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 29분
5시 30분, 라디오가 켜지고 익숙한 로고송이 나온다. 그리고 능숙한 말투로 DJ가 사연을 읽어준다.
'취준생인데 블라블라블라'
-에라이... 아침부터 듣는소리가 취준생이라니....
S는 몸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나 물한컵을 마셨다. S는 냉장고를 열어 아침을 준비한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은 S는 꼭 챙겨먹는다. 일종의 자존심과 같은 의식이 되었다.
식단은 풀떼기들. 자소서엔 운동을 좋아한다 적었으나 거울 속에 보이는 돼지는 영 그래보이지 않아서 식단을 채식으로 바꾼 것이다.
채소를 씻고, 양파를 물에 넣고, 두부를 썰어 넣고...
두부의 유통기한이 어느새 3일이나 지났다.
'유통기한은 유통의 한계점인 기한이니까, 먹어도 괜찮다.' 라고 혼잣말을 하고 샐러드에 넣어버린다. 부쩍 혼잣말이 늘어난 S이다.
S는 샐러드를 한입 먹고 인상이 찌푸려졌다. 양파의 매운맛이 덜 빠져서 핫 샐러드가 된 것이다. 버려버릴까 하다가,
그의 머릿속에 울리는 괴성이 다시 퍼진다.
'백수 새끼가..'
구정에 내려갔다가 동생에게 들은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호탕한 척 했지만, 비수에 꽂힌 그 말의 독은
그의 옆구리에서부터 스믈스믈 온몸으로 퍼져들어 해독되지 않고 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아침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얼른 학교로 나간다.
자리를 잡은 그는 일정을 계획한다.
-우선, S사꺼 오늘 마감이니 마무리하고, C사가 내일까지니까 바로 초안 작성하고, S시험을 먼저 공부하면 되겠네
그는 가방속에서 너덜너덜한 S시험 대비 H사 책을 꺼낸다. 상식편이다
딘트족, 헬프족, 요크족 등등 참 다양한 종족이 존재한다. 나를 부르는 학명은 뭘까...
아맞다 그거지. NG족. 이름만큼이나 의미도 우울하다.
NOT GOOD, NO GRADUATE. 참 기똥차게 지은 이름 같다. 좋지 못하니 졸업도 못하고 취업도 못하고....
S는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강화도조약-18AA, 1차 세계대전 19BB. AA-BB는?
1월 달까진 한국사시험을 치른 그였지만, 강화도조약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단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연도까지 달달 외우지는 못했다.
세계대전이야 14년이지만....
-에라이 병시나,
그는 그에게 나직히 읖조린다. 그냥 화가 났다.
저녁은 그래도 잘 챙겨먹고싶어 후배가 알려준 맛있는 돈부리 집으로 간다. 취준생이 되고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 뭐냐고 한다면
돈가스, 돈부리 이다. 이유는 맛있어서 라기 보다는 혼자 먹으러 가도 눈치볼 필요도 없고 나름으로 잘 챙겨먹었다 라는 기분이 나게 해주어서
그나마 그를 힘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S사의 자소서가 생각보다 잘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오탈자가 없는지 확인하고 제출 하였다.
-(후...) 이제 C사를 쓰도록 하자!
C사는 이번에 신입 영업SPECIALIST를 뽑는다. 도대체 뭐가 영업스페셜리스트일까. 지원조건에 운전면허2급을 꼭 요구하는 것을 보니
현직자의 얘기를 듣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는 직책인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에겐 선택권이 없다. 다시 매진해서 자소서를 쓴다.
항목당 150자를 요구한 자소서는 생각보다 쓸만했다. 어떤 기업은 항목 당 3000자, 총 1만 2000자를 쓰길 요구하는 곳도 있으니 이곳은 양반인 셈이다. 경력사항을 쓰라는 곳만 제외하고.
신입을 뽑으면서 경력사항은 뭔가 싶다.
그는 어거지로 여러 아르바이트 경험을 잔치국수로 만들어 150자를 채웠으나 퉁퉁불은 면발같이 맘에 들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 앙상항 가지 끝에서 그는 푸르스름한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앙상한 가지는 살짝 밝은 갈색 빛이 강해졌고, 작은 잎꽃이 옹기종기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봄이 오는것이 설렜을 S였지만, 지금 그는 봄이 두렵다.
모두가 활짝 피고 즐겁고, 생기 넘치는 캠퍼스, 그의 주변에서, 혼자만 피어나지 못하고 흙바닥에 뒹구는 그를 발견하게 될까봐.
그제서야 그는 추웠던 겨울이 다가올 봄보다 마음이 편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제쯤 S의 마음은 편한 날이 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