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난 뒤 더민주의 내부 권력구조로 인해 말들이 많이 나온다. 그래봐야 SNS에서만 시끌거리지 다들 아무 관심도 없긴 하지만..
선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합의추대(무슨 이런 전근대적인 용어가 있나..)가 되었건 전대 연기가 되었건 김종인에게 당권을 더 맡겨 놓는 것.
또 하나는 전당대회를 열어 새 당대표를 선출하고 당헌에 따라 당권을 주는 것.
어느 쪽이 옳은가?
구심력 없는 더민주
논리적인 판단으로는 후자가 당연히 정상적인 일이다. 정당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은 당헌에 따라 집행되는 것이 맞고, 당원들이 참가하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를 뽑아 당권을 주는 것이 맞다. 이건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당대회를 열게 되면 당내 지지세력 같은 것이 있을리가 없는 영입인사 김종인이 불리한 걸로 보인다. 물론 누군가 당내 영향력이 막강한 사람이 막후에서 김종인을 밀어준다면 또 모를까.. 이럴 가능성도 꽤 된다고 보긴 한다.
문제는 그렇게 김종인에게 맡겨 뒀던 당권을 회수하고 전대를 통해 김종인이 아닌 새 당대표를 뽑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특히 김종인을 비난하면서 하루 속히 김종인이 가지고 있는 당권을 회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문재인이 당권을 잡은 뒤 더민주 내부에 어떤 일이 생겼었는지 기억하시는가? 당권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졌었다. 원내대표는 당무거부를 하고, 분당에 준하는 탈당 러시가 벌어졌다. 결국 그 상황에서 국민의당이 탄생하게 된 거 아닌가?
지금 전당대회를 열어 새 당대표를 뽑았다고 치자. 당내 권력구조가 비대위 체제를 벗어나서 “정상화”가 될까?
그 당대표의 계파를 제외한 다른 원내 세력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 국민의당으로 합류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어차피 국민의당에는 호남 말고는 다른 지역에 세가 하나도 없다. 그 쪽으로 옮기면 자신의 지역을 주름잡는 제후가 될 수도 있다는 옵션이 있는데, 굳이 더민주에 남아 꿇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더민주는, 특히 지금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문재인 계파의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이상의 구심력이 확보되지 않는 콩가루 정당이라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와 맞대응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호남 세력이 튀어나가 별도 살림을 차렸다. 이제 튀어나가 갈 곳이 없는 상황도 아니다. 그렇게 튀어나가 옮기면 국민의당에서는 독립투사라도 온 듯이 환영을 할 것이다.
어떻게 하려고?
지금 조기 전대 주장하는 사람들의 심중은 어떨까? 특히 추미애 의원 같은 경우, 아마 당연히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다. 그가 당권을 잡은 경우와 못 잡은 경우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김부겸이나 김영춘 같은 경우, 대구와 부산의 세력을 상징한다. 만약 추미애가 당권을 잡았을 때, 그들이 당에 남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반대로 김부겸이 당권을 잡았을 때, 추미애가 당에 남아야 할 이유가 있나?
당대표가 누가 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지금 당장 더민주라는 정당의 구성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을 수 있을만큼 뭔가 확고한 구심력이 작용하고 있냐는 것이다.
만약 문재인 혹은 문재인과 가까운 누군가가 당권을 잡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계파를 제외한 세력들이 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있는지 곰곰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우르르 몰려가면 국민의당이 명실상부한 제1야당이 된다. 많이도 필요없다. 43명, 그러니까 1/3 정도의 의원만 옮기면 의석수는 역전된다.
거기 가서 안철수와 부대끼는 것이 소위 친노가 득세한 더민주안에 남아 있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계산은 아주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다. 비노들이 친노패권주의를 얼마나 두려워 하는지 잘 알지 않는가.
김대중 시절에는 이러지 않았다. 왜? 김대중이라는 확실한 거인이 앉아 있었고, 그로 인해 발생한 구심력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그게 옳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현실이 그랬다고.
그러나 세월이 흘러 문재인 시대로 넘어온 다음에는 아직 아무도 그런 확고한 구심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시라. 참여정부 말기에 집권 여당 내에 어떤 분란이 생겼는지. 통합, 해산, 다시 통합, 또 해산, 안철수와 합당, 안철수 탈당 및 국민의당 창당.
이게 뭘 의미할까? 더민주에 구심력이 생기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당을 벗어나면 곧 죽는다는 강고한 연대도 없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대단한 정치적 가치와 비젼을 가지지도 못했고, 그저 새누리당에 대항하는 야당이라는 존재감 말고는 없다. 그나마 그 존재감조차도 이제는 국민의당과 나누어 가지고 있다.
그 상황에서 다 찢어진 민주당의 깃발을 홀로 부여잡고 서 있는 문재인 혹은 누군지 모를 새로운 당대표 옆에 남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게 실증적으로 보이지 않나? 당장 몇달 전에 탈당러시가 벌어졌던 거 기억 안나냐는 말이다. 그것도 민주당의 원류인 호남의 현직의원들 중심으로 말이다. 이제 총선 끝났고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람들은 앞으로 4년간 의원직이 보장되는데, 뭐가 무서워서 못 옮기겠냐는 것이다.
총선 끝나고 123석이나 되니까 구심력이 생기는 거 아니냐고? 총선 전에는 몇석이었는지 생각해 보시라. 그 때도 구심력 별로 없었다. 구심력은 머리수만 가지고 생기지는 않는다.
지금의 더민주의 의원들은, 과거 민주당의 의원들처럼 김대중이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심지어 문재인이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설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문재인은 김대중도 아니고 노무현도 아니다. 초선 경력뿐인 백수이며 대선 재수생일 뿐이다.
정리하자면 지금은 새누리당이건 더민주건 국민의당이건 아주 불안불안하기 짝이 없는 “정당구조의 격변기”인 것이다.
이런 점을 이해한다면, 그리 쉽게 빨리 전당대회해서 새 당대표 뽑자고 외치기가 힘들 것 같은데..
아무 생각이 없는 건가?
더민주는 어떤 정당이 되어야 하는가?
이번엔 좀 다른 면을 살펴 보기로 하자. 과연 더민주는 앞으로 뭘 하는 정당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코앞에 다가온(1년 반이 넘게 남았으니 좀 길긴 하다.) 대선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누가 그 대선에 더민주의 후보로 나갈 것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그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후보와 무얼 가지고 싸워야 할 것인가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김종인은 총선 전에 당에 들어와 더민주에서 친노와 운동권의 색채를 빼겠다고 공공연히 얘기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전문가(로 보이는 사람들)를 영입하고 이해찬을 자르고 정청래를 잘랐다. 이 두사람은 친노라고 보이기 보다는 운동권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이해찬이 노무현을 어떻게 대했었는지, 열린우리당 말기에 정청래가 정동영과 함께 뭘 했는지를 기억해 보면 이들이 왜 친노가 아니라 운동권에 가깝다고 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문재인도 거기에 분명히 동의를 했다. 공천 파동 일어나서 난리가 났을 때, 갑자기 어느 한 순간, 조기숙, 문성근, 조국 등의 인사들이 동시에 말을 바꾼 것 기억하시는가? 그게 문재인의 힘이 아니고서 가능한 일일까?
그렇게 친노, 운동권의 이미지를 탈색하고 선거를 치렀고, 더민주는 호남을 잃고 수도권을 장악하고 대구와 부산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부산은 뭐 교두보 수준이 아니라 자리를 잡은 수준이고. 어찌보면 부산은 김영삼의 3당합당 이후 처음으로 야성을 되찾기 시작했다고 봐도 될 수준이었다.
이거, 김종인을 끌어들인 문재인의 확실한 공로다. 이게 참패라고? 김종인이 얘기한 107석의 의미가 뭔지 아시는가? 총선 전의 더민주 의석에서 국민의당으로 탈당한 의석을 뺀 나머지를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123석. 국민의당 탈당파 다 빼고도 다시 123석. 그런 무더기 탈당사태를 겪은 정당이 탈당파 의석 다 빼고도 기존의 의석을 지켰다면 그건 엄청난 승리 아닌가?
이걸 가지고 승리가 아니라 호남의 참패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의석을 가져야 승리라고 생각하는 건지 물어보고 싶다. 한 152석 쯤 얻으면 승리인가? 하긴 추미애 의원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열린우리당의 152석 승리의 기틀을 다져 주신 분이시긴 하다. 지금의 추의원에게 노무현은 어떤 사람인지 한 번 여쭤보고 싶기도 하다.
김종인은 확실히, 더민주를 오른쪽으로 끌고 가고 있다. 이게 더민주에게 도움이 될까, 해가 될까? 총선에서 이게 도움이 되었을까 해가 되었을까? 앞으로 다가올 대선에서 이 방향이 도움이 될까, 해가 될까?
김종인에게 호남의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얘기가 있다. 진짜 비정한 얘기지만, 호남에서 더민주의 지지율이 폭락한 덕분에 수도권에서 더 득세를 했다고 생각해 보는 사람은 없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지역차별 의식, 전라도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수도권 중산층의 몰지각한 인식이 그리 작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더민주는 호남을 잃었지만 명실상부한 전국정당이 되었다. 이게 대선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은 독재자의 딸을 상대로 선거에 임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문재인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걸 막고자 집결 투표를 했다. 그리고 얻은게 48%. 역대 대선 2등 후보의 득표 중 최고치였다.
그런데 다음 선거에 만약 문재인이 다시 도전한다면, 48% 이상을 얻을 가능성이 있을까? 지난 대선과 똑같은 전략으로 똑같이 도전해도 힘들 것이다. 왜냐고? 이번에는 안철수가 절대 물러서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결국 더민주가 차기 대권 승부에서 승리하려면 두가지 과제를 달성해야 한다. 하나는 야권 표를 빼앗아 갈 안철수를 어떻게 해서든 무력화 시켜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존의 전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래도 새누리당을 찍어야 나라가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중간층의 지지를 다수 빼앗아 와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이 되었건 누가 되었건 이 두가지를 완수하지 못한다면 승산은 절대 없다.
그렇다면 안철수를 마구 무시하고, 국민의당은 갈라질 정당이라고 외치면서 동시에 강렬하게 우클릭을 시도하는 김종인의 전략은 더민주의 대선 승리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전략 그 자체가 아닌가? 김종인은 그걸 원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지금의 야권에 김종인 말고 그걸 할만한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더민주에게 실망하고 등을 돌릴 “진보적인 유권자”들은 어쩔 거냐고? 그 사람들이 과연 몇 %나 될까? 아니 그 사람들이 그래도 진보라면서 등을 돌리고 새누리당 후보를 찍겠냐는 것이다. 이래저래 진보는 슬프고 외로운 거다.
김종인이 좋냐고? 아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이 그런 할배의 손에 좌우된다는 것 자체가 싫고, 더민주라는 정당이 당헌이고 뭐고 없이 몇몇의 농간에 당권이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것도 보기 싫다. 그러나 그거 문재인이 먼저 한 짓이다.
문재인이 좋냐고? 그것도 아니다. 이 사람, 자기 힘으로 당을 안정시킬 자신이 없어서 김종인을 끌어다 댔다. 그리고 앞으로 대선 판의 운영도 김종인에게 맡기고자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재인이 말이다.
근데 왜 김종인이 문재인 욕을 하냐고? 당연하지. 김종인이 문재인하고 친해 보이면 문재인 말고 다른 대권주자들이 “김종인이 만든 문재인을 위한 판”에 남아 있으려고 할 거 같은가? 우르르 몰려서 안철수한테 가 버리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민주당의 후예 더민주가 그렇게 비민주적으로 당권을 주고 받는게 좋냐고? 당연히 싫지. 하지만 나는 더민주가 공중분해 되고 새누리당이 대권을 건식하는 것, 날로 먹는게 만배는 더 싫다.
안철수가 있지 않냐고? 난 아직 안철수라는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 아니 아직이 아니라, 아주 크게 변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앞으로도 안 믿을 것 같다. 아니 믿고 안믿고를 떠나,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건지 얘기를 안하는 사람을 어떻게 믿어? 아무 말도 안하는 걸 보니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거 아니냐고 의심을 하는 중인데 말이다. 이제는 보여주겠지, 이제는 말하겠지 하면서 기다리다가 내가 늙어 죽을 지경이다.
차라리 더민주가 그나마 합리적 보수가 되어서 대권을 가져 가는 것이 그 중 좋은 결과라는 얘기를 하는 중이다.
그렇게 되면,
새누리당은 오른쪽 구석으로 쫄아 붙어서 수구 꼴통 TK 지역당으로 전락할 거고, 진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또 다른 제대로 된 정당이 생겨날 토양이 넓어진다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난 그렇게 민주당이 자신의 정체성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고, 그렇게 대한민국이 변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매번 얘기하지만 우리도 이제 그나마 합리적인 보수정당 하나쯤은 가져도 될 때가 된거 아닌가? 그게 시대적 요구사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죽이 되건 밥이 되건, 김종인에게 더민주를 맡겨 보자는 것이 바로 문재인의 판단이고, 난 그 판단에 씁쓸하게 동의를 하는 중이다.
그래.. 당신들은 그렇게 합리적 보수 대통령 한 번 만들어 보시라.. 이러면서 말이다.
전당대회는 개뿔, 민주당이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민주적인 전당대회를 좋아했다고 이제 와서 그런 소릴 하는지도 모르겠고.. 선거전에 김종인 데려다가 백지수표 써 주듯이 당권 넘겨줄 때에는 아무 소리 안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뭔 소릴 하는건지..
특히 문재인이라면 구국의 영웅으로 간주하시는 트위터 극렬 문빠들, 잘 생각하시라. 지금 당신들이 김종인 욕하는 거 그거 다 문재인 방해하고 괴롭히는 거다. 이 전략, 김종인이 세우고 문재인이 승인한 전략이라니까.
이해찬 복당, 정청래 당대표 같은 소리좀 그만 하시라. 그 둘 자른게 바로 문재인이다. 문재인 승인 없이 그런게 가능할 거라고 보시는 건가? 그런 소리 하려면 문재인과 연을 끊을 각오를 하고 하시등가.
아니다. 해도 된다. 어차피 당신들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SNS상에서만 시끄럽게 배회하다가 공중에 흩어질 목소리일 뿐이니까.
세상은 SNS 바깥에서 돌아간다. 제발 자신들이 소수라는 점을 인식좀 하고 사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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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이의 의견입니다.
세상은 SNS 바깥에서 돌아간다. 제발 자신들이 소수라는 점을 인식좀 하고 사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