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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73911
    작성자 : 쿠밍
    추천 : 32
    조회수 : 4201
    IP : 175.223.***.125
    댓글 : 6개
    등록시간 : 2014/10/25 20:57:15
    http://todayhumor.com/?panic_73911 모바일
    (몽상소설) 복숭아벌레


    둥기당 둥닥 -

    가야금 소리에 맞춰 사내들의 껄껄대는 웃음소리와 교태어린 여자들의 조근조근한 말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평양의 한 기루. 전국의 아름답다는 기생들만 모인 유명한 곳이었다. 

    "후우."

    매향은 시끄러운 연회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계곡으로 갔다.

    8월의 무더운 날씨. 겹겹이 여민 옷고름을 풀고 바위쪽에 옷을 던지고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이렇게 밤에라도 몸을 씻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한참을 시원한 물에서 버둥거리다 수면을 바라본다. 오늘따라 달이 훤하여 수면에 비친 얼굴이 잘 보였다. 밋밋한 눈썹, 푸석한 머리, 점 같이 작은 눈에 붉게 일어난 여드름까지. 그밖에도 점이며 사마귀며 주근깨, 그리고 고르지 못한 치아에 거뭇한 인중의 수염까지. 세상에 못생긴 것은 다 매향의 얼굴에 있었다. 자기 스스로 보아도 천하에 이런 박색이 없었다.

    툭 툭 하고 수면에 눈물이 떨어지며 파동을 이룬다. 그 부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있으면 안될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누구냐!"

    몸을 가렸다. 한 사내가 목욕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뒤돌아 도망가버렸다. 목소리에 놀라 도망간 것이 아니겠지. 못생긴 얼굴에 도망간 것이겠지. 라고 중얼거리며 매향은 목욕을 그만두고 다시 기방으로 갔다.



    늦은 밤. 손님맞이를 하는 기녀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한 방에서 몸단장을 하며 재잘거리고 있었다.

    "글쎄 평양 감사 나으리의 딸이 박색이라서 시집도 못간다던데?"

    "그래? 까르르. 아무리 돈과 권력이 있어도 미모는 어쩔 수 없이 타고나야 하나 보네."

    "그나저나 요즘 기루에서 야반도주 하는 기녀들이 늘었대."

    "엄청 잘생긴 사내하고 하룻밤 자고 나면 사라진다던데? 패물 몇개만 가지고."

    "바보들같으니. 어차피 금방 버려질것을. 그나저나 오늘따라 내 피부 너무 좋지 않니?"


    다같이 웃고 떠드는 와중에 매향이 조용히 앉아 말했다.

    "언니들 있잖아요, 제가 계곡에서 목욕을 하는데."

    오늘 겪은 일을 말하면 조금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여 해본 말이었다. 한 사내가 몰래 목욕하는 모습을 지켜보더라. 하는 말을 하면 잠시라도 신기해 하지 않을까 하여 어렵싸리 말을 꺼낸 것이었다. 하지만 한 방의 모든 기녀들은 쓴 웃음을 지으며 "그..그래…" 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방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매향을 대놓고 따돌리는 것은 아니었다. 괴롭히거나 모욕을 주는 일도 없었다. 따돌림과는 달랐다. 따돌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 기루의 행수이며 모든 다른 기생들의 스승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다른 기녀들보다 존중받았다.
    다만 다른 기녀들은

    그녀와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매향 스스로가 보기에도 다른 언니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백옥같은 피부에 칠흙같은 머리. 진주같이 빛나는 큰 눈에 오똑한 코. 분홍빛 입술. 

    하지만 매향은 그런 것을 가지지 못했다.

    물론 기녀이기 때문에 잠자리는 몇번 했다. 다만 인기가 많은 다른 언니들이 달거리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할 경우 대신해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날에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대신 몸매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가끔 손님들이 칭찬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불을 끌 때는 좋았다고.

    그리고 그녀를 다시 찾지는 않았다. 점점 매향은 주눅들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어느날은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매향은 갓과 장옷으로 화려하게 꾸미고 저자를 나갔다. 얼굴은 검은 망으로 감싸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게 가렸다. 저자를 지나다가 복숭아를 파는 사내를 발견했다. 그런데 괴이했다. 예뻐지는 복숭아라 하여 하나에 가격이 100냥이나 하는 것이었다.

    "무슨 복숭아가 이리 비싸오?"

    사내는 삿갓으로 얼굴을 푹 가린 채 음침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예뻐지는 복숭아라 적지 않았습니까? 하나 사보시렵니까?"

    "예뻐진다니, 얼마나 예뻐지기에 100냥이나 하오. 이유를 들어보고 싶구려."

    "이 안에는 벌레가 살고 있는데 그 벌레를 먹으면 순식간에 사람이 달라보일정도로 아름다워집니다. 이 복숭아는 섬섬옥수가 되는 복숭아. 이건 초승달처럼 예쁜 눈썹이 되는 복숭아. 이것은…"

    "그걸 어떻게 믿소?"

    "한번 시험해 보시지요. 그럼 이 작은것은 어떻습니까? 50냥밖에 하지 않는 것인데 그쪽 인중에 시커멓게 난 흉한 솜털도 뽀송한 흰 솜털로 바뀔겁니다."

    "뭬요?"

    매향은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사내가 도발했다.

    "같은 계급의 기생인데도, 시서화 하나 부족함이 없는데도 다른 기녀들의 달거리 때에 대신 불려가서 손님맞이 하는거 지겹지 않습니까? 전에 목욕할 때 보아하니 젖가슴도 그만하면 되었고 잘록한 허리며 엉덩이도 살집있는것이 얼굴만 예쁘면 평양 최고의 기생이 될텐데, 그 50냥, 100냥이 아깝습니까?"

    "뭐라? 그렇다면 그때 훔쳐본 것이 네놈이냐?"

    "어쩌다 보게 됬습죠."

    매향은 참을 수 없어서 기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인 서너명을 데리고 와서 그 복숭아 장사치를 때려눕히고 판을 엎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사내의 삿갓이 벗겨지고 옷이 헝클어졌다. 철푸덕 하고 넘어져서 매향을 보고 말했다.
    매향은 순간 그의 얼굴에 반할 뻔 하였다.

    '무슨 사내가 이리 곱단 말인가.'

    사내다운 굵은 목선에 약간 그을린 피부였지만 웬만한 여인같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속눈썹이며 솜털이 가지런해 보였다. 말투는 나이가 들어 보였으나 얼굴은 앳되 보였다.
    하지만 매향은 정신을 차리고 행수의 딸 답게 위엄있는 말투로 말했다. 

    "상인 주제에 여인의 목욕을 훔쳐보고 말로 능욕했으니 죗값은 치러야지. 이정도로만 하고 가겠다. 다음부터는 네 분수에 맞는 것만 보고 네 분수에 맞는 말만 하거라."

    매향은 뒤돌아 가다가 복숭아 하나를 집었다.

    "이것도 하나 가져가지. 잘 먹겠다. 탐스럽긴 하구나. 분수에 맞는 가격으로 팔면 잘 팔릴 것이다."

    그 사내는 피를 닦으며 일어나 매향을 향해 소리쳤다.

    "복숭아는 불을 끄고 자시오. 벌레를 보면 먹지 못할것이니."

    매향은 웃으며 기방으로 갔다.


    한바탕 난리를 피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 듯 했다. 서안 위에 둔 복숭아가 괜히 신경쓰였다.

    '이것은 섬섬옥수가 되는 복숭아라 하였던가…"

    매향은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어둠속에서 복숭아를 베어물었다.

    물컹- 하는것이 씹혔다. 이것이 벌레인가보구나. 하면서 뱉지 않고 계속 복숭아를 먹었다.
    복숭아 벌레가 예뻐지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100냥이라는 금액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는 그 돈이 아깝지 않게 되었다.

    투박했던 손이 너무나도 고와진 것이었다.
     
    매향은 그 저자를 다시 갔다. 그 사내는 오늘도 삿갓을 쓰고 복숭아를 팔고 있었다.

    "내 그 복숭아들 다 사리다. 얼마요?"

    "200냥이오."

    "어찌 그새 가격이 바뀌었소?"

    "효험을 눈치 챈 모양이군요. 그보다 어제 했던 그 난리법석을 벌써 잊으신겝니까? 300냥으로 하겠소."

    "하아-"

    매향은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아 물었다.

    "그대도 이 복숭아를 먹고 그런 얼굴이 되었소?"

    "그런 얼굴이라뇨. 말이 심하십니다. 도움을 좀 받기는 했지요."

    "그럼 내 얼굴을 보면 무엇이 제일 문제인거 같소?"

    "하아 모든 것이 문제지만 눈이 먼저 문제인거 같군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지 못하고 흐리멍텅 하니 어제 얻어 맞고 그리 위엄있게 야단치는데도 무섭지가 않았습니다."

    "그럼 눈이 예뻐지는 것으로 하나 주시오. 200냥에 사리다."

    그날 밤 매향은 그 복숭아를 먹었다. 다음날 그녀는 시각이 트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가림막처럼 위아래로 방해하던 눈꺼풀이 들린 것이다. 거울을 보았더니 이처럼 크고 아름다운 눈은 기방에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기방의 언니들도

    "매향아. 너 눈을 잡아당기고 잠을 자기라도 한 것이냐? 어찌 하룻밤사이에…"

    "창호지에 물을 묻히고 눈꺼풀에 붙인 다음에 말려서 눈을 감지 않고 잤더니 이리 되었사와요."

    그리하여 그날 밤 모두들 창호지에 물을 적셔 눈꺼풀에 붙이고 자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모습을 보자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 매향이었다. 다음날 언니들은 눈이 충혈된 채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포기선언을 했다.

    매향은 다음날도 찾아갔다. 그날은 300냥에 살 수 밖에 없었다. 고운 피부를 주는 복숭아였기 때문에 값이 비싸다는 것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복숭아를 사 먹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피부를 만져보고는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어머. 그 이마의 점은 어디갔니? 피부가 갑자기…"

    "꿀과 쌀가루를 섞어 얼굴에 붙이고 잤더니 이리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은 기녀들이 모두 꿀과 쌀가루를 섞어 얼굴에 붙이고 잤다. 다음날 여름철의 벌레들이 기녀들의 얼굴에 몰려와 기방은 난리가 났다. 매향은 끅끅대고 숨죽여 웃었다. 기녀들은 그 다음부터는 매향에게 묻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300냥, 400냥씩 갖다 바치고 복숭아를 하나씩 먹을 때마다 매향의 얼굴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러면서 손님도 매향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순간부터 매향은 그 기루의 간판 기생이 되었다. 손님이 주는 패물이며 귀한 화장품도 늘어갔다. 하지만 매향은 그런것을 다시 팔아 복숭아를 사는데 썼다.

    매향은 기루의 제일가는 미녀가 되었지만 도저히 자신의 얼굴에서 만족을 느낄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복숭아 하나만 먹으면 더 예뻐질 수 있는데 만족에 끝이 있겠는가. 매일 춘화도와 미인도의 여인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얼굴에서 부족한 점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지금 부족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시오?"

    완벽에 가까운 얼굴을 가진 복숭아장수가 말했다.

    "눈코입귀, 머릿결, 흰 치아까지 다 부족함이 없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얼굴형이 조금 부족합니다."

    "얼굴형?"

    생각치도 못했던 것이었다. 작은 거울을 통해 보이는 모습은 눈, 코, 귀, 입과 같은 부분적인 부분. 그러나 목욕을 할 때 수면에 비치는 모습에서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그랬다. 얼굴형이 펑퍼짐하고 턱이 길어 전체 얼굴의 조화가 어색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이미 평양 최고의 기생이신데 더 아름다워지고 싶으신겁니까?"

    "물론이지. 평양은 물론이고 이 조선땅에서 제일가는 미모를 가지고 싶은 것이오. 나는. 마치 서시나 왕소군처럼."

    "하지만 얼굴 형은 타고나는 것인데다가 피부가 아닌 뼈의 영향이기 때문에 어려운데…"

    그러면서 평소보다 큰 복숭아를 어루만졌다.

    "이것은 3000냥은 합니다."

    "뭐요? 그만큼의 돈은 구하기 어렵소."

    "그러게 이제 슬슬 포기하시죠. 지금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게다가 기녀는 얼굴만으로 장사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기녀이지 나는."

    "얼굴은 그만하면 손님받기에 충분하고…"

    "나와의 하룻밤 어떻소?"

    "네?"

    "평양 최고가는 기녀와의 하룻밤 말이오. 물론 내가 그동안 준 돈으로 술이든 여자든 충분히 살 수 있었겠지만 나는 좀 특별하지 않겠소?"

    "그렇군요,"

    사내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지었다.




    "하아.하아. 역시 당신은 달라."

    두 남녀가 한 방에서 한몸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사내가 말했다.

    "몸매는 목욕할 때 얼핏 훔쳐보았지만 이렇게 확인하니, 역시 완벽하군."

    "이제야 아셨소? 내가 이 얼굴로도 기방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소. 그러는 당신의 얼굴도 아름답긴 마찬가지요. 이런 사내 품에 안기고 싶었지."

    "역시 걸작이야. 내 손에서 태어난."

    "그대 덕분이오. 그런데 이젠 말해주면 안되오? 대체 복숭아에 무슨 요술을 부린 건지."

    절정에 이른 사내가 한껏 달아오른 매향의 몸을 안고 말했다.

    "나는 요술쟁이니까. 나와 하룻밤 잔 여자들에게 수작을 부릴 수 있지."

    "하하핫. 무슨 수작?"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 매향은 넋이 나간 상태였다.

    "이렇게."

    사내가 정수리부터 코, 입술까지 손가락으로 매향을 훑는다. 매향은 꿈에 빠져드는 것 같다. 끈적하고 비릿한 느낌이 아래서부터 파고든다. 숨이 막히고 몸이 옥죄는 것 같다. 몸을 꿈틀댔다. 손발이 마치 결박된 것처럼 움직일수가 없다. 진득하고 축축한 것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다. 아랫부분이 허하다. 



    "이렇게 말이지."

    사내는 반으로 갈라진 복숭아 안에 벌레를 넣고 다시 합쳤다. 복숭아는 감쪽같이 하나로 변했다.






    다음날 기루에서는 매향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졌다. 

    "저자에서 만난 잘생긴 복숭아 장수에게 온갖 패물 갖다 바치더니 결국 갔구나 갔어."

    "잘됐지 뭐야. 우리 골탕먹였던거 기억 안나우 언니? 내 그 꿀 얼굴에 바른것만 떠올리면…"

    "아서라. 기녀 신세에 곧 버림받을 것을…"




    "이게 그 복숭아란 말인가?"

    관을 정제하고 점잖게 앉은 선비가 발 건너편의 사내에게 말했다. 

    "그러합니다."

    "가격은?"

    "네 감사나으리. 50000냥입니다."

    "하긴, 전국의 제일가는 기녀들을 모은 정수이니, 자네 실력만 믿겠네."





    갑자기 환해진다. 밝아지며 천지가 요동치는 것을 느낀다. 몸이 이동하고 있다.
    무슨 일일까? 고민하는것 조차 힘들다.

    "-지 않았느냐."

    "-지만 -그러워요."

    무슨 소리지? 알아듣기 힘들다. 

    "이걸 어떻게 먹죠? 하얀 구더기잖아요."

    "이건 구더기가 아니야. 복숭아 벌레야. 이것만 먹으면 예뻐질 수 있단다. 평양의 어느 기생들보다도 아름다워질 수 있어."

    "그렇다면…"

    다시 어두워진다. 아아 그렇구나. 매향은 울수 없지만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왈칵 -

    눈물 대신 온몸에서 진물이 터졌다.





    "불을 끄고 먹으란 말을 깜빡 했네. 잠에서 깨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사내는 구시렁대며 삿갓을 쓰고 길을 나섰다.






    작가의 말
    평양기생이 표준어 쓰는게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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