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은 분명 있다. 아니 형체를 가진 영적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귀신은 분명 강남구 논현동 희망빌라 302호에 있다.
동환이(가명), 성철(가명) 그리고 나. 우리셋은 그때 그 빌라에서 함께 살았다.
아직도 기억난다. 이사하는 날 주인아줌마는 이렇게 말했다.
"이 방이 영화배우 권민중 알지? 그 아가씨가 살던 방이야."
투갑스의 그 권민중?... 우리는 이삿짐을 옮기면서 권민중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참 많이도 애를 썼지만 집안은 무슨 터럭 하나 발견할 수도 없었다. 너무나 깨끗한 텅빈 방이었고 너무나 깨끗한 텅빈 거실과 욕실과 베란다였다.
이삿짐을 다 옮기고 한숨 돌리려는 찰라, 성철이가 큰 방 문 안쪽위에 부적3개가 연달아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성철 : 아직도 저런 거 붙여놓고 사나? *나 : 떼라.
당시만해도 부적같은 걸 믿지 않았고.. 이런것들에 심취한 사람들을 싫어했던 까닭에 우리는 아무생각도 없이 떼 버렸다. 그리고, 나는 며칠뒤에 합류하기로 하고 중랑구에 있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셋이 함께 살기로 했지만, 동환이와 성철이가 먼저 짐을 옮긴 것이고, 나는 아직 이사를 안 했기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그 '귀신'이란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나도 짐을 완전히 옮기고 합류한 며칠뒤 였다.
*성철 : 형..이집 좀 이상해. *나 : 머가? *성철 : 귀신이 있는 것 같애. *나 : 여자면 좋겠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다. 우리 셋은 워낙에 겁대가리가 없는 놈들이라서 귀신의 존재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단지, 여자냐 남자냐만이 중요했을 뿐. 하지만, 그날따라 성철이의 표정이 좀 심각했다.
*성철 : 우리 이사한 날 있자나...형이 가고 난 뒤에 말이야.. 성철은 담배를 꼬나 물면서 말을 시작했다.
이사하던 날 내가 가고난 뒤, 성철과 동환이는 인부를 부르지 않고 직접 이삿짐을 다 옯긴 까닭에 피곤함에 지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성철은 큰방, 동환이는 작은방..이렇게 잠을 잤다고 한다. 참고로, 그 빌라는 작은 침대와 옷장이 있는 작은 방, 컴터와 TV가 있는 큰 방, 그리고 거실과 화장실 이렇게 되어 있었다.
*성철 : 내가 큰방에서 자고 있는데 말야. 왼쪽 벽에서 못박는 소리가 나는 거야. 아버지하고, 아들목소리가 들리는데..워낙 선명해서 어느쪽에 박고 있는지 까지 알겠더라구. 아들이 '아버지, 그쪽이 아니고 조금더 위에'하니까, 아버지가 '오냐. 알았다 여기? '이런 소리까지 들리더라니까. *나 : 옆집에 누가 이사왔나 보지뭐. 방음이 안되네 이집이...그런데? *성철 : 뭐 그거야 이상할 것 없잖아? 근데 일어나서 담배 한 대 피울려고 창문을 열어 보니...우리가 마지막 집이었어. 우리 왼쪽에는 골목이었다구. 망치소리가 났던 그 쪽엔 아무것도 없었던 거야. *나 : ...... *성모 : 근데 갑자기 옆방에서 자던 동환이 형이 일어나더니 말야...아파서 죽겠다는 거야. 좀전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말야. 자면서 꿈속에서 계속 가위에 시달렸나봐. ㅁ못으로 찌르는 것처럼 따갑고 팔에 쥐까지 나서 죽는 줄 알았다는거야 글쎄. *나 : 귀신이 있나?..
난 어색한 농담을 던졌고 그렇게 우리는 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귀신의 존재. 보통사람들은 이사를 다시 가느니하며 호들갑을 떨 일이었지만, 서두에도 말했듯이 우리는 겁세포가 없다. 무엇보다도 다시 이사하는게 귀찮았다.
심상찮은 징조는 계속 이어졌다. 이상한 징조는 이번엔 작은방에서 일어났다. 작은 방에서 자는 사람마다 무시무시한 가위에 눌리는 것이었다. 왠만하면 거실이나, 큰방에서 자도 될 것을 매일 가위에 눌려 얼굴이 반쪽이 되어 나오면서도 꿋꿋하게 작은방으로 자러 가는 동환이가 안쓰러웠다.
가위눌림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사지를 전기통하듯 꼼짝못하게 하고 목을 조르는 것이 그 방에서 자 본 우리들의 대부분 공통된 가위눌림현상이었다. 그래도, 거기까진 좋았다. 어차피 귀신과의 동거도 동거가 아닌가..
그런데... 며칠뒤, 큰방에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국민게임, 포트리스에 열을 올리고 있던 어느날.... 작은방에서 자고 있던 성철이가 작은방 문을 박차고 튀어 나왔다.
"아아악!!!!!"
*나 : 뭐얏! *성철 : 혀...혀....형...!!!!! 녀석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놈이 또 연기하는 군'했다. 사실, 그넘은 탤런트 뺨칠정도로 연기를 잘해서, 단순한 나를 놀래키기도 했던 것이다. 그넘의 우는 연기는 압권이었다. 하지만 난 그때 포트리스를 하는 중이었다.
*성철 : 혀어엉! *나 : 또 연기하냐? *성철 : 혀..형! 나...나와바바... *나 : 내가 첫턴인디... 나는 이번에도 속이면 가만두지 않으리...하는 마음으로 거실로 나갔다. 성철이가 식탁의자에 축늘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