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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1972년 박정희의 비민주적이며 반헌법적인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이 발효되자 지식인, 종교인, 언론인 그리고 학생들의 저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자 박정희는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내 아버지를 1호로 잡아 가두었습니다. 또한 모든 언론을 잔혹하게 탄압하기 시작했으며 ‘언론 사전 검열’을 실시하게 됩니다. 이에 맞서 동아일보 기자들은 1974년 ‘자유언론수호대회’를 열게 되었고, 박정희는 중앙정보부를 동원하여 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동아일보의 광고주들을 협박하고 서약서를 쓰게 합니다. 결국 동아일보는 ‘백지광고’를 내게 되었고, 그러자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이 나서서 자발적인 ‘백지광고’에 동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권력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동아일보는 7개월 만에 백여명에 달하는 기자들을 무더기로 해고 해 버린 채 박정희의 어용 언론으로 전락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이후 42년이 지난 2016년, 나는 ‘불의한 박근혜 정권을 선거로 심판하자.’는 광고를 미주 일간지에 실었습니다. 그러자 박근혜 정권은 재외 국민 선거법 위반 1호라는 영예와 함께 내 여권을 빼앗고 나를 검찰에 고발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 했던가 봅니다. 이번에는 미주 각 신문사들에게 선거에 관련된 내용의 광고를 받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 결과 나는 '백지광고'를 내게 되었습니다.
박정희는 광고주에게 광고를 주지 말라고 하더니, 박근혜는 신문사에게 광고를 받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로 ‘백지광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박정희의 비열한 독재 통치가 29년 후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만천하에 드러났듯이 언젠가는 박근혜의 무지, 무능 그리고 무치가 낱낱이 밝혀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 역사를 잊어버린 이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되돌려 줍니다.
정의는 이기고, 자유는 살아나고, 평등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잊지 맙시다. 그리고 포기 하지 맙시다.
장호준
출처 | 백지광고-7.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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