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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추적추적하게 비가 내리는 날이였습니다.
해가 없는 여름날 알게 모르게 끈적한 기분은 아침부터 기분을 축 쳐지게 했습니다.
그 날 아침 신송이 하나 내려왔습니다. 근무가 없는 헌병대 인원 두 명은 부사관을 보좌해 행사에 나갈 것이라는 내용이였습니다.
다행히 저는 착출되지 않았습니다.
아직이 1년이 안 된 일병이라서 그랬던 걸까요. 안 그래도 비도 오는데 다행이다 싶었죠.
더욱 좋은 소식은 행사로 인한 일정으로 정문 근무자와 행사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은 전부 쉬라는 명령이였습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알지도 못 한 행사를 뒤로 하고 오랜만에 푹 쉬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의 순번은 21시(저녁 9시) 정문 근무로 배정되었습니다.
그나마 제일 친했던 선임인 최상병과 함께 근무 준비를 마치고 총 한 자루를 들고 촐랑대며 정문을 향할 때 오늘내 궁금했던 점 한 가지를 물어봤죠.
"최상병님 오늘 무슨 행삽니까? 포대장까지 다 나간거보면 뭐 큰 행사 아닙니까?"
"몰라. 작년에 보니까 무슨 추모인가 그랬던 거 같은데 간부들만 하는 거라 잘 몰라 나도."
결국 알아내지 못 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가 지고 떠오른 달을 보면서 정문을 지키다 또 그냥 그렇게 잠을 자면 끝나는 게 제 군생활이였으니까요.
오늘 밤도 별일 없는 산꼭대기 부대 정문에서 어둠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됐습니다.
자정이 다 돼가니 비 때문에 끈적했던 기운도 사라지고 이제 약간 쌀쌀하기까지 합니다.
그때 부대 앞 정문에 세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군복을 입고 손에 봉지를 들고 있는 걸 보니 자세히 안 봐도 치킨을 들고 복귀한 김하사 일당인 걸 알아차렸습니다.
영내거주하는 하사라 행사를 마치고 놀다가 이제야 돌아오나 봅니다.
암구호 할 것도 없이 그냥 열어줬습니다. 친한 하사고 여기처럼 작은 부대엔 어쩌피 모든 게 관행이니까요.
김하사 옆에 처음 보는 사람이 있는데 뭐 어젠가 근젠가 갓 들어온 하사겠지 싶어 냅뒀습니다.
"여 최짤 오늘 21시 근무야? 운이 좋네. 치킨사면서 니네 먹으라고 김밥 가져왔는데 쟤랑 먹어."
"잘 먹겠습니다. 김하사님."
오늘 근무 3시간 만에 처음 보는 사람 얼굴이 김하사라니, 오늘 진짜 운이 좋습니다.
"야 김밥 먹어."
"근데 김하사 옆에 누굽니까? 키작은 분.. 첨 보는데 이틀전에 들어온 신입 하삽니까?"
"누구 ? 이하사? 너 아직 이하사 얼굴 모르냐? 새끼가. 김하사랑 맨날 같이 다니는 이하사 몰라?"
"이하사 말고 말입니다. 김하사 오른쪽에 모자 안쓰고 키작은 분.."
"뭔소리야 두 명 들어갔는데."
"세 명이였습니다."
제 목소리가 조금 단호했나 봅니다.
최상병이 아무말도 없이 저를 쳐다보더니 영내로 들어가는 김하사 일당을 다시 보기 위해 초소밖으로 뛰어 나옵니다.
"두 명이잖아 새꺄. 놀래키고 있어."
"무슨 소립니까? 세 명이잖습니까. 저기 김하사 오른쪽에 키작은 사람 안 보이십니까?"
"뭐야 이새꺄 너 미쳤어 저기 두 명 올라가는 거 안 보여?"
얘기하는 사이에 김하사 일당은 이미 어둠에 가려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젠 누가 맞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어져버렸습니다.
cctv도 상황실이 아니면 제어도 못 하는 와중에 초소에서 조치할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너 진짜 세 명 봤어?"
"그렇습니다. 김하사가 김밥 봉지 들고 있었고 이하사가 치킨 봉지랑 음료수 들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리고 김하사 옆에 안경 쓴 하사 말입니다. 키 작고.. 한 김하사 어깨 정도 밖에 안 오는."
"없었다니까. 누구? 그저께 들어온 신입 하사? 너 신입 하사 들어오면 한 달 동안 영외로 못 나가는 거 몰라?"
맞습니다. 그걸 왜 잊고 있었을까요. 신입 하사가 들어오면 출퇴근이 아니고 한 달 동안 영내 기숙사에 지내면서 나가지 못 합니다.
아예 외출 자체도 허가가 안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들어간 걸까요.
"두 명이였다니까. 내가 눈깔이 삐었냐 있는 사람을 왜 못 봐."
"압니다. 하지만 저도 눈깔은 삐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 사람은 누굽니까? 아니 대체 뭡니까?"
아웅다웅하는 사이에 01시 근무 교대자가 내려오는 게 보입니다.
근무교대식을 하는데 정병장이 하는 소리에 잠이 확 깨버렸습니다.
"야 니네 오늘 귀신 안 봤냐? 오늘 추모날이라 귀신 올텐데."
최상병이 저와 있었던 얘기를 정병장에게 전해주자 정병장 얼굴의 장난기가 금새 굳어버렸습니다.
말인 즉슨, 오늘은 지금까지 부대에서 있었던 두 명의 자살자를 위한 추모날이였고, 자살 날짜 또한 같아서 항상 일년에 한 번씩 오는날짜에 추모 행사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면 어김없이 헌병 근무자들이 자정이 되는 시간에 귀신을 본다는 겁니다.
심각한 얼굴로 네 명이 말없이 서있을 때 초소 전화가 울렸습니다.
"필승 정문 일병 이ㅇㅇ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지직-"
순수 잡음과 바람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저는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아 급하게 끊어버렸습니다.
그 때 정병장이 급하게 통신대로 전화를 걸더니 다짜고짜 방금 헌병 정문 초소에 전화 건 데가 어디냐고 고함치다시피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색이 돼서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는 모습이 누가 봐도 겁에 질린 얼굴입니다.
"야 방금 전화 온 데 3초소래."
3초소는 유일하게 부대 레이더 지역 넘어 외곽펜스 가까이에 자리잡아 불빛 하나 없는 풀숲 안에 버려진 곳입니다. 사다리로 올라가도록 만들어진 곳인 데다가 어둡고 경사가 져서 순찰도 안 가는 곳이라 평상시에는 자물쇠로 잠겨져 있죠.
이 시간에 거기서 전화가 올 가능성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병장의 말에 다리가 풀려버렸습니다.
"거기가 두 명 다 자살한 데야."
그 뒤로 근무 교대자를 놔두고 어떻게 숙소로 복귀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살면서 흔한 가위 한 번 안 눌려 본 저지만 그 날은 평생 잊지 못 할 겁니다.
제 일병 때 경험담을 조금 각색해봤습니다.
재밌으셨으면 후기를 쓰겠습니다.
출처 | 루리웹 그럴수있죠 님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327/read?articleId=25896759&bbsId=G005&itemId=145&pageIndex=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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