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소 격한(?) 세레머니 때문에 메달을 놓칠 뻔한 박종우(부산)
우리나라의 프로리그인 K리그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한, 다소 '매니악'한 리그이고, 자연스럽게도 소속되어 있는 선수들 역시도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 지금 바로 내 옆에 K리그 선수가 지나간다해도 그를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이는 올림픽을 다녀온 K리그 선수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옆에 '김현성'이 지나간다고 알아볼 이 누가 있겠으며, 하다못해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K리그 정상급 중앙 미드필더인 박종우는 예외인 듯하다. 나이 지긋이 드신 우리네 부모님들도 '박종우'의 이름을 들으시면 "아 그 친구?" 이러한 반응을 보이심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은 박종우가 런던 올림픽에서 보여준 활약이 많은 사람들 머리 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일까? 격하게 아니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박종우를 기억하는 사람들 중 열이면 여덟, '박종우'에 대한 이미지는 글 위에 있는, 너무나 당연한 한 문단이 쓰여있는 피켓을 들고 3위를 기뻐하는 모습일 것이다.
모두들 알고 있다시피 박종우는 저 사진 한장때문에 천국에서 지옥, 지옥에서 다시 천국까지 오가는 T익스프레스를 타야했지만, 롤러코스터에서 하차한 박종우에게 주어진 것은 메달과 병역혜택, 그리고 김현성을 비롯한 다른 메달리스트들은 가지지 못한 '애국 청년 이미지'였다. 그 이미지덕에 박종우는 동료 선수들보다 더한 리스펙을 받을 수 있었고, 순식간에 K리그 선수들 중 거의 최고의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박종우의 이미지 덕에 소속팀의 부산의 관중이 두배 증가했다더라' 이런 비슷한 말은 안타깝게도 들어본 적 없지만, 아마 부산의 경기를 보러가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 이후로 박종우의 발끝에 더 많은 눈길을 주었을 것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보면 그들에겐 재미있고 와닿는 볼거리가 하나 추가된 셈일테니까.
박종우는 이렇게 K리그 팬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2.
선수 생활 막바지에 J리그에서 활약했던, '아스날 레전드' 융베리
유명한 유럽 선수들의 재계약 불발 소식이 뉴스에 올라올때마다, 항상 나오는 베스트 리플 중 하나는 바로 'K리그에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리플이다. 실제로 많은 축구 팬들이 알다시피, 옆동네 '방사능국' 일본과 '대륙' 중국, 저 서쪽의 '기름쟁이들', 최근엔 '싸커루' 호주까지 막대한 돈다발로 은퇴가 가까워진 유럽 선수들을 자국의 리그로 끌어오곤 한다. 한국의 축구 팬들은 그러한 상황을 뉴스로 접하며 항상 입맛을 다셔오곤 했고, 이제는 기대나 안타까움 조차 버리고 '뭐 그러려니' 하는 입장마저 되었다.
그런데, 저 부유한 국가들과 클럽들이 은퇴할때가 다 된 늙은 선수들에게 천문학적인 연봉을 쥐어주면서까지 자국리그로 데려오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에겐 새치가 희끗하게 보이는 늙은 유럽 선수들이 보여줄 활약보다 더 나은 활약을 보여줄 선수들이 없어서일까? 키울 유망주도, 데려올 더 나은 브라질산, 동유럽산 용병도 없어서 일까?
어마어마한 돈다발을 쥐어주면서 부유한 나라의 리그와 클럽들이 불러오는 것은 그 유럽 선수들의 '기량'만이 아니다. 그 정도 돈이라면 동유럽과 브라질에서 난다 긴다하는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을테니까. 그 돈을 받고 오는 것은 바로 늙은 유럽 선수들이 거쳐온 험난한 세월들과, 선수들이 이룬 성공적인 커리어와 역사, 한마디로 팬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한층 더 멋진 '이야깃거리'이다.
그들은 그들이 유럽에서 쌓은 명성과 클래스를 소비하며 클럽이 그들에게 지불한 금액보다 더 큰 금액을 관객들의 주머니에서 꺼내 클럽과 소속리그에 돌려준다. 그렇게 그들은 고용주(?)들에게 자처해서 '이야깃거리'가 되어준다.
3.
'난 놈' 신태용과 'The Special One' 무리뉴
포르투갈 클럽의 감독으로 커리어를 쌓아왔던 무리뉴에게 어마어마한 명성을 얻는 길을 열어준 것은 두가지, 포르투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기자회견에서의 '스페셜 원' 발언이었다. 그가 자신이 '스페셜 원'임을 주장하면서 그가 얻은 것은 그 특유의 자신만만한 '이미지'였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무리뉴의 전술만큼이나 무리뉴의 '입'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무리뉴가 입을 열면 그것이 기사가 되었다. '스페셜 원'을 말함으로서 무리뉴는 정말로 '스페셜 원'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감독이 있다. 아니 있었다. 바로 前 성남일화 감독 '신태용'이다. 성남의 레전드로 성남의 감독을 맡았던 그는 무리뉴를 벤치마킹하여, '나는 난 놈이다'라는 명언(?)을 뱉어냈고, 그 외에도 가시 돋친 말들도 머뭇거리지 않고 뱉어냈다. 덕분에 심판들에게 미움을 받았다는 설(?)이 도는 등, 부작용이 없지 않았지만, 소위 말하는 '어그로' 끌기는 성공, 성공,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신태용 감독은 감독 시절 내내 자처해서 논란의 중심에 서서 K리그의 소규모 부흥을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주관적으로 생각들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들의 전술은 대체적으로 훌륭했고 훌륭하다. 양쪽 대륙 챔피언스리그에서 그들이 거둔 성과만 보아도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을 '스페셜 원'과 '난 놈'으로 만들어 준 것은 그들이 거둔 성과와 더불어 그들의 '어그로'였다. 그들은 '피자헛의 샐러드바', '식후에 먹는 커피 한 잔'이 되었고,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4.
박종우의 논란, 은퇴를 앞둔 유럽선수들의 입단, 감독들의 다소 가시 돋친 언행, 전부 다 다른 이야기같지만 그들이 가지는 효과는 하나다. 그들은 전부 팬들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되고 이미지가 되고 '이야깃거리'가 된다.
팬들이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하는 멋진 축구, 그들이 보여주는 전술 뿐만이 아니다. 팬들은 '저 두 팀이 지난 번 경기때 싸웠던 일', '저 감독이 지난번 기자회견 때 했던 멋진 도발과 그에 대한 상대 감독의 대응', '저 선수가 지난번에 SNS로 날렸던 묵직한 디스', '그 선수의 지난번 골세레머니에 담겼던 사연'들을 어쩌면 더 사랑할 수 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소줏잔을 기울이면 하는 얘기가 수업시간에 하던 공부보단, 다같이 즐겼던 점심 시간, 저녁 시간, 쉬는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인것 처럼 말이다.
K리그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경기 전후에 가지는 기자회견, 그 안에서 인사치례로 오고가는 덕담,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 부족해서 졌다는 멋진 인정, 스포츠를 빛내는 것은 이런 훈훈한 장면들이지만 K리그에 이런 훈훈함은 수년간 차고 넘쳐 더 이상 필요가 없다. K리그에는 당연시 나오는 끄덕거림보단 소비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필요하다.
FMKOREA 국내축구 갤러리 임멍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