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것을,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선명히 기억한다. 그녀는 흰색 원피스를 입은 채 보도 끝자락에 서있었다.
그 회색 눈빛은 밤공기를 가르고 똑바로 나를 향했다. 자동차와 트럭들이 그 뒤를 쏜살같이 내달리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휘날렸는데, 이는 마치 폭풍 속의 오크나무들 같았다.
그 서글픈, 서글픈 미소. 나는 그녀에게 막 이별을 통보한 참이었다.
“우스울 거야.” 그녀는 슬프게 말했다. “몇년 후,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무언가를 깨닫는다면.”
“뭘 깨닫는다는 거야?” 내가 물었다.
“당신이 나에게 느꼈던 감정들, 그런 경험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말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그리고 당신은 그로부터 등을 돌렸지.”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뒷걸음질을 쳤다—
“무얼 하려는—” 내가 말했다.
—달리는 차들 한가운데로.
“우리는 좋은 삶을 함께 보낼 수도 있었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녀는 산산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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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막 멜버른으로 이사한 참이었던 외로운 시절, 지아다(Giada)—애칭으로는 지지(Gigi)—를 처음 만났다.
난 밸러렛(Ballarat)으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서쪽 변방의 조용한 마을 출신이다. 당시 나는 높은 급료를 받는 엔지니어가 되고자 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 꿈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나는 이 콘크리트 밀림 안으로 들어와야만 했다.
도시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참 어렵다. 모든 사람들이 매사에 정신없이 서두르는 데다,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삶에 몰두하느라 다른 곳을 돌아볼 여력이 없다.
나는 썩 괜찮은 몇 달을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이 혼자 지냈다.
직장 동료들은 말 그대로 직장 동료일 뿐이었다. 그들은 개인사와 직장에서의 삶을 엮고 싶어하지 않았다.
어느 시점에, 나는 스스로가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도시 곳곳에 흩어지듯 위치한 작은 길거리 카페들 중 어느 한 곳에서 바리스타로 일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어느 멋진 날이었다. 그녀의 머리는 꽃무늬 스카프로 틀어올려져 있었다.
그녀는 몇 잔의 카푸치노에 휘핑크림을 올리고 있었고, 그녀의 거친 손은 거품기를 단단히 잡고 있었다.
“뭐가 필요해요?” 그녀는 시끄러운 기계소리 너머로 외쳤다.
“더블 에스프레소 부탁해요!” 나는 가능한 큰 소리로 말했다.
“뭐라고요?” 그녀가 말했다.
“더블 에스프레소요!” 나는 더욱 목청을 높였다.
그녀는 버튼을 눌러 거품기를 잠시 멈췄다. “그건 도피오(doppio)라고 부르는 거예요. 알아요, 알아. 하지만 우리 사장은 모든 손님한테 이렇게 말해주라고 우기는 걸요.”
“대체 왜요..?”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커피는 그냥 커피잖아요.”
“뭐, 그렇죠.” 그녀가 말했다. “멍청한 사장은 그냥 멍청한 사장이고요.”
한 나이먹은 남자가 그녀 뒤에서 나타나 그녀의 허리께를 세게 꼬집었다. 짜증이 그득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가 사장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꽥 소리를 내더니 꼼지락대며 벗어나 그에게 윙크하고선, 농담이었어요, 농담. 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거품기 버튼을 다시 눌렀고, 나는 돌아가는 기계소리 너머로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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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나는 그녀를 보러 가기를 고대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난 그녀가 일하는 가게를 매일 방문해 그녀가 업무로 돌아가기 전까지의 몇 초씩이라도 대화를 나누려 했다.
나는 그녀가 몹시 웃기고, 조금 미쳐있다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내 이상형이었다.
그녀도 점차 나를 알아보게 되었다. 내 출신지를 알게 되자 그녀는 나를 시골뜨기라 부르며 놀리곤 했다.
그녀는 때때로 내 옷차림을 놀리며 옷장을 바꾸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오만한 힙스터라고 놀렸다.
나는 이제 점심시간과 식후 차 시간도 그 카페에서 보내게 되었다.
기나긴 업무 후의 어느 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녀가 일하는 가게의 한 구석에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폐점시간 직전이었다.
카페 안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나는 테이블 중 하나에 늘어진 채로, 일어나서 집까지 걸어가기 위해 의지를 다잡으려 노력하던 참이었다.
그녀는 카운터를 닦다가 갑자기 멈췄다. “이런 망할.” 그녀가 말했다.
“기나긴 하루 말이지요?” 내가 말했다.
“네엡.” 그녀가 말했다. “좀 쉬죠. 못해먹겠어요.”
그녀는 카페의 음향 시스템에 연결된 케이블에 핸드폰을 꽂았다. 그녀는 가게에 흩어져 있는 낡은 나무의자에 기대 앉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얼굴에 수건을 걸친 후 머리카락을 뒤로 젖혔다. 우리는 잠시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저기요.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요.” 내가 말했다. 나는 가게의 조명을 끄고 음향 시스템의 볼륨을 올렸다.
나는 라이터를 꺼내서 테이블들 위에 놓인 양초 토막 하나에 불을 붙였다. “어때요?” 내가 말했다. “좀 차분해지지 않아요?”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실컷 웃었다. “차분해지긴커녕 유혹적인데요. 작업을 걸고 싶은 거예요, 칼?” 그녀가 말했다.
“그럴지도 몰라요. 어쩌면요.” 내가 말했다. “좀 효과가 있나요?”
그녀는 얇은 입술을 구부려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조금요. 이거 빌어먹게 진부하지만, 조금은 먹혔어요.”
나는 몸을 기울여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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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일은 정말 잘 풀렸다. 잠시동안뿐이긴 했지만. 나는 카페에 가는 빈도를 좀 줄인 대신, 주중 많은 시간을 그녀의 집에서 함께 보냈다.
그녀의 직업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으므로,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TV를 보거나 약에 취한 채로 보냈다.
몇 주 동안, 나는 아이스크림 통과 캐러멜 팝콘을 사들고 그녀의 집에 방문하기를 고대하게 되었다.
내가 꽃다발을 가지고 그녀의 문을 두드리면—그녀는 언제나 노랑수선화를 가장 좋아했다—그녀는 내 뺨을 가볍게 치고 찡그린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았다.
때때로는, 내가 그녀의 집에 가고 싶을 때, 그녀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건 괜찮았다—나는 그녀의 말을 존중했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우린 밤에는 거의 항상, 머리끝까지 대마에 찌들어 그녀의 소파에 늘어진 채 의식을 잃을 때까지 TV를 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우리는 드라마 ‘블랙리스트’의 에피소드 하나가 재생 준비되길 기다리며 그녀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10분은 넘게 기다렸지만, 마리화나에 취한 상태에서는 시간감각이 이상해진다. 나는 그녀에게 팔을 둘렀고, 그녀는 옆에서 나를 껴안았다.
“이런 식이라도 행복해?” 그녀가 갑작스레 속삭였다.
“이런 식이라니?” 내가 대답했다.
“바로 이런 거 말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거. 긴장 풀고, 게으름피우고, 시간을 낭비하는 거...” 그녀가 말하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남자들은 항상 뭔가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응...” 그러곤 나는 생각하기 위해 잠시 뜸을 들였다.
“난 뭔가 하는 건 좋아해. 하지만 난 뭐든 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걸 하길 원한다구. ...그거 알아? 당장은, 지금 이러고 있는 게 행복해.”
그녀는 키득이고는, 내 가슴을 살짝 깨물었다. “자기 완전 느끼해. 맙소사, 이러는 거 어쩔 땐 가슴아프기도 해.”
나는 웃었고, 우리는 잠시간 서로를 붙들고 있었다. 그녀 집 옆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전차 벨이 울렸다.
보행자 안내 표지판이 빠르게 달칵거리는 소리, 지나는 사람들이 달콤한 대화를 나누는 소리, 고요한 소리들이 그녀 침실의 열린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왔다.
“날 사랑하지, 그렇지?” 그녀가 갑작스레 말했다. “사실, 분명히 그럴 거라고 생각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내가 대답했다.
“나한테는 응어리가 있어.” 그녀가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딱 부러지는 듯했다.
“내게는 많은 앙금들이 있어. 당신이 아직 모르는 부분들. 난 그저, 당신이 그것들에 대해서도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알고 싶어.”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지지.” 나는 말했다.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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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당신이 온갖 미친 짓들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이 알려주지 않는 한 가지는, 사랑은 또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술에 취하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당신은 충분히 애쓴다면 어쩌면 그 점프를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어떤 것도 어쩌면 당신을 다치게 하지 못할 거라고.
당신은 어쩌면 스스로가 무적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런 상태였다. 한동안은.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중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성난 파도처럼 몰려오는 그녀의 우울증이었다.
그녀는 때때로 하루를 온종일 우울한 상태로 보내곤 했다. 그녀의 아파트 바닥에 널부러진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면서.
공포스러울 정도로 긴장된 나날이었다. 그녀는 우울한 노래들을 틀어놓고, 내 말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채 방 구석에 웅크리고 있곤 했다.
나는 달콤한 간식들과 꽃들로 그녀를 움직이게 하려 했지만, 그녀는 웅크려 앉아 무릎을 볼에 대고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음 날이 되면, 그녀는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와 내게 미소짓는다.
그리고는 다양한 방식으로 내게 사과하려 시도하는데– 점심값을 내거나, 열정적인 섹스를 하거나, 평소보다 더 다정하게 굴거나 하는 식으로.
이건 마치 친절한 태도들을 지불함으로써 사과의 권리를 사려고 드는 것처럼 보였다.
“어제 일은 진짜로 미안해. 나 완전히 늘어져 있었어.” 그녀의 말에서는 지독한 슬픔과 우울의 냄새가 풍기지만, 그녀는 이것을 미소로 덮으려 애쓴다.
“나 자기랑 화해하고 싶어. 괜찮아?”
“문제 없어, 지지.” 나는 억지로 미소지으며 말한다. “난 괜찮아. 전에도 괜찮을 거라 말했잖아.”
어느 날, 파티가 끝난 후 교외 외곽을 따라 그녀가 운전을 했다.
나는 약간 취해 있었고 그녀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리를 집까지 운반하기에는 그녀의 상태가 좀 더 나았다.
우리는 뒷거리를 천천히 달렸고, 나는 졸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나는 차가 급히 방향을 바꿔 도로를 벗어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눈을 떴다.
자동차 범퍼는 어느 집 울타리에 꽂혀 있었고, 후드 위에는 깨진 화병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지지는 문을 열고 자동차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녀는 자동차 기어를 주차로 돌려놓는 것조차 깜박했다.
그녀가 어두운 흙더미들과 꽃들의 잔해에 몸을 숙이며 우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이파리들을 움켜잡고 얼굴 근처로 가져가 속삭였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녀가 흐느끼고 또 흐느끼는 모습이 깨진 헤드라이트 불빛을 통해 보였다.
나는 차 안에 앉은 채 갑작스레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녀는 내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고,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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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어쩌면, 더 많은 걸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땅에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려 할 때 우리는 기진맥진하게 된다. 이것은 배려에도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그런 종류의 피로감이다.
당신이 누군가의 행복을 책임지고자 한다면,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나는 노력했다. 어쩌면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노력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녀는 괜찮을 때에는 정말로 멋졌다. 하지만 그녀가 우울할 때면 나는 긴 밤을 내내 그녀의 옆에 앉은 채로 보냈다.
그녀가 내가 알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때면 우리는 함께 어울렸고, 나는 마치 우리가 또 한 주를 버티기 위해 농담을 주고받았던 그 카페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그녀가 우울할 때면, 나는 잠들지 않은 채, 세상 전체에 대한 공포에 질려 굳어있는 그녀와 나란히 바닥에 누워있었다.
때때로, 나는 화를 냈다.
내 안의 이기심은 이 분노를 자라나게 했다. 지치고 불면에 시달리던 내 안의 작은 부분은 마치 종양처럼 자라났다.
그리고 그 비뚤어진 이기심 때문에, 나는 이제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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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 근처의 바에서 위스키 몇 잔을 마시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내가 하려는 일이 좋은 일일수도 있다는 환상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를 저버리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떠날 참이었다.
난 그녀에게 전화했다. 벨이 두 번 울리고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 칼!” 그녀는 미소띈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밤에 만나러 올 거야? 보고 싶어.”
“지지, 우리 얘기 좀 하자–” 나는 첫 발을 내딛었다.
수화기 너머로 갑작스런 정적이 흘렀다.
“–내 얘기좀 들어봐.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나..나한텐 여유가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계속했다. 수화기 저편에서 선명한 한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또 잠시간의 정적. 나는 어쨌든 계속했다.
“난 재충전할 시간이 좀 필요해...어쩌면 아주 잠시만이라도. 알잖아? 요즘 좀 팍팍했던 거.”
“내 곁에 있어줄 거라고 했었잖아.” 그녀가 속삭였다.
“잠시 시간이 좀 필요해. 그 뿐이야.” 내가 대답했다.
“당신이 다 괜찮을 거라고 말했잖아. 당신이... 당신이 괜찮을 거라고 말해줬었어.”
수화기 너머로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지지.” 내가 말했다. “지나고 보니, 결국 그렇지 않았나 봐. 정말 빌어먹게 미안해.”
통화는 잠시동안 연결된 채로 있었다. 우리는 양쪽 수화기 너머에서,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모든 걸 견디고만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소리가 잦아들고, 그녀가 울음을 그쳐가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 애를 썼다.
어떤 면에서, 이건 내가 그녀와 함께 방바닥에 누워있던 다른 모든 때와 비슷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만 빼면.
“알았어.”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그래, 알았어. 이해해. 그래도 우리,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만날 수 있을까? 당신, 나한테 데이트 한 번 빚졌잖아.”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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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별안간, 그래, 그녀는 흰색 원피스를 입은 채 보도 끝자락에 서있었다.
그 회색 눈빛은 밤공기를 가르고 똑바로 나를 향했다. 자동차와 트럭들이 그 뒤를 쏜살같이 내달리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휘날렸는데, 이는 마치 폭풍 속의 오크나무들 같았다.
그 서글픈, 서글픈 미소.
“우스울 거야.” 그녀는 슬프게 말했다. “몇년 후,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무언가를 깨닫는다면.”
“뭘 깨닫는다는 거야?” 내가 물었다.
“당신이 나에게 느꼈던 감정들, 그런 경험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말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그리고 당신은 그로부터 등을 돌렸지.”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뒷걸음질을 쳤다—
“무얼 하려는—” 내가 말했다.
—달리는 차들 한가운데로.
“우리는 좋은 삶을 함께 보낼 수도 있었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녀는 산산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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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의 일들은 사이렌 불빛과 경찰차, 엠뷸런스, 그리고 인터뷰와 질문들, 가족들, 걸려온 전화들, 그 외에 뭐든간에 떠올리기 고통스러운 무엇들의 부옇게 흐려진 덩어리다.
나는 이것들이 온통 내 안을 차지하도록 내버려두고,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나는 내가 앞으로 걷는 모습을 보지만 나는 그 곳에 없다. 그녀도 없다.
그녀는 모든 곳에 있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 몫으로 받아둔, 그녀의 아파트의 여벌 키를 가지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든간에 그저 걸었다.
방 불은 켜져있었지만 아파트에는 아무도 없다. 내 안의 한 부분은 무의식적으로, 좀전에 일어났던 일을 반복해서 재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끝내 멈췄다.
그리고 나는 아파트 문을 열었다. 내가 그녀와 끌어안고, 때로는 아이스크림과 꽃다발을 든 채 그녀를 기다리곤 했던 바로 그 문이다.
마치 그녀가 여전히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집안에는 그녀의 향기가 가득하다. 그녀의 모든 물건들이 여기에 있다.
어느새 그녀와의 나쁜 기억들 대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들만이 떠오른다.
커피샵에서의 그녀와 양초들, 그리고 그녀의 웃음, 그리고 캐러멜 팝콘, 그리고 나를 놀리던 모습들 –
– 나는 이 물결들에 저항하려 했다. 나는 이런 느낌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추억들은 계속 물결져 다가온다.
나는 그녀의 침실을 향해 걸었다. 침대 시트가 엉망이다. 가까스로 유지되던 모든 것들은, 내가 침대 위에 놓인 것을 본 순간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이 어딘가 망가졌고, 이제는 영원히 되돌릴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임신 테스트기였다. 선명한 붉은 선이 두 줄 그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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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역입니다. A4용지 7장 분량이네요.
자연스럽게 다듬으려니 의역이 많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