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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82656
    작성자 : 공명의함정
    추천 : 12
    조회수 : 3600
    IP : 220.120.***.207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5/08/18 19:08:57
    http://todayhumor.com/?panic_82656 모바일
    [reddit] 109. 파리의 지하묘지
    원문 링크

    ------------------------------------------------------------------------------



    손목시계 알람은 오전 9시로 설정해놓았다. 지금은 두 번째로 울리는 알림인데, 음산한 소리가 주변을 둘러싼 벽을 타고 울린다. 이건 매 시 정각마다 울리는 알림이다.
    어둠 속에서 시간은 아무런 상관이 없어진다. 시간은 단지 추상적인 기억일 뿐이다. 하루 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분 이라는 작은 개념은 사라져간다. 공허함 속에서 시간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꺼져가는 핸드폰의 흐릿한 불빛을 어둠이 삼켜버리자 돌연 현실감에 맞닥뜨렸다.

    '멍청하군, 들어오는게 아니었는데...'

    잔 잔함은 공포의 근원이다. 침착함을 좀먹고 점점 광기로 나를 이끈다. 갈라지고 말라버린 목소리는 너무도 미약하여 더이상 나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 소리지르지 못했고 그저 이 침묵을 깨기 위해서 신음내는게 전부였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의 히스테릭한 심장소리 속으로 잠겨들어갔다.



    과거에 주정뱅이들이 밟고 굴러떨어진 것과 똑같은 발판을 밟고 떨어진걸까?
    혹시 출구랑 가깝진 않을까?

    여행 가이드가 이 미궁에 대해 설명하던 것이 기억난다. 600마일이랬나? 킬로미터였나? 나는 내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것이었으면 하고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그럴리는 없기에 나는 숨죽여 흐느낄 뿐이었다.

    어쩌면 스포츠 신문 헤드라인에 내 이름이 실릴지도 몰라
    어머니가 그 기사를 읽으면서 걱정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 "술취한 여행객이 지하 묘지에서 실종됨"




    손 바닥의 물집은 모조리 터졌고 결국 손은 살보다 상처가 더 많이 차지하게 되었다. 손은 눈과도 같다. 피와 때로 얼룩진, 손이 닿는 벽만 볼 수 있는 눈이다.  바닥을 짚으면 다리는 뒤를 따르고 그렇게 끊임없이 기어간다... 기어가고 기어가고 또 기어간다...
    뼈와 검댕이와 후회로 가득찬 석실을...




    좁은 통로를 기어가다 다른 방으로 접어들었다. 천장의 갈라진 틈에서 새어나오는 것은 슬프게도 나에겐 한 줌 안식이 되어줬다.
    흘러내려온 퇴비와 소금물이 이룬 구덩이는 밖에서라면 정말 더럽기 짝이 없겠지만 여기선 마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짙은 후회 속에서 발효되가는 난 앝은 물웅덩이 옆에 누워 훌쩍이고 있다. 태아처럼 웅크리고선 이전의 잘못된 판단이 내 운명을 결정지었다고 받아들였다.

    파리의 지하묘지는 어둠으로 가득찼고, 그 속에서 나는 서서히 미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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