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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늘 어머니는 저고리와 바지를 만드셨다. 새로 튼 솜을 넣어 한 땀 한 땀 손으로 누벼 만든 누비저고리와 누비바지, 촛불만큼의 온기도 없는 형무소에서 겨울을 나셔야만 했던 아버지를 위한 고름도 대님도 없는수의(囚衣)였다.
한 달에 한 번 보자기에 가지런히 쌓인 아버지의 수의(囚衣)를 들고 형무소로 면회 갈 때면 새털같이 가벼운 바지저고리가 시린 가슴을 짓눌러 왔다.
면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막내야, 솜틀집에 다녀오너라..."
어떤 자가 '민주주의', '자백 강요', '억울', '어린애와 손자까지' 하는 말을 외쳤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형무소의 냉기를 가득 담은 아버지의 수의(囚衣)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보자기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역사의 아픔을 손으로 받아내야만 했던 내 어린 날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저런 자들의 외침을 위해 삶을 바치셨던 것인지...
겨울이면 늘 방 한켠에는 아버지의 수의(囚衣)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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