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문재인이 동영상으로 출마선언문을 발표하지 않았음? 다들 봤지? 꽤 괜찮았는데. 이번 동영상으로 릴리즈된 출마 선언은 참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음. 이번엔 오피셜 이야기가 포함됨.
1.
우연한 기회에 캠프 사람을 만나게 되었음. 나도 직업이 컨텐츠 기획하는 사람인지라, 한 두다리 거치면 캠프쪽의 컨텐츠 기획자와 만날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번에 어쨌든 만나게 되었음. 좀 얘기가 새나가지만, 문재인 사설 홍보팀의 공식 메일로 온갖 이상한 곳에서 연락이 옴. 박근혜 전 지지자들의 욕하는 메일은 기본이고, 좀 웃긴건 타 캠프에서도 연락이 온다는거임. 아니 누가보더라도 덕질로 하는건데, 자기네 후보 홍보 해달라고 뻔뻔하게 연락 오는건 좀 이해가 안가지만... 어쨌든, 다른 캠프에서도 알고 있을 정도인데 더문캠에서도 당연히 문사홍은 알고 있겠지. 그런 이유로 해서 캠프쪽 컨텐츠 기획자와 직접 만나게 되었음
2. 캠프쪽 컨텐츠 기획자는 탁현민 교수였고, 나는 문재인 북콘서트를 워낙 좋게 봤던지라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맥주 한잔 시작하면서 그냥 궁금했던 얘기들을 물어보았음. 있잖아, 문재인 어떤 사람이냐, 많이 능글능글해졌던데 진짜냐, 눈 꿈뻑꿈뻑을 스탭들한테도 해주냐, 문재인 술 잘 마시냐 뭐 이런질문. 소녀시대 매니저 만나서 태연이 이뻐요 유리가 이뻐요 뭐 이런거 물어보는 듯 편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나한테 질문을 하더라구.
3. '출마 선언은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라는게 탁교수가 뜬금없이 던진 질문임. 산은 산이고 물은 셀프로다 같은 그런 선문답 느낌은 났지만, 언뜻 봐도 농담 즐겨 하는 사람같지는 않아서, 바로 진지 모드로 들어가서 내 나름의 답변은 했지. 첫째, 세의 과시. 둘째, 이제 착한척은 접고 본격 전투의 선언. 셋째, 지지자들에게 그리고 잠재적 지지자들에게 어젠다를 알림. 이 세가지가 출마선언의 목적이라고 나는 생각했으니, 나름 답변을 해주었음.
4. 다른데서 '친문패권'이니 '대세론에 빠진 문재인'이니 라는 말을 하면 솔직히 나는 반가워 죽겠음. 엑소가 2013년 여름에 빵 뜰때 '으르렁'이라는 곡이 뮤비와 안무와 곡이 맞아떨어지면서 흐름을 타자, 여기 저기서 왠지 으르렁 모르면 유행에 뒤쳐지는 사람이 되는것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음. 그래서, 너도 나도 관심갖고 듣고 하다보니 실제로 좋았거든, 그래서 그게 피드백 되어 대세가 굳혀지는 상황. 근데, 지금 완전 문재인이 대세임. 문모닝 문애프터눈 문이브닝도 부족해서 지금은 문 지지자(라는 실체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까지 문모닝 당하는 상황. 이런 대세를 몰아 출마선언을 하면 완전 대세를 굳히게 되는 상황임.
5. 헌정사상 이렇게 한명의 정치인이 압도적으로 대세론에 빠진건 처음일거다. 이럴때야 말로 고척돔이나 잠실 주경기장 빌려놓고 세를 완전히 과시해야 할 타이밍이지. 사람 한 2만명 모아넣고, 떠나갈듯한 환호성에, 노란색 풍선에, 문재인 연호에, 그리고 노무현의 "조선건국 600년 이래로"로 시작되는 지금껏 기억되고 있는, 그것을 뛰어넘는 유려한 문장의 가슴벅찬 연설. 과호흡으로 몇명 앰뷸런스에 실려가고 팬들이 막 머리 쥐어뜯고, 지나가는 문재인 옷깃이라도 한번 건드려보려고 팬들이 몰리니까 경호팀 한 200명이 호위하면서 지나가는. 그러면 어르신분들도 '어허! 저사람 저러니까 좀 대통령같구먼' 뭐 이렇게 생각하시겠지. 게다가 탁교수가 평화의 전당하고 벡스코에서 북콘서트도 잘 했음. 3사 저녁 뉴스에 20초 꼭지로만 소개돼도 이건 대세를 만천하에 과시하게 되겠지. 현장에 없던 아직 지지를 결심하지 못했던 시청자들도 뉴스를 보면서 '아, 문재인이 진짜 대세구나'라며 엑소가 밟아온 피드백을 통한 대세의 확인, 그리고 굳히기. 그런것을 가능케 하는 출마 선언.
6. 혹시 폴매카트니 공연 가보셨는지. 잠실 주경기장을 꽉 채운 그 사람들의 에너지가 주는 고양감. 폴 경의 팬들도 하나가 되어서 렛잇비였나 헤이쥬드였나 그 곡때 전부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떼창을 했지. 객석에 앉아서 공연장 풀샷을 보는데 정말 숨이 막히는 광경이었지. 폴 매카트니도 그 광경에 감동해서 고령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원래 다 안하는 풀 셋리스트를 다 썼지. 공연을 끝까지 관람한 관객들은 하나의 동질감이 생겨, 저 역사의 현장에 우리는 함께 있었다. 그리고 이 벅찬 감동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게 되지.
7. 솔직히 생각해보셈. 북콘서트 유료로 하고 10분만에 5000명 매진시킬 수 있는 정치인이 누가 있나. 홍? 김? 안? 손? 유? 남? 내가 운좋게도 문재인 북콘서트 두번 다 가서 아는데, 지금 추세의 문재인이면 정말 잠실 메인 스타디움에도 사람 꽉 채울 수 있음. 그 앞에서 세를 과시하면서 선동적인 연설을 한다고 생각을 해봐. 그리고 그 연설이 우리나라 정치역사의 한 획을 긋는다고 생각해봐. 이것은 우리 진영에는 하나의 일대 사건이 될것이고, 아침저녁으로 문모닝 문이브닝 여쭈던 상대 진영에게는 절망의 확인이 될거야 '아, 문재인이 됐구나. 절대로 이길수 없구나'라고... 멋지지 않아? 상상만 해도 감동의 소름이 쫙 돋는다.
8. 근데 말이지, 이미 봐서 알겠지만. 그렇게 안했다.
이 자명한 일생 일대의 찬스를 보내버렸어.
9. 탁교수가 그 질문을 한 이유는, 당연히 이 얘기를 문재인 후보에게 설명했는데, 안된다고 단칼에 잘랐단다. 모든 정치인이 꿈꾸는 최고의 출마 선언을 바로 까버렸음. 그래서 본인도 답답했는지 나에게 슬쩍 얘기를 꺼낸것. 이유가 뭔지 탁교수에게 물어보니, 문후보 왈 "본인은 어디까지나 정권교체의 '도구'이다. 그 메시지를 부각시켜달라"라고
10. 아오 시발. 도구고 나발이고 지금 확 대세를 선언해서 저쪽을 완전 밟아버려도 시원찮을 판에 가난한 선비 곁불쬐는 소리를 하고 계시니 듣기만 해도 고구마 100개 먹은듯한 답답함이 올라오더라. 이래저래 미담 파다보면 답답한 사람일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정도로 꽉 막힌 양반일줄은 꿈에도 몰랐음. 그래서 너무 얼척이 없어서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이요-라고 물었더니, 후보자 본인도 모르시겠단다 일단 내세우는듯한 과시형 출마선언은 하지 말라, 탁교수가 알아서 하라. 딱 오더 내리고 끝. 이거 아주 답답한 상황이다. 저번에 이 사람이 주위 사람 부려먹을 줄 안다고 글 쓰긴 했지만, 이거 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머리 쥐어뜯을 일이지. 그렇게 동병상련 하면서 탁교수랑 맥주를 한입씩 털어넣고 있었음.
11. 근데 갑자기 탁현민 교수가 얘기 하더라. 문재인 후보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고. 저번 부산 북콘서트때 문재인이 '제가 저번에 잘해서 대통령이 되었다면 이 추운 날씨에 국민 여러분들이 촛불들고 광장에 나오시지 않았을거 아니냐고, 그래서 본인도 촛불집회 개근을 했다고'말을 했었는데, 그거 정치적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진짜 그렇게 생각한단다. 에구 답답한 양반... 그리고 탁교수가 말을 잇기를 진짜로 그 양반은 촛불로 대표되는 국민의 단합된 마음이, 탄핵까지 이끌고 왔다고 생각하는것임. 그러니 정권 교체가 눈앞에 있는 이 순간에 자기의 역할은 거의 밥숟가락 얹은거라고 생각한다는거임. 이야기를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순전히 이건 내 추측인데 그런 상황에서 그의 출마 선언은, 보통의 출마 선언이 아니라 이 험난하고 먼 길을 추운데서 고생하면서 정권교체의 바탕을 만들어준 국민에 대한 어떤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었던것인듯 함.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 무리한 요구가 이해가 가지.
13. 결론은, 우리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대통령 후보를 보고 있다는거다. 노무현도 새로웠었다. 틀에 박힌 출마 선언이 아니었어. 사실 노무현 역시 '와~'하는 출마선언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것 같아. 그래서 정치권에서 언론에서, 이 사람이 출마선언을 왜 안하나 라고 의아해 할때 노무현은 '무슨 소리냐, 나는 출마선언을 벌써 여러번 했다'라고 말하지. 그의 말을 따오자면 이래.
"그동안 제가 여러 차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겠다고 그렇게 선언을 했는데 왜... 아직 그 공식이 아니라고 보는가?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공식 선언하냐고 자꾸 묻길래 공식한 공식이 어딨냐고 했더니, 공식으로 해야 신문에 써 준대요. 그래서 오늘 제 오늘의 이 얘기를 대통령후보경선에 나서는 공식선언으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이었어. 그냥 열심히 일해서 나라좀 바꿔보렵니다,라는 그의 평소 말이 출마 선언이었거든 노무현에게 있어서는.
14.
그리고 나온 국민 출마 선언. 문재인, 아니. 자랑스러운 더불어 민주당이 공천하는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공식 출마선언을 한 문재인 '예비후보'는 이렇게 멋지게 국민들 앞에 선언을 했다. 이 출마 선언문의 메시지는 이거야. 내가 오래동안 문재인을 덕질해왔으니 이건 확실해.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싶은 국민 여러분의 노고와 마음이 적폐 세력을 법정에 세우고, 대통령을 탄핵시켰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노고에 비하자면 저 문재인은 한것이 없으나 대의 민주주의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 국민들이 바라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도구'가 되어 사용되겠습니다'라는
15.
모르겠다.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사에 이 출마 선언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그럴듯한 미사여구와 확신에 찬 연설, 멋진 공약의 나열이라는- 세를 과시하는것으로 출마를 국민에게 알리고 첫 단추를 잘꿰어 이슈를 끌어내는 기존의 출마선언.
아니면, 유치한 말이지만 국민의 부름, 시대의 요청에 따라 이곳까지 불려나온 문재인(혹은 미래의 훌륭한 정치인)이 국민의 뜻을 따라 '도구'로서 활용받는. 대의 민주주의, 공화정치의 이상적인 구현을 꿈꾸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의 출마 선언으로서 다른 모든 정치인들이 따라하게 되는 새로운 출마선언이 될지.
그래도 말야. 멋지지 않아? 출마선언을 국민이 했어.
아마 세계 최초일거라고.
문재인, 아니 문재인 예비 후보 진짜 멋지다.
ps; 링크 건 영상은 절치부심하면서 짜낸듯한 국민 출마선언 해외편. 국내편은 스탭들이 가서 촬영한듯 하고, 해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어떻게든 참여하고 싶었던거야. 셀카봉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다른 사람이 핸드폰으로 찍어준것 같은것도 있지. 오디오도 좋지 않고 화질도 좀 그렇지만. 나는 세개의 출마 선언문중에 이게 제일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