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지 두 달 됐습니다.
어디다가도 제 연애의 과정을 남겨두지는 못했는데..
여긴 익명게시판이기도 하고, 그 사람이 여길 모르는걸 알고 있으니까.
여기다가 그냥 써볼래요.
개차반 같은 인생이고, 잉여라는 말로도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한 때는 정말 열심히 살았음을. 그리고 정말 열심히 사랑했음을 남겨두고 싶어요.
물론. 모두 다 열심히 사랑했고, 사랑하고 계시지만요.
그리고 엄청 길게 쓸거에요. 나름대로는 긴 이야기니까요.
스물여섯이라는 나이 되도록 날 좋아하는 사람 하나 없어서 그냥 이렇게 살게 되려나보다 하고 있었는데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그런 일이 제게도 생겼더라구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했죠.
사실 제가 고백했어야 했는데, 워낙 소심하다보니 마음문을 잘 못열어서 결국 고백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다들 그랬겠지만 참 열심히 연애했어요.
만날 때마다 스케줄 다 고려해서 장소정하고. 어디갈지 동선 다 짜는건 기본이죠.
특히 식당같은 경우는 A,B,C 세 개 정도는 정해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만나기 전날에는 설레니까 잠도 잘 안오기도 하고,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알아서 찾게 되더라구요.
데이트를 하고 나서도 너무 좋으니까 30분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카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해서 차를 빌려서 제가 직접 집에 데려다주기도 했구요.
대중교통으로 집에 데려다주면 밤 열한시쯤 되는데 차가 없던 제가 그렇게 데려다주고 나면
저는 스마트폰 어플 실시간으로 돌려가면서 지하철 타고, 새벽 광역버스타고..
그걸로도 집근처까지 못가서 30분동안 걸어서 집에 들어가면 새벽 두시쯤 되고 그랬어요.
딱 30분, 길어봐야 한 시간 얼굴 더 보고, 얘기 좀 더 하고 싶어서 저는 세시간을 걸려 집에 갔네요.
반면 그 사람이 저희 동네까지 온다고 하면 저는 극구 말렸죠.
고생할거 뻔히 보이는데. 하면 내가 했지.
그 사람이 고생하는게 싫어서 늘 제가 그 사람 동네로 가거나 서울에서 만났죠.
학생 신분에 돈도 못버는 처지였는데.. 집에서 받는 용돈으로는 데이트하는데 부족해서
부모님도 모르게, 그 사람도 모르게 단기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어요.
단기 아르바이트 한 내역들 제 스마트폰에 적어놨는데..
시간 날 때, 돈이 너무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하루, 이틀씩 했는데도 백만원이 넘어가네요.
아. 한번은 어린이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한 꼬맹이가 다른 애들을 때리고, 싸움 거는걸 제가 붙잡고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얘가 화가 엄청 나서는 제 팔을 막 물어뜯었은거에요;;
그 때 물어뜯은 부분은 상처가 돼서 지금도 흉터로 남아있는데..
전 그 때 치료비로 3만원 더 받았다고, 이걸로 밥 한끼는 더 먹겠다고 좋아했죠.
나중에 그 사람이 제 팔을 보고 왜 이러냐고 물은 적은 있지만. 그냥 별거 아니라고 둘러댔죠.
하지만 이렇게 번 돈. 그 사람한테 쓰면서 전혀 아깝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요.
1주년 이벤트로 이것저것해서 그동안 모아둔 알바비를 죄다 털었는데
그 사람이 너무너무 좋아하는 그 모습보니까 그걸로 다 풀리더라구요.
좀 장거리여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요. 일주일에 많아야 두 번.
그래서 대신 연락을 자주 했죠. 저는 그 사람 잠들고 나서 잠이 들었는데요.
잔다고 인사를 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나면 그 사람한테 화면에 꽉 들어차도록 메세지를 보냈어요.
오늘은 내가 어땠고, 덕분에 어땠고 더 많이 사랑하는 하루가 되었다. 늘 고맙고 사랑한다. 이런 식으로요.
이건 진짜 제 하루일과에서 정말 정말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술도 잘 못마시는데 엠티가서 술 마시고 자다가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는
쭈그리고 앉아서 메세지 보내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저의 메세지를 본다는 말을 듣고 나니까 도저히 건너 뛸 수가 없더라구요.
전화를 많이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제가 전화 울렁증이 있어서
사귀기 전부터 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보다는 메신저를 주로 이용했어요.
그래도 메세지는 아무래도 디지털이니까. 가끔 아날로그 기분 내주고 싶어서 손편지도 제법 써줬어요.
짤막한 손편지 몰래 써서 가방에 숨겨넣기도 했었는데, 뒤늦게 보고 좋아해주면 저는 기분이 더 좋았죠.
물론 저도 엄청 많이 받았어요.
첫째로 긍정! 그 사람은 진짜 긍정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는데요. 저는 반면 시니컬의 왕이었거든요.
근데 그 사람하고 같이 함께하다 보니까 저도 저절로 긍정이 생기고, 그 사람도 저에게 긍정을 나눠주고.
그러다보니까 연애하던 그 때 만큼은 진짜 뭘 해도 착착 다 되더라구요.
도로를 달리는데 빨간불에 한 번도 안걸리고 초록불로 쓩쓩달려주는 느낌이었어요.
둘째로 건강! 저 운동 진짜 싫어하는데, 그 사람은 매일 운동을 안하면 가시가 돋는대요.
그래서 저는 사귀기 시작할 때만 해도 90킬로에 육박하는 돼지였는데.. 함께하면서 10킬로그램을 쭉 뺐어요
살 빠지니까 혈압도 140/100에서 100/60까지 막 내려가고. 사람들도 보기 좋아졌다고 그러고.
그래서 더 빼는 중이었지만... 뭐 암튼 엄청 건강해졌죠!
셋째로 성적! 학교 다니면서 대외활동도 하고, 연애도 해서 학점 완전 바닥칠줄 알았는데..
시험기간엔 같이 북카페 같은데 가서 열심히 공부에 집중해서 그랬는지
장학금을 탈 정도는 아니었지만 제가 대학교 입학한 이후로 성적이 제일 잘 나왔더라구요.
깜짝 놀래서 고맙다고 하려고 했는데.. 당시 사정상 그 사람은 학점이 너무 안나와서 말 못하고 접어뒀네요.
다른것도 참 많이 배웠어요. 그 사람은 자신의 목표가 분명했고,
그 목표를 위해 정말 열심히 준비해왔던 결실을 맺으려고 하던 찰나에 저와 연애한거거든요.
그래서 저도 '아 이 사람하고 함께 하면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매일매일 했었고, 많은 면들이 달라졌고, 많은 부분을 배워갔죠.
그리고 개념도 넘치는 착한 성격이어서.
매번 밥값이며 커피값이며 서로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점원 앞에서 옥신각신하고.
밥먹으러 가서 메뉴 나오면 서로 더 많이 먹으라고. 왜 조금 먹냐고 그런 얘기들은 꼭 했죠.
그랬는데.. 1년 하고 정확히 두달 째 되던 날. 이별통보를 받았어요.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저희 가족이 여자친구를 좋아하지 않고 있는 것 처럼 오해를 하게 만들었어요.
제가 행동을 그렇게 했기 때문인데요.
제가 연애 하기 전 동생이 여자친구를 사귈 때.
제가 보기엔 아무 문제 없을 사소한 단점들 때문에 가족들이 동생의 여자친구를 싫어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에요.
동생은 결국 군입대와 함께 헤어지게 됐지만. 저 역시 그런 모습을 반복하기는 싫었거든요.
근데 제가 많이 모자라다보니 최대한 집에 이성과의 만남이나 관계를 숨기는 쪽으로 대응하게 되었고,
그게 결국 그 사람에게는 헤어지려고 마음을 먹게 되는 계기가 된거지요.
지금 너무 후회하고 있어요.
하루도 꿈을 안꾸고 잠든 날이 없고, 잠은 점점 깊게 들지를 못해서 새벽에 나는 작은 소리에도 깨요.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도 늘 같은날이고, 의욕이 없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힘내라는 소리를 정말 자주 들어요.
매일 울지 않는 날이 없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와 죄책감에 그 울음은 더 커지죠.
얼굴엔 웃음기도 없고, 고개들고 걸으면 혹시 그 사람 닮은 뒷모습이라도 보고 울컥할까봐 땅만 보고 걷습니다.
헤어지고 나서는 그 동안에 좋았던, 행복했던 세상이 다 돌아서는 것 같더라구요.
빚을 내서 행복한 삶을 샀는데, 그게 빚이 아니라 빛이었다고 제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헤어지고 정확히 일주일 뒤부터 학생으로서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취업을 위해 새벽 네시, 다섯시까지 자소서를 쓰는데..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 그리고 가장 열심히 살았던 순간을 이야기해야 하다보니
자소서를 쓰면서도 자꾸만 그 사람과의 행복한 시간으로 빨려들어가서 한참을 울어야했어요.
맨 몸으로 불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이었죠. 그나마도 붙었으면 웃음이라도 날텐데..
헤어지고 난 후 마냥 주저앉아서 살아온 것은 아니에요.
마지막 학기지만 12학점을 듣기 위해 매일 학교에 가고.
복수전공을 하고 있어서 1전공을 위한 졸업논문과 2전공을 위한 졸업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취업준비도 하고 있구요.
취미 활동으로 술을 마시게 됐습니다.
집에서는 맥주 한 캔 마시는 일 없었는데.. 뭔가 하고 싶지만 돈도 없고, 밖에 나가기도 뭐하다보니
500CC 맥주 한 캔 사서 간단한 안주랑 먹는게 그나마 제일 위안이 되는 일이 됐거든요.
그렇지만 이래도 저래도. 매일 괜찮아지는 듯 하다가도. 그건 잠시뿐.
생각나지 않는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고 하고. 시간이 약이되어 다 잊혀질거라고 했지만.
두 달 전부터 들어온 그 얘기는 아직도 제게는 믿을 수 없는 얘기일 뿐이에요.
저는 졸업을 유예하고, 놓친 취업의 기회를 다시 잡기 위해 마음을 먹었어요.
취직이 되면 그나마 내가 좀 달라져보이니까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너를 만나서 서로 사랑하는데 내 운을 다 쓴 것 같다'라는 말.
그 사람에게만 한 줄 알았는데, 어느틈에 세상이 이 말을 들었던 건지.
헤어진 그 사람을 다시 붙잡는데 쓸 수 있는 운은 어디에도 남겨두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이별을 유예하고, 놓친 사랑의 기회를 다시 잡기 위해 마음을 먹고 싶어요.
하지만...
마냥 기다리는건 바보 같은 일이니 일단 약이 된다는 그 시간. 그걸 믿어보려고 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도 지금처럼 그 사람 아닌 누구도 옆에 두지 못하게 된다면
그 땐 그 사람이 좋아했던 저를 그대로 두고,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말한 그 이유. 그것도 고쳐서 더 멋있고 좋은 사람이 되어서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요.
정말 너무 너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