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보니깐 나이가 많아보이시겠지만 전 그저 94년생 20살 남자 오징어 입니다.
나이도 어린 것이 무슨 일들이 있어서 얘기하냐고 또 생각하시겠지만 그래도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요새 저의 과거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재밌어서 주위 친구들에게도 밝히고, 비록 익명이지만 여기에도 올려보려고해요.
일단 이건 저의 기억이 기반이기때문에 (들은 것, 본 것, 겪은 것 기준)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고 실제와 약간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ㅅ 있는한 최대한 사실만을 적어보도록 할께요.
음 이야기의 시작은 90년대 초반입니다. (저는 94년생이기에 여기는 들은 것 기준이기에 정확한 시간적 정보가 없네요) 제 아버지께서는 서울에 있는 중소기업에 다니시고 계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컴퓨터 관련 직종으로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사업은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가족 경제사정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결국 사업을 유지 하시지 못하시고 제가 초등학생이 되던 해 사업을 관두시게 되었고 저희집은 큰 빚을 지게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 어머니께서는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시고 집을 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저와 형 형제는 근처에 있는 친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고 원래 저희집은 빚을 갚기 위해 팔 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래도 빚은 남아있었고, 아버지께서는 최대한 빨리 직장을 구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할아버지께서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고 2달간의 짧은 투병생활을 갖고는 결국 임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할아버지께도 적지 않은 빚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저도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빚이 생겼는지, 구체적인 금액은 얼마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게. 또한 초등학교 1학년 생이였던 저에게 가족들이 알려줬을리 만무하고요) 하지만 어둠속에도 빛이 있듯 저희집에 두 가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첫번째는 저희 할머니의 노후준비 자금을 단순히 핏줄이라는 이유로 서슴 없이 내어주시는 숭고한 희생과 아버지께서 어렵게 작게나마 직업을 갖게 되셨다는 겁니다. 그 직업은 파주에 있는 작은 출판 공장이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를 위해 서울에스 파주 2시간 거리를 매일 왕복하시며 출퇴근 하시는 희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6년의 시간이 지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초등학교 1학년 5월 까지의 기억밖에 없는건 아닙니다. 초등학생 동안 아주 가끔씩 2~3달에 한번 꼴로 어머니께는 전화가 왔고 그 단 하루 동안 만큼은 할머니도 아버지도 저희를 어머니께 보내주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재결합 하는게 서로에게 좋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그렇게 하루 만나는 날이면 식당가서 밥도 사먹고 백화점을 들러서 옷도 사주시고 그랬습니다. (그당시 저희 가족의 형편상 옷을 살 수도 없었고, 지금도 외식이라는 것을 안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철부지였던 어린 전 그 하루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달콤함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고 어느날 할머니께서 심각한 표정으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저와 제 형(저보다 3살 많은 형이 있습니다.) 아주 어릴적에 들어놨던 적금식 보험(이게 맞나요? 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이 있었고 그 보험의 만기가 다가와서 보험료 환급을 받으러 가셨는데 저희 어머니께서 그걸 이미 예전에 해지시키고 꽤 많은양의 금액을 가져가셨다는 겁니다. 사실을 알게된 저희 가족은 어머니라는 존재에 무서움을 느낄정도로 환멸과 증오, 미움을 느꼈고 더이상 이사람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결정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제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공식적으로 어머니와 이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기존에 다니시던 중소기업에서 예전 직책 그대로 회사로 돌아오도록 도와 주셨고, 대신 아버지께서는 서울에있는 사무실이 아닌 울산에 있는 본사로 발령받게 되었습니다. 기존보다 더욱 수입이 늘어난 저희 가족은 그로부터 1년 뒤 모든 빚을 청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제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에 아버지 께서는 다시 서울에 있는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으셨고 지금까지 평화롭게 지낼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참고로 이렇게 평화롭게 살고있은 지금은 월 150에 4인 가족이 잘 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어떻게 조절할수 없는 가정사에대한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 개인적으로도 안좋은 일이 있었거든요.
제가 초등학생이 되고 새로운 환경에 신기해하고 적응하려던 때에 운 좋게도 같은 동네에 살던 애가 있어서 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가지 않아 뜬금없이 그 아이는 제게 싸움을 요구하였고, 한번도 싸움이란걸 해보지도, 보지도 못했던 저는 일방적으로 맞을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리고 며칠 가지 않아 교실에서 걔가 저에게 뭐라고 말을 했지만 수업에 집중하던 저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아이가 저에게 했던 말은 '너 내 꼬봉 할래?' 였습니다. 그걸 몰랐던 저는 그때부터 그아이의 무차별한 폭력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매일같이 이어지던 폭력에 결국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어진것은 폭력이 아닌 금품갈취였죠. 집에 있는 문화 상품권, 동전 등을 자신에게 주도록 강요하였고 주지 않았을 시에는 폭력으로 이어졌으며 주었을 때에만 폭력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자포자기 상태였던 저는 결국 계속 돈을 주게 되었고 이렇게 초등학교에서 지옥 같았던 2년이 지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도 학교는 지옥이였습니다. 신경과민 증상을 보였던 저는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설마 그 아이인가 하고 쉬도 때도 없이 돌아보았으며 잘 웃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금품 갈취는 더욱 심해져 동전이였던 대상에서 지폐로 심해졌고 폭력도 더더욱 심해졌으며 학교가 끝나도 집에 보내주지 않으며 강제로 못가게 놀이터나 자신의 집 골목길 등 붙잡아 두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저는 그당시 평소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4시~6시 였고 작은 보습학원을 다니던 저는 가족들에겐 친구들과 놀고왔다고 거짓말 할수밖에 없었으며 학원을 가지 않은 죄로 집에서도 혼나고 그랬습니다. 이때는 매일밤 눈감기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매일 아침 학교는 가기 싫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이 모든 건 정점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다행이도 저와 그 아이는 다른 반이 되었고 저는 그아이와 마주치기 싫어서 학교에서는 절대 화장실을 가지 않았고 수업이 그 아이의 반보다 일찍 끝나면 초등학교 건물에 쓰지 않는 지하실로 도망가 30분 씩 있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먼저 끝나지는 않았기에 그 아이가 먼저 끝나는 날이면 그.아이가 제가 있는 교실 문앞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었고 그날은 같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금품갈취는 만원짜리로 바뀌어 있었고 작은 소매업에서 절도를 강요하기도 하였으며 감금, 폭력은 일상이였습니다. 심할때는 각목으로도 맞기도 했었으니까요. (아 여기서 조금 수정을 하겠습니다. 아마 아버지께서 직장을 제가 초등학교 3~4학년 동안 파주의 출판 공장을 다니셨고, 5학년 부터 울산에서 다니신걸로 정정합니다. 제 초등학교때 기억과 충돌이 있네요) 그당시 아버지께서 해외 출장을 가실 기회가 생기셨고, 독일로 출장을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갔다 오시면서 면세점에서 저희 형제를 위해 선물로 swatch 시계 두개를 사오셨습니다. (아직도 갖고있을 만큼 소중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 시계를 그 아이에게 들켜버렸고 저는 결국 그 시계를 뺏기게 되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에 정신을 차리게 된 저는 집에 울면서 들어왔고 형에게 그동안의 일을 상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결국 그 일은 모두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저는 교장실로 가서 교장 선생님께도 모든 일을 직접 설명해드렸고 위로를 듣게 되었으며 그 아이에게 시계를 돌려받으며 그 아이의 부모님께 사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듣기로는 총 50만원 정도 그 아이에게 주었다고 하더군요. 결국 이렇게 지옥 같았던 초등학교에서의 폭력은 끝을 맺게되었습니다.
이러한 슬픈 일들을 뒤로 하고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매우 좋게 지낼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 아이러니한 상황은 그 아이는 이제 성격을 조금 고치게 되었고 아직도 저와 만난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그 아이를 만나는게 속편하진 않고요
지금까지 저의 과거였습니다. 기분 좋은 글도 아니였고 그다지 짧은 글도 아니지만 읽어주신 분들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 지금은 그래도 상당히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이제 그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