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먹고 싶어요.”
아름다운 도전이 끝났다. 신미성(36) 김지선(27) 이슬비(26) 김은지(24) 엄민지(23)로 구성된 여자 컬링 대표팀 선수들은 “빨리 한국 가서 김치도 먹고 싶고, 한식도 먹고 싶다”며 웃었다. 대표팀은 18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큐브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 9차전 캐나다와의 경기를 끝으로 이번 대회 일정을 모두 마쳤다. 세계랭킹 10위로 참가 10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던 한국은 일본과 러시아 미국을 상대로 승리를 챙기며 3승6패로 8위를 차지했다.
◇최강 캐나다 움찔했다
한국의 마지막 상대는 예선 8전 전승을 기록하고 있던 최강 캐나다. 한국은 17일 미국을 누르고도 경쟁국들이 승리를 챙겨 4강행이 무산된 반면 캐나다는 준결승에 일찌감치 진출한 상황이었다. 두 팀은 경기를 대강 치르지 않았다. 한국은 7엔드까지 4-5로 분전하며 캐나다에 첫 패배를 안겨주고자 사력을 다했다. 최민석 코치는 경기 중 한 번 뿐인 작전타임을 요청하며 승리를 독려했다. 그러나 전국에 컬링장만 1500개나 있는 캐나다의 저력이 다소 앞섰다. 한국은 후공이었던 8엔드 때 오히려 2점을 내줬고 9엔드에도 2점을 더 내줘 4-9로 패했다. 스킵 김지선은 “다른 대회에서도 붙었던 선수들인데 올림픽에선 달라보였다. 세계적인 팀들은 함부로 스톤을 던지지 않고 항상 신중했다. 거기서의 차이가 승패를 가르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날 경기 후엔 그의 남편인 중국 남자 대표 쉬 샤오밍이 나타나 짐을 들어주고 격려했다. “7엔드 때 실수를 했다”며 아내에게 따끔한 조언도 건넸다. 대표팀 동생들은 그런 쉬 샤오밍을 “형부”라고 불렀다.
| [스포츠서울] 컬링 대표팀의 엄민지가 18일 소치 해안 클러스터의 올림픽 파크 내 아이스큐브 컬링센터에서 열린 캐나다와의 경기에서 구호를 보내고 있다. 2014.02.18. 소치 | 김도훈기자 [email protected] | |
◇“김치 뺏긴 것도 추억이죠”
컬링은 단일팀이 국내 선발전에서 우승해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경기도청 단일팀으로 구성된 한국 대표팀은 지난 8월부터 소치 올림픽 하나만 바라보며 매일 돌을 던지고 비질을 했다. 지난 해 가을엔 중국 오픈과 아시아·태평양선수권 대회를 위해 중국을 다녀왔고, 12월엔 이탈리아 트렌티노 유니버시아드에도 출전했다. 소치 올림픽 컬링장 얼음을 만든 ‘아이스메이커’ 마크 캘런이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해 1월5일부터 한 달간 스코틀랜드 애버딘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가 소치에 바로 갔다. 집이 그리워도 한창 그리울 때다. “애버딘 호텔에 김치 반입이 안 됐다. 그래서 호텔 밖 렌트카 밑에 숨겨놓고 조금씩 방으로 가져와 먹은 적이 있었는데 얼마 안 가 걸렸다. 그래서 김치가 그립고 한식도 그립다”며 웃은 맏언니 신미성은 “실력 발휘를 못 해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열심히 땀 흘린 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소치에서 샷 감각이 좋아 덴마크와의 7차전부터 바이스 스킵으로 승격, 엔드마다 마지막 투구를 했던 김은지는 “스킵 김지선 언니의 심정이나 부담감을 이번에 알게 됐다. 언니가 너무 고생한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 [스포츠서울] 컬링 대표팀의 김은지가 18일 소치 해안 클러스터의 올림픽 파크 내 아이스큐브 컬링센터에서 열린 캐나다와의 경기에서 구호를 보내고 있다. 2014.02.18. 소치 | 김도훈기자 [email protected] | |
◇‘컬링돌’ 쉴 틈이 없다
소치 올림픽 여자 컬링이 국내 전파를 타면서 대표팀은 ‘컬링돌’이라는 별명도 갖게 됐다. 하지만 선수들은 22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곧바로 경북 의성에 간다. 동계 전국체전에 경기도청 소속으로 출전하기 때문이다. 그게 끝이 아니다. 전국체전이 끝나면 며칠 쉰 뒤 내달 15일부터 캐나다 세인트 존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 아시아를 대표해 나선다. 이런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4년 뒤 평창에선 더 크게 꽃피울 것으로 선수들은 믿는다. 김지선은 “소치 올림픽 출전권은 솔직히 기적처럼 다가왔다. 평창 올림픽 때 기회가 온다면 후회 없이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영섭 감독은 “잘 하다가도 역전 당하면 다급해지는 게 문제다. 경험이 쌓이면 나아질 것으로 본다”며 2018년을 기약했다. 선수들은 아이스큐브 앞에서 둥글게 모인 뒤 “대한민국 화이팅!”을 외치고 소치와 작별했다.