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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적한 일요일 저녁, 평소와는 달리, 그 날 따라 카페는 시끄럽게 북적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원해서 온 게 아닌데…난 약간 입맛을 다시며 내가 앉을만한 자리가 없는지 주변을 둘러본다. 입구 바로 앞 작은 테이블 하나. 그다지 맘에 드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자리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한다.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잔. 쓴 커피는 싫지만 지갑사정이라는 놈은 나의 까다로운 취향을 용인해 줄 관대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카페 진열장 안에 놓여있는 달콤한 디저트 들이 눈을 통해 나의 침샘을 자극한다. 나는 가지고 싶은 건 반드시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 지갑의 돈이야 다시 채워 놓으면 되는 것이겠지. 나는 점원에게 티라미슈라는 작고 귀여운 아이를 주문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쟁반에 담겨 나온 아메리카노와 티라미슈를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나는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마구 뿌려 넣는다. 한 입 마셔본다. 커피인지 설탕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난 뒤에야 나는 자리로 돌아온다. 가만히 앉아 빨대를 통해 입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설탕물의 달달함을 느끼며 생각해 보니, 처음엔 별로라고 생각했던 입구 바로 앞 자리가 불현듯 마음에 든다. 쉴 새 없이 열리고 닫히는 문, 카페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한참을 그렇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이번엔 자세를 고쳐 잡고는 손끝을 코에 살짝 대본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아세톤의 냄새. 나는 이 냄새를 좋아한다. 노트북을 펼친다. 딱히 할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할 것이 없는 것 처럼 보이기 싫었던 이유일까, 나는 노트북에 카페 와이파이를 연결하고는 소위 ‘정보의 바다’ 라는 곳을 돌아다니며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기 시작한다. ‘이따위 쓰레기장에 바다라는 이름을 붙여준 놈은 도대체 얼마나 긍정적인 놈일까’ 따위의 어찌되든 상관 없을 생각을 해본다. 카페 한 켠에 자리잡은 아줌마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거슬린다. 나는 음악을 재생시키고 이어폰을 꽂는다. 한 때 내가 미칠 듯 빠져 들었던 한 외국 가수의 노래. 이제는 닳고 바래 ‘지겨움’ 이라는 단어로 변해버린 노래들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쉰다. 한동안 신곡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더니 내 재생목록에는 오래되고 낡아빠진 ‘지겨움’ 들이 가득했다. 어찌됐든 나는 아줌마들의 이 거슬리는 웃음 소리를 막아야만 했다. 노래를 틀어놓고 이어폰을 귀에 가져다 댄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나는 음악에 집중하지 않은 채 주위 사람들을 둘러본다. 쉴 새 없이 주문을 받으며 억지로 입 꼬리를 올리고 있는 점원들. 주위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서로의 사랑의 깊이를 확인하는 데에 여념이 없는 한 커플, 어디 에베레스트라도 정복하고 왔는지 쓸데없이 화려한 등산장비들로 무장한 아줌마 아저씨들. 그 중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며 무언가에 열중 해 있는 한 여성이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갈색 머리에 검은 색 둥글고 커다란 테 안경, 허리 뒤쪽을 빼어 입은 붉은색 셔츠, 짧고 검은 치마와 살빛을 은은히 드러내고 있는 검은색 스타킹이 유난히 도드라진다. 학생? 아니면 회사원?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나처럼 할 일 없는 사람일까? 관심 가는 여성에 대해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나는 한동안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똑바로 바라본 것은 아니고 그저 부질 없을지도 모를 관심 없는 척을 위해 손을 노트북 위에 둔 채 때때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머릿속으로 그녀에 대한 수많은 망상을 떠 올리며, 사람이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안도한다. 이제는 얼음만 남은 아메리카노를 쪼옥 하고 빨아들이며 나는 의미 없이 노트북을 두들기다, 그녀를 바라보다를 반복한다. 검색창에 마우스를 계속 두드려 대고 있으니 최근 검색어에 포르말린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한참 동안이나 그런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점원 하나가 나에게 다가온다.
"죄송합니다. 폐점시간이라서..."
시계를 확인해 보니 어느 새 시간은 저녁을 아득히 지나 밤이 되어 있었다. 그녀 역시 이제서야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깨달았는지 점원을 향해 미안한 웃음을 한 번 지어주고는 일어나기 위해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나 시끄러웠던 카페에는 어느새 적막함 만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굳이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짐을 정리한다. 딱히 가방의 내용물을 확인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모두 들어있으니까. 딸랑~하는 방울소리와 함께 카페를 나서는 그녀. 나는 뒤따라가듯 그녀를 따라 카페를 나선다. 오늘 밤은 많이 바빠질 것 같다. 나는 가지고 싶은 건 반드시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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