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입니다!
*1월부터 올린 번역글이 이번에 150편이 됐습니다. 자축자축하!!!!!!!!!! 으하하
*조언해주시고~ 추천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시고~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베이비 모니터 : 안방이랑 애기방이 따로 있는 경우, 아기가 울 때 안방에서 들을 수 있게 하는 장치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친구들이랑 좀 괴랄하게 노는 편이었어.
여느 날라리 십대들처럼 말썽피우기 좋아하는 애들이었지.
마약에 손을 대거나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는 악질까지는 아니었고.
아니다, 악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베이비 모니터를 해킹해서 부모들을 놀라 자빠지게 하는 데에 재미를 붙였었거든.
우리 실력 정도면 절대 붙잡힐 일은 없다고 의기양양 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밤...
중요한 교훈을 얻었어. 그리고 깨닳았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천하무적은 아니라고.
디미트리, 커트 그리고 나는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수업도 같았고 거의 매일 저녁마다 만나서 놀러 다녔어.
예능 프로그램을 보거나, 게임을 같이 하거나,
학교에서 누가 제일 쌔끈한가 노가리를 까면서 시간을 보냈지.
어느 날은 공원에서 서로 무서운 얘기를 해주고 있었는데 커트가 재미있는 얘길 하나 해줬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애엄마가 갖고 있던 베이비 모니터에 귀신이 들렸다나.
귀신 얘기가 뻔하지 뭐.
그런데 디미트리가 자기 엄마도 같은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는 거야.
옆 집 이웃이 아기에게 해주는 노랫소리를 집에 있던 베이비 모니터로 들은 적이 있으셨대.
분명 주파수가 우연히 겹쳤었겠지.
순간 머릿속에 근사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 정확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베이비 모니터를 하나 사서 사람들을 골탕먹여 보자고.
좀 말장난 같은데 베이비 모니터 해킹하는 일쯤은 진짜 베이비들 장난이야.
같은 주파수를 쓰는 기기만 찾아내기만 하면 되니까.
싸구려는 활용도가 높지 않아서 주파수 다이얼이 있는 고급형으로 하나 장만했어.
그래야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골려줄 수 있으니까.
이튿날 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대상을 물색하면서 동네방네를 돌아다녔어.
2층에 아가방이 딸린 집을 찾았내고서 드미트리가 주파수를 찾으려고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렸어.
베이비 모니터에서 아기 숨소리가 들려오자 우리의 계획이 결실을 맺는구나 하면서 엄청 신나하던 기억이 나네.
디미트리가 버튼을 누르고 수신기에다 깊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어.
"....너의....작고....이쁜..딸...정말....군침도는데......"
곧장 안방에 불이 켜지면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어.
웃느라고 진짜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니까.
붙잡힐까봐 얼른 자전거를 타고 근방을 벗어났지.
이 못된 장난질을 몇 주에 걸쳐서 몇 번이고 하고 다녔어.
목소리는 서로 번갈아 가면서 내고 우리가 장난치는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매번 다른 집을 골랐지.
사람들이 반응할 때 모습은 돈주고도 못보는 광경이었다니까.
완전히 공황에 빠지는 엄마들도 있고 장난을 눈치채고 우리한테 닥치라고 하는 엄마들도 있었어.
어떤 한 아주머니는 제발 아기를 해치지 말라며 미친 듯이 울더라.
그 때는 너무 재미있었는데 이제와서 그 분을 떠올리니까 약간 죄책감이 드네.
친구들이랑 나는 그 아주머니가 한 말을 목소리까지 흉내내면서 몇 주씩이나 낄낄거리곤 했어.
맞아, 우리들 그 때 진짜 철이 없었지.
그런데 내가 그간 쌓은 업보를 돌려받는 날이 온거야.
커트와 디미트리가 중간고사로 바쁘대서 나 혼자 장난을 치러 나갔던 그 날 밤이었지.
하도 많이 장난을 치고 다녀서 우리 동네에는 안갔던 집이 없길래 좀 멀리 옆동네로 모험을 떠났거든.
대상은 쉽게 찾았어.
집 앞에 세워둔 차 뒷편에 유아용 카시트가 있는지만 확인하면 끝이야.
아니면 커튼이 유난히도 알록달록 하거나, 마당에 장난감이라도 떨어져있으면 바로 알 수 있지.
마침 조건에 딱 맞는 집이 보이길래 자전거를 세워두고 주파수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어.
아기가 아주 살짝 코골이를 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너무 신나서 심장이 막 요동치고 난리도 아니었어.
내 장난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으니까.
"나는.....너를.....지켜보고..있다...."
최대한 괴상한 목소리로 수신기에 대고 속삭였는데 집에 불도 안켜지고 너무 조용한 거야.
아무래도 집주인이 못들었나 싶어서 다시 한 번 좀 더 큰 소리로 말해봤어.
".....너의...침대맡에서......지켜보고....있다.....꼭....너를...반드시........내가......"
근데도 대답이 없었어.
주변에서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랑 저 멀리서 간간히 차소리만 들려올 뿐.
좀 이상하다 싶었지.
부모들은 왠만하면 바로바로 반응을 했었거든.
왠지 들킨 같은 기분에 약간 긴장이 됐었어.
왜 그럴 때 있잖아, 괜히 찔려서 누가 나를 막 계속 쳐다보는 기분이 들고 그럴 때.
시간도 늦었고 집까지 가려면 오래 걸려서 이만 포기하고 떠나려는 순간.
내 수신기에서 이상하고 걸쭉하게 가글을 하는 듯한 소리가 나는 거야.
애기가 잠에서 깨어났나 생각하던 찰나에 어떤 남자가 수신기로 말을 걸어왔어.
"....지켜보는......쪽은.....나야.........후안......"
이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어.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을까?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야.
아가방쪽을 올려다 봤더니 나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실루엣이 보였어.
여태 저기에 계속 있던건가?
겁을 잔뜩 먹어서 그런지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졌어.
공포가 엄습하면서 온몸이 덜덜 떨려와서 가까스로 자전거에 타고 어떻게든 페달을 밟아 그곳을 벗어났어.
내가 과민반응을 했던가 싶었는데 그 땐 완전히 넋이 나가서 그저 도망칠 생각에 제정신이 아니었지.
"넌.....아무...데도..못...가.....후안.......너희..집이...어딘지...아니까......"
모퉁이를 돌았을 때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어.
나는 쉴 새 없이 페달을 밟아서 큰 길로 나와 주변에 차랑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나서야 안도를...
"....니가....입은.....후드티에...붉은...피가...흐르겠지........꼬마야......."
주머니에 넣어둔 수신기에서 계속 남자의 속삭임이 들려오고 있었어.
내가 고함을 지르면서 옷을 찢다싶이 벗으니까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더라고.
완전 또라이로 보였겠지.
도움을 주기는 커녕 혀를 차며 지나가도 별 수 없었어.
후드티를 가방에 쑤셔넣다 보니까 큼지막하게 등판에 써진 내 이름이 눈에 들어왔어.
미친 학교티를 입고 왔던거야.
내 이름을 당연히 알 수 밖에 없었지.
그러다가 베이비 모니터는 수신 범위가 좁다는 사실이 퍼뜩 머리속을 스쳐갔어.
내가 미행을 당하고 있던 거야.
이 미친놈이 누군지 찾으려고 주변을 둘러봤지.
저 쪽에 있는 밴에 숨어있는 걸까?
개랑 산책하는 저 남자?
아님 방금 지나간 저 차인가?
어쨋거나 다시는 그 놈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수신기를 끄고 다시 집으로 향했어.
공포에 질린 상태라 그런지 바람이 나무에 스치는 소리, 바퀴가 지면을 달리는 소리,
나를 지나치는 자동차 엔진 소리까지 너무 생생하게 들리더라.
어쨋거나 집까지는 안전하게 도착했지.
집 앞에 자전거를 대고 계단을 거의 기어서 내 방으로 들어왔었어.
아무렇게나 가방을 던져두고 베이비 모니터는 방구석에 쳐박고서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지.
이불 속에 들어가면 일단 마음이 편해지잖아.
학교에 가기 전에 몇 시간이라도 자두려고 눈을 감았는데 그 때 베이비 모니터에서 치지직 소리가 났어.
내가 분명 껐던 거 같았는데.
"좋은 꿈 꿔, 후안."
이 말은 아직까지도 내 꿈에 가끔 나와.
며칠 쯤 지났을까.
그 때 그 집이 뉴스에 나왔어.
경찰측 설명으로는 일가족이 침실에서 목이 잘린 채 발견됐대.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내가 밖에 있던 거지.
마침 범인이 내 목소리를 듣고 나를 겁주려고 했었나봐.
드디어 살았다는 안도감에 몰살당한 가족이야 안중에도 없었어.
이제와서야 애도를 표해.
지금은 아내와 예쁜 딸이 있는 가장이야.
내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성인이고.
어렸을 때 철모르고 했던 행동들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도 이제 잘 알아.
그 날 밤 나는 두려움의 끝을 맛봤다고 생각했었는데 절대 아냐.
아빠가 되고 보니까 내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가 있으면 두려움은 배가 되더라고.
그 살인자가 나를 다시 찾은건지 아니면 어떤 멍청이가 같은 장난을 치는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진정한 공포가 뭔지 이제는 완전히 알 것 같아.
우리 집에 있는 베이비 모니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거든.
내게 족쇄를 채우듯 전신을 마비시키는 한마디가.
"아직도.......너를.....지켜보고...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