때 그 배신감은 정말 이루말할 수없죠,...
눈물이나서 이 부분은 더 쓰고 싶지않아요. 너무 힘들었어요. 한달 반만에 자퇴를 했죠.
학교에서도 나가달라고 할정도였어요...ㅋ
지금도 밤에 그 꿈을 꾸면 다리에 경련이 일어요. 스트레스성 마비래요.
저는 초등학교때 자전거를 타고가다가 교통사고가 몇번 났었는데 그떄 자전거가 팔로 떨어졌었나봐요.
당시에는 별로 안아프다가, 그 스트레스를 받은 시점에 팔이 너무 아프고, 도저히 움직일수가 없어서 병원을 갔더니
이거 후유증이라고, 아마 스트레스 받을때마다 더 심해질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몇개월 재활을 했어요.
처음 한달은 말도 안했어요. 부모님이랑도.
부모님께서도 학교다닐때는 좀더 참아봐라,하시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자퇴를 하게 해주셨어요. 너무 고마우신 분들이죠.
저를 사랑하지 않는단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어요... 그치만 그분들게 너무 죄송스런 생각까지 할정도로 너무 힘든 시절이었어요.
언니는 처음 몇달동안은 그냥 지켜보다가, 그게 그렇게 힘드냐 라면서 화를 낸적이 있었어요.
사실 언니한테는 지원을 별로 못했는데 나는 지원까지 받으면서 그지랄을 떠니까, 솔직히 나같아도 고까울것같았어요.
하지만 그땐 나도 너무 어렸고 언니도 너무 힘들었을때라 자매가 많이 싸웠어요.
내 인생에서 정말 치열한 시간이 었어요. 다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를 다지고, 가족들이랑 단절됬던 대화를 다시 잇는 시간이.
사실 할머니도 그때 돌아가셨거든요.
정말 기가막힌 타이밍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질릴 때, 날 정말 싫어하는 것같았던 할머니가 파킨슨병에 걸리셔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가족들이 다같이 병문안을 갔는데 저는 어색하니까 문 근처에 서있었거든요. 근데 제 손을 잡아보고싶어하시는거에요,
왜 이제와서 이러는가 싶고 그동안 서러웠던게 갑자기 치고나와서 엄청 싫어서 나와버렸는데
아버지가 손한번 잡아달라고 , 그래서 억지로 쥐었었는데 그 다음주에 바로 돌아가시더라구요...
인생완전 무상... 그냥 허탈하고, 나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왜 마지막엔 내 손을 잡아서, 왜 사람맘을 그렇게 헤집어놓나.. 이생각을 하던차에..
정신과도 잠깐 갔었어요. 부모님께서 우울증올까봐 많이 걱정하셨거든요. 처음엔 죽도록 가기 싫었는데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오기까지 한시간 반동안 계속 울다가 첫 상담이 끝났던 기억이 나요.
의사선생님은 별말 안하셨어요, 그냥 제 이야기를 듣기만 하셨어요.
근데,,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그 자체가 너무 감사하더라구요.
그땐 너무 감사했어요. 그리고 그때서야 깨달았어요. 내가 너무 외로웠구나.
그렇게 두번째 상담은 자발적으로 갔어요. 처방해주신 약도 꼬박꼬박 먹었어요. 지금 이 처참한 상태인 나를 벗어나고 싶어서.
두번째도 엄청 울었어요. 하지만 첫번째보단, 자존감이 회복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세번째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러 갔어요. 여태까지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이제는 그래도 혼자 딛고 일어서야할 것같다.
선생님이 좋은 분이셨어요, 상담비 받으려고 상담늘리는 분아니셨거든요. 앞으로 좋은 일 있길 바란다.
그러고 나왔어요.
헬스랑 수영이랑 피아노까지 치고 혼자 영어공부하면서 엄청 치열하게 독하게 살았어요
왜냐면 그때 10년전 외국나가셨던 친척분이, 정 그러면 이쪽에 와볼래, 이러셨거든요.
그래서 유학...이라는 걸 가게됐어요.
사실 중학교때부터 교환학생 엄청 가고싶었는데,집안 사정이 안되니까 말도 못했는데.
부모님께서 큰맘먹고 보내주신거에요, 실제로도 큰 희생이었어요.부모님은 그 빚을 지금도 갚고계세요. 너무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그래서 결론도 해피엔딩이면 좋았겠지만 ..................
사람들하고 소통을 안하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티가 나요,
특히 어렸을때 그랬다면 더더욱.
나는 왜 그렇게 중학교시절을 보냈나 , 싶은 1년이었어요.
첫 1년에는 다른 외국인애들이랑 잘 어울리지도 못했어요.
알고보니 제가 분노조절을 잘 못하고, 생각하는 거도 어리고 하더라구요,
지금생각해보면 너무 어렸구나 싶기도 해요. 그리고 부모님이랑 떨어져사는것도 너무 힘들었고요.
남들이 보면 참 부러운 유학생활인데, 저는 참 힘들었다고 하면 징징대는것같겠지만...
10년동안을 못본 친척분이라, 거의 남이랑 다름없었는데
좀 원칙을 중요시 하시는 분들이라 라이프스타일을 맞추는게 조금 힘들었어요.
말도 잘 안터지고, 한국인도 없는 지역이라서 친구사귀기도 힘들었고
외모도 한창 안꾸미던 시절이라 다른 아시아 애들은 무시하고...
그냥 인생이 무의미해진기분. 학교가도 아무도 없고, 학교끝나고 와도 그냥 하늘만 맑아서 멀거니 쳐다보고..
그래서 죽도록 공부했죠. 부모님께서 빚까지 져서 보내주신거니까. 다행히 성적은 좋았어요. 조기졸업할수도있겠다 싶었구요
1년이 지날 즈음에는 다른 지역에서 한국인 친구들도 생겼어요. 그리고 그친구들은 지금도 정신적 버팀목이 되주고 있어요.
누구도 내편이 아닐 것같은 환경에서, 조금도 내 편을 만들기 시작했어요.그때부터 못할게 뭐가있어 이 생각이 들더라구요.
친척분들도, 1년이 지나니까 점점 익숙해지고, 아 저분들이 그냥 깐깐한 분들이 아니라 날 생각해서 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오히려 2년차때는 대학입시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2년내로 졸업을 하려니 학점이 모자라서 엄청 빡세게 들어야 했거든요.
그때 외국에서 학교를 진학하고싶었는데, 합격까지 했는데, 부모님께...대못을 박은 이야기지만...
돈이 없으니까...들어오라고... 얼마나 입이 떨어지지 않으셨을까 싶었는데... 그얘길 듣고 너무 눈물이 났어요.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싶어서, 부모님이 빚을 져도 그곳에 남고싶어서.
사실 한국에 다시 돌아가고싶지않았어요. 너무 끔찍하니까요. 하지만 외국대학학비가 너무 비쌌어요.
지금도 후회하고 있는 이야기에요.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니까요.
그렇게 한국에서 대입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의지가 없었어요. 정말 가고싶은 대학을 못갔으니까..
대입이 얼마나 빡센지..음 저야 한국에서 고3을 지내지 않았으니, 함부로 논해선 안되겠지만...
다른학생들 만큼이나 저도 힘들었어요.
외로웠거든요. 면접학원,입시학원 다닐돈도 없고 의지도 없고.. 그나마 친한 친구들은 다 학교에 있었고.
부모님께서는 계속 맞벌이시고,언니도 이젠 출근하고.
그래서 한동안 방안 폐인짓을 했던 게 생각이 나요.
그런 딸내미 대학보내보시겠다고 대학별 입시전형 다 뒤져보시던 부모님... 지금생각하면 아주 복에 겨운짓을 했었네요 제가.
그렇게 부모님덕에 대학을 나름 이름있는 곳으로 가게되었어요.
사람이라는게 매번 기대를 하게 되는 생물이라,
이번에도 달라질거야-라고 기대를 했었는데.
그리고 희망찬 대학생활을 꿈꿨었죠.
역시나... 남초과에서 친해진 여자애한테 정말 순진하게 믿고
예전에 사람들과 사이가 좀 안좋았었다 이런얘기하자마자 멀어지고.
얘덕에 동기남자애들이랑 멀어지고, 얘가 꼬리치는 선배들한텐 성격이 이상하다 이러면서 까이고.
대학생활도 만만치 않았어요. 후배들앞에서 욕도 먹어보고, 그래도 어떻게 해보겠다고 과동아리도 해보고,
욕도 웃으면서 버텨보고... 뒤에서 나 깐 사람도 웃으면서 대해보고
근데 사람이라는게 하도 까이다보니 성격이 좀 둥글둥글해지는게 없잖아 있어서
오히려 좀 크고 이런 일을 겪게되니까 아 내가 변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버티다보면, 확실히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인식하는게 있더라구요. 예전과 다르게 사람들을 설득시키기도 해보고,
오해였다 이렇게 설명할 날도 오고. 아 이렇게 말하면 안되겠구나 깨닫는 것도 있고.
확실히 시간이 답이었던 것같아요. 그리고 옛날처럼 피하려고만 들지말고, 버티면서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보는 힘을 기르고 있어요.
마음이 바뀌니까, 내 인생이 좀더 행복해 지기시작하고,
이런 시간도 있다보니까 그동안 시련도 일종의 발전을 위한 시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오히려 마음을 단디 먹게 된것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좀 더 나은 나를 위해 잠시 외국에 와있어요.
고등학교때처럼 한국인이 정말 없는 곳이에요.,
일부러 도닦으러 왔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정말 많은걸 깨닫고 가요.
내 주변 모든게 혜택이구나 생각되거든요.
예를들면 엄마가 해주는 아침밥, 아빠랑 같이보는 티비...
갑자기 삶에 대한 감사가 막 솟구쳐오를 정도로 한국인이 없는곳에서 혼자 자취하려니 많이 힘든데,
오유가 그중 낙이 되어줘서 겨우 귀국일까지 버티고 있어요.
이제 한국갈일이 별로 안남았는데
저를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제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는 걸보면,
정말 격세지감을 느껴요.
옛날엔 다들 날 피했었는데, 이제는 날 보고 싶다고 찾아주니까, 너무 감사해서...
저는 왕따를 심하게 당한건 아니지만, 사실 아직 트라우마가 많이 남아있어요.
혼자 밥먹으면 무조건 얹힌다거나, 아직 팔이 아려올때나, 아니면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되는거...
하지만 그럴수록 피하면 안된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해요. 자살도 하면 안 돼요.
저랑같이, 미래를 위해서 힘내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오유를 보면서 기운을 냈듯이, 만일 힘든분들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좀더 삶에 희망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잘될거에요. 언젠가는 이 모든걸 웃으면서 술한잔에 넘길 수 있는 날이와요.
길고 재미없는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걸 기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