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소득층 사람들은 보수를 지지하는 것일까? 보수적인 당은 현 체제를 유지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반면 진보적인 당은 현 체제와는 다른 것을 지지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 체제를 비판하고 벗어나려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 사례로 유럽 등 많은 지역에서 저소득층일수록 진보적 성격을 띄고 있는 당을 지지한다.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는 반대로 저소득층이 보수적 성격인 당을 지지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첫째,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유럽 도시와 한국 도시 풍경의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한국은 무수한 식당과 가게, 상가 건물들이다. 유럽의 경우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가게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많지도 않다. 그 사례로 노르웨이의 경우 소매업시장의 99.3%를 네 개의 큰 독점기업이 체인점을 통해 독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는 개인 자영업자가 인구수에 5%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유럽국가에서 당연히 경쟁보다는 복지와 균형을 주장하는 진보적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영업자들이 전체 취업자의 34%를 이루는 우리나라에서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또한 당장의 자금 흐름에 많은 문제가 생기는데 이때 ‘경기 회복’을 약속하는 보수진영의 감언이설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즉 많은 자영업자들이 장기적인 복지와 균형보다는 당장의 경제 성장을 주장하는 보수적인 새누리당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 경제가 1960~1970년대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이 박정희 때문이라는 사회심리적 요인 때문이다. 중화학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적 산업자본주의는, 영국에서는 거의 150~160년 동안, 독일에서는 약 130~140년 동안 발전돼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30~40년 정도밖에 안 된다.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와 재벌 주도로 중화학공업 건설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노동자들과 중간 계층 사이에 학력과 부동산 보유에 따른 소득 격차가 벌어지기도 하고 도시와 농촌 간에 격차, 재벌과 중소기업 고용자 사이의 격차 등 온갖 불균형과 불평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를 당시 지배층에서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하면서 정당화 하였다. 박정희 시대에도 초고속 개발이 분명 성공하긴 했지만, 당시 이러한 경제 성장의 수혜를 받은 사람들은 당시 지가가 높아지면서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들뿐이었다. 수혜자 반열에 끼지 못하는 상당수의 노동자와 영세민들은 당연히 박정희가 설계한 사회 모델에 혐오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를 욕하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는 이렇게 잘 살게 되었는데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 이런거야’란 식으로 자기 자신을 탓하기만 하였다. 이러한 사회심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가난한 사람들은 현 체제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단지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 그래’란 식으로 생각하고, ‘이만큼 살게 된 것도 박정희 때문이야’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들은 진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의 사회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계속해서 보수진영을 지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인 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있는 헤게모니(hegemony) 때문이다. 헤게모니란 가장 통상적인 의미에서 한 집단·국가·문화가 다른 집단·국가·문화를 지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보수적인 김대중, 노무현대통령 시기를 빼고 계속 보수적인 정당이 여당으로 존재하였다. 그러면서 그들만의 지배적인 의식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지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헤게모니를 이용한 지배는 국민들이 저학력일수록 더욱 효과적이다. 저소득층일수록 당연히 학력은 저학력층이 많을 것이다. 그 결과 저소득층일수록 보수정당의 헤게모니에 의해 보수진영을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주장으로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인 죠지 레이코프는 자신의 저작인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프레임’이란 개념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 진영을 택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로 헤게모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프레임을 보수진영이 갖고 있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점이 보수진영에서 만들어낸 프레임에서 머물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학교 성적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부 잘하는 사람만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믿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프레임을 보수진영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형성하기 위해 거짓말을 능숙하게 해낸다. 내막을 알고 보면 뻔한 거짓말인데도 얼굴에 철판을 깐 듯 거짓말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진보진영에서는 이러한 거짓말이 사실로 들어날 때 많은 사람들이 보수진영에서 등을 돌릴 것이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사람들의 ‘믿음’이다. 사람들은 보수진영에서 말하는 많은 거짓말들을 믿고 이를 진실이라 생각한다. 그 결과 보수진영이 말하는 정책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 되고 보수진영에서 비판하는 진보진영의 말은 해서는 안 될 정책이라 여기게 된다. 그 예로 오늘날 종북주의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는 새누리당의 정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