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초 참여정부의 첫 조각 때 노 대통령은 이 의원에게 국가정보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국정원 개혁과 함께, 아무래도 가까운 위치에서 대통령 물밑 참모장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담긴 것으로 읽혔다. 그러나 이 의원은 ‘국정원장 경력이란 게 정치를 오래 하는데 크게 도움 되는 것도 아니고······’ 라는 생각에서 고사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직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관료 출신으로 주요 경제부처를 채운다는 원칙에 따라 반영되진 않았다.
그러나 그 뒤로 이 의원은 평균 한 달에 한 차례, 많을 때는 한 달에 두 차례씩 청와대로 불려 들어가 노 대통령과 머리를 맞댔던 것으로 알려진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의견을 청취하는 대상에 이 의원이 빠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2003년 12월 노 대통령은 박봉흠 정책실장을 기용하는 등의 청와대 개편을 단행했는데, 그때도 이해찬의 조언이 한몫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 대통령은 당시 이해찬에게 의원직을 버리고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들어와 줄 뜻은 없는지를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3년 7월 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이해찬은 수행 의원단의 한 사람으로 그를 따랐다. 방중 일정이 끝날 무렵 노 대통령과 장관, 의원 등 수행단이 술을 한 잔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앞으로 장관 평가제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이러저러하게 하고······” 라며 새로운 제도 도입에 관한 구상을 죽 설명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난 이해찬은 다른 사람들도 보는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 좋은데, 그런 세부적인 구상은 대통령보다는 밑에 부하들에게 맡기시는 게 어떤지······” 이해찬은 이런 식으로 대통령 앞에서도 할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위치였고, 노 대통령도 이를 나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해찬은 그러면서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