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얘기하는 것보다 태어난 년도를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30대 여자예요.
30대인데 돈도 없고 외모도 없고 남친도 없으니 음슴체 한 번 써볼게요. (처음이라 어색할지 몰라요.)
벌써 10년이 지난 얘기임.
20대 초반,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음. 샌프란시스코 근교이고 베이에어리어라고 미국에서는 꽤나 잘살고 비싼 동네임. 도시 이름은 산호세.
(가족이 있기에 집, 학교, 헬스의 생활.)
살 뺀다고 항상 헬스클럽을 다니고 있을 때였음. (참고로 살은 아직도 빠지지 않았음.)
우리집에서 헬스클럽은 약 3~4킬로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는데, 그 날은 날씨도 좋고 바람도 선선해서 그냥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걸어가고 있었음. (아직도 그 때를 후회함...)
이어폰 끼고 츄리닝 입은 상태에서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울동네 버스 정류장이 저 멀리 보임.
참고로 그 정류장은 종점이자 시점인 정류장임.
마침 출발하려고 준비하는 버스가 있고, 사람들이 약 10명 정도 버스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음.
그 중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음. 190도 넘어보이는 키에 그냥 먹색을 뿌려놓은 듯한 피부를 가진 흑인..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버스 정류장 쪽을 향해 가고 있는데, (버스를 타려는 건 아니고 지나치려고.)
그 흑인이 나에게 돌진하는 거 아님? 그 걷는 모습이,
'너 잘 만났다. 너 한 번 죽어봐라' 라며 사람 치러 오는 모습하고 똑같았음.
그 상황에서 '저 사람 뭐하는 거지? 미친 거 아냐.. 왜 내 앞으로 돌진해.. 나 어떻게 해' 라며 오만가지 생각을 했음.
그리고 그 사람이 거의 내 앞에 5미터 정도까지 가까워졌을 때는 발걸음을 멈춤..
얼어버림... 조금만 더 다가오면 소리지를 준비를 하고 있었음.
그 흑인이 점점 다가오는 모습은 저승사자 같았음. 멀리서 봤을 땐 그리 안 보였지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촛점없이 흐릿한 눈이 너무 끔찍했음.
마약하는 눈... 마약에 쩔은 눈.. 희망없는 눈.. 하지만 독기 품은 눈.. 그런 식으로 보임.
완전 경악하는 찰나, 이미 그 흑인은 내 앞 50cm 앞까지 옴.... 난 소리 지를 준비를 하며 입을 벌림..
그 순간 흑인이 180도로 턴을 하며 내가 진행하고 있던 방향으로 걸어감..
속으로 '미친색히 ㅠㅠ 겁주고 GR이야.. ' 막 이럼서 흑인을 저주함.
그렇게 가던 길을 가고 있었음. 약 150미터 정도 진행했을 때임.
갑자기 깨달았음.
앞에 가는 흑인이 일정한 간격으로 가고 있고 계속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는 것을..
골때리는 것은 100미터 정도만 더 진행하면 사람이 없는 으슥한 골목이 나옴... 그리고 길은 그곳밖에 없음.
깨닫는 순간... 난 그냥 생각했음. 버스타야겠다. 그나마 사람이 있는 곳도 버스정류장이고,
(미국 사는분들 알겠지만... 주택가에서 사람보기란 그닥 쉽지 않음.)
버스를 타면 그나마 안전할테니.. 그리고 저 흑인이 날 계속 보는건지 확실하진 않아도 그냥 가다가 혼자 불안하느니..
차라리 버스를 타자라며 버스 정류장으로 다시 온길을 되짚어 감.
별별 생각이 남.. 저 흑인 괜히 오해한 거 아닌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막 그럼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고 있는데...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았음.
심장 멎음..
흑인이 내 바로 5미터 뒤에 있음.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나를 노려보며 내 걸음에 맞춰 오고 있음.
이 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 못함. 정말... 그냥 아무것도 생각 안 남.
방금 지나쳐 온 정류장인데도 아직 150미터는 더 남은 것 같음.. 완전 미쳐버림..
걸음을 빨리했음 ...
뒤를 돌아봤음..
미침... 흑인이 그 간격 그대로 날 따라오고 있음.
심장이 덜덜덜...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정신 차리자 싶어... 뛰었음.
흑인... 역시나 뜀...
정말 무서운 건.. 내 속도 그대로 뜀...
그 간격 맞춰서 옴.. 5미터..가량...
정말 무섭고 무섭고 더이상 생각도 안나서.. 하나님하나님 울부짖음..
제발 저 사람이 장난하는 것이기를.. 이라고..
전력질주함... 뒤도 못 돌아보겠음. 그래도 한 번 봄..
흑인 그냥... 빠른 걸음으로 걸어옴... 그나마 다행이었음. 만약 전력질주로 나 따라왔으면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걸렸을지도 모름.
불과 몇 분의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이었음.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음.
아직 버스 문은 열리지 않은 상태임.
줄을 섰음. 사람들은 내 앞으로 9명 정도 있는 상황.
흑인.... 내 뒤로 섬...
내 뒤에 50센티 간격을 남기고 내 뒤로 줄섬........
내 심장은 쫄밋.. 쫄밋..
머리를 굴리는데
- 내가 타고 흑인이 타면 내가 어디서 내리든 따라내릴 것이다.
- 종점까지 가도 쫓아올 것이다.
- 어쨌든 난 버스를 타도 흑인에게 자유롭지 못하다.
(PS.참고로 가난한 유학생인 난 핸폰이 없었음.)
라는 생각이 들어.. 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이 자리에서 흑인을 따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음.
참고로 버스 정류장은 이럼.
구글 들어가서 로드맵도 가져옴.
문제의 버스 정류장.
그래서 생각을 정리함.
생각을 정리해도 어떤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음.
버스 문이 열림..
사람들이 버스를 타려고 함.. 그 때 신발끈을 묶는 척을 했음.
그랬더니 그 흑인이 나를 지나가면서도 나를 주시함.
너 안 타면 죽는다의 눈빛..
신발끈을 고치고.. 흑인 바로 다음으로 버스에 탐..
흑인이 나를 계속 주시하며 버스 뒤로 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 때..
이제... 버스기사가 버스 문을 닫으려고 함.
그래서 자리에 앉는 척을 하고
잠깐 흑인이 안 보는 사이..
버스 문 닫히는 정말 찰나의 순간에
그냥 빠져나옴.. 버스에서..
내가 생각해도 그런 민첩성이 있었는지.. 아직도 대견함.
사진에 화단 보이지 않음?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몰라도.. 그 때는 저기 화단이 조금 더 높았음.
화단을 막 뛰어넘어서...
주차장에 차들이 있었는데.. 진짜 큰 차 험비 찾아가지고 험비 뒤로 숨음.
별생각 정말 안 들음..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림.
버스가.. 출발함..
정말 천천히 출발함...
안도함... 안도해도... 끝까지 버스가 눈에서 안보일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생각함.
그래서 자리를 뜨지 않음.
근데.. 정말.. 버스가 출발하자 마자 5미터도 안 되어서 섬.
내 심장 정지..
그리고 문이 열리며 그 흑인 내림.
내 심장은 계속 정지 상태..
흑인과 내 거리 거의 30미터밖에 안 됨.
숨소리 내면 흑인이 들을 것 같아서 숨도 못 쉼.
그냥... 눈물 터질 것 같아도..
참음.. 곧 내 목숨은 이 순간에 달렸다.
들키면 끝이다 라는... 생각으로.
흑인 뜀... 버스정류장 쪽으로..
나와의 거리 20미터..
그리고 여기저기 살펴봄.
그 순간... 험비 뒤에서 난 정지..
누가보면 캡쳐한 줄 알 거임. 그냥 정지.
그 쪽 보지도 못함..
그렇게 10초 정도 지남......
그러고 다시 눈 빼꼼히 버스 정류장 쪽을 봄..
흑인 완전 화났는지 눈빛 폭발..
두리번 거리며 나를 찾음.
그리고 주머니에서 뭐 꺼냄..
길고 뾰족한 뭔가임. (아니길 바라지만 칼 같음. 확실하진 않음.)
그리고.. 내가 처음에 오던 방향으로 그냥 다시 가버림.
그렇게 상황 종료.
지금도 생각하면 그 때 내가 참 대처를 잘한 것 같음.
분명 그 때 잡혔다면 어디선가 만신창이가 되어 있거나 현재 숨을 쉬고 있지 못할 것이라 생각함.
이거 마무리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음.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경험담 한 번 썼는데...
끝맺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음.
모두 좋은 오후 되시길 바람.. (음슴체 끝맺을 때도 이렇게 끝내나요?)
PS. 제글 보고 미국 무섭다고 그러진 말아주세요.
어디나 꼭 미친X 있듯.. 제가 잘못 만났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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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보고 몇가지 보충합니다.
1. 상황 종료 후엔.. 마트 들어가서 약 30분 정도 쇼핑하는 척 울다 쪼그려서 울다 나왔고요.
버스 타고 헬스장으로 갔다가 형부가 바로 픽업와서 집으로 갔어요.
2.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은 이유는..
일단은 그 상황은 도움을 청하기엔 뭐도 아닌 그런 상황 같았어요.
최후 수단으로는 버스 기사한테 도움요 청하려고 했었어요.
3. 흑인이 먼저 탄 버스에 따라 탄 이유는.. 버스 정류장에서 저만 안 타게 되면 흑인이 다시 내릴 것 같았고...
그럼 결국에 그 남자와 저만 남게 될 것 같아서...
어쨌든 탔어요.
4. 이 사건은 약 2~3시 정도에 있었던 사건이라 대낮이었습니다. 몇몇분 오해하시는 것 같아서.. (저 어두울 때 절대 안 돌아다녀요.)
저희 형부가 저 미국 처음 갔을 때 얘기했었죠.
첫째.. 어두워지면 절대 나가지 않는다.
둘째.. 절대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
셋째 다운타운을 지날 땐 차문도 꼭꼭 걸어잠근다.
5. 미국이란 곳.. 그렇게 위험한 곳 아니예요. 그냥 어두워지면 나가지 않고 혼자 돌아다니지 않으면 괜찮아요.
물론 한국만큼 안심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ㅜㅜ
6. 산호세사시는 분들 많네요. 역시 산호세~ 한국인 많죠!
- 산타나로 너무 좋아~ 최고 최고
- 판타지아에서 먹은 버블티 때문에 버블티 자체를 너무 좋아함.
- 밀피타스 그레잇몰 싸고 편해서 혼자 잘 다녔던 기억. (리바이스 너무 싸서 리바이스에서만 놀던 기억.)
- 한국음식점 비원 잘 갔고 한국 슈퍼마켓은 항상 한국마켓으로 다녔네요 ㅎㅎ
(한국마켓서 쇼핑하고 한국 드라마 빌리러 한국 비디오 가게 들리던 기억... 아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