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보아 언니를 보면 가수가 되고 싶고, 사라 슈즈(미국·2002년 나가노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보면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따야 하고 음, 수학 방정식을 풀 때는 너무 재밌어서 수학자도 되고 싶고….”
지난 8일 과천시민회관내 아이스링크장. 이에 앞서 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차 주니어그랑프리피겨대회에서 한국 피겨사상 처음으로 정상에 오른 ‘은반의 요정’ 김연아(14·경기 군포시 도장중 2년)는 뭐가 되고 싶냐고 묻자 신이 난 듯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꼬마 숙녀의 소원은 하나다.
“친구들과 어울려 칠판에 수학 방정식도 풀고 싶고 방과후엔 이리저리 몰려 다니며 떡볶이랑 피자도 먹고 싶어요.”
김연아의 훈련시간은 야간에 몰려 있다. 피겨 전용 스케이트장이 없기 때문에 야간에만 선수들에게 개방하는 일반 아이스링크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후 8시에 시작된 훈련은 밤 12시를 훌쩍 넘겨서야 끝난다. 따라서 매일같이 고된 야간 훈련을 소화해낸 이제 갓 14살을 넘긴 소녀는 친구들처럼 정규수업을 받을 여력이 없다.
중간·기말 등 시험기간에만 학교에 나간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지난 7월 캐나다로 전지훈련을 간 탓에 기말고사를 빼 먹었을 땐 남몰래 울기도 했다.
그래도 김연아의 성적은 ‘톱 클래스’다. “지난 봄 중간고사 때 반 2등 ‘먹었어요’. 몇 등을 한지 저도 몰랐는데 친구들한테 들었지 뭐예요.” 경기나 훈련이 없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책과 씨름한다는 그는 ‘운동선수=공부를 못한다’는 방정식에 반기를 들었다.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외국 선수들처럼 공부도 잘 하면서 운동도 잘 하는 멋진 세계 챔피언이 되고 싶어요.”
김연아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이 손사래를 치는 수학. 수학만큼 에누리없이 ‘똑’하고 떨어지는 깔끔한 과목이 없다는 게 그가 선호하는 이유다.
이번 대회에서 완벽한 올트리플점프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모두 1위를 석권한 ‘제2의 미셸 콴’ 김연아가 점프를 제일 먼저 시도한 때는 초등학교 1학년.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던 그 당시부터 유독 점프에 소질을 보였다. 잦은 실수를 유발하는 점프는 가장 큰 감점요인이자 감점을 반전시킬 수 있는 최대 기술. 김연아는 한국선수 중 유일하게 5가지 난이도의 올트리플점프를 소화할 수 있다. 한국선수들이 각종 국제대회에서 중위권에 머무는 이유도 고난도 점프를 소화하지 못해서다.
요즘엔 연말에 열리는 8차 최종 그랑프리 대회를 위해 아껴 놓았던 ‘3+3 콤비네이션 트리플 점프’라는 비장의 무기를 준비 중이다. 말 그대로 트리플 점프를 2번 연달아 선보인다. 현재 70%까지 소화한 상태. 이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선수는 그를 포함한 해외 시니어·주니어를 통틀어 단 5명에 불과하단다.
점프가 주무기인 반면 약점은 유연성과 표정연기. “제가 공주과가 아니라서 예쁜 척하는 표정을 못 짓겠어요(웃음). 선생님은 제가 더 나이가 들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시는데 워낙 쑥스러움을 잘 타서요.” 고등학생 언니 하나를 둔 막내 김연아는 울보인 자신이 가끔씩 밉다고 했다.
그는 “힘들 때마다 엄마한테 달려가 스케이트 안타겠다고 울면서 떼를 쓴다”며 “제일 고생하는 엄마한테 항상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이번처럼 계속 1등만 하면 엄마가 연아한테 속상했던 것 잊겠죠?” 아이스링크로 걸음을 재촉하던 김연아가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글 심희정·사진 김문석기자〉 경향신문 2004.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