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에는 꽤 긴 터널이 있다. 자동차는 많이 지나지만 사람은 거의 걸어다니지 않는 곳으로 오래되어 인도쪽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편이다. 얼마전에는 터널의 차도와 인도를 가로 막는 유리벽을 세웠는데 먼지가 잔뜩 껴서 오히려 차들은 인도를 보기 어렵게 되었고, 사람들은 우스개 소리로 터널 인도를 걷다가 사고 나면 며칠은 아무도 모를 거라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얼마전, 동네에서 친구 한 명이 그 터널에서 구조되는 일이 있었다.
친구는 터널 건너 마을에서 일을 하다가 터널을 통과해서 퇴근을 했었다. 그런데 늦은 밤에 혼자 퇴근하며 터널을 지나던 중 배수구 위의 돌이 뒤집히며 배수구로 빠지며 잠시 정신을 잃었고,(꼭 그럴 때는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곤 한다. 영화도 아닌데 말이다) 하룻동안 지나는 사람이 없어 방치되었다가 그 다음날에야 터널을 걸어지나는 사람이 소리를 듣고 119를 불러 구해줬다고 한다.
떨어지면서 다리도 심하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야했던 친구에게 나는 병문안을 갔다.
친구는 사고 당시에 정말 무서웠다면서 붕대로 칭칭 감긴 손으로 내 손을 꼭 붙잡았다. 불안해하는 친구를 다독이며 '이제 괜찮아'라고 말해을 때 친구는 나에게 쉬어버린 목소리로 작게 이야기했다.
"사실 이거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건데...."
이야기를 하면 다들 헛 걸 본 거라고 할까봐 그냥 말을 안했다는 것이다.
"내가 그 배수구에 떨어지고 정신 차렸을 때, 위로 지나가던 사람 그림자가 보였어. 그래서 큰 소리로 도와달라고 했었거든? 근데 그 사람이 구멍으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그냥 보고만 있는 거야."
친구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이야기했다.
"119 불러달라고 막 소리 질렀는데, 그 사람 구멍으로 날 내려다 보면서 내 말을 듣고만 있었어. 근데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 사람 분명히 웃고 있었어."
"그리고 그 사람, 그냥 가버렸는데 몇 시간 뒤엔가 또 와서는 날 내려다 보면서 웃는 거야."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서 당황한 나를 보며 친구는 어색하게 웃었다.
"분명히 잘못 본 걸꺼야. 그치? 아마 머리를 다쳐서 헛걸 본 걸거야."
"...."
몸조리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병원을 나서며 나는 친구에게 내가 전해 들은 얘기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친구가 발견된 그 배수구와 연결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하수구에서 굶어죽은 사람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얘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