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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친구 중에는 자기는 양반의 피를 타고 태어났네, 본관이 어디고 무슨 파의 몇 대 손이라느니... 하는 친구들 가끔씩 계신가요?
제 아주 친한 친구 놈 하나도 그런 말을 아주 입에 붙이고 사는 놈이 하나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하는 짓 자체가 딱히 양반스럽지도 않아서 그 누구도 그 놈의 혈통이 얼마나 특별한지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 놈의 할아버지댁을 가 본 사람이라면 그 아무도 그 친구의 거들먹거림이 근거없는 빈소리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친구의 할아버님 댁은 그 장소 이름만 말해도 다들 잘 아실 "양반들이 모여산다" 는 고장입니다.
거기에다 할아버님 댁 자체를 설명하자면..... 한 마디로 "민속촌" 이라고 하면 딱입니다.
집 건물도 한 채가 아닌 안 채, 바깥 채, 부엌, 곳간으로 쓰여졌다는 지금의 창고부터 시작해서... 건물이 몇 채씩 따로 지어져 있고 그 모두가 고풍스러운 기와 지붕을 이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담장들 마저 기왓장을 이고 돌려져 있지요.
지금이야 그 친구와 제가 시간 맞춰 어디 놀러 간다는게 웬만해선 이루어지기 힘든 아주 대단한 행사가 되어 버렸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여름이 오면 꼭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항상 친구놈 할아버님 댁에가서 부비데다 오곤 했습니다.
도시 생활이 익숙한 저와 친구에겐, 솔직히 거길 가도 특별히 신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둘 다 툇마루에 앉아 소나기 내리는것만 보며 한 나절 시간을 보내도 하나도 안 지겨운 요상한 취향을 가진지라 일년에 한 번 가게 되는 할아버님 댁 방문은 그 집 자체가 저희의 놀이터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올리는 얘기는 이 친구의 어머니께서 이 집에 시집 오셨을 때 일입니다.
친구 어머니께서는 시집오자마자 한 세 달 동안을 주말 부부로 지내셨다고 합니다.
처음에 친구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결혼 하시기 좀 전부터 신혼살림을 차릴 집을 보러 다니셨다고 합니다.
여기 저기 다녀봤지만 맘에 딱 드는 집은 겨우 하나 뿐이었고, 그 집도 결혼식 날로부터 세 달은 지나야 당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사를 나가게 되어 있는 처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집이 이래저래 마음에 드신 친구의 부모님은 그 집을 계약하기로 하고 그 세 달 동안, 친구의 아버님은 원래 계시던 하숙집에서 계속 직장을 다니시고, 친구의 어머님께서는 시댁 법도도 배우고 할겸 시댁으로 내려가서 시어른들과 함께 지내시기로 하셨답니다.
물론 주말이면 친구 아버님께서 기차를 타거나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 오셨구요.
그렇게 해서 시어른들과 함께하는 신혼 생활... 순조로운 두 달이 흘러갔습니다.
그 큰 집에는 시어머님, 시아버님 (즉, 제 친구의 할머님, 할아버님) 그리고 당시에 결혼할 나이가 안 된 친구의 작은 아버지가 사셨고 집안 일을 도우시는 먼 친척 뻘 되시는 아주머니가 오래전부터 같이 사셨답니다.
친구 아버님 위로는 누님 두 분과 장남이신 큰 형님 한 분이 계시지만 그 당시엔 그 세 분 모두가 결혼하셔서 모두 다른 지역에 사시고 계신터라 시골집은 그 큰 덩치와는 안 어울리는 단촐한 가족 스타일이었답니다.
그리고, 새 며느리라고는 하지만 집안 일하시는 분도 계시고 해서 혼자 해야 하는 일거리가 너무 많다거나 한겨울 살 얼음을 깨고 냇가에서 빨래를 해야 하는 시집살이 같은 그런 극적인 일들은 전혀 없으셨답니다.
다만 어른들이 일찍 일어나시고 그에 따라 이른 아침을 드시기 때문에 그 시간 맞추어 일어나셔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아침 식사 상 차릴 때 도와야 하는 대목이 그나마 신경을 써야하는 부분이셨다고 합니다.
시계를 맞춰 놓고 주무셔도 새색시가 긴장한 탓이라 항상 일어날 시간보다는 좀 더 일찍 눈이 떠지셨답니다.
하지만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포근한 아침잠이 너무 달아서 '5분만 더, 5분만 더' 하는 날이 자주 있으셨는데 그 날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딱 5분만 더 누워있자' 하고는 자명종시계를 붙잡고 잠이 살짝 들어 버리셨답니다.
그런데 잠결에 누군가가 "아씨~" 하고 부르는 소리에 얼른 일어나 보니 정말 딱 5분이 지났더랍니다.
너무 긴장한 탓에 그렇게 누가 깨운듯 눈이 떠졌나 하셨기에 방금전 자기를 부르던 소리도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번에는 그냥 새벽 잠에 푹 빠져 있는데, 또 다시 누군가
"아씨~~"
하고 부르는 소리에 눈이 확 떠졌답니다.
시계를 보니 일어나려고 했던 시간보다 이십분 정도 더 흘렀고 시계가 울렸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자명종 소리를 꺼버린듯 소리를 멈추게 하는 버튼이 눌러져 있더답니다.
누군가 깨우는 그 소리가 아니었다면 아침부터 새 며느리가 시어른들께 눈치 아닌 눈치를 보게 될 뻔 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 소리가 처음도 아니고 해서 너무나 이상한 맘에 문도 열어 바깥도 살펴보고 했는데 정말 아무도 없더라는군요. 더구나 아무리 그 때가 지금보다는 몇십 년 전이지만 "아씨" 라는 호칭이 쓰이던 시절도 아니었기에 너무 신기하고 이상해서 그 일을 집안 일 하시는 친척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다는군요.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새댁이라 너무 긴장을 한 탓에 새벽 잠이 얕아져서 그런가 보네" 하시더랍니다.
하지만 제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그 이상한 기분을 도저히 떨칠 수가 없더랍니다.
처음 듣지만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갓 시집 온 자기가 늦잠을 자지 않도록 깨워 주는 그 목소리가 신기하고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오싹하기까지 하셨답니다. (그 정도 까지만이었다면 아마 제가 이 얘기를 제 친구로부터 전해 듣지도 않았거나 친구로부터 그 얘길 들은 후 지금껏 제가 기억도 못했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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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로 듣게 된 그 "아씨~~" 라고 부르는 소리...
그 덕분에 들어온지 갓 두 달 된 새 며느리는 실수를 모면했지만 도대체 그 소리가 어디서 난 건지, 정말 그 소리 자체가 있긴 했던 건지, 있다면 누가, 왜, 자기를 늦잠 자게 되는 실수를 할 때마다 구해주는 건지... 친구 어머님은 한동안 궁금하고 답답하고... 겁도 나고.. 머릿속이 아주 복잡하셨답니다.
시집 온지 얼마 안 된지라 마음 속에 있는 도깨비 방망이 얘기 같은 걸 시어른들께 꺼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집안 일 하시는 아주머니 말씀대로 자신이 항상 긴장을 해서 그런건가 하면서 속으로만 담아두고 며칠을 보내셨답니다.
그러고는 한 일주일 후에, 계획대로라면 제 친구 아버님이 주말을 맞아 시골집으로 내려오셔야 했지만 한 달만 지나면 이사 들어갈 집에 도배하는 일이며, 계시던 하숙집 이삿짐 정리 등으로 그 주말은 내려오지 않으시기로 했답니다.
그 대신 새색시 되시는 제 친구 어머니께서 오랫만에 서울로 올라가서 주말을 보내시고 가신 김에 벽지도 고르시고, 이사준비를 도와주시고 계시는 친정 어머니도 만나고 오시기로 하셨습니다.
시집 가신 후 처음 가지는 나들이가 되는 셈이었습니다.
목요일 늦은 밤, 다음 날인 금요일 오전의 서울행 기차를 타려고 결정하신 친구 어머님은 간단하게 짐을 챙기신 후 보통 때보다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드셨답니다.
단지 두 달 정도였지만 떠나온 서울이 너무 그립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친정 부모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그렇게 설레일 수가 없으셨답니다.
한 밤 중에는 소풍 전 날 밤의 아이 같은 설레임으로 잠을 자는둥 마는둥 하시다가 새벽녘이 되서야 살짝 잠에 드셨는데..
갑자기 누우신 이부자리에 뭔가 느껴지는 듯한 기분에 눈을 뜨셨답니다.
조금씩 밝아오는 새벽, 방안의 모든 것이 푸른 빛으로 어슴프레 보이기 시작하는 때였고.
방안은 여느때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으려는 순간 갑자기 이불 끝 즈음에서부터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답니다.
잠이 확 다 달아나시더라는군요.
갑자기 들리는 그 소리에 어떻게 할바를 몰라 어머님께서는 자는 척 하며 주위를 살피셨답니다. 하지만 잠시 난 사그락거림은 잘못들었던 것처럼 더이상 들리지 않아 몸을 살짝 돌려 옆으로 누우시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바로 자신의 어깨 아래 몇발치 떨어진 이불 귀퉁이로부터 조그마한 미동이 느껴지셨답니다.
친구 어머님께서는 눈을 감은 척 실눈을 뜨신 채로 목만 살짝 굽혀 미동이 느껴지는 곳을 내려다 보셨답니다.
미동이 느껴지는 그 곳에는 누군가 지금 손으로 눌렀다 뗐다하듯 이부자리 끝이 살짝살짝 들어가더랍니다.
주무시던 이부자리는 솜을 두툼하게 넣어, 면으로된 이불 호청을 둘러 만든 옛날식 두꺼운 요였기 때문에 어린아이라도 그 위를 밟고 지나간다면 어느정도 발자국처럼 폭폭 들어가는 두께였답니다.
그런데 그 요 가장자리부분이 누가 손으로 누르는 듯, 아니면 작은 발로 걸어가는 듯 살짝살짝 들어가는 모양이 보이고... 친구 어머님은 그 자리에서 목소리도 못 낼 정도로 얼어붙으셨다고 합니다.
그 작은 움직임은 천천히 윗쪽으로 올라오다가 어머님 얼굴과 세 네뼘 되는 곳에서 멈추고 더이상 계속되지가 않았답니다.
일 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너무나 가깝게, 너무나 선명하게 겪으신 이상한 일 때문에 이른 아침 내내,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계속 그 생각을 떨처버릴 수가 없으셨습니다.
이제는 이상하기보다 더이상 그 방에서 혼자 잘수 없을 것만 같이 겁이 나셨답니다.
서울에 도착하셨을 때는 남편되시는 제 친구 아버님의 퇴근시간이 아직 좀 남은 이른 오후였기에 계획대로 친정집으로 먼저 가셨답니다.
그제서야 기차를 타고오면서 생각하고 느낀 그 모든 묘한 기분을 다 잊고 오랫만에 만난 친정 어머니와 대학다니고 있는 여동생에게 그간의 시댁 생활 얘기를 시작하셨답니다.
그리고는... 다시 떠오른 몇 가지 그 겪은 이상한 일들에 대해 망설이시듯 꺼내셨답니다.
늦잠 잘 뻔 할 때마다 깨워주는 듯한 그 목소리와 바로 오늘 겪은, 누군가 자기의 이부자리를 매만지는 듯한 느낌...
그 얘기를 들으며 여동생은, 그러니까 제 친구의 이모님께서 농담처럼
"언니야, 무당이라도 찾아가야 되는 거 아니야?" 하시더랍니다.
안 그래도 찝찝하고 답답한 기분에 무당 소리를 들으니, 정말 생전 안 가 본 무당이라도 찾아가 보고싶단 생각이 드시더라는군요. 하지만 무당을 찾는다는 게 왠지 케케묶은 생각하시는 할머니들이나 하는 일 같아 막상 그렇게 하자는 소리도 못 하셨다는군요.
그렇게 저녁이 되고 친정집으로 퇴근한 신랑을 만나고, 오랫만에 친정 식구들과 가진 재미있는 시간에 밤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고, 그 다음 날인 토요일 아침,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제 친구 어머니는 친정 어머님과 나가서 벽지도 고르고, 도배 날도 정하고, 세간살이도 고르고... 그렇게 신혼 살림 준비를 하셨고...
그 동안은 시댁에서 겪은 모든 일을 까마득히 떠올리지 않으셨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월요일 아침이 왔고... 친구 아버님은 장인어른 댁에서 곧바로 출근을 하시고.
친구 어머님의 계획대로라면 신랑이 출근하는 길에 같이 나서서 다시 시댁으로 내려오시기로 했는데....
어쩐일인지 친정 어머니께서 잠시만 더 있다가라고 자꾸 잡으시는 바람에 남편부터 먼저 출근 시키고 뒤로 남으셨다는군요.
사위가 출근하자마자 친정 어머니는 제 친구 어머니께 어디 잠시만 들렀다 그 길로 내려가라면서 다른 말씀도 안 하시고 제 친구 어머니를 데리고 집을 나서셨고, 제 친구 어머님은 어딜가려는데 이러시냐며 친정 어머님께 물어도 가는 길에 얘기하자시면서 그저 손목을 잡아 이끄시는 데로 따라갔답니다.
택시를 잡아 타고 어딘가로 가시는 길에 그제서야 친정 어머님은 오랫만에 집에 오자마자 당신 딸이 한 얘기가 영 맘에 걸리고 걱정이 되셔서 도저히 이대로 보낼 수가 없으시다고 하셨다는군요.
친구 어머니는 그런 친정 어머니를 안심 시켜 드리려고 뭐 그런걸 다 신경 쓰시냐고, 난생 처음 시댁이란 곳에서 남편도 없이 긴장해서 지내다 보니 헛기분도 들고 하는 걸 꺼라는 말씀까지 드렸지만 친정 어머니께서는 니가 괜찮다고 해도 내가 걱정이 되서 이렇게는 못 보낸다고 하시며 결국은 어느 작은 절까지 딸을 데리고 가셨답니다.
제 친구 어머님댁은 불교를 믿으십니다. 특히 제 친구 외할머니가 그 쪽으로는 아주 정성이라십니다.
하지만 사실 점을 보고, 굿을 하고, 무조건 미신을 따르고 하는 건 불교의 본래 뜻 자체와 그리 맞지는 않다는군요. 그래서인지 무당은 아니고 작은 절에 그런 쪽으로 아주 예민한 감각이 있으시다는, 친정 어머님께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스님을 찾아가신 거랍니다. 제 친구 어머님께서는 기억 날 듯 말 듯 어릴 때 한 두 번 만나뵌 적이 있는 스님이란 것만 생각이 나시더랍니다.
그 스님을 만난 제 친구 어머님과 친정 어머님께서는 제 친구 어머니가 겪으신 얘기는 하지도 않고 그냥 안부 인사가 오가고, 그 절에 오시는 다른 분들 얘기를 하고.....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겉도는 얘기만 오갔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이 갑자기 제 친구 어머님께 하시는 말이,
"시집살이가 고달플 일은 없겠구나, 밤낮으로 아씨를 보살피는 덕을 니가 보는구나...."
이렇게 딱 두 마디 하시더랍니다.
그러자마자 제 친구 어머니는 머리가 핑 돌 정도로 놀라셨답니다. 그 "아씨" 란 단어에 말입니다.
그 "아씨" 란 말이 바로 제 친구 어머니께서 헛소리를 듣듯 들으신 단어고, 그 "아씨" 란 단어 덕에 늦잠을 자 버리는 실수를 모면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죠.
네..그리하여...시작된 스님의 말씀...친정 어머니도 제 친구 어머니 본인도 너무 놀라셨다는군요.
친구 어머니의 시댁을 한 번도 가보신 적 없는 스님은 이미 그 시댁이 아주 오래된 건물로 된 집이라는 걸 들여다 보듯 아시더랍니다.
그러시면서 바로 앞에 앉아 겁을 잔뜩 먹고 계신 친구 어머님을 보시면서 걱정할 것 없다, 널 해꼬지 하려는 게 아니고 널 돕기만 하려는 불쌍한 것이니 겁먹지 말고... 내가 하는대로 듣고 따라서 구천에서 떠도는 영혼 하나 좋은 데로 보내주자 하시더랍니다.
그러고는 스님은 가부좌를 틀고 앉으셔서 눈을 지긋히 감으시고 나직하게 염불을 올리시더랍니다.
한참 만에야 입을 여신 스님의 말씀인 즉...
지금 시부모님들이 태어나시기 전, 불과 몇 대 바로 위로 아주 어린 나이에 이 가문으로 시집 온 규수가 있었고, 그 당시엔 집안이 웬만큼만 되면 딸을 시집 보낼 때는 그 딸이 고생하지 않도록 친정에서 몸종 한 둘은 꼭 따라서 보냈답니다.
그래서 이 어린 규수가 시집을 왔을 때도 이 애기 "아씨" 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은, 하지만 지금으로 하면 그 마저도 어린 계집아이에 불과한 나이의 몸종이 따라 왔고, 이 착하고 의리(?) 있는 몸종 아이는 자기가 모시던 애기 아씨가 시집 가는 통에 자신의 부모마저 뒤로 하고 이 아씨를 따라와 섬겼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이 몸종 아이가 아씨를 평생 섬기지 못하고 아씨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갔다는군요.
그래서인지 이 몸종은 저 세상으로 가는 다리를 훌쩍 건너지 못하고 죄송한 맘이 남고 애기 아씨를 걱정하는 맘에 그 집을 맴돌면서 아씨를 찾고 있었다는군요. 그러면서 세월은 흐르고 ....또 흐르고.....
어떻게 해서 제 친구 어머니가 그 집으로 시집을 가시고 우연하게도 그 아씨를 찾아 헤매던 영혼은 제 친구 어머니가 다시 돌아온 그 애기 아씨라고 믿고 예전처럼 애기 아씨를 섬기기 시작했답니다.
아직 어린 나이라 한 참 아침 잠이 많았을 애기 아씨를 새벽마다 깨우고 바로 곁에서 아씨를 돌보고 있다는 겁니다.
스님은....미련이 너무 크게 남아 이승을 떠도는 이 착한 영혼을 훌훌 보내줘야 한다고, 그럴려면 뭔가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찾지 않고는 이 영혼은 끝까지 구천을 떠돌며 몸종 노릇만 하며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지를 못한다고 하셨답니다.
그걸 찾고 그 뒷처리를 해야만 그 영혼은 이 세상을 떠날 수가 있을 것이라고 .....
하지만 그 몸종과 그 애기 아씨가 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 몇 번이나 대가 바뀌어 사람들이 살았던 이 집에서 어떻게 이 몸종과 연관된 무언가를 찾느냐 하는거였습니다.
친구 어머니는 스님께 과연 그런 게 처음부터 있기나 하겠느냐는 질문을 하셨답니다.
스님은 그 매개체가 없고서는 이 몸종이 이렇게 남아 떠도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한 일이다 싶을 정도로 분명 어딘가에 이 몸종 아이와 관련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그렇게 밑도 끝도(?) 없는 방도를 갖고 시댁으로 돌아온 제 친구 어머니는 그 날부터 틈만 나면 오래된 문갑이며 옷장도 열어보고 이방 저방 보물찾기를 하셨답니다.
사실... 자기를 해치려 하는 게 아닌 것도 알았겠다, 별로 겁날 것도 없어 그 보물찾기가 게을러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어린 계집아이의 떠도는 영혼을 생각하니 그렇게 불쌍하게 느껴질 수가 없으시더랍니다.
선택도 없이 뉘 집 몸종으로 태어나서 일하다, 아직도 부모 품에서 보호만 받을 어린 나이에 집에서 모시던 애기아씨를 따라, 부모 형제까지 뒤로 하고 먼 고장으로 따라왔을 이 아이를 생각하니 너무나 불쌍하고 가슴이 아파서 이젠 반드시 이 아이를 편하게 쉬게 해 주고 싶다는 맘이 드셨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것이 자기의 업보인 것 같기도 하고....자기가 꼭 해 줘야만 한다는 느낌이셨답니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예전에 곳간으로 쓰던 지금의 창고에서 그 보물찾기를 하셨는데...
그 곳은 명절 때만 쓰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상과 제사 물건들, 병풍이며... 말이 창고이지 시아버님의 각별한 관리 아래 아주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가문의 박물관이나 다름 없는 곳이었답니다. (그 관리는 제가 거길 놀러 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정말 창고라기 보다는 소박한 전시장 같을 정도로 깨끗합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니 눈엔 구석에 자리잡은 뒤주라고 불리는 나무로 된 큰 쌀 통이 띄이더랍니다.
요즘은 물론이려니와 제 친구 어머니가 시집 가신 그 당시만 하더라도 웬만한 대가족 아니고는 아무도 그렇게 큰 통에 쌀을 넣어 놓고 먹는 가족이 없었기에 그 뒤주는 언젠가부터 곳간에서 다른 작은 물건들을 올려놓는 선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런 뒤주가 친구 어머니 눈에 띄이긴 했지만 그 뒤주 자체던 그 위에 올려진 잔잔한 물건이며.... 그 어느 것도 그 몸종 아이와 연관되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더랍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제 친구 어머니의 꿈에서 그 뒤주를 다시 보셨답니다.
꿈 속에 친구 어머니는 그 뒤주를 향해 창고로 걸어 들어가셨답니다. 정말 특별할 것 없는 꿈이고, 바로 같은 날 본 오래된 뒤주가 꿈에 다시 나오는 것도 특별하지도 않는데도 아침내내 그 뒤주에 왠지 자꾸 마음이 가시더랍니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그 창고로 들어가신 어머니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뒤주 위에 얹혀진 이것저것 작은 물건들을 다 내리고 뚜껑 같은 부분을 들어 올려보셨답니다.
뚜껑이 열리고, 오래된 나무의 특유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어른 허리까지 오는 그 깊숙한 뒤주 안을 들여다 봤더니 그 안에는 시아버지가 넣어두신 듯한 신문지에 쌓인 숯 뭉치들 그리고 누런 한지 같은 것에 쌓여 있는 실타래, 옛날에 수를 놓을 때 쓰던 둥그란 수 틀...
그리고........... 손잡이가 달린 나무 상자가 하나 있더랍니다.
뭔가에 끌린 듯이 친구 어머니는 그 상자를 집어 올렸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그 오래된 상자를 열어 보셨답니다.
그 아주 오래된 듯한 상자를 여니, 그 안은 한지로 곱게 발라져 있고 이 상자 전체가 바느질 할 때 쓰는 작은 물건들을 넣어 두는 바느질 통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게 이미 색이 바래버린 천을 겹겹으로 해서 만든 작은 골무, 녹슬었지만 이쁜 모양의 작은 가위, 실을 감아 둘 때 쓰는 듯한 나무로 만든 작은 패,
..........그리고 아직도 바늘이 꽂혀 있는 천으로 만든 손바닥만한 바늘 꽂이가 있더랍니다.
하지만 그 바느질 통이 언제적 것인지도 잘 모르고, 워낙 옛 물건들은 잘 관리 하시는 시아버님 덕에 사실 이 바느질 통이 얼마나 오래된 건지도 알 수가 없게 보관이 잘 되어 있더랍니다.
하는 수 없이 그 바느질 통을 그대로 챙겨 들고 나와 시아버님께 여쭤봤답니다.
속 사정을 모르시는 제 친구의 할아버님께서는 며칠동안 그렇게 집안을 돌아다니며 뒤지더니 결국은 그거 하나 건졌냐며 새 며느리가 정말 보물 찾기라도 한 줄 아시더랍니다.
친구 어머니는 시아버님께 이것저것 물어 결국 이 바느질 통이 시아버님의 할머님이 대물림 받아 쓰시던, 수를 놓을 때 쓰는 바느질 통인 거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이후에는 집안에 수 놓기에 솜씨 있는 여자들이 없어 할머님이 쓰시던 물들인 명주 실타래며 바느질 통 자체를 곳간안에 모셔뒀다고 하셨답니다.
그러다 뒤주 안에까지 들어가게 된 거구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어떤 물건이 몸종 아이를 이승에서 떠나보내게 해 줄 매개체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군요
이 바느질 통은 그저 옷이나 깁는 바느질을 할 때 쓰이는 게 아닌, 양반댁 규수들이 점잖게 앉아 비단에 수를 놓을 때나 쓰는 바느질 통이기에 이 바느질 통의 주인도 그 몸종아이일 수가 없는 거구요.
그런데 갑자기 손이 가는 물건이 있었는데........
바로 천으로 만든 바늘 꽂이였답니다. 여러분, 바늘 꽂이 다 아십니까? 이게 어떻게 보면 조그마한 베개처럼 통통하게 생겼는데 솜 같은 걸 빵빵하게 넣고 바느질 실땀으로 기워 만든 물건입니다. 바늘을 쓰면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꽂아 두고 쓰는 겁니다.
정말 뭐에 홀리듯 그 바늘 꽂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바느질 된 부분을 가운데로 두고 실땀이 조금 뜯기도록 잡아 당겼답니다. 실땀이 한 두개뜯겨지니 몇 땀 더 뜯어지는 건 더 쉬워서 손가락이 하나 정도 들어갈만한 구멍이 나고.......
거기에서 삐져나온 건...... 새카만 머리카락 뭉치였다는군요.
저는 나중에서야 안 거지만... 요즘 바늘은 스테인레스로 된 게 많아 녹도 잘 안 슨다는군요. 하지만 옛날 그 시절의 바늘은 콧기름, 머릿기름을 발라가면서 바느질을 해야 할만큼 매끈하지도 않고 좀 오래 두면 녹까지 슬기 때문에 사람 머리칼을 잘라 모아 만든 바늘 꽂이에 바늘을 꽂아 두고 썼답니다.
친구 어머니가 홀린 듯 찾아 낸 것도 바느질 통 자체가 아닌 바늘 꽂이 안의 머리카락이었구요.
솔직히 아직까지도 그 머리카락이 누구의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친구 어머니는 그 날 바로 그 바늘 꽂이를 통째로 담벼락 아래에서 태우셨답니다.
그리고 맘 속으로는 '잘가세요, 다음에는 편안한 팔자로 꼭 다시 태어나세요' 빌고 또 빌으셨답니다.....
정말 그 머리카락이 누구의 것인지는 아무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 친구 할아버지의 할머님 되시는 분이 그걸 마지막으로 쓰셨다는 것 밖에요.
어쩌면 그 할머님이 바로 그 어린 나이에 시집온 애기 아씨였을 수도 있고, (딸이 시집 갈 때 몸종이 따라가던 풍습은 1900년도 초반에도 존재하던 풍습이니까.. 그 할머니란 가능성은 분명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분을 따라 온 몸종 아이가, 비단 실로 수를 놓고 있는 애기 '아씨 옆에서 재미삼아 자기 머리카락을 조금씩 잘라 모아 바늘 꽂이 하나를 만들었을 수도 있고요....
자신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어떻게 보면 친정 식구이기도 한 그 몸종 아이를 생각하며 그 아씨는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도록 그 바늘 꽂이를 간직해 두며 썼을 수도 있고요.
무서운 얘기만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는 꼭 귀신 나오는 무서운 얘기 뿐만 아니라 이렇게 전설의 고향 같은 것도 즐기는 스타일이라... 제가 친구와 함께 친구네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들려준 이 얘기를 아직도 가끔 떠올립니다.
길고 긴 제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