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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과 상단의 사진은 하등의 관계가 없으며 내용은 모두 창작의산물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배우 이엘씨는 노력하는 연기자로 본문과 무관합니다. 그러니 필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그녀와 나 그리고 S스캔들...
1. 씨발스러운 날들... [씨발] 저는 조용히 뇌까렸습니다. 이해하세요.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저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그런 모습을 보고 누가 참을 수 있답디까? 원래 그런 거잖아요... 사랑이란 거...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아파하는 거지같은 게임...]
“아아아.... 아아... 아아아...” “하아... 그래 더! 그래! 옳지... 착한 아이구나 너... 흐흐흐” “아아! 아! 아! 아...”
다분히 의례적인 차가운 교성과 음욕에 불타는 더럽고 뜨거운 목소리가 교차합니다. 호텔 조명답지 않은 진홍색 불빛이 저의 분노를 데웠고, 신경을 거슬리는 침대의 삐걱거림은 쉼 없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참혹한 슬픔과 인내는 왜 늘 더 많이 사랑하는 이의 몫일까요? 왜!
[내가 그녀를 사랑해서?]
하지만 어쩝니까? 그게 사실인걸요... 저기 저 벌거벗은 여자가... 너무도 아름다운 눈동자와 삼단 같은 머릿결을 가진 눈처럼 하얀 저 여자가... 다른 남자의 몸뚱이 아래 깔려 있는 저 여자가! 바로 제가 사랑하는 그녀니까요...
축 늘어진 뱃살과 눈 밑 깊이 검버섯이 핀 두꺼비 같은 늙은이가 웃습니다. 그의 주름진 손가락이 그녀의 젖무덤을 어루만집니다. 활처럼 휜 허리를 끌어안습니다. 그 냄새나는 입으로 그녀의 입술을 탐합니다.
보는 것조차 고역이고, 듣는 것조차 고통이건만, 카메라 렌즈와 마이크는 현장의 그 참담한 모습을 저에게 고스란히 전해 줍니다. 그녀의 등 뒤에 타고 흐르는 땀방울 하나, 고통에 못 이겨 내뱉는 신음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온전히 전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것들을 부수어버려, 못 보고, 못 듣는 것이 더 나으련만, 저에겐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카메라 렌즈에 비치는 그 잔인한 영상이 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버려도, 그저 참을 수 밖에 없는 이 현실이 너무도 슬플 뿐입니다.
[왜 전 하필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그만하라구요? 너무 힘든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구요? 어째서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 여자를 왜 사랑하냐구요? 질문은 많아도 답은 하납니다.
[그녀가 그녀라서...]
그냥 거기에 그녀가 있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이 사랑이란 감정... 되게 웃긴 게 그거 아니에요? 줄 때는 별거 아닌데, 다시 가져오려면... 죽도록 힘들어 해도... 도무지... 도무지 안 된 다는 거... 그녀는 제게 그런 여자였습니다. 마치 원래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는 운명 같은... 사랑... 하지만 그녀에게 전 보잘 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제가 그녀 곁에 있든, 그렇지 않든 그녀는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뭐 약간은 아쉬워할 수도 있겠지만, 금방 또 새로운 저를 찾겠죠. 전 잊혀 질 거구요. 그녀에게 전 겨우 그런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소모품 같은 존재... 하지만 어떡하겠어요. 세상의 그 누가 받은 만큼만 사랑한답디까? 그런 건 사랑 아녜요... 받은 게 없어도 주고 싶은 게 사랑이지...
[어차피 이 사랑은 처음부터 저 혼자 시작한 겁니다. 그녀의 동의와 상관없이...]
“하아아아!!”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위에 올라 탄 늙은 두꺼비의 입이 탄식을 쏟아냅니다. 다행히 오늘은 지난번보다 더 빨리 끝났네요. 38초... 2주일 전만해도 50초는 버텼는데... 힘을 다 쏟아낸 듯, 축 늘어진 두꺼비의 등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팔순도 넘었다죠? 노인네 욕심도 많지... 손주도 있으면서 딸보다 어린 그녀에게 그러고 싶을까? 하긴 인터넷에서 본 말인데 남자들은 밥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그 짓을 한다더군요. 그의 주름진 손이 몇 가닥 남지 않은 자신의 머리칼을 훑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그의 아들도 몇 달 전 똑같은 행동을 했었던 것 같은데...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옛 말은 틀린 게 없습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이마위에 절정의 나른함이 번지고 두꺼비는 조용히 돌아누우며 말했습니다.
“미... 미안해.. 너... 너무 빨랐지?”
약간의 애처로움과 미안함이 묻어납니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누우며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아뇨... 그 편이 전 더... 아! 담배 피워도 되죠?” “으응... 저... 저기... 아... 아쉬우면 하... 한 번 더 할까?”
팔순 늙은이가 마지막 남은 사내로서의 오기를 발동합니다. 끔찍이 싫은 소리였지만 전 마음속 깊이 [제발 너의 말 대로 그러하기를] 고대해 봅니다. 늙은 두꺼비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 위에서 지분거립니다. 저렇게 두꺼비가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는 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지만, 장담컨대... 한 번 더 하면, 저 늙은 두꺼비는 배를 까뒤집고 죽을 겁니다. 복상사(腹上死)라고 하죠? 말은 그렇게해도 그건 그냥 사내의 마지막 남은 오기이자 오만입니다. 그는 두꺼비이긴 해도 자신의 분수와 주제를 압니다. 그게 그를 그 자리에 있게 만든 원동력이죠.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말합니다.
“할 수 있겠어요?”
핀잔 섞인 무시가 두꺼비의 가슴팍에 꽂힙니다. 사내의 한 가닥 자존심이 짓밟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음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축 늘어진 역전의 용사는 노병이 되었습니다. 죽진 않았지만 이젠 사라질 때입니다. 두꺼비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약간의 언짢음이 느껴지네요. 그녀가 조금만 더 싹싹했다면, 더 많은 것을 얻었을 텐데... 언제부터였을까요? 약간은 자포자기한 그녀... 요즘들어 날 선 말들을 자주 내뱉습니다. 원래부터 저렇진 않았는데... 뭐... 듣는 저야 톡 쏘는 사이다처럼 후련했지만요.
“다... 다음에! 다음엔 내가 제대로 보여 줄게! 대만에서 귀한 물개를 몇 마리 공수해놨어... 흐흐흐 2주만 기다려”
괜한 말로 자신의 자존심을 살려 보려 애쓰는 늙은 수컷의 비애...
“또요?” “또 봐야지 그럼! 김 실장이 얘기 안 했어? 격주로... 총 4번” “삼세번이 마지막이라고 분명...” “난 4번이라고 했는데, 전달이 안됐나? 3+1 몰라? 왜 싫어? 흐흐흐 싫음 안 해도 돼.. 너 말고도 나를 만나고 싶어 몸이 닳은 아이들은 많으니...”
대형마트 유제품 코너도 아닌데... 뭣 같은 3+1과 탐욕스러운 미소가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팝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김 실장은 분명 3번이라고 했습니다. [욕심 많은 노인네니까, 딱 삼세번만 가자] 그래서 그녀도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왔구요. 헌데 지금의 이 엿 같은 기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그녀는 철저한 을이고 그들은 말 한마디가 법인 이 시대의 갑 오브 갑들 이시니까요.
“같이 샤워할까?” “아니요” “그래? 그럼 난 먼저 좀 씻을께... 늙은 마누라가 귀는 점점 먹어 가는데... 어째 후각은 날이 갈수록 좋아져... 젠장! 향수 냄새에 어찌나 민감한지... 망할 여편네... 죽지도 않고...”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이 누군지 두꺼비는 잘 모르는 듯 보였습니다. 두꺼비는 싱긋 웃으며 아직 벌거숭이 상태인 그녀의 둔부를 찰싹 때립니다. 토악질이 날 것 같은 윙크, 귓구멍을 후벼 파버리고 싶게 만드는 콧노래... 그녀가 이를 악 뭅니다.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광고를 따내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 뒤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저 먼저 가볼게요.”
2. 그녀의 눈동자 속엔 별이 산다. 밤바람이 차가운지 그녀가 옷깃을 쭈뼛하게 세웁니다. 추운지 손바닥 사이로 입김을 불어 넣어보지만 거센 바람 앞에선 흔적도 없습니다. 아직 차가 없는 그녀... 남 보이기 민망하다는 이유로 이런 날엔 매니저도 일찍 집으로 보냅니다. 길가로 나와 택시를 부르는 그녀, 보통 새벽녘의 택시는 돈이 되지 않는 손님은 잘 태우지 않지만 그녀는 예욉니다. 너무 예쁘거든요. 지나가던 택시들은 그녀만 보면 서로 태워가려 애씁니다. 그리곤 즐거운 눈으로 룸미러를 통해 엿보죠. 때론 그들은 돈보다 이런 눈요깃거리를 찾고 있는 듯 보일 때도 있습니다. 길고 예쁜 두 다리, 적당히 존재감 있는 가슴, 기사님의 눈동자가 시끄럽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들은 평생을 봐도 못 볼 겁니다. 그녀의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녀의 암적갈색 눈동자가 얼마나 깊고 찬란한 색을 띄고 있는지 말입니다. 단언컨대, 세상의 모든 별들을 모아놓아도 그녀의 눈동자보다 아름다울 순 없습니다. 뭐... 의느님이 축복하신 코야 조금 아쉽지만, 뭐 어때요 오똑하면 됐잖아요? 그 아래에 하얀 피부와 대비되어 더 매혹적인 붉은 입술도 도톰하게 자리잡고 있구요... 나에게든 누구에게든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 그녀의 삼단같이 긴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릴 때면, 누구라도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그녀만이 가진 마법 같은 매력... 이러니 어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저도 택시 기사님도... 죄가 없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녀... 오늘도 그녀는 저와 눈을 맞춥니다. 요즘 그녀는 저와 함께하는 것이 유일한 낙입니다. 고된 찰영장에서의 피로도 잊은 채 저와 많은 것을 봅니다. 그럴때면 너무 행복해서 저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습니다. 12평 원룸 오피스텔, 좁은 공간일지언정 단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녀의 손길이 닿는 것이 행복합니다. 이건 약간 자랑인데... 종종 그녀의 입술이 제게 닿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정말 전신에 수십볼트의 전기가 흐르듯 짜릿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저를 사랑해서 곁에 두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단 한 번도 그녀의 사랑인 적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거구요. 이건 그저 저 혼자 스스로 시작한 사랑이었습니다. 아파도 어찌할 도리 없는... 그런 사랑...
*****
문득 1년 전의 그 날이 떠오릅니다. 그녀가 누군가를 사랑하던 날들... 그녀의 가슴속에 소녀의 마지막 숨결이 살이 있던 날들... 그녀에게 있어 어쩌면 가장 행복했을지도 모를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그는 같은 꿈을 쫓던 사람이었습니다. 처해 있는 처지 또한 그녀와 같았죠.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능력도 아직 미약하지만 언젠가는 가장 찬란한 별이 되고야 말겠다는 큰 꿈을 가진...
[하지만 발에 채일 만큼 흔한... 그렇고 그런 아주 평범한 배우 지망생!]
그래도 그녀는 그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두 사람은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지만, 그는 그녀가 언젠가부터 잃어버린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맑게 빛나는 어떤 그 순수한 감정과 열정... 그녀는 그래서 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그가 가지지 못한 한 가지가 있었죠. 그것은 바로 반드시 꿈을 이뤄내고 말겠다는... 그런 강렬한 욕망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꿈일지언정 두 사람은 접근방법 자체가 달랐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든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이미 예견하고 있었죠. 두 사람은 결국 안 될 거라는 걸요... 그건 언젠가 그가 꿈에 대해 이야기 할 때였습니다. 그는 언제까지고 기다리겠다고 했고,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약간의 입장차이... 하지만 그 단 하나의 차이는 끝내 두 사람의 관계를 뒤흔듭니다. 비가 오던 어느 밤이었을까요? 비록 술에 취했지만 그녀는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난 아직 사랑 같은 거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야! 난 꼭 성공해야 돼! 그러니까 잠깐... 아주 잠깐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고 생각할게...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니가 아니야...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진실한 게 무슨 소용이야? 포장하지 마! 그건 그냥 무능력한 거야! 모르겠어? 뭣도 아닌 인간들이 하는 자위라고!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니가 아니라 내 꿈을 이뤄줄 힘 있는 누군가라는 걸 깨달았어... 날 창녀라고 불러도 좋아. 탐욕스러운 여자라고 욕해도 좋아... 그게 나니까! 미안해... 잔인하지만 이렇게 솔직히 하는 게 내가 창주씨를 위해 할 수 있는 전부인 거 같애... 이젠 나도 날 더 못 속이겠어... 안녕... 사랑했었어...]
그녀는 며칠이고 침대에 누워 울었고,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이기적인 구석은 있게 마련인지라, 사실 전... 내심 기뻤습니다. 그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그가 떠나간 거잖아요. 제 질투의 한숨이 통한 거라 믿었습니다. 애초부터 그녀와 그는 맞지도 않았던 게 사실이구요. 그 증거가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비록 그녀가 듣지도 않고 지워버린 음성 메시지였지만 그는 그녀에게 욕도 했습니다.
[씨팔! 제발 전화 좀 받아! 넌 미쳤어! 미쳤다구! 그렇게 해서라도 성공하면 만족해? 성공만이 니가 원하는 전부야? 그렇게 이룬 성공이 정말 너의 전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 뒤엔 어떻게 할 건데? 넌 미쳤어! 완전히 돌아버렸단 말야! 제 정신이 아니야...흑흑 씨발!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으면 생각 좀 해 봐! 그렇게 해서 니가 행복해 질 수 있을 거 같애? 응? 흑흑... 성공? 그깟 게 뭔데! 씨팔! 그깟 게 뭐냐고!! 이 나쁜 년아... 흑흑...흑... 니가 이러면... 나도 행복 할 수 있을 것 같냐구... 이 미련한 계집애야!!]
상황이야 어쨌든 사랑하는 여자에게 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남자로선 낙제 아닌가요? 전 그렇게 대답해주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그녀에게 욕을 할 수가 있지? 정말 당신은 남자로선 최저야!] 어쨌든 그의 오열은 저에게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죠. [더 크게! 더 심하게... 니가 할 수 있는 가장 모진 단어를 써 그녀도 편히 널 잊을 수 있게!] 어차피 아파야 한다면 단칼에 베어버리는 쪽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너무 가혹했을까요? 뭐 이러니 저러니 해봐야 그녀가 음성메시지를 듣지도 않고 지워버렸으니 결국 아무 소용없었지만요... 어쨌든 저의 바람은 이루어졌고, 이후로 그녀가 그를 만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두 번 다시... 완전한 사랑의 종말이었죠. 비록 조금 늦었지만 저는 이 자리를 빌어 당시 가슴 아팠을 이창주씨에게 심심한 사과를 말을 남깁니다.
[미안해 창주씨... 하지만 처음부터 그녀는 당신과 어울리지 않았어요! 당신 곁에 있어서 그녀가 불행하다면... 함께 있다는 게 무슨 소용이죠? 당신이 어떻게 하든 그녀는 결국 불행했을 거야! 당신에 대한 사랑보다 자신의 꿈! 그리고 성공에 대한 욕망이 더 컸던 여자였으니까! 결국 이게 최선이예요! 만족시켜줄 수 없다면 떠나는 게 맞아! 아니면 나처럼 조용히... 그리고 말없이... 그녀를 소유하겠다는 욕심 없이... 그저 지켜보기만 하던가... 병신 같이 말이야...]
제가 조금씩 삐뚤어지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저는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어요. 전보다 더 깊이 그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했고, 때론 강하게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었어요. 그녀는 더 이상 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게 된 듯 보였거든요? 때론 멍한 눈으로 한참동안 어딘가를 바라보고, 때론 속절없이 몇 시간씩 울기도 했지만,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진 않았어요. 안타깝지만 한편으론 기뻤죠. 저 너무 못됐나요?
[제가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가지지 못하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아마 그녀가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쯤이 아닐까 싶네요... 뭐 심각한 약은 아니었어요. 약간의 수면제, 항우울증 약, 뭐 연예인 지망생들이 흔히 먹는 그런 약들이요... 하지만 뭐 괜찮아요. 언제나 마지막엔 늘 저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것들을 눌러댔거든요.
[이제는 아시겠네요. 제가 누군지...]
3. 눌렀으면 달랐을까? 네! 저는 휴대폰입니다. 잘해야 1년, 길어야 2년 남짓이 제 수명의 전부입니다. 보통은 고장이 나서 버려지기보다는 실증이 나서 버려지다보니 그보다 짧기도 합니다만, 제 전임자에게 연락처 인수인계 당시 물으니 그래도 2년은 쓴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보기완 달리 자신의 물건을 쉽사리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면서요... 그녀가 그렇게도 소망했던 꿈처럼 말이죠. 여튼 그녀는 쓸쓸한 밤이면 이미 한참 전에 지운 창주씨의 휴대폰 번호를 눌러봅니다. 제 메모리 속 그의 번호는 지워진지 오래건만 가슴 속 기억의 잔상은 아직 지우지 못했었나 봐요. 썼다가 지웠다가 또 썼다가... 임시저장소에 기억된 문자만도 수십 통이에요. 아직도 제 안엔 [뭐해?] [자?] 그리고 [보고 싶어] [나한테 와줄래?] [나 힘들어] 같은 짧은 문자들이 겹겹이 쌓여 그를 추억합니다. 물론 그 문자들은 단 한 번도 보내진 적이 없습니다. 마치 몇 번이고 눌러졌지만 끝내 누르지 못한 통화 버튼처럼요... 네 둘은 이미 끝난 사이니까요. 미련은 그저 서로를 아프게 할 뿐입니다. 고슴도치의 사랑처럼 잠깐의 온기를 위한 애달픔은 결국 상처로만 남을 뿐입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그때부터 그녀는 입버릇처럼 자신을 설득했어요. [창주씨에겐 이미 다른 여자가 생겼을 거다.] [그렇게 좋은 남자를 누가 남겨둘까?] [너 같이 병신 같은 년 빼곤 누구도 그런 남자 놓치지 않아...] [버스는 떠났고, 울며 소리쳐도 너 혼자 가야해! 기회는 이미 끝났어.] [웃자! 단념하자! 내일도 촬영장에 나가서 웃어야 해!] [단역이지만... 대사도 몇 줄 없지만 웃고 떠들고, 또 대표님이 부르는 술자리에도 나가야돼! 잊지마! 울면 지는 거야!... 울지마.. 제발... 난 성공할거야... 꼭...]
줄 곧 [사랑합니다]라고 씌여져 있던 제 중앙 하단의 멘트는 이후 [난 꼭 성공할 여자]로 바뀌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성공이란 무엇이었을까요? 부족한 저는 아직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길이기에, 심장을 도려내며 뻗은 손이기에 붉게 물든 그 손이 빛나는 별의 성에 닿기를 소망합니다.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녀가 꼭 자신의 꿈에 닿기를...]
제가 지켜 본 그녀는 정말로 성실한 여자니까, 누구보다도 노력하는 여자였으니까, 성공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요? 매일 같이 몇 줄 안 되는 대사를 외고 또 외웠습니다. 각기 다른 발성과 말투로 대사를 연습했고, 심지어 다른 배우의 대사들도 다 외웠어요. 혹시나 자신에게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면서요. 몸매 관리를 위해 운동도 빠짐없이 했구요. 없는 돈에 피부 관리와 아픈 성형수술도 받았어요. 네.. 하얀 통 속의 약도 매일 꼬박꼬박 먹었구요... 사실 그 때마다 저는 이미 헤어진 창주씨가 미웠습니다. 이젠 헤어졌지만 그녀의 마지막 사랑으로 남았고, 추억의 한 켠을 그가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샘이 났거든요. 아주 유치한 감정이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참 바보 같죠?
[사실 제가 정말로 미워해야 했던 건 그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인터넷 사이트엔 그녀의 사진이 생각보다 많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뭐 조회 수는 형편없겠지만, 그래도 검색을 하면 찾을 순 있었어요. 그 점은 절 뿌듯하게 했지만, 때때로 그건 안타까움의 덫이었습니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연락하는 브로커들이 많았거든요... 가볍게 밥 한 번 먹는데 얼마, 가볍게 쇼핑 한 번하고 차 한 잔 마시면 얼마... 그들은 구체적인 가격을 던지며 흥정해 왔어요. 마치 물건을 사러 나온 시장의 행상들 같았어요. 그녀에겐 공산품인 저처럼 가격이 매겨졌고, 오르락 내리락 때에 따라 가치는 등락합니다. 다행인건 그녀가 그런 일회성 만남과 페이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당연합니다. 그녀의 꿈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최고의 스타가 되는 거였으니까요. 광고의 메인 모델로 발탁 해 줄 수 있는 대 기업 회장님! 또는 인기 드라마의 출연자를 결정하는 PD나 감독, 그도 아니면 이미 서른이 훌쩍 넘어버린 그녀를 계속 푸시 해 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정도는 되야 했죠. 약간의 기다림... 얼마 안가 그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형 언론사의 사주(社主) 부자(父子), 유명 드라마 PD등 가히 대한민국의 1%라 할 수 있는 굉장한 사람들이 그녀를 원했습니다. 대단한 사람들답게 말들도 시원시원했지요. [밀어주겠다.] [넌 스타가 될 거다] [나만 믿어라] [니가 주연이야!]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들이 그녀의 식어버린 심장을 뛰게 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건 늘 번복과 기만이었습니다. 광고의 단역, 드라마의 단역, 주인공의 친구, 악역 1~3중 하나... 누군가에겐 소중할지 모르지만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그녀에겐 턱없이 초라한 보상, 잡힐 듯 다가왔다 멀어진 허상은 그녀를 목마르게 했습니다. 쉴 새 없이 삼켜도 그녀의 갈증을 해소하기엔 부족했습니다. 그녀의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요? 탐욕스런 늙은이의 정부(情婦)가 되어 가식덩어리 예술가의 혓바닥이 그녀의 입술과 가슴을 유린했습니다. 그 때마다 칫솔이 닳도록 닦고, 살이 트도록 닦았던 그녀의 아픔은 보상받을 수 없는 건가요? 너무 더러워서? 그녀는 늘 스포트라이트 한 켠에 비켜 서 있었고, 찬란하게 빛나는 건 항상 그녀보다 나을 게 없는 다른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점점 더 지쳐가고 있었죠. 그럴수록 그녀는 더 조급해졌습니다. 정체된 이 상황을 타개할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손을 뻗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그때부터 점점 더 많이 침대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서른 중반을 바라보는 그녀의 가치는 휴대폰인 저처럼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천만원을 내놓겠다던 회장님이 몇 번의 관계가 거듭되자 그 절반의 가치를 말 합니다. 광고의 메인 모델로 써주겠다던 달콤한 말은 공수표에 불과했구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얼마 전에 결혼까지 한 어떤 PD님은 자신의 차에서 몇 번이고 그녀를 짓밟은 대가로 작은 단역 한자리를 내 놓습니다. 극 진행의 전환점이 될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도 바보는 아닙니다. 대본을 한 번만 읽어봐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기만이었습니다. 조폭출신의 엔터테인먼트사 대표님은 그중 가장 악질이었습니다.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이상한 옷을 입혔어요. 전신스타킹, 가면,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조차 불쾌한 가학적인 행위를 요구합니다. 그를 만나고 온 다음 날은 꼭 그녀가 아팠습니다. 그녀는 감기몸살이라고 둘러댔지만, 저는 진실을 알죠... 그래도 촬영하는 날을 가장 좋아하던 그녀가, 왜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촬영장도 못나가고 끙끙 알아야 했는지... 그 외에도 질 자체가 나쁜 사람들 투성이였어요. 흔히들 공수표라고 하죠? 무언가 될 것처럼 말하다가 마지막엔 엎어지고, 호언 장담 뒤엔 늘 다른 사람이 캐스팅되고... 남는 것은 실망이고 상처받는 건 늘 그녀였습니다. 한번은 서브 주연 캐스팅에서 밀려난 그녀가 몹시 화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유명 PD S가 그녀를 물 먹인 날이었죠.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불 같이 화를 냈습니다. 그 하나의 배역을 위해 늙은 그의 몸뚱이가 몇 번이나 그녀를 깔아뭉갰는지 모를 정도였으니까요. 호텔, 모텔, 집, 차, 심지어는 야외에서도 그녀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을은 이를 악물고 돌아섭니다. 그리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리 없이 웁니다. 숨 죽인 오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북받쳐 오르는 설움에 저를 집어 던지기 까지 했습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제 작은 몸이 내동댕이쳐집니다. 하마터면 액정이 나갈 뻔 했던 위험한 순간... 저도 많이 아팠어요. 케이스에 미세하게 균열도 생겼구요. 하지만 뭐 괜찮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녀의 마음이 편해질 수만 있다면 제가 뭔 들 못할 까요? 아팠지만 정말 아픈 건 흠집 난 케이스가 아니라 제 마음이었습니다.
4. 개들은 원래 물어뜯고 또 짖는다. 그래서 저는 복수를 계획했습니다. 대단한 사람인양 고고한 척, 예술이니 뭐니 하며 떠들어대는 그들의 치부를 온 세상에 발가벗겨주자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닌 오롯이 그녀만을 위한 일이었고, 그녀가 입었던 치욕과 절망을 되갚아 주는 일에 다름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차근차근 저만의 은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음모였고, 또한 발칙한 반란이었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흥분에 제 메모리 용량이 요동칩니다.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요? 보잘 것 없는 휴대폰 하나가 시대의 권력자인 그들에게 벌을 주려 한다니... 하지만 반전(反轉)이란 늘 생각지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와야 더 짜릿한 법 아닙니까? 물론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사실 그리 대단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어요.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24개월 약정의 손바닥만한 기계주제에... 하지만 저에겐 회심의 무기가 있었습니다. 약간의 오작동... 들어보셨나요? 오작동?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제 계획을 수행하는 있어 그건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제게 있어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사실 이제와 고백하지만 전 하자투성이 고철덩이에 불과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출시 일에 맞춰 급히 만드느라 대충 떼운 티가 곳곳에 남아있어요. 단지 일반인들의 눈엔 보이지 않을 뿐이죠. 업계에서는 이미 소문이 파다하답니다.
[소위 G레기라구요.]
오죽하면 저와 같은 처지의 기계들 사이에서도 저와 같은 기종들은 무시받기 일쑤랍니다. 엄청나게 많이 팔렸지만 사실은 형편없는 실패작... G래기... 그게 저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저의 창조주는 TV광고를 통해 최신 기종이니, 또 압도적인 스펙이니 하고 떠들어댔지만, 사실 다 허울뿐이었어요. 설계도 외산제품을 대충 베낀 것 뿐이고, 시스템 최적화도 형편없었죠. 지금도 전 사과문양의 외산기종들만 지나가면 메모리가 껌뻑 쪼그라들어요. 일종의 자격지심이죠. 요즘에야 많이 좋아졌다지만 저 때는 완성도가 하늘과 땅 차이였죠. 그래도 전 감사해요.
[나의 창조주의 기술력은 미약하지만, 그 마케팅 능력은 창대하리라...]
제가 그녀를 만나게 된 건 어쩌면 그 덕이 제일 큽니다. 하자투성이 형편없는 누더기 소프트웨어... 아무렴 어때요? 전 그녀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
다행히 제가 기다리던 기회는 금방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평소 미약하나마 자신의 인지도 관리를 위해 종종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곤 했습니다. 비키니도 입고, 때론 아슬아슬하게 속옷라인이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반응이 썩 나쁘진 않았어요. 때론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도 올라갔다니까요? 물론... 그걸 보고 성괴니 듣보잡이니 하고 떠드는 인간들도 있었지만, 그녀는 말했어요.
[그래도 이 개새끼들은 최소한 나한테 관심은 가져주는 개새끼들이다. 그래서 난 이 개새끼들이 죽도록 싫지만 밉지는 않아... 찾아서 찢어 죽이고 생살을 씹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고마워. 이 개새끼들아! 밥은 처먹고 다니니?]
뭘까요? 이 약간은 아이러니한 정 반대의 감정은... 뭐 기계덩이에 불과한 제가 그녀의 마음을 어찌 어떻게 다 이해하겠습니까 마는... 뭐 틀린 말은 없잖아요?
[개들은 원래 물어뜯고 또 짖는 거고, 그렇다고 사람이 개를 물 수는 없는 거니까...]
아무튼 그 날도 그녀는 사진을 올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별 뜻 없어 보이지만 무언가 어필할만한 말들을 적고, 미리 찍어둔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사진을 2차 보정하여 선택하고, 최종적으로 글과 사진을 한번 더 검토한 후 확인 버튼을 누르는 일... 그건 절대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그 분야에서 그녀는 이미 노련한 백전노장이었고, 무엇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사진의 몇%를 살색으로 채워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무얼 말하고 싶은 거냐구요? 그녀에겐 아무 잘 못이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단지 문제는 저의 의도된 오작동이 만들어낸 엉뚱한 쿠데타였을 뿐이죠. 네 다시 한 번 정확히 말씀드리지만 그녀에겐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사진이 등록되었고, 여느 때처럼 그녀는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이 또한 저의 계획에 포함 된 것이었죠. 매일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수면제와 항우울증성분이 포함된 약을 복용했고, 약을 먹고 나서 얼마 안가 잠이 드는 건 일상과도 같은 패턴이었어요. 우울증과 불면증은 연예인에게 있어 떼어낼 수 없는 친구니까요. 만약 한 번만 더 올린 사진을 확인했더라면... 잠들지 않고, 인터넷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면... 그랬다면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까요? 맹세컨대 전 그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 1초, 아니 0.1~2초만에도 사진은 사람들 사이에 퍼집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죠. 괜히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겠어요? 그것도 오작동을 이용해 제가 올린 그녀의... 그 더러운 악마들과의 그렇고... 또 그런 사진들이라면 더... 그녀가 쌔근쌔근 잠이 든 사이 제가 올린 다량의 사진들이 삽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갑니다. 빛보다 빠른 속도, 세상의 눈과 귀와 입이 그녀를 보고 듣고 말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고, 글에서 글로, 그리곤 급기야 각종 게시판과 뉴스를 도배합니다. [충격 연예계 섹스 스캔들] [대기업 총수/유력정치인/유명PD가 연루된 연예계 성상납] [몸로비 X파일] [가슴 아픈 피해자인가 아니면 창녀의 궤변인가!] [몸 파는 창녀나 떠보겠다고 몸 바치는 년들이나] 한 번 올라가기도 힘든 실시간 검색어를 그녀가 도배합니다. 그녀의 이름, 그리고 그녀와 관계한 남자들의 실명이 거론됩니다. 다 저의 의도 대로입니다. 그녀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최고의 이슈가 되었고, 그녀를 깔아뭉갠 쓰레기들의 얼굴이 발가벗겨진 채 세상의 입방아에 오릅니다.
[모두 저의 계획대로였어요.]
천 만 관객을 모을 거라고 장담하던 감독과 제작사 대표, 그리고 인기 드라마의 메인 PD들이 다급한 듯 제게 전화를 걸어옵니다. 문자도 수백통이 왔어요. 그녀의 소속사에서도 황급히 연락을 했죠. 기자, 방송국 PD,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온통 난리였습니다. 한 유력 정치인은 거의 협박에 가까운 문자를 보냈어요. 아마추어 같은 대응이었죠. 잘 못하면 이건 다 증거가 될 수도 있는데... 뭐 믿는 구석이 있었겠죠? 하지만 그래봐야 무슨 소용인가요?
[제가 벨을 울리지 않으면 그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그녀는 모처럼의 단잠에 빠져있습니다. 그녀의 기사가 된 제가 운명적 입맞춤의 알람을 울릴 때까지 그녀는 평온히 잠들어 있을 겁니다. 그렇게... 겨우 하룻밤... 단 하루 만에 그녀를 둘러싼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범한 늙은이들과 탐욕스러운 치정자들에게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물론 그녀를 싸구려 창녀라고 욕한 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늘 말했잖아요?
[그래도 이 개새끼들은 최소한 나한테 관심은 가져주는 개새끼들이다. 그래서 난 이 개새끼들이 싫지만 죽도록 밉지는 않다. 찾아서 찢어 죽이고 생살을 씹어 버리고 싶을 때도 많지만, 그래도 가끔은 고맙워. 이 개새끼들아! 밥은 처먹고 다니니?]
그냥 배고픈 들개 떼들이 좀 더 많아졌을 뿐입니다. 네 좀... 많기는 했죠. 그건 인정합니다... 전엔 서너마리, 또는 대여섯 마리에 불과했던 개떼가 새까맣게 몰려들긴 했습니다. 새벽 동이 트기 전, 어슴프레한 빛이 그녀의 오피스텔에 스며듭니다. 그 사이 그녀의 트위터와 페이스 북엔 감히 그녀가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많은 글들이 달렸습니다. 그녀가 바라던 세상의 관심입니다. 그녀가 원했던 대로 그녀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그녀의 이름을 말하고, 그녀의 사진을 검색합니다.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때마침 터진 대통령의 선거 비리관련 고발뉴스도 저 때문에 묻힙니다. 아니 그 덕분에 그녀의 이름이 더 많이 광범위한 형태로 뿌려집니다. 세상의 눈과 귀, 그리고 모든 관심이 그녀에게 쏠리는 절호의 기회가 된 거죠. 물론 일부의 시선은 더없이 차가웠지만 그녀는 이미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한 채 내려올 줄 몰랐습니다. 저는 생각했죠.
[이제 그들이 매장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고고한 척, 예술가인 척... 또 대단한 사람인 척 거들먹거렸지만, 이제 니들은 다 끝났다. 가정이 있고, 딸이 있고, 사회적 위치가 대단한 인간들이니 그 타격은 더 클 꺼다. 봤어? 이제 누구도 그녀를 아프게 할 수 없어! 내가 지켜냈어! 내가 그녀를 지켰다고!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내가 해냈다고!]
기뻤습니다. 제가 그녀를 대신해 그들에게 복수를 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요...
5. 나는 소망합니다. 그대와 나... 우리 서로에게 동전과 같기를... 하지만 아침 일찍 누군가 그녀의 원룸 오피스텔 문을 부술 듯 세게 두드립니다. 험상궂은 얼굴을 한 남자, 저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녀의 매니져입니다. 그녀는 평소 그가 더러운 이 바닥에서 몇 안되는 상냥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오늘 따라 그는 매우 화가 난 듯 격분하여 그녀에게 소리쳤습니다. 앞선 응징에 성공한 탓에 우쭐해진 저는 마음 같아선 그도 혼내줄까 싶기도 했지만, 그는 그녀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기에 이번만은 너그러히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힘들 때마다 그는 그녀를 위로하고 걱정해 주던 사람중 하나였거든요. 어쨌든 그렇게 상냥했던 그가 갑작스레 그녀에게 미친 듯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너 제정신이냐] [미친 거 아니냐] [이 뒷감당을 어쩌려고 그런 일을 했냐!] [회사에서 지금 난리가 났다] [잠수 타던가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라!] [사장이 지금 널 죽여버리겠다고 혈안이 돼서 찾고 있다] [숨어라! 난 널 못 봤다고 할 거다] [걸리면 너 큰일 난다] [모 회장은 사람을 써서 널 찾는다더라]
그녀는 주저앉았고, 그는 [너무 걱정하지마, 금방 사그라들거야... 알지? 사람들... 뭐든 금방 잊는 거... 너보다 더 한 일도 많았어... 잊어...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 질 거야... 낙심하지 말고...]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그렇게 우는 건 한 번 밖에 보질 못했어요. [그래요 그와 헤어졌을 때였죠.] 그녀는 몹시 화가 난 듯 했습니다. 저를 통해 사진들을 확인하곤... 괴성을 지르며 저를 던지기 까지 했으니까요.
[많이 아팠어요. 그녀도 저도...]
한 번, 두 번... 세 번... 벽과 강하게 입을 맞추느라 액정에 금이 갔습니다. 그리곤 바닥 한 구석에 떨어졌죠... 와... 저...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녀의 손에 박살이 난다면 그것조차도 제겐 행복이겠지만...
[벌(罰)일까요? 그녀를 힘들게 만든 죄... 세상이라는 이름의 들개 떼들에게 그녀의 벌거벗은 몸뚱이를 내 던진 죄... 그리고 꿈을 쫓아 갸웃거리던 그녀의 목을 비틀어 버린 죄...]
그래서 제가 지금 이렇게 벌을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저를 집어 던졌고, 그 순간부터 전... 찢어질 듯 통렬한 고통에 신음합니다. 이것은 저의 Full HD 액정화면이 깨져서도 아니고, 흰색의 멋드러진 케이스에 금이 가서도 아닙니다. 그런 육체적 고통 따위 그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 못 참을까요? 정작 저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건... 그녀가 내던지는 바람에 비스듬히 벽에 기댄 이 자세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자세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제 렌즈에 그녀의 모습을 담을 수 없었거든요... 그녀의 예쁜 얼굴도, 윤기 있는 머리칼도, 굴곡진 몸매도 제 렌즈 밖으로 떠나 돌아오질 않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그녀를 볼 수 없다니... 비통함에 회로가 끊어질 듯 아파옵니다. 저의 렌즈 밖 세상으로 도망쳐 버린 그녀... 그나마 다행인건, 비스듬히 누운 제 각도에서 그녀의 발이 보인 다는 정도였습니다. 며칠 전 그녀가 새로 한 패디큐어가 또렷이 보이네요. 어쩜 발톱도 저리 예쁠까? 똥물을 가져와 칠해도 그녀의 발은 예뻐 보일 겁니다. 예쁜 하트 촘촘히 붙어 있는 발끝이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맑고 투명한 눈빛과 암갈색의 깊은 눈동자가 보고 싶습니다. 저를 간질이던 삼단같이 긴 그 머리칼을 느끼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의 시야를 간질이는 건 그녀의 발가락 뿐입니다. 창주씨와 헤어졌을 때부터 그녀가 애용하던 보잘 것 없는 하얀 약병도 그녀의 발 아래에서 그녀를 바라보는데, 왜 이렇게 애끓는 감정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저는... 그녀의 발 밖에 볼 수 없는 겁니까? 정말 화가나고 안타깝습니다. 그런 저를 식혀주고 싶었는지 싸늘한 겨울바람이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듭니다. 좀 더 세게... 좀 더 세게 불어와 저를 탁 하고 뒤로 눕혀주면 좋으련만... 그래서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무리 봐도 바람은 그럴 생각이 없어보이네요. 저 대신 바람은 사랑스러운 그녀를 향해 나부낍니다. 그렇죠. 바람도... 감정이 있다면 저보다 그녀를 더 원할 겁니다. 그건 당연해요. 허공위에서... 한들한들... 그녀가 바람에 흔들립니다. 작은 발가락이... 패디큐어를 한 예쁜 발톱이... 허공에서 나풀나풀 작은 추처럼 좌우로 흔들립니다. 겨우 일주일인데, 세상은 그녀를 잊은 듯 조용해 졌습니다. 증거 불충분, 기소사실 없음이란 말들이 많네요. 악마들은 갑이라 벌도 받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뭐 상관없습니다. 사실 애초에 제가 바란 건... 그들이 벌을 받는 게 아니에요. 제가 원한 건 그저 그녀가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는 것 뿐이었죠. 그리고... 그녀와 영원히 함께하는 것 뿐입니다. 그녀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그녀니까. 그녀의 곁에 남고 싶은 것... 그게 제가 가진 작은 바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바람은 마법처럼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아플 필요도 없고, 아프지도 않습니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구요. 힘들게 꿈을 위해 구역질나는 진탕을 기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일까요? 무료해진 그녀는 벌써 며칠째... 아무도 찾지 않는 이 텅 빈 공간 속에서 그저 흔들리고만 있습니다. 무언가 자꾸 주르륵 흘러내리긴 하는데, 끝끝내 얼굴은 보여주지 않네요. 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무언가 썩어가는 요상한 냄새가 난다는 말을 하며 지나지만 아시다시피 전 코가 없잖아요? 그냥 그녀와 함께 있다는게 기쁠 따름입니다.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잖아요. 동전처럼 서로를 보지 못하더라도 내 등뒤에 그녀가 있고, 그녀의 등 뒤에 내가 있다는 것을 서로 알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한... 그게 사랑이잖아요. 지금 그녀와 저는 동전 같은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제 볼 수 있는 건 허공에 떠 있는 그녀의 두 발 뿐이지만, 그녀와 이렇게 오래도록 단 둘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 행복합니다. 네 전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녀와 내가 함께하는 이 마지막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또한 소망합니다. 그대와 나... 우리 서로에게 영원히 동전과 같기를... 나 그대를 볼 수 없지만... 그대가 내 곁에 있음을 알기에 비로소 행복합니다.
그녀와 나, 그리고 S스캔들... 끝 |
p.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모티브로 쓴 글입니다. 대화명을 바꿨지만? 저 누군지 아시죠? 민망하네요. p.s 2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란 문구는 드라마 소울메이트, 동전은 원태연 시인의 시 동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p.s 3 추천과 댓글은 아마추어 창작자의 가장 큰 힘입니다. 나쁘지 않으셨다면... 그냥 가지마세요 ㅠㅠ 제발 please... 무플과 무관심보다는 악플이라도 다는 개새끼가(?)... 이건 아니구나... 암튼... 뭐 그렇다네요... 죄송 |
출처 | 나, 비키라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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