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둬야 하나요? 친일 청산안하면 이렇게 된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예가 될 것입니다.
전희경 새누리당 의원이 개최한 건국절 주장 토론회에서 “국정만 놓고 보면 불행히도 대다수 임시정부 요인들은 외국인이었다”며 임정을 건국의 시초로 보면 “외국인이 건국했다는 것과 같은 흠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71주년, 건국 68주년”을 언급한 이후 또다시 건국절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정교과서 전도사’로 불린 전희경 의원은 1948년 8월15일 건국절 주장을 국회로 옮겨왔다. 보수 학자와 언론인등 토론회 참석자들은 1948년 건국절 비판 세력을 향해 ‘북한식’이라는 이분법적 비판을 서슴지 않으며 논쟁을 이념 대결로 몰아갔다.
김학은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희경 의원실이 주최한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의 건국과 그 의미를 찾아서’ 토론회에서 국가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몬테비데오 협정에서 말하는 국가 구성요소 4가지 중 주권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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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희경 새누리당 의원이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의 건국과 그 의미를 찾아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김학은 교수는“1919년 임정에서 헌법을 만들었던 요인의 국적은 불행히도 중국 아니면 미국이었고 이승만은 평생 무국적자였다”며 “임정의 활동을 칭찬·상찬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불행히도 대다수의 임정 요인은 외국인이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 건국을 외국인이 했다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로 국적만 보자면 흠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학은 교수는 또 “국가를 구성하는 제일 중요한 우선순위를 따질 때 국적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외국인이 세우는 정부’”, “외국 국적 가진 사람이 임시정부를 만든다는 걸 반박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도 했다.
김학은 교수는 미국과 아일랜드의 독립 사례가 독립 선언-시민 탄생- 국가 건설로 이어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1948년 5월10일 총선거를 통해 시민이 탄생했고 7월17일 제헌헌법이 만들어져 사법·행정부를 설립하고 8월15일 건국을 맞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이승만연구소 원장을 지낸 류석춘 연세대 교수 역시 “일부 이상한 사람들이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데 3·1운동 이후 한성·상해·블라디보스톡에 임시정부가 생기고 4월10일 상해 임시정부로 통합이 되는 것인데 이 상해임시정부는 시민·주권·영토 등을 갖춘 것이 없었다”며 “일본 식민통치에서 독립시켜야 겠다는 정신적 의지가 충만했던 때”라고 평가했다.
류석춘 교수는 “임정 설립이 독립을 향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됐지만 나라가 선 것과는 다른 것”이라며 “부모가 눈이 맞아 연애를 하고 사귀다가 거사를 치르고 자궁에 정자가 자리를 잡고 일정 기간이 지나 태어나야 그날이 생일인데 1919년은 임신한 날일수도 있고 연애를 한 날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류석춘 교수는 “그날의 의미를 폄훼하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류석춘 교수 역시 “이승만은 독립 운동 내내 무국적자로 활동 했는데 김구는 중국국적, 안창호는 미국국적,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 국적을 모두 가진 사람”이라고 국적을 문제 삼았다. 류석춘 교수는 한 발 더 나가 “4월10일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일로 삼으면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 대부분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데 반해 중국과 소련 국적을 가진 사람들 중에선 북한 정통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결국 건국절 논란이 임시정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으로 갈라지는 이념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류석춘 교수는 그러나 “6·25 전쟁으로 상징되는 이념 대립이 1919년 당시 상해 임시정부에서 이념을 따지지 말고 합작해서 대한민국을 독립시켜보자는 생각으로 모인 것이고 48년으로 가면서 중국 소련 국적 가진 사람들은 남한보다 북한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김구도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류석춘 교수는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면 결과적으로 남북이 정통성을 나눠 갖는 것”, “쉽게 생각하면 김일성 정권에게 절반의 정당성을 주는 게 1919년 건국설”이라며 새누리당에 “각성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백범 김구는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했지만 북한의 단독 정부 수립에도 반대했던 대표적인 민족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남북한 단일 정부 수립을 주장했던 김구는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안두희는 1년7개월만에 풀려나 이승만정부 등을 거치며 군부에서 승승장구했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1948년 8월15일 이후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여러 차례 국가 공식 행사에서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한 것”, “민국 건설 제1회 기념일”(1949년 8월15일 경축사) 등 사료와 함께 50년 뒤인 김대중 정부도 1948년을 기산점으로 한 “건국 50주년 기념사업”을 했다고 강조했다.
류근일 전 주필은 그러면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것은 정신사적 운동사적 가치와 이상, 추구하는 취지를 전승한다는 것이지 국가를 직선적으로 이어 받았다고 해석하는 건 안 된다”고도 언급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전희경 의원은 “건국 부정 세력의 문제의식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페이스북) 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동시에 1948년 건국을 부정하는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들었다.
전희경 의원은 첫 번째로 “대한민국이 태어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며 “대한민국이 48년에 건국하지 않았으면 통일 조국을 건설할 수도 있었다는 것, 북한이 원하는 방식의 통일을 못했다는 안타까움에 반감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면 북한식이라는 것은 편협한 이분법적 사고일 수 있다.
전희경 의원은 또 다른 이유로 “자신의 반대한민국적 사관을 숨기면서 대한민국 독립 세력과 건국 세력을 이간질하는 사람들”을 거론하며 “48년에 건국됐다고 하면 독립의 공이 깎이는 것이냐. 임시정부에서도 건국해서 (나라를) 제대로 꾸려가야겠다는 활발한 활동을 스스로 해 온 것이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건국 강력”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희경 의원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하에 서게 해 비참한 현실에서 기적적으로 우리를 구출한 세력이 왜 지탄받고 독립운동과 구분돼야 하고 폄훼되느냐”며 “새누리당은 물론 건국에 관심 갖는 국민도 이런 마음을 개심할 수 있도록 목청 높여 외치고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새누리당의 국회 부회장인 심재철 의원을 비롯해 정진석 원내대표 등이 참석해 힘을 실었다. 친박계 초선으로 분류되는 정종섭·추경호·윤상직·김종석·이종명·성일종·김승희·윤종필 의원 등도 다수 참석했으며 한선교·박순자·박인숙 의원도 참석했다. 일부는 끝까지 남아 토론회를 경청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광복회 서울시지부 관계자는 “토론회가 아니라 결의를 다지는 자리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불렀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건국을 두고 정치쟁점화하는 것이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국민의 공론을 거쳐 총의를 구해 끌고 나가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논의에 대해서는 “중국 같은 곳은 동북 공정이나 서남 공정을 하면서 현재 지배하는 지역에 옛날 역사를 자기의 역사로 주장하고 ‘대국굴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축소지향적인 자기 비하로 가는 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