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피터 틸맨입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무서워요.
저는 이 곳 토론토에 사는 물리학자입니다. 캐나다에서 제일 좋은 대학 중 한 곳에서 교편을 잡고 있죠.
제 커리어는 성공적이었어요. 어떻게 할지는 좀 고민되지만 정교수직도 제안받았거든요.
저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꿈에 그리던 남자를 만났어요. 무려 8년전이네요.
5년전엔 그 남자와 결혼했고 제 남편은 제 모든 것이에요.
남편은 저를 웃게 하고, 미소짓게 해요.
속상하게 만들때도 있지만 배우자에 대해 이런 이야기거리 없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런데 어제 집에 온 사람은... 제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모르겠어요.
제 남편 크리스토퍼는 5일전에 출장을 갔어요. 남편은 특허 전문 변호사라 종종 일 때문에 출장을 가거든요.
토론토 공항을 출발해서 비엔나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었어요.
떨어져있다보니까 불안한 느낌이 좀 있었지만
남편은 별 문제 없이 저를 안심시켜주고는 했어요.
남편이 호텔에 도착한 다음 전화를 했어요.
"자기야, 나 도착했어" 그런 별다를거없는 짧은 통화였죠.
우린 항상 서로에게 전화를 해요.
문자야 누구한테나 하는거지만 통화는 우리가 서로에게만 하는 특별한거거든요.
지난 4일간 저는 평소처럼 지냈어요.
성가대 연습을 하고 운나쁘게도 맡아버린 여름 계절학기 수업도 가르치고
부엌 리노베이션할 색도 좀 고르구요.
시어머니가 결혼기념일 축하선물로 부엌 리노베이션 비용을 내주신다는데 이럴때 해야죠.
어제 크리스토퍼는 토론토로 돌아올 예정이었어요.
남편은 어제 비엔나 공항 라운지에 들어와서 전화했어요.
피곤해서 비행기 안에서 쓰러질거같다면서요.
눈코뜰새없이 바쁜 일이 끝나고, 이제 남편이 좀 쉴수 있겠구나 싶어서 기뻤어요.
남편은 너무 열심히 일하거든요.
오후 11시에 도착 예정이었고 저는 일찍 수업이 있어서
남편을 위해 저녁을 준비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기로 했어요.
그리고 거지같이 쓰인 물리 교재도 친구를 위해서 편집하구요.
11시가 되도록 크리스토퍼에게 연락이 없었단걸 깨달았지만
그냥 비행기가 연착됐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런던에서 잠깐 갈아타야하는데 그쪽 날씨가 안 좋다고 하더라구요. 아마 그래서 비행기가 늦어지겠거니 생각했어요.
12시가 되자 더 걱정이 됐지만 기분이 좀 누그러졌어요.
문자를 받았거든요. 남편이 피곤하다는것도 알고있고 비행기 탑승 중에 편히 자거나 하진 못한다는 것도 아니까요.
그래서 저를 안심시키려고 전화를 안하고 문자를 한거구나 생각했어요.
[방ㅁ굼 도챳햇여 곳 지베갈게ㅔ]
얼마나 피곤했으면 오타가 심할까..
남편에게 생일 선물로 새 아이폰을 사줬는데
오랫동안 블랙베리만 쓰던 사람이라 아이폰 터치스크린이 아직 익숙하지 않나봐요
화장실에 가서 렌즈를 빼고 잠이 들었어요.
문자를 받고 얼마나 지난 다음에 잠들었는진 모르겠어요.
너무 피곤해서 죽은듯이 잤거든요.
몇시간이 지나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남편이 계단을 올라올때 내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어요
남편은 화장실에 갔죠 항상 그랬듯이요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수도였어요. 물을 그냥 틀어놓더라구요.
좀 이상하다 생각했죠.
왜냐면 남편이 물을 아껴써야 한다고 수도꼭지를 꼭 잠그는 데에 유난을 떠는 사람이거든요.
수도 요금 때문은 아니고 환경 보호다뭐다 엄청 신경쓰죠.
저는 잠이 들었다 깼다 했지만 완전히 잠들기 전에 남편을 보고 싶었어요.
남편이 침실에 들어왔는데 뭔가 좀 달라보였어요.
그냥 평소랑 좀 다른 느낌이요.
전 눈이 나쁜데 보통 렌즈를 끼기 때문에 안경이 침대 근처에 없었어요.
대충 보니까 남편 윗 입술이 좀 부어있는것 같았어요. 마치 벌에 쏘인것처럼.
평소보다 그가 잇몸과 이를 더 드러내며 웃는다는 것도 알았어요
내가 보고싶었는데 날 보니까 반가워서 함박웃음이 나오나봐요
"자기야, 괜찮아? 윗입술 왜그래?"
그가 걱정할 필요없다면서 입술이 좀 튼것뿐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다시 잠들었어요.
두시간쯤 지났을까.
남편이 저한테 등을 대고 자더라구요. 뭐, 이상할건 없어요.
그래서 뒤에서 그의 몸에 팔을 둘렀는데...뭐랄까... 남편이 좀 더 살찐거같은 느낌..?
내 남잔 내가 알아요, 남편이 살도 좀 찌고 몸이 비대해진 느낌이었어요.
좀 불안하다는 느낌은 받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잘 모르고 있었어요
아무것도 아닐거라 여기고 말았어요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남편이 없더라구요. 가방은 그대로 있었는데 옷을 갈아입고 나갔나봐요.
전화했더니 안받았지만 문자가 왔어요
[지ㅣ귬 헬슈쟝ㅇ오ㅑㅅ어 자기ㅣ 냑아고 지베 갈겨걑애]
혼자 키득대며 좋은 생각이라 생각했어요.
어젯밤 만져보기엔 남편이 살이 좀 붙은거 같았는데 운동하면 살을 좀 뺄수 있겠죠.
저는 평소대로 집을 나가려는데 남편 여행가방이 문 근처에 있는걸 봤어요
거실에서 정리하려고 그냥 거기 일부러 뒀나보다 생각했어요
밖에 나가려는데 약간의 곰팡이 냄새가 났어요
고기를 몇시간 태양광에 둔거 같은 그런 냄새요
몸이 절반은 나가있었으니까 밖에서 나는 냄새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남편 여행가방 쪽을 쳐다보니 냄새가 심해지는거에요
몇시간이 아니라 며칠은 된 듯한 케케묵은 냄새가 났어요. 얼마나 악취가 나던지.
가방을 들어서 보니까 자물쇠로 잠겨있더라구요
전 열쇠가 없으니까 일단 집 밖에 두고 싶어서 차고로 옮겨놨어요
차에 타려고 하는데 남편에게 문자가 다시 왔어요.
[샤ㅑ랑ㅇ해 읻따 봐]
저도 남편에게 답장을 했죠
[집에 오면 여행가방 좀 어떻게 해봐. 냄새도 나고 손잡이에도 뭐가 묻어있어]
남편이 문자를 한다는게 이상하다 생각은 했어요
차에 탄지 10분쯤 지났을까, 전화가 왔어요. 남편이었죠.
- 여보세요?
- 자기야 나야. 전화할 타이밍을 못 잡았어. 무지 걱정했지?
- 응? 괜찮아?
- 나 아직도 런던에 쳐박혀있어. 이제 집에 가는 비행기 타는데 공항에서 만날까?
저는 얼어붙었어요. 휴대폰을 떨어뜨릴뻔했죠.
- 뭐!? 무슨 소리야? 아직 런던이라고? 장난하지마. 하나도 안 재밌으니까. 자기 어제 집에 왔잖아.
어제 만나서 자기랑 말도 했는데? 그래, 나 한번 자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긴 하는데 이건 아니지. 뭐하잔거야.
- 자, 들어봐.
남편이 휴대폰을 스피커폰으로 돌리자 강한 영국 발음의 여자 목소리가 들렸죠.
".. 토론토로 가는 BA203 비행편이 곧 출발합니다. 피츠패트릭씨와 콜릿지씨는 브리티시 에어웨이 중앙 홀로 와주세요."
차를 멈추고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어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지.. 그럼 누가 내 옆에서 잔거지..
- 크리스토퍼, 집에 빨리 와. 나 무서워. 보고싶어. 공항 도착하면 전화해. 아무일없어 그냥 보고싶어서 그래.
- (웃으며) 진정해 여보. 곧 집에 갈게. 9시까진 갈거야.
그가 웃었어요. 아마 내 불안증세가 좀 나아졌다는걸 알았겠죠.
남편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젯밤 무슨일이 있었는지, 문자에 관한거며, 내가 방금전 통화한 사람에 관한 것도요..
이젠 일을 하러 가야해요. 그 집에 돌아가지 않을거에요.
되도록이면 빨리 남편을 만나러 공항에 갈거에요.
그게 정말 제 남편이라면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어요.
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물리학자에요. 과학도죠. 지금 일어나는 일은 말이 안돼요.
어릴때 이후로 이렇게 진짜로 겁먹은 적이 없었거든요.
어떻게 되어가는거죠?
"남편"으로부터 온 마지막 문자
[지베 왓여. 작이 기댜리고 잇눈대 언재 올겨야?]
오후 5:30분
실험실에서 돌아왔어요. 두명의 직장동료가 여행가방을 조사해보고 싶어했지만 그건 아직 때가 아니었어요.
제 왼손의 손톱 밑과 손바닥에서 조직을 채취해갔는데
제가 그 여행가방을 만진지 좀 됐기 때문에 뭔가 찾아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일단 뭔가 알아내면 연락해주기로 했어요.
오후 5:45분
크리스토퍼 도착 시간이 꼬였어요. 방금 도착했대서 지금 공항으로 가는중이에요. 저를 두고 가지말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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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기다리던 악마의 술래잡기가
작성자의 탈퇴로 끝나버리는 바람에 새로운 시리즈 물을 퍼와볼까 합니다.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의역있음. 출처는 꼬릿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