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표가 강남역을 애도 방문하고 와서 <강남역 10번 출구 벽면은 포스트잇으로 가득했습니다. "다음 생엔 부디 같이 남자로 태어나요." 슬프고 미안합니다.> 라는 글을 sns 상에 올리며 다시금 애도를 표한 모양입니다.
이 sns에서 인용한 포스트잇 문장 "다음 생엔 부디 같이 남자로 태어나요." 를 문제 삼아 비난하는 것은, 정치 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널리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추모 분위기를 빛바래게 하는 사려성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문재인 전 대표가 강남역을 방문한 것은 나라의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애꿎게 생을 달리한 젊은 여성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간 것인 이상, 애도의 일환으로 어떤 구절을 언급함에 있어서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후 맥락으로 보았을 때 '애도의 의도'로 행해진 것임을 알 수 있고, 그 문언(文言)도 충분히 선의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음에도 비난하는 것은 이 슬픈 사건에 대처하는 성숙한 시민의 자세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저는 그 포스트잇이 부적절하다거나, 그걸 인용한 문재인 전 대표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면, 다소 비이성적인 언어 표현으로 위로하기도 하는 것이 유한(有限)한 인간의 본래 모습입니다. 모두가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지를 못합니다. 너무나 비극적인 사건 앞에서는 이성이 마비되어 정제된 언어 표현을 하지 못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튀어나온 언어 표현을 가지고 까탈스럽게 따져서 비난하는 것은 따뜻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기아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애야, 너는 다음 생에는 부자집에 태어나렴!" 하고 위로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나 이 말은 듣는 이에 따라서,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단 말이냐? 가난한 집에 태어나더라도 굶어죽지는 않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야 할 게 아니냐!" 비판한다면, 어찌 될까요? 이는 불행한 일에 함께 울어주는 인간의 선한 정서를 모독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죽 그 여성의 죽음이 안타까우면, '여자로 태어나서 죽은 것 아닌가. 남자로 태어나면 이런 죽음은 당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하는 비이성적 절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 포스트잇은 누군가가 그런 비이성적 절규를 담아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문재인 대표도 수많은 포스트잇 중에 그 포스트잇에 담긴 비통한 심정이 가장 인상적으로 떠올라서 그것을 인용하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근데, 정치판이 워낙 살벌한 데라서 어떻게 하면 상대 진영을 깎아내릴까 하는 데죠. 아닌 게 아니라 조선일보에서는 이 포스트잇 내용을 기사 제목으로 활용하며 문재인 전 대표의 강남역 애도 방문을 소개하는 기사를 썼더군요. 기사 어디에도 비난의 함의(含意)는 없었지만, 네티즌 누군가는 제목을 읽고 문재인 전 대표를 비난해 보라고 낚시밥을 던진 거지요.
우리는 너무나 안타까운 사건 앞에서
그 애도의 표현 방식이 비이성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해서
애도가 아니라 조롱하였다는 식의 비난은 삼갑시다.
그것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그런 비난을 할 만큼 시간이 남아도신다면, 강남역에 가셔서 국화 한 송이 더 바칩시다. 옷깃을 여미고!
ps. 조선일보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