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작은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었어요.
이 이야기는 아버지 친구분 아들에 대한 이야깁니다.
중2때, 여름에 같이 계곡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어요. 아버지 친구분 아들(A라고 할께요.)은 저와 동갑내기였습니다.
동네도 좀 멀었고, 딱히 둘이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고, 그저 아버지 친구분(삼춘이라고 할께요.-표준어는 삼촌이지만, 삼춘이라는 어감이 저는 더 좋아서 정말 가까운 분께는 삼춘이라고 부르는 습관이 있어요.-)께서 가끔 저희집에 놀러오시거나 하면
삼춘 통해 전해 듣는 안부 정도가 전부였던 그런 사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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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 A는 중학교 중퇴였어요. 중학생 때 가출하고 자퇴하고 싸움해서 경찰서 가고,
사춘기를 나름 힘들게 보내고 결국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채, 더 중심을 잃고 방황 했었나봐요.
제가 고등학교 들어간 이후로는
여름즈음에 집에 한 번 왔었다.
집으로 밤 늦게 전화가 왔었다.
정도 수준의 이야기만 전해 듣고 그 외의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삼춘은 많이 가슴아파 하셨어요.
수능이 끝나고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올 무렵 다시 A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어요.
한 일 년전에 집으로 돌아와서 A의 작은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는 공장에 취직을 해보고 싶다고 그러더랍니다.
삼춘은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대요. 동생(A의 작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시고, 다음날 새벽에 공장으로 바로 데려다 주셨다고 하더라구요.
공장 안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묶는 숙소에 남는 방에 방을 마련해주고, 그렇게 공장에서 일을 배웠다고 하네요.
혹시 밤에 퇴근해서 밖으로 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봐 A는 작은 아버지께 부탁해서 혹시라도 공장 밖으로 자신이 나가려고 하면
때려서라도 말려달라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일을 했답니다.
그 뒤로 몇년 있다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삼춘을 뵈었을 땐 표정이 엄청 밝아 지셨었어요.
저는 같이 소주 한 잔 기울이며, A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공장에서 몇 년을 열심히 일하던 A는 경리직원이랑 눈이 맞아서 결혼까지 하기로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결혼식은 A가 중,고등학교 검정고시 패스하고, 수능을 다시 봐서 대학교에 들어가면 하기로 약속을 했다던가 뭐 암튼 그랬습니다.
신부가 될 사람은 A를 위해주고, 챙겨주고, 또 그동안 포기하다시피 한 공부까지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그랬나봅니다.
'내 아들놈이 망나니였는데, 망나니 중에도 아주 최고로 꼴통이었는데, 집안에 복덩어리가 들어왔어.'
이러시면서 하염없이 웃으셨어요.
컨테이너로 만든 숙소에서 지내던 A는 그동안 모은 월급으로 작은 방을 얻어서 신부 될 분과 같이 출퇴근하면서
밤에는 공부하고, 낮에는 일하고 그렇게 검정고시도 합격하고 수능 공부가 힘들다면서 일주일이면 두 세번씩 전화해서
다 늙은 아버지에게 투정부리고, 어머니께 애교부리고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
제가 A의 결혼식에 가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지내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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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불행하거나, 힘드셨던 분들 앞으로 생길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에요.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고 살 수는 없지만,
살다보면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것 같아요.
A는 제 주변 사람중 가장 평범하지 않게 살아온 친구지만, 어렸을 때 방황했던 과거보다 누가 보더라도, 행복한 자신의 삶을 찾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요즘 처럼 하루 하루 살아가는게 점점 더 고달파 지는 현실에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마음속 작은 여유와 희망이 절실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여러가지 문제로 힘들어하시는 여러분,
내일은, 모레는, 다음 주에는 더 좋아질 거에요.
나아마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